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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한지韓紙를 뜨면서 / 최형만

 

 

해마다 달빛을 짓는 당신은

오늘도 잿물에 삶아낸 닥나무 껍질을

닥메로 두들기고 있다

 

대를 잇는 소리가 봄꽃처럼 졌어도

밤마다 당겨보는 맹아지萌芽枝

 

지통에서 풀어질 때마다

나뭇결에 달아둔 매듭이 삭으면

속말 뱉어낸 몸피도 낱장으로 끼어든다

뿌리를 적신 계절의 울음도

그때쯤이면 진물처럼 고였을 텐데

 

햇살 한 장으로 그 밤을 견딘 사람들

해 지던 봉창도 첫날밤처럼 붉었을 게다

그런 날의 결의는 어찌나 깊은지

사운대는 대숲 바람도 문살을 흔들었을 게다

 

흰 적막이 한 자나 쌓일 때도

허공을 밝힌 반딧불이처럼

제 숨결을 꽃눈처럼 발라가는 당신

굽은 등 어디에서 꽃등 켰을까

 

부서진 창호에 순한 달빛이 들 때면

청태靑苔가 핀 상처에도 둥근달이 걸렸다

 

 

 

 

 

[은상] 토렴 / 이정림(이연수)

 

 

시장통 국밥집은 수증기 꽃이 핀다

아버지 사라진 날에도

국밥의 온도는 식지 않고

김이 자욱했다

 

솥단지는 노모가 지어놓은 방이다

오늘을 찬밥 위에 쏟아붓는다

솥단지로 스며든 나는

식어가는 체온으로 아버지를 기다린다

부었다 따르기를

따랐다 붓기를

 

노모의 국자는 솥단지 안에서 식어가던

돌아온 아버지를 걷어들이고

국밥의 체온을 식은 밥 위로 쏟아붓는다

 

아버지가 다시 사라졌다

골목 입구와 골목 출구는

찬 밥에 뜨거운 국물로도

아버지를 배어들게 할 수 없었다

국밥의 온도가 식지 않고

수증기로 피어오르면

식어가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아직 식지 않은 나를 위해

부었다 따르기를

따랐다 붓기를

 

온몸의 색이 바랜 아버지의 옷은

도박으로 집을 팔고

가게를 저당잡혔다

 

시장통 국밥집에서 노모는

수증기를 휘휘 저어

거품을 걷어 내고

나를 걷어들인다

막지 못한 잡내와

삼키지 못한 말들

 

덥혀 내어놓는 중이다

 

 

 

 

 

[동상] 별자리 / 이태희

 

 

한 사내가

저 별을 가지고

밤의 길을 가려 합니다

길은

머물지 않고

흘러가지도 않아서

긴 밤은 하룻밤을 가득 채우고

외롭지 않게 피어나 있는 별자리입니다.

지우지 못하는 이름에

잊고 살아가라

부르지 못하는 이름에

잊고 살아가라

바라보니

12척의 판옥선에 외로운 숨들

바라보니

외로운 눈물에 말없이 떠나가는 별자리입니다

모두가 무겁지 않게

별자리의 품을 만들고

발걸음에 별의 이름이 되리니

달빛에 홀로 부르는 노래가

눈물에 외로이 바다로 떠나가는 역사의 연들

붉게 물든 긴 칼에 품은 초검도 사라져가니

풍전등화 속에 외로운 승전의 입김은

바람에 스쳐가는 별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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