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금상] 한지韓紙를 뜨면서 / 최형만

 

 

해마다 달빛을 짓는 당신은

오늘도 잿물에 삶아낸 닥나무 껍질을

닥메로 두들기고 있다

 

대를 잇는 소리가 봄꽃처럼 졌어도

밤마다 당겨보는 맹아지萌芽枝

 

지통에서 풀어질 때마다

나뭇결에 달아둔 매듭이 삭으면

속말 뱉어낸 몸피도 낱장으로 끼어든다

뿌리를 적신 계절의 울음도

그때쯤이면 진물처럼 고였을 텐데

 

햇살 한 장으로 그 밤을 견딘 사람들

해 지던 봉창도 첫날밤처럼 붉었을 게다

그런 날의 결의는 어찌나 깊은지

사운대는 대숲 바람도 문살을 흔들었을 게다

 

흰 적막이 한 자나 쌓일 때도

허공을 밝힌 반딧불이처럼

제 숨결을 꽃눈처럼 발라가는 당신

굽은 등 어디에서 꽃등 켰을까

 

부서진 창호에 순한 달빛이 들 때면

청태靑苔가 핀 상처에도 둥근달이 걸렸다

 

 

 

 

 

[은상] 토렴 / 이정림(이연수)

 

 

시장통 국밥집은 수증기 꽃이 핀다

아버지 사라진 날에도

국밥의 온도는 식지 않고

김이 자욱했다

 

솥단지는 노모가 지어놓은 방이다

오늘을 찬밥 위에 쏟아붓는다

솥단지로 스며든 나는

식어가는 체온으로 아버지를 기다린다

부었다 따르기를

따랐다 붓기를

 

노모의 국자는 솥단지 안에서 식어가던

돌아온 아버지를 걷어들이고

국밥의 체온을 식은 밥 위로 쏟아붓는다

 

아버지가 다시 사라졌다

골목 입구와 골목 출구는

찬 밥에 뜨거운 국물로도

아버지를 배어들게 할 수 없었다

국밥의 온도가 식지 않고

수증기로 피어오르면

식어가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아직 식지 않은 나를 위해

부었다 따르기를

따랐다 붓기를

 

온몸의 색이 바랜 아버지의 옷은

도박으로 집을 팔고

가게를 저당잡혔다

 

시장통 국밥집에서 노모는

수증기를 휘휘 저어

거품을 걷어 내고

나를 걷어들인다

막지 못한 잡내와

삼키지 못한 말들

 

덥혀 내어놓는 중이다

 

 

 

 

 

[동상] 별자리 / 이태희

 

 

한 사내가

저 별을 가지고

밤의 길을 가려 합니다

길은

머물지 않고

흘러가지도 않아서

긴 밤은 하룻밤을 가득 채우고

외롭지 않게 피어나 있는 별자리입니다.

지우지 못하는 이름에

잊고 살아가라

부르지 못하는 이름에

잊고 살아가라

바라보니

12척의 판옥선에 외로운 숨들

바라보니

외로운 눈물에 말없이 떠나가는 별자리입니다

모두가 무겁지 않게

별자리의 품을 만들고

발걸음에 별의 이름이 되리니

달빛에 홀로 부르는 노래가

눈물에 외로이 바다로 떠나가는 역사의 연들

붉게 물든 긴 칼에 품은 초검도 사라져가니

풍전등화 속에 외로운 승전의 입김은

바람에 스쳐가는 별자리입니다

 

 

728x90

 

어달리의 새벽 / 정영주

 

묵호는 검은 고래다

 

새벽마다 허옇게

바다를 벗겨내는 어부들이

선창가에 비릿한 욕지거리를 잔뜩 풀어 놓으면  

 

고래입같은 아가리 배에서는

온통 욕지기질로 헐떡이는 생선들  

 

경매가 시작되면

선창가는 거대한 고래 뱃속이다

부시시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

퍼덕거리다 뒤로 나자빠지는 그네들의 흥정  

독한 비린내까지 경매로 팔려나가면

묵호는 체증에 걸린 고래 뱃속을 빠져나간다  

 

오징어처럼 먹물을 뒤집어쓰고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파장의 도시-

하루를 새벽에 몽땅 떨이해 버리면

그제서야 졸음은 해일처럼 몰려온다  

 

