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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베란다 / 김범수

 

물속에는 형이 두고 간 비늘이 많아, 모래성으로 갈 때마다 병든 비늘이 떨어져 있었지, 물이끼가 덮인 모래성 속에서 금붕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꼬리를 수놓던 별들을 기억하는. 겨울이 시작되고 형의 몸에는 붉은 별자리가 새겨졌지, 피를 머금은 피부가 선연했어, 하루는 구름에 묻은 노을을 형의 객혈로 해석한 내가 미웠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모래를 잘근대던 그 밤

 

말했잖아? 볕이 잘 드는 뭉게구름 동산에서 일광욕을 하고 싶다고, 미지근한 물 대신 햇빛에잠기고 싶다고...

 

언젠가, 뭉게구름 동산으로 가고 싶어. 철새를 타고 형의 별자리를 찾으러 갈게. 형은 어느 성단을 헤엄치고 있을까?

 

여름이 우거지면 햇살이 내릴 거야, 별자리가 빛나는 날, 깨끗한 구름을 말려서 차를 우리자.

 

지느러미는 유리를 깨뜨리는 바람이 되고

 

 

 

 

 

[으뜸상] 잠수 / 조혜인

 

엄마는 아쿠아리움에 누워 전복을 딴다

 

여전히 숨을 참는 엄마

미역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

꾹 감은 눈덩이 아래에

그늘처럼 속눈썹이 드리워진다

 

빨리 나오세요, 엄마

엄마가 자리한 곳은 바다가 아니잖아요

 

이끼 낀 유리 너머로 자갈을 던진다

던지고 던져도

내 옆에 쌓이는 무게

 

엄마의 잠수가 길어지던 날

흰 침대 위로 문어 먹물이 흩어지고

바닥엔 해삼과 멍게가 나뒹굴었다

 

마음을 넣었다가 뺐다가

잠그지 않은 형태로 달이 떠오르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이름을 입속에 오랫동안 가둔 날

바다의 소금기만 손금에 고여 있었다

 

 

 

[버금상] 엄마 / 이수미

 

여자의 어깨에 시간의 머리카락이 쌓인다

바늘은 시침보다 더 늦은 간격으로 실타래를 돈다

반쯤 감긴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잠깐 미열을 앓은 것 같은데 반생이 지나 있고

잘록한 허리에 휘감겼던 빗줄기들이

사선처럼 걸어와 바늘귀에 축축한 눈동자를 댄다

문밖에 서 있는 낙타의 얼굴을 눈을 슴벅거리며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점점 투명해지는 몸을 어쩌지 못한다

황망히 일어나 문턱을 넘으면

전생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여자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귀가

눈이 따갑도록 반짝거린다

돌아보면 마루에 백발로 지은 옷 한 벌,

여자의 일평생이 거기 쌓여 있다

문득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바늘구멍 속으로 꿰어진다

그 실마리를 따라

낙타 한 마리,

비좁은 둘레의 구멍을 통과하는 중이다

 

 

 

[아차상] 마중물 / 이동우

 

 

여름 볕을 못 이겨 낮잠에 빠진 도시

치매 어머니 문제로 형과 언성을 높였다

불은 면처럼 끊기는 대화가 자꾸

목에 걸렸다

 

광장 분수에서 흠뻑 젖어 뛰노는 아이들

물기둥을 타고 튀는 웃음소리

물보라로 부서진다, 반짝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마중물 한 바가지 부으면

펌프는 마당 한가득 되돌려 주었다

수챗구멍을 따라 길게 이어지던 물줄기

우리 형제는 냇가에라도 나온 양

신이 나서 물장난을 쳤고

얼음장 같은 펌프 물이

등에서 부서졌다, 반짝였다

파닥이는 햇발 눈부셔

머리끝까지 적시던 그해 여름

 

질긴 장마철, 벽지 꽃무늬가

천장까지 검게 피어오르던 문간방

어머니의 한숨이 맺혀 흐르는 창 너머

술 취한 아버지가 비틀비틀 돌아왔고

나는 이부자리에 오줌을 지리곤 했다

어머니의 좁은 옷소매 끝에 숨어

밤새도록 등만 키우던 그해 여름

 

용기 내어 전화기 안으로

마중물 같은 말 한 바가지를 붓는다

형! 우리, 등목이나 할까?

또다시 솟아오르는 분수대 물줄기

화들짝, 도시가 낮잠에서 깨어난다

 

 

 

[장려상] 친구 / 김지용

 

나는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로 나왔습니다 그때 나는 문을 잘못 연 것 같습니다

 

나의 얼굴의 뒤편은 모과처럼 단단해요 쓴맛이 혀에 먼저 닿죠 나의 표정은 짓눌린 복숭아처럼 도려내고 싶습니다

 

내 친구는 거울 나는 항상 상이 다른 표정을 연습합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내 웃음이 싱그럽지 않은 이유는 비닐에 씌워져 있기 때문.

