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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가마리 포구 / 박병란

 

[가작] 모슬포에선 못 쓸 것은 없다 / 김성배

 

 

 

[심사평]

 

5회 서귀포 문학작품 공모 시부문에 응모한 작품 편수는 359편이었다. 응모 편수만 놓고 보더라도 서귀포 문학작품 전국공모가 전국의 수많은 문인들로부터 관심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부문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블라인드 처리된 응모작들을 돌려 읽은 뒤, 각자 간추린 작품을 다시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심사평에 먼저 알려드려야 할 사항은 무엇보다 서귀포 문학상의 심사 방향이다. 이것은 문학상 공고란에 명시된 공모 주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명시된 공모 주제는 서귀포시의 삶, 역사, 자연, 문화, 사람, 전설, 신화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 내용들은 소재로 분류될만한 성격의 것들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공지된 주제 내용이 심사의 방향일 수밖에 없음을 전제해야 한다. 이로써 서귀포 문학상의 취지가 선명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응모 작품들은 대부분 서귀포 관련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소재를 취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것들에 육화되지 못한 채 나열과 이미지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소재로써 체화된 단어들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거나, 잘 알려진 서귀포의 이미지 포장에 활용된 아쉬움이 컸다.

 

반면, 일상의 육화가 이루어진 작품들은 그 내용이 서귀포로 이어지는 연계고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굳이 서귀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납득되는 삶과 사람이 작품에 드러났다. 실제 작품 속에서 타지역의 지명이 혼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무난한 작품성의 성취를 보여주지만 심사 방향과는 다소 거리 있는 작품들도 아쉽지만 최종심에서 제외되었다.

 

논의를 거쳐 압축된 두 작품은 가마리 포구’, ‘모슬포에선 못 쓸 것은 없다였다. 두 작품 모두 서귀포라는 소재의 형상화를 무리 없이 잘 거쳤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자의 경우, 그것이 서귀포라는 상징성을 잘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후자의 경우에는 작위적인 연결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누가 봐도 맨도롱 호게따위의 수사는 억지로 채집한 소재라는 게 자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논의된 장단점을 고려하여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을 각각 가작으로 선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뤘다.

 

가작 당선자들께 축하를 보낸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당선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성취도를 보여준 여러 응모자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나기철,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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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스모루, 새들의 집 / 김신숙

 

 

새는 날아가지

날아가다 언젠가는 구름이 되지

스모루라는 새는, 스모루라는 구름은

바다부터 가파르니 날갯짓이 비탈지다

아버지가 소작하던 귤밭있던 자리는

지금은 붉은 열매가

아파트 불빛으로 익어가고

오랜 세월 망보던 자리에 둥지를 튼

아버지, 아버지라는 새

연대 아래로 트럭 흐르는 소리

일 끝난 아버지 손 씻는 소리

가파른 땅은 등 굽어 걸어야 겨우

발자국 소리 별빛으로 비틀거리며

날 수 있을까

술 취한 사내가 휘청거린

망팟으로 내려가는 길

빈 주머니는 가파른 구름으로 환생하고

스모루라는 이름으로 숨이 마르고

아버지는 먼저 하늘로 날아갔다

연신 고개만 주억거리며

새들의 말을 듣는 연습이 필요하고,

뿔소라의 말을 건져올리며

젖어서 날 선 마들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엔

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 텅 빈 날개,

숨 마르는 경계

스모루가 날아오른다

 

 

 

 

 

[가작] 마라도의 꿈 / 김선호


 

 

 

 

[심사평] 서귀포의 매력을 시적 감동으로 채워줄 작품을 기다리며

 

올해로 제4회째를 맞는 ‘서귀포 문학작품상’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 수는 모두 504편이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첫 회부터 어떤 정보도 개입되지 않은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되었으며,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린다.