지난밤

오징어 배에 수없이 켜 놓은 알전구로

눈이 먼 어부들, 이제

눈꺼풀 안쪽에 비친 햇덩이가

200촉짜리 집어등만큼 뜨겁다

 

 

 

728x90

 

 

[최우수상] 꽃의 난중 일기 / 김은철

 

 

 

[우수작상]  : 그물에 걸린 하늘 / 이호재

 

영흥도 길목을 지키는 섬

선재도가 바다를 가두고 있다

송수관은 두 세계가 통하는 블랙홀

커다란 빨대로 섬이 바다를 삼키고 있다

용궁의 백성들이 트럭에 실려 호수에 유배된,

인공 바다에서 방갈로가 낚시를 한다

일렁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가미와 허파의 방식이 마주한다

수면에 양발 걸친 낚시찌는 선망의 대상

다이빙 자세와 곧추선 자세가

한 몸으로 두 세계를 조율한다

잔물결이 비늘처럼 반짝이는데

흐린 물빛 속 물고기 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 몇 번 공수되는 바닷고기는

물 밖으로 잡혀 나가고 물밑으로 가라앉고

어두운 물속 물고기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수중을 들여다보며, 폐수 유입으로 오염되었을 거란다

물 밖 허공을 올려보며, 굴뚝 분진이 폭설처럼 쌓였을 거란다

내리는 빗물이 불순하단다

오르는 안개가 매캐하단다

하늘이 그물에 걸렸다

내 낚싯바늘엔 물고기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작]  책상과 달의 각도 / 김선화

 

 

 

 

제4회 아산문학상 전국공모전은 아산문화재단 주최 및 (사)한국문인협회 아산지부(지부장 장미숙) 주관으로 개최, 지난 7월 10일~9월 30일 자유 주제로 시(3편), 수필(원고지 15매 내외 2편), 단편소설(원고지 80매 내외 1편), 평론(원고지 60매 내외 1편) 부문을 모집했다.

또 총상금 1천100만원을 내건 이번 공모전에 접수된 작품은 지난달 17~18일 예선 및 24~25일 본선 심사를 거쳐 최종 8개의 당선작을 선정, 지난 7일 온양제일호텔 2층 크리스탈홀에서 시상식이 개최됐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여파로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한상무 시인의 시 부문 최우수작 '꽃의 난중일기' 낭송, 유선종 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사말, 이명수 의원·이동현 아산예총 지회장 축사, 이정우 충남문인협회 지회장 심사평, 시상 및 수상자 소감 발표, 단체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공모전에 1천338개 작품(시 955작(作), 수필 266작, 소설 104작, 평론 13작)이 접수된 가운데 문학적 작품성 30%, 문장력 20%, 글 구성의 완성도 20%, 대중성 10%, 소재의 참신성 20% 등의 엄정한 예선 및 본선(시 9작, 수필 9작, 평론 4작, 소설 4작) 심사를 거쳐 당선작을 선정했다.

최종 당선작으로 △대상 '트로피 헌터'(소설), 경기 남양주시 노은희씨 △최우수상 '이순신 진중시(陣中詩)의 대구(對句)에 나타난 의미 양상'(평론), 광주시 북구 노창수씨 △최우수상 '꽃의 난중일기'(시), 경기도 화성시 김은철씨 △최우수상 '우리는 가끔 나비였을까'(수필), 경기도 용인시 조봉경씨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여기에 시 부문 우수상에 서울시 중랑구 이호재씨의 '그물에 걸린 하늘'과 가작으로 전남 보성군 김선화씨의 '책상과 달의 각도', 수필 부문 우수상에 경기도 군포시 김유림씨의 '모녀 춘기(春氣)'와 가작으로 경기도 안산시 정순옥씨의 '울퉁불퉁 삶이 품어주는 보자기' 등의 작품이 차지했다.

 

한편 당선작은 아산문학상 전국공모 당선 작품집과 한국문인협회 아산지부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아산문학에 게재되며, 응모작은 (재)아산문화재단 및 한국문인협회 아산지부에 귀속된다.