아버지는 흠집 난 것은 버려야한다고 내게 농약을 뿌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나는 자주 나무에 달려있는 기분입니다 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떨어진 과일은 나는 건가요 추락하는 건가요 둘은 다른 의미 인 것 같습니다

 

나는 낳아진 게 아니라 떨어진 거라고

다리 밑이나 황새 부리에서

 

어머니는 태풍 그러므로 나는 썩은 사과처럼 무른 등을 감추기 위해 교복을 벗지 않습니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이를 닦을 땐 혀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나를 포장하는 작은 잎

 

괜찮아요, 괜찮아요

바람에 흔들리듯 쉼 없이 말했습니다

 

나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것들을 미워했습니다

벗기면 벗길수록 속과 겉은 다르니까요

 

내 속은 늘 푸른 맨살입니다

 

친구들은 물어봅니다 숨쉬기 힘들지 않냐고 나는 목까지 연기가 차올라서 입을 열 면 구름이 뱉어질 거 같아요 나의 일기는 말들이 쌓여 무거워지면 비가 내렸습니다 친구들이 포도송이처럼 뭉쳐서 집에 갑니다

 

나는 비를 맞으면 자라는 게 아니라 비틀어집니다

떨어지는 악몽 밖으로 자라는 나의 종아리처럼.

나는 더 높이 뛰어 다시 매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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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산 / 박해빈

 

누나의 산은 매일 누군가의 입술이다

 

입 모양을 보고 소리를 읽는 누나는

눈에서 멀어지는 산을 오를 때마다

기울어가는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바람의 호흡이 가빠질수록

침묵을 소리로 메울 단어를 찾고 있다

 

혼자 산을 오르던 어제도

처음 만난 상대의 입술빛이 어두워져

가파른 말을 해석하다 발을 잘못 딛는 바람에

웅덩이에 발을 빠뜨렸다는 누나

 

내가 젖은 양말을

말려주며 조심스레 물어봐도

또 입 모양을 못 봤다는 핑계를 댄다, 항상

김치와 치즈를 비슷하게 발음하는 누나

사진을 같이 찍으면 ㅈ 발음이 어려워서

김치도 치즈도 아닌 미소를 발음하던

 

닳아버린 소리를 가진 누나는

소리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맑지 않은 밤에도 입술을 벙긋할 수 있게 연습한다

언젠가 자신과 같은 아이들에게

나만의 소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제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발음하는 누나,

누나가 흐릿한 날에도 산을 오르려는 이유

 

가장 큰 산을 넘기 위해 오늘도

작은 산들을 넘나드는 누나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

저만의 소리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뒤꽁무니에 내가

몰래 응원 한 마디씩 던지는지도 모르고

또다시 김치도 치즈도 아닌 미소를 짓는 누나는

마지막 정상을 향해서 간다.

 

 

 

 

[으뜸상] 폐교의 기다림 / 장서영

 

 

다 떠나도

 

이곳에 있을 거야

 

이 다음

이 다음에

추억의 징검다리 건너

찾아오는 사람 있을 테니

 

이끼

잡초

빈 그네가

같이 기다려

 

아이가 

어른 되어 찾아오면

빈손으로

보낼 수 없어

뒤뜰 감나무에

부지런히 

감 익히고 있어.

 

 

 

 

[버금상] 산 / 김은경

[아차상] 나목 / 김태준

[장려상] 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 홍덕기

 

 

 

[심사평] 가보지 못한 길도 걸어가면 길이 된다

 

