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유심작품상 시 부문에 윤효 시인, 시조 부문에 문무학 시조시인, 소설 부문에 이경자 소설가, 특별상 부문에 한분순 시인(前 한국여성문학인회장)이 선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5월 10일 제19회 유심작품상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시 부문에는 윤효 시인의 ‘차마객잔’이, 시조부문에는 문무학 시조시인의 ‘그전엔 알지 못했다’가, 소설 부문에는 이경자 소설자가의 단편 소설 ‘언니를 놓치다’가 각각 선정됐다. 특별상 부문에는 한분순 시인이 이름을 올렸다.
시 부문 수상자 윤효 시인에 대해 심사위원 오세영 시인은 “윤효 시인의 작품은 존재나 세계에 대해 항상 사색적이고 자기 성찰적”이라며 “그의 시에는 크든 작든 삶에 대한 깨우침이 있다. 한마디로 철학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조 부문 심사위원인 김영재 시조시인은 “문무학은 한국시조단뿐 아니라 한국문단에 소중한 시인으로, 한글 자모(子母)를 시로 쓴 유일한 시인”임을 강조했다.
소설부문을 심사한 구중서 문학평론가는 이경자 소설가에 대해서 “작가 이경자는 인간 존재의 기본권에서부터 문제를 추적하는 작품을 쓰고 있다. 아울러 총체적 세계관 범주에서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소설을 쓴다”면서 “소설 「언니를 놓치다」는 이러한 현실의식을 충직한 수법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에 대해 윤효 시인은 “수상 통보를 받고 만해 한용운 스님을 떠올렸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환하게 밝힌 선지식의 전인적 풍모가 그리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으며, 문무학 시조시인은 “수상작 ‘그전엔 알지 못했다’가 만해 스님의 ‘알 수 없어요’를 많이 쫓아가고 싶었나 보다. 수상의 기쁨을 숨기지 않으면서 여기선 그런 억지라도 마구 부리고 싶다”고 말했다.
“강원도 양양 이북이 고향”이라고 밝힌 이경자 소설가는 수상소감으로 “인간 삶의 모순이 층층이 켜켜이 시공간에 뭉쳐있는 곳. 이곳에서 내 무의식이 모두 형성 됐다. 그러므로 소설가인 나는 뭉친 것을 풀어야 하는, 책무를 얻었다”고 밝혔다.
제19회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오는 8월 11일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 만해축전에서 진행되며, 각 부문 수상자들에게는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수상 소식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원인 모를 부끄럼이 나를 엄습해왔습니다. 서른다섯 해 동안 시를 써오면서 과연 나는, 그동안 시에서 진술한 내용에 걸맞게, 삿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내게 주어지는 이 상이, 다른 상도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 운동을 통해 청년운동을 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여 불교의 현실참여에 앞장서 온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상이고 보니 수상했다는 기쁨도 잠시, 그 기쁨의 자리를 밀어내고 이내 무거운 책임감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흔히 아날로그 세대로 명명되는 내 몸 속에는 전근대와 근대와 탈근대의 정서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등잔불 밑에 엎드려 숙제를 했고 비포장도로를 걸어 학교를 오갔습니다. 좀 자라서는 기차를 타고 대처에 나가 온갖 근대문명의 이기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문명 기기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발 빠른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학적 용어로 우리 같은 세대를 경계인이라 합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두루 여러 세대에 걸쳐져 있는 정신상태로 불안정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 그리하여 까닭 모를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세대가, 이른바 세상의 저널에서 흔히 말하는 베이비 붐 세대인 것입니다.
나의 시력은 바로 이러한 요철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된 삶의 이력을 반영해 온 것에 다름 아닙니다. 즉, 나의 시는 살아오면서 나에게 의식, 무의식으로 영향을 끼쳐온 세계의 온갖 사물과 나를 다녀간 무수한 인연들을 표절해온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표절 시인이었습니다. 고향을 표절하고 엄니의 슬픔을 표절하고 아부지의 한숨과 동생의 좌절을 표절하고, 눈과 비와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과 달을 표절하고 한 사내의 탕진과 애인의 눈물과 아내의 한숨을 표절하고, 기차와 여관과 굴뚝과 철길과 중서부 지방의 사투리와 그해 겨울 저녁의 7 번 국도와 한여름 강진의 해안선과 서울에서의 피난민들의 삶을 표절했습니다.