 

이번 응모 작품의 경향을 살펴봤을 때 삶의 이야기를 시에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삶의 고단함과 서귀포의 전설, 서귀포의 상징성을 나타내려고 애쓴 작품들이 눈에 띄어서 작품을 읽는 맛이 났다. 잊고 있던 서귀포라는 이름을 꺼내어 불러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삶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쓴다는 것은 관념성이나 추상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경우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직접 경험일 경우에도 ‘시’가 갖는 함축과 비유, 상징으로 이야기를 녹여내지 못하면 날것으로 남아 일기나 산문처럼 흐르기 쉽다. 아쉽게도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서귀포’라는 지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수사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결국 ‘시’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서귀포적이면서 시적인 응집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스모루, 새들의 집’과 ‘마라도의 꿈’ 그리고 ‘무태장어*의 편지’를 최종심에 올려놓고 고심하였다. ‘스모루, 새들의 집’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지명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스모루’라는 제주의 지명을 다른 사물로 치환하는 참신함과 그것을 통해 ‘아버지와 새’라는 이미지를 끌어낸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서귀포문학작품상’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주제나 표현에 있어 다소 미숙하고 가벼워 보였다.

 

‘마라도의 꿈’은 마라도의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표현하는 데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문장들이 자기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주제에서는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마라도의 꿈’이 보이지 않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당선작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무태장어*의 편지’는 서귀포라는 지명의 특색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의미의 문장들로 긴장을 놓쳐버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쩔 수 없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끌리는 작품도 더러 있었지만 형식만 있거나 이미지만 있거나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서귀포문학작품상>에 부합하는 이렇다 할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고심에 고심을 했지만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가작에 그치게 되어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서귀포의 매력을 담은 감동적인 작품들이 줄줄 나오길 기대하며 여기서 마친다.

 

심사위원 오승철 유홍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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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서쪽 / 박미라

대정현* 어디쯤에 눌러 살고 싶다
적당히 허물어진 돌담 안쪽에
점잖게 늙어가는 옛집이 계시다면 정성으로 모실 테지만
몸이 없는 것들이 오시는 모습을 알 수 없으니
담장을 다시 쌓거나 쓸고 닦지는 않겠다

당신이라는 서쪽을 향하여
큰 창을 두고
창밖에 먼나무**를 심겠다

울안이거나 삽짝 밖이거나
어디에 두어도 먼나무는 먼나무여서
먼나무 먼나무 부르다가 먼그대라고 잘못 부르면
하늘이 먼저 알아듣고
이호테우 해변보다 더 붉은 저녁을 펼칠지도 모른다

무너진 담장 사이로 바람이 다녀가시면서
선인장 꽃씨 하나 떨군다면
세상에는 없는 선인장꽃 문패를 내걸 수 있겠다
노란꽃 문패 달빛보다 환한 밤이면
불현듯 다녀가실 것을 믿는다

먼나무가 제주에 살기 시작한 것은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염려하는
당신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는다

* 추사 유배지
**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감탕나무과의 상록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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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귀포 / 김효선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생이 있다면
한라산은 눈썹 위에 두고
서귀포 물빛은 발아래 두어
노오란 과즙 향기로운 돌담 아래를
느리게 걸어 다니리라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희망으로
불멸을 구하러 왔다지, 서복
한평생 푸른 바다엔 전복 소라 멍게 해삼
영원한 보물이 그리움인지도 모르고 돌아갔다지
그 넓고 넓은 대륙에서 마음 하나 구하지 못해
서러운 노을로 몇 달을 쓸쓸하게 타올랐다지
천지연 폭포에 귀를 씻어 번뇌를 지우고
새연교 다리를 건너면
어느새 상처도 인연으로 머문다는데
어디서나 너의 이름이 서쪽이라서 살고 싶어진다
다시 돌아갈 사람을 가졌다는 위로만으로도
가장 뜨겁게 오래 피는 마을
다시 사는 생이 있다면 그런 생이 온다면
서귀포, 서귀포에 가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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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연폭포 / 이종근

 

물도 바람으로 울면 저렇게 기적 소리가 난다

 

푸드덕거리는 물자국 소리에 떠올랐다가 내려가도

 

얽히고설킨 울음은 포말에 감추어진다

 

섬을 돌고 돌아 섬의 물너울에 미끄러지는

 

낮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를 알아볼까

 

못다 한 꿈을 무등 태우고 섬을 오가는 뱃고동 끝에서

 

막바지 여름에 가 닿는 날 샌 기적 소리를 내고 있다

 

푸른 숲과 맑은 생각이 만나는 늙은 포구의 플랫폼에

 

멈출 수 없는 물바퀴가 긴 호흡을 멈추면

 

나는 돌멩이에 스며드는 바람을 주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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