겨울의 끝자락이었지 싶습니다. 그때는 바이러스의 정체조차 몰라서 무어라 이름 지어 부르지도 못한 채였습니다. 마스크 대란이 오고 세계 곳곳에서는 국경의 봉쇄가 이어졌습니다. 지구촌의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면서 저들을 ‘코로나 19’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생겨났지만, 저들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정확한 무늬도 모르겠고, 백신도 없고 치료약도 없는 이 이상하고 두려운 적과의 싸움은 하루가 다르게 조용히 퍼져나가 사람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을 빼앗긴 채 ‘거리두기’라는 아주 낯선 사회 현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언제 어떻게 어떤 생김새로 마감을 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안개 자욱한 미지의 시절에 박두진 문학관에서는 전국백일장을 개최했습니다. 암울한 시절을 건강하게 건너가 보려는 각고의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이, 문학만이 피폐해진 사람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도 읽혔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마음으로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문학으로 열어놓은 것입니다. 전국의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일반부까지 너무나 많은 원고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적어나간 저들의 이야기는 모두 진솔했고 간절했습니다. 별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는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암울한 시절의 싯구는 모두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또한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나름의 모색이고 탐험이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도 걸어가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는 신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투고된 한 편 한 편의 시들을 정성껏 읽어나갔습니다. 암묵중에 약속된 상황은 오로지 작품만 보는 것을 가장 커다란 심사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거기에는 출신 학교나 지역 또는 학연과 지연 같은 미시 담론은 배재되었습니다. 그렇게 엄중한 심사의 잣대로 초등부 4편, 중등부 4편 고등부 4편 일반부 4편, 그리고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상 1편이 선정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에 선정된 고등부의 ‘산’은 누구나 힘겹게 올라가야 하는 ‘산’을 통해 가족애는 물론, 반드시 어려운 고비를 넘고야 말겠다는 힘찬 메시지를 적절한 비유법을 통해 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고통도 이겨내면 고유의 무늬가 될 수 있음을 담담하게 시사하면서, 함께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다는 메시지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었습니다. 초등부의 ‘텅텅텅’은 코로나 19라는 작금의 현실을 뛰어가는 슬픔처럼 노래하는 주술적인 힘도 보여주었습니다. 중등부의 ‘산’은 전통 서정의 기법을 고수하면서 산의 의미망을 추억까지 끌어올리는 놀라운 비약을 구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편 편의 시편 마다 모두 이 시절의 아픔이 짖게 녹아나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이 고통을 진술하는 것이라면 시는 개인의 슬픔을 형상화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은 정녕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합니다. 길은 걸어간 만큼이 길이 된다고, 가보지 못한 길도 걷다가 보면 길이 된다는 것을 많은 시들은 강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고 응모해주신 전국의 예비 시인들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또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여 주신 박두진문학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심사위원장.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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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꽃, 피어나다 / 김승욱

[으뜸상] 엄마 모습으로 / 김미영

 

[버금상] 구름 / 공성웅

 

[아차상] 꽃뜰 앞 / 서유진

[장려상] 능소화(양반꽃) / 강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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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이름 없는 꽃 / 홍은서

 

[으뜸상] 아비새의 행복 / 허진영

[버금상] 별이 된 친구 / 김미영

[아차상] 오랜 친구 / 홍은지

[장려상] 내사람 / 김선희

[가작] 가을벗 / 백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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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아픈 손가락 / 정진애

 

 

"아빠 다리는 왜 짧아요?" 묻는 세 살 짜리 작은딸을

여섯 살 큰딸이 "아프시잖아" 하면서 머리를 쿡 쥐어 박더니

"밥 잘 먹고 말 잘 들으면 아빠 다리가 쑥쑥 자란다고 했지요?"

하던 딸들은 어느 새

어엿한 숙녀로 아빠의 버팀목이 되었네

 

 

사윗감 됨됨이 보다

의족인 다리만 보시는 게

그리 섭섭하기만 했는데

부모 마음 헤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 있으니

 

약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줘도

아픈 손가락의 삶은 대신 할 수 없음에

엄마는 그리 반대 했으리

이제 와서

아파하는 손가락

바라보시는 엄마 더 아프실까

나 아파도 아프다 말 할 수 없다네

 

혹시나

우리 딸들

아픈 손가락의 엄마가 되어 달라면

나는

나는 어찌 하지?

 

 

[으뜸상] 희망 / 김은지

[버금상] 손가락 / 박희정

[아차상] 당신들의 뒷모습 / 유태경 

[장려상] 가족 / 김경구

[가작] 우리 가족 대통령 / 임명자

[가작] 파란 농부 / 박용진

 

 

 

제17회 혜산 박두진 문학제 전국백일장에서 하남문학아카데미 시창작반 소속 정진애 회원이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혜산 박두진 문학제 전국백일장은 혜산의 산실인 안성에서 박두진 재단과 한국문인협회 안성지부 주관으로 열렸으며 전국에서 초·중·고등학교, 일반인 등 70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미리 제시된 4가지의 시제(스마트폰, 친구, 손가락,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 시를 창작했으며, 정진애 회원은 손가락 시제에 응모해 ‘아픈 손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창작시를 응모했다.

정진애 회원은 그동안 하남문학아카데미에서 꾸준히 시창작 실력을 갈고 닦았으며, 이번 작품은 전국에서 참여한 700여 명의 참가자들 중 가장 으뜸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대상)을 수상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하남문학아카데미는 2012년에 시작했으며, 올해는 소속 회원들 중 다수가 시인으로 등단하는가 하면, 시집 출간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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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어머니의 해 / 조효원

[으뜸상] 배꼽의 고향 / 최재호

[버금상] 꿈 / 최영철

[아차상] 그 시절 내 고향 / 서성표

[장려상] 술래의 꿈 / 손춘식

[장려상] 나의 고향 / 이수정

 

 

 

[심사평] 서정적 바탕과 사유의 진정성

 

이번 제16회 혜산 박두진 전국 백일장에 응모한 작품들을 허영자, 문효치 두 분 시인과 정진규 본인이 심사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을 두고 심사하기 전에 세운 심사 기준은, 시는 어디까지나 오늘의 시가 아무리 지적 인식과 논리적 구조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서정적 바탕과 사유의 진정성, 작위적 행위를 떠난 순수성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묵언으로 동의하였다. 이런 점에서 부문별로 살펴본 결과, 무엇보다 눈에 뜨이는 점은 일반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서정성과 진정성, 순수성이 살아있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그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어디서 오고 있는가.