요사이 나는 부처의 향기가 난다는 佛巖山을 하루에 한두 번 일과처럼 오르내리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나는 중얼중얼 산에게 속말을 건네고 아무도 모르는 죄를 토설하고 때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산과 심심상인, 교외별전이 이루어지고 나는 산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산에는 크고 작은 돌들과 우람한 바위들이 많은데 오르고 내릴 때 삼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 산에 어린아이로 들어왔으니 어른이 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산을 내려가 세상 어디를 주유하든 나는 이미 내 몸 안쪽에 자리한 불암산을 오르내리며 산이 주는 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유심 문학상’이 내게 준 선물에 내 식으로 보답하는 일이며 ‘만해 한용운 선생’을 사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수상의 기쁨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심심한 고마움을 표합니다.
[심사평]
소리란 무엇인가. 인간의 경우는 음성, 한마디로 언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성을 통해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거나 전달한다. 그런데 소리는 인간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인간의 세상을 뛰쳐나와 밖을 보아라. 이 이 우주의 모든 사물들도 크던 작던 소리들을 낸다. 바람소리, 물소리, 파도소리, 천둥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전화벨 소리…… 이 모든 소리 역시 그들의 언어이며 그들만의 의사소통이 아닌가.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가청(可聽) 주파수라 하는데 다른 짐승과 달리 인간은 20-20.000Hz(헤르츠) 영역 안의 소리만을 듣는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 인간은 이 세상의 대부분 사물들과 소통을 단절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듣지 못하는 그 사물들의 소리는 누가 들을 수 있는가? 누가 그 사물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그 가능한 자를 일컬어 편의 상 그저 시인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훌륭한 시인은 이 물리학적 세계의 소리, 경험적 세계의 이 가청 주파수를 넘어서 일상의 인간이 듣지 못하는 그 어떤 사물의 언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재무, 그는 사물이 들려주는 언어를 잘 들을 줄 아는 시인이다. 시류적 시인과 달리 그 사물의 말에 귀를 기우리려고 노력하는 시인이다. 4월의 어떤 화창하지만 적막한 봄날 모든 사람들이 삶의 횐희를 노래할 때 오히려 그는 목련이 들려주는 호곡 소리를 조용히 엿듣고 있지 않는가. 아름다움은 오로지 기쁨의 소유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이처럼 슬픔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슬픔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우리 문단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간의 소리에만 집착하는 요즘 모처럼 사물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 시를 위해서 다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심사위원 오세영
만해 한용운 스님의 문학 사상을 선양하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학인들을 선정·시상하는 유심작품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제17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이재무 시인의 ‘목련’을, 시조부문에 김영재 시인의 ‘바늘귀’를, 평론 부문에 이경철 평론가의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를, 특별상에 이상범 원로 시조시인을 각각 선정했다”고 6월 3일 밝혔다.
이재무 시인의 수상작 ‘목련’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이재무 시인은 사물이 들려주는 언어를 잘 들을 줄 아는 시인으로 시류적 시인과 달리 그 사물의 말에 귀를 기우리려고 노력한다”면서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간의 소리에만 집착하는 요즘 모처럼 사물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 시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상찬했다.
김영재 시인의 ‘바늘귀’에 대해서는 “ 초장의 열고 중장의 펼치며 종장에 닫는 기본 보법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시인 특유의 작법 태도인 상의 비약까지 잘 갈무리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경철 평론가의 평론집에 대해서는 “지난 110년의 한국현대시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시적인 체계를 세우려 했고 이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수상소감에 대해 이재무 시인은 “요새 부처의 향기가 난다는 불암산을 하루 1, 2번 오르내리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아주 산을 내려가 세상 어디를 주유하든 나는 이미 내 몸 안쪽에 자리한 불암산을 오르내리며 산이 주는 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재 시인은 오현 스님의 그리며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마냥 기쁘지 많은 않다”고 운을 띄운 그는 “나의 시조를 과분하게 칭찬해주시던 그분, 오현 스님이 내 곁에 안 계신다. 그분께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할 수 없다. 슬프다. 이 상을 오현 스님 앞에 두 손 받들어 올린다”고 말했다.
이경철 평론가는 “월명사의 ‘도 닦아 기다리겠다’는 불심(佛心)과 미당의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시심(詩心)에 무슨 차별과 등급이 있겠는가”라며 “불교의 원만하고 한량없는 인본주의 세계가 시세계의 궁극과 같음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한편, 제17회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오는 8월 11일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열리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심사위원회는 고형렬 시인을 “한 시인이 정서의 편안함과 아득한 정신의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런 경우는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물다”며 “그는 우리 시가 지닌 서정적 전통의 흐름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예외적이고 독특한 자신의 길을 개척한 형이상학적 시인”이라고 평했다.
박방희 시조시인의 ‘삼릉 숲에서’는 “당대 사회문화적 쟁점의 와중에 제시하는 하나의 실마리”라며 “평등한 진리(不二),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中道)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하면서도 서로 장애가 되는 일이 없다(相卽相融)는 불교적 세계관이 배어 있다”고 평했다.