728x90

 

[최우수상] 엑스트라 / 김지용

 

[우수상] 모자이크, 서울 / 배은별

 

[가작] 흉터 / 김수진

 

 

 

충남 아산시가 주최하고 아산문화재단과 (사)한국문인협회 아산지부(지부장 민수영)가 공동 주관한 2019년 제3회 아산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23일 온양제일호텔 크리스탈룸에서 개최, 전국에서 출품된 으뜸의 당선작 7점을 선발 및 시상했다.(사진)

이날 열린 시상식은 ‘아산을 세계속으로'란 슬로건을 갖고 (사)한국문인협회 아산지부 송용배 감사가 사회를 맡아 식전공연, 내빈소개, 민수영 아산문인협회 지부장의 경과보고 및 인사말, 유병훈 부시장 축사, 강훈식 의원 축사, 김원근 아산예총 지회장 축사,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심사총평에 이어 출범 3년 여만에 명실공히 전국 문학상으로서 품격을 갖추게 된 아산문학상 7점(7명)을 시상했다.

민수영 아산문인협회 지부장은 경과보고에서 “아산문학상은 지난 2회까지 아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다 올해부터 아산문인협회로 이관돼 치러졌다“며 “지난 7월 15일~10월 15일 3개월 작품을 공개모집한 결과 시 387편, 수필 143편, 소설 55편, 평론 10 등 모두 595편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접수됐다"고 환영했다.

이어 “여섯분의 심사위원들의 마라톤 심사와 2차 본선에서 세분의 심사위원들의 수고로 8편의 당선작을 원칙으로 진행했으나, 아쉽게 평론 부문은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해 일곱 편의 당선작을 선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민 지부장은 “전국 17개 시도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작품이 접수되고, 20~70대 고른 연령대의 응모작이 눈길을 끌었다"며 “문학의 가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를 맞아 문학인의 저변확대와 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아산시를 알리는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성과를 낼 수 있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3회 아산문학상 전국공모전 당선작은 △가작 시부문 김수진씨의 ‘흉터', 수필부문 이순희씨의 ‘삭정이' △우수상 시부문 배은별씨의 ‘모자이크. 서울', 수필부문 박민례씨의 ‘귀무덤' △최우수상 시부문 김지용씨의 ‘엑스트라’, 수필부문 임경희씨의 ‘아저씨' △대상 소설부문 정민구씨의 ‘그는 제바닷타였을까?' 등 일곱 작품이 선정됐다.

 

728x90

 

 

 

스프링 위를 달리는 말 / 신혜정


분홍 빛 말이 나를 유혹했어요
말을 타려고 하는데 해진 바지 사이로 무릎이 보이네요
말장사 아저씨가 입은 회색 점퍼 소매에도 누런 솜털이 삐죽거려요
아까부터 아저씨는 저기 공장굴뚝처럼 기침을 토하고 있어요
나는 달리고 있었거든요
달리는 말 위에서 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나는 말 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위로 솟으면 초록과 빨강 줄무늬 천막이 보이고
내려오면 내 바지처럼 군데군데 구멍난,
쓰레기더미 같은 판자집이 보였어요
연탄재들은 오늘 아침 차에 실려 떠났어요
말장사 아저씨는 네발달린 의자에 안장처럼 앉아있네요
아저씨가 움직일 때마다 의자가 삐그덕 소리를 냈어요
나는 달리고 있었거든요
달리는 말 위에서 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발굽 소리 대신 녹슨 스프링만 자꾸 삐그덕 거렸어요
창호지 바른 우리집 창문에 불이 켜지네요
이제 말들이 리어커 바퀴에 실려 떠날거예요
나는 달리고 싶었거든요
다리가 없는 분홍 빛 말 위에서 나는 달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엄마, 연탄재는 왜 또 내 놓으세요?

728x90

 

 

건봉사 불이문 / 이덕완


두 개인 듯 하나로 보이는 구름 한 조각
금강산과 향로봉에 걸쳐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건봉사 불이문에 들어선다

부처님 치아사리 모신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없고
계곡 건너 금강산 대웅전엔
부처가 환하다
만행의 뜨거운 발자국이 보일 듯
돌다리를 경계로
금강산과 향로봉이 포개진다

같고 다름이 하나인데
이곳에는 모두가 둘이라니

민통선 철조망이 반세기 동안
녹슨 풀섶에서 가람을 두르고 있다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풀향기에 섞인다
깨진 기왓장에 뒹구는 낡은 이념들
초병들의 군화 발자국 절마당에 가득한데

목백일홍나무에서 떨어지는
자미꽃의 핏빛 절규는
나무아미타불탑 위의 돌봉황에 실려
북으로 가는가 갔는가

적멸보궁 터진 벽 뒤로 날아가는
하얀 미소를 보며, 아내와 난
보살님의 준 콩인절미를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