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베란다 / 김범수
물속에는 형이 두고 간 비늘이 많아, 모래성으로 갈 때마다 병든 비늘이 떨어져 있었지, 물이끼가 덮인 모래성 속에서 금붕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꼬리를 수놓던 별들을 기억하는. 겨울이 시작되고 형의 몸에는 붉은 별자리가 새겨졌지, 피를 머금은 피부가 선연했어, 하루는 구름에 묻은 노을을 형의 객혈로 해석한 내가 미웠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모래를 잘근대던 그 밤
말했잖아? 볕이 잘 드는 뭉게구름 동산에서 일광욕을 하고 싶다고, 미지근한 물 대신 햇빛에잠기고 싶다고...
언젠가, 뭉게구름 동산으로 가고 싶어. 철새를 타고 형의 별자리를 찾으러 갈게. 형은 어느 성단을 헤엄치고 있을까?
여름이 우거지면 햇살이 내릴 거야, 별자리가 빛나는 날, 깨끗한 구름을 말려서 차를 우리자.
지느러미는 유리를 깨뜨리는 바람이 되고
[으뜸상] 잠수 / 조혜인
엄마는 아쿠아리움에 누워 전복을 딴다
여전히 숨을 참는 엄마
미역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
꾹 감은 눈덩이 아래에
그늘처럼 속눈썹이 드리워진다
빨리 나오세요, 엄마
엄마가 자리한 곳은 바다가 아니잖아요
이끼 낀 유리 너머로 자갈을 던진다
던지고 던져도
내 옆에 쌓이는 무게
엄마의 잠수가 길어지던 날
흰 침대 위로 문어 먹물이 흩어지고
바닥엔 해삼과 멍게가 나뒹굴었다
마음을 넣었다가 뺐다가
잠그지 않은 형태로 달이 떠오르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이름을 입속에 오랫동안 가둔 날
바다의 소금기만 손금에 고여 있었다
[버금상] 엄마 / 이수미
여자의 어깨에 시간의 머리카락이 쌓인다
바늘은 시침보다 더 늦은 간격으로 실타래를 돈다
반쯤 감긴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잠깐 미열을 앓은 것 같은데 반생이 지나 있고
잘록한 허리에 휘감겼던 빗줄기들이
사선처럼 걸어와 바늘귀에 축축한 눈동자를 댄다
문밖에 서 있는 낙타의 얼굴을 눈을 슴벅거리며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점점 투명해지는 몸을 어쩌지 못한다
황망히 일어나 문턱을 넘으면
전생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여자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귀가
눈이 따갑도록 반짝거린다
돌아보면 마루에 백발로 지은 옷 한 벌,
여자의 일평생이 거기 쌓여 있다
문득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바늘구멍 속으로 꿰어진다
그 실마리를 따라
낙타 한 마리,
비좁은 둘레의 구멍을 통과하는 중이다
[아차상] 마중물 / 이동우
여름 볕을 못 이겨 낮잠에 빠진 도시
치매 어머니 문제로 형과 언성을 높였다
불은 면처럼 끊기는 대화가 자꾸
목에 걸렸다
광장 분수에서 흠뻑 젖어 뛰노는 아이들
물기둥을 타고 튀는 웃음소리
물보라로 부서진다, 반짝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마중물 한 바가지 부으면
펌프는 마당 한가득 되돌려 주었다
수챗구멍을 따라 길게 이어지던 물줄기
우리 형제는 냇가에라도 나온 양
신이 나서 물장난을 쳤고
얼음장 같은 펌프 물이
등에서 부서졌다, 반짝였다
파닥이는 햇발 눈부셔
머리끝까지 적시던 그해 여름
질긴 장마철, 벽지 꽃무늬가
천장까지 검게 피어오르던 문간방
어머니의 한숨이 맺혀 흐르는 창 너머
술 취한 아버지가 비틀비틀 돌아왔고
나는 이부자리에 오줌을 지리곤 했다
어머니의 좁은 옷소매 끝에 숨어
밤새도록 등만 키우던 그해 여름
용기 내어 전화기 안으로
마중물 같은 말 한 바가지를 붓는다
형! 우리, 등목이나 할까?
또다시 솟아오르는 분수대 물줄기
화들짝, 도시가 낮잠에서 깨어난다
[장려상] 친구 / 김지용
나는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로 나왔습니다 그때 나는 문을 잘못 연 것 같습니다
나의 얼굴의 뒤편은 모과처럼 단단해요 쓴맛이 혀에 먼저 닿죠 나의 표정은 짓눌린 복숭아처럼 도려내고 싶습니다
내 친구는 거울 나는 항상 상이 다른 표정을 연습합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내 웃음이 싱그럽지 않은 이유는 비닐에 씌워져 있기 때문.
아버지는 흠집 난 것은 버려야한다고 내게 농약을 뿌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나는 자주 나무에 달려있는 기분입니다 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떨어진 과일은 나는 건가요 추락하는 건가요 둘은 다른 의미 인 것 같습니다
나는 낳아진 게 아니라 떨어진 거라고
다리 밑이나 황새 부리에서
어머니는 태풍 그러므로 나는 썩은 사과처럼 무른 등을 감추기 위해 교복을 벗지 않습니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이를 닦을 땐 혀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나를 포장하는 작은 잎
괜찮아요, 괜찮아요
바람에 흔들리듯 쉼 없이 말했습니다
나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것들을 미워했습니다
벗기면 벗길수록 속과 겉은 다르니까요
내 속은 늘 푸른 맨살입니다
친구들은 물어봅니다 숨쉬기 힘들지 않냐고 나는 목까지 연기가 차올라서 입을 열 면 구름이 뱉어질 거 같아요 나의 일기는 말들이 쌓여 무거워지면 비가 내렸습니다 친구들이 포도송이처럼 뭉쳐서 집에 갑니다
나는 비를 맞으면 자라는 게 아니라 비틀어집니다
떨어지는 악몽 밖으로 자라는 나의 종아리처럼.
나는 더 높이 뛰어 다시 매달리고 싶습니다.
'전국백일장 >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0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 박해빈 (0) | 2022.09.05 |
---|---|
제19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 김승욱 (0) | 2022.09.05 |
제18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 홍은서 (0) | 2022.09.05 |
제17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 정진애 (0) | 2022.09.05 |
제16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 조효원 (0) | 2022.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