또 심사위원회는 학술상 수상작 ‘禪, 발가숭이 어록’은 “그동안 송준영 주간이 천착해온 선의 수행서이며 선시의 이론서를 망라하는 작품”이라며 “현대인이 선사상과 선시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별상 수상자 천양희 시인은 “동음이의어를 매개로 한 기표의 즐거움, 유사어를 활용한 음상의 재미, 반복과 병렬을 통한 리듬의 기쁨 등을 바탕으로 사람살이의 깊이 있는 진실을 실감 있는 언어로 표출해 한국현대시의 정신적 현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심사위는 평가했다.
고형렬 시인은 “나는 지금도 설악에서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를 듣곤 한다. 아직 오지 아니한 우리의 고통 같기도 하고 어느 아라한의 희열 같기도 하며 그 선반에서 떨어진 사물 소리 같기도 하다. 산속에서 평생을 깎아가며 우듬지를 올렸을 어느 송백이 내장한 나이테의 침묵과 그 솔잎의 바람소리를 들려주려면 좀더 걸어야 할 것”이라며 “시를 대신하여 늘 수평선을 내다보던 설악산 너머 사진리 모래기의 두 형제섬에게 설악이 만든 이 상을 바친다”고 했다.
박방희 시인은 “시업에서 오래 겪던 혼돈과 헤맴은 결국 시조에 이르기 위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읽어온 어떤 자유시들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시조, 시조의 형식과 율격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했다”며 “질서를 통하여 저의 시는 품品과 격格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송준영 주간은 “나는 순간 찰나의 미학을, 공과 같이 흐르는 흐름의 미학을 만났다. 아니 두 개의 질긴 일탈, 이 몸이 되어 만나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는 있다. 하얀 백지는 거울이 되어 내어 놓는다”고 밝혔다.
천양희 시인은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나’라는 산을 넘고야 말겠습니다. 영원성을 갈망하는 시의 낱말을 더 붙잡겠다”며 “삶을 겹눈으로 보면서 새로운 것에 늘 두근거리겠다”고 밝혔다.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만해축전 기간인 오는 8월 11일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15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시인 나태주, 시조시인 김제현, 문학평론가 권영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겸임교수가 제15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현대한국문학의 수준을 높이고 있는 문학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유심작품상 제15회 수상자를 이같이 결정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유심작품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근배 시인. 예술원 부회장) 위원는 나태주 시인의 시 심사평을 통해 “나태주씨는 사실 오랫동안 중앙문단과 소외된 삶을 살아왔던 시인들 중의 하나이다. 그의 오늘은 실로 일반 독자(문예학적 용어로는 ‘정통한 독자’나 ‘의도된 독자’가 아닌 ‘순수독자’)들의 평가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나태주씨의 문학이 그만큼 값지고 튼실한 이유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태주씨는 우리 문단에서 ‘정치적 민중시인이 아닌’ 문학적 민중시인의 한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평했다.
심사위는 나태주 시인의 문학적 개성을 인간에 대한 관심, 진솔한 민중언어 구사, 남다른 상상력으로 요약하면서 “수상작 ‘어린 아이‘에서도 그는 천국은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 어린 아이가 곧 부처(童子佛)라는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시부문 수상자 나태주 시인의 수상작은 <어린 아이>외 1편. 심사위원단은 나태주 문학의 개성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소개했다. 첫째,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나 시인은 참다운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가 비인간화되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문명의 때를 입지 않은 향토적인 삶과 어린 아이들의 천성에서 발견한다. 이번 수상작 <어린 아이>에서도 나 시인은 천국은 어린아이의 마음 속에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 어린아이가 곧 부처라는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진솔하고도 평이한 민중언어의 구사다. 그의 언어에는 굳이 독자들을 자극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울리는 호소력과 진실성이 숨어 있다고 했다. 셋째,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남다른 상상력이다. 그것은 나 시인이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서 인생론적 예지를 발견해 내는 특출한 관찰에서 기인한다고 평가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한국현대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작품을 발표한 문학인들을 격려하는 유심작품상은 각 부문 수상자에게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8월11일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곽효환의 시 <마당 건너다>를 읽으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열손끝을 저리게한다. 아슴하게 잊은 마음벽에 붙은 그림을 너무나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놓고있기 때문이다. 어느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이며 어느 누구나에게 마음 어느 벽에 붙어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왜 이렇게 가슴저린가. 곽효환의 “마당 건너다”에는 남자가 없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여자들..그리고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과장도 부족함도 없는 이 단순한 그림은 그 옛날 한국의 가정에 빈번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지해 왔던 저녁그림인 것이다. 여름이고 마당엔 평상이있고 그 평상위의 가족들속의 여자들은 대문의 기척을 살핀다. 기다림은 더 단단해지고 아이들을 안고 마당을 건너는 그림에는 하늘의 별빛을 땅의 어둠을 가로지르는 무거운 침묵이있다. 곽효환시인의 시가 시적 사유와 시적 완성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일상적이기 가지한 흔한 그림을 “별똥별하나를 제 3의 사물로 가지고와서 웅숭깊게 자고 가게 한 기지가 시를 더 웅숭깊게 만들어 낸 것이다. 별똥별의 기다림은 아이들을 안고가는 여자들의 기다림을 더 한층 무겁고 현실화의 밑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루의 가사노동보다 저녁의 기다림이 더 무겁고 벅찬 여자들의 느린 움직임이 이 시전편에 흐르고 독자들은 그 느린 움직임을 따라가며 자신의 어린과거로 돌아가 얼굴에 별똥별이라도 안으려는 기척의 어머니 할머니를 바로 앞에서 본다. 하루의 노동은 끝났고 피붙이를 잠자리에 눕히는 일에도 손을 떼었을지라도 감정의 노동은 딱 이때부터라는 그 시절 그 여자들의 순연한 슬픔은 악다구니없는 침묵에 있는 것이다. 이 침묵은 물에 빠진 솜처럼 무겁고 속으로 빨려가는 불렉홀처럼 어둡다. 그래서 이 침묵은 자기착취와 자기 소비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보호방법으로 유지되어 가는 단단한 삶을 보는 일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귀는 밥마다 커져 기다림에 익숙하지만 결국 자기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삶을 이어가는 생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근대 여성 사회적 발언에서는 그 침묵에 화살을 겨누겠지만 왜 나는 곽효환의 마당을 건너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고된 침묵에 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싶은 것일까. 유심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유심 작품상의 올해 수상자가 발표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5월 23일 “14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곽효환(시인) △시조 부문에 김호길(시조시인) △학술 부문에 이도흠(한양대 교수) △특별상 부문에 이영춘(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 부문에 선정된 곽효환 시인의 수상작은 ‘마당 건너다’로 그 옛날 한국의 가정에 빈번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지해 왔던 저녁 그림을 미려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조 부문의 김호길 시조시인은 ‘모든 길이 꽃길이었네’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단은 김호길 시인의 시조에 대해 “우리는 ‘지나온 모든 길이 아름다운 꽃길’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이라면서 “척박하고 비정하고 사악하기까지 한 환경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회가 순화와 승화의 시간을 건너 응결된 사리 같은 잠언시”라고 평했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로 학술 부문 수상자가 됐다. 올해 원효학술상 특별상에 이은 쾌거다.
심사위원단은 “마르크스가 주로 사회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원효는 일심(一心)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해 사회를 구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면서 “이 교수는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와 사회를 온몸으로 껴안고자 하는 실천적 지성의 모형을 학자적 삶의 영역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수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영춘 시인은 후학 양성과 지역 문단 활성화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이영춘 시인은 문학의 불모지였던 춘천에서 1974년부터 <삼악시>동인의 창립 맴버로 그 지역에 문학의 혼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면서 “이 시인은 개인의 시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단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부단히 헌신하고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작품상 수상자에게는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시상은 오는 8월 11일 만해축전 기간에 이뤄질 예정이다.
달에 골목을 낼 수 있다면 이렇게 하리, 서로 어깨를 비벼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골목 그런 골목이 산동네를 이루고 높지만 낮은 집들이 흐린 삼십 촉 백열전구가 켜진 창을 가지고 있는 달 나는 골목의 계단을 올라가며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며 울리라, 판잣집을 시루떡처럼 쌓아올린 골목의 이집 저집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불빛 모아 나는 주머니에 추억 같은 시를 넣고 다니리, 저녁이 이슥해지면 달의 골목 어느 집으로 들어가 창턱에 떠오르는 지구를 내려다보며 한 권의 시집을 지구에 떨어뜨리리라, 달에는 아직 살 만한 사람들이 산다고 나를 냉대했던 지구에 또다시 밝아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오늘도 안녕 그렇게 안부 인사를 하리라, 당신이 달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지을 때 혹은 꿈꾸거나 기쁠 때 달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화구들이 생겨나지, 우리가 올려다 본 달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는지 그 거짓과 슬픔 속에서 속고 속이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던 것인지 나는 달의 분화구마다 골목을 내고 허름한 곳에서 가장 높은 판잣집의 저녁 창마다 떠오르는 삼십 촉 흐린 불빛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며 울리, 명절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집 툇마루에서 저 식지 않을 투명한 불꽃을 머금고 하늘 기슭에 떠오른 창문을 바라본다 그렇게 달의 먼지 낀 창문을 열면 환한 호숫가에 모여 있는 시루떡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