 

첫째 축적된 체험이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오염의 수단으로, 그런 사유의 방법적 전개로 바뀌어지다 보니 이런 결과를 빚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둘째 시는 이러한 삶의 오염상태를 초월하는 서정적 수용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었다. 

 

이 점을 윗세대의 응모자들은 극복할 수 있기를 권유해 두고자 한다. 그래서 시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저학년의 작품들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초등부 저학년의 작품에서는 특히 현일초교 2학년 김다은의 「우리 고향은 엄마 뱃속」같은 작품이나, 충주시 남산초 2학년 이재윤의 작품 등이 특히 말의 결이 곱고 그 싱싱한 사유가 뛰어났다. <엄마 뱃속>에서는 고향의 영원성을, 바다에서는 뜨고 지는 해를 <매일매일> <풍덩풍덩>들어가고 나온다고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건강하다.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렵지만 초등부 고학년의 평택 안일초등학교 송정민이 <숲길을 걸으며> <나는 숲속 환한 뮤지컬을 감상한다>는 표현도 뛰어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중등부 김다희가 어린이답게 자신에게서 <높이 솟아오를 수 있는 /힘찬 희망을>지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해>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있음도 매우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삶에 지친 어른들인 우리들에게 가히 힘을 주는 진정성이 있다.

 

고등부에서는 안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조효원의 「어머니의 해」가 독특했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해가 될 수 있는 그 극복의 이미지가 아름답다. 자식 앞에서는 <오월의 환한 햇살>이 되는 그 생명성을 어떻게 가볍게 지날 수가 있겠는가. 그 힘을 높이 샀다.

 

<그녀는 작은 희망을 촘촘히 박음질했다>고 표현하고 있는 고등부 충주여자고등학교 1학년9반 원유정의 「고향」도 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삶의 아픔이 어려있었다.

 

대학 일반부의 작품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재호의 「배꼽의 고향」을 심사위원들은 시로서의 완성도 면에서 높게 평가했다. <배꼽>에서 어머니가 나를 잉태했던 시간을 한 척의 배가 항해하는 바다의 시간으로 자리바꿈하는 시의 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꿰어 맞추려는 어수선함이 눈에 거슬렸다. 어떤 면에서는 제주 방언을 시로 자리바꿈한 최영철의 「꿈」이 창조성이 뛰어났다 할 수가 있다. 작품이 너무 길어 산문화되고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이름 다랑쉬!/뒤란 숲은 청청한데 /집터는 무너지고 우물은 메워지고 / -------동구 늙은 폭낭이(팽나무) 주름 깊더군> 같은 데서 제주의 한 같은 것을 깊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일일이 다 짚어드리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시에서는 무엇보다 서정성과 사유의 진정성, 그 순수성이 생명이다. 그래서 시가 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점을 깊게 간절하게 촉구하면 좋은 시가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진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정진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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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벽돌에 대하여 / 성지수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네모난 감정을 따라서

점점 각이 지고 있었다

환절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벽돌처럼 금방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 버리니까 나는

다혈질의 체질을 타고났다

 

무른 당신과 이야기를 했을 때

나도 물렁물렁해지고 싶어서 입을 열었으나

벽돌만 한 장 더 쌓아올렸을 뿐

아래에 쌓여 있는 벽돌들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모른 체 했다

무너지지 않을까 아슬아슬한데 그 위로

벽돌이 하나 더 쌓이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고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숨 쉴 때마다 균열이 간 벽돌에서

가루가 떨어져 상처를 냈다

사방은 어느 순간 막혔다

당신들은 밖에 있고 나는 내부 뿐이었다

벽은 조금씩 높아져 갔다

 

오늘도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속이 무거워져서 그림자가 질질 끌러왔다

입을 열려는 순간 벽돌 얹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나도

딱딱한 네모로 끼워지는 걸까

 

 

 

 

[으뜸상] 돌멩이 / 허주영

 

경주 남산 놀러 갔다 오신 어머니

산새 소리 쨍알쨍알 들리는

돌멩이 두 점 주워오셨네

휴지로 돌돌 싸 주머니에 돌돌 넣어 오셨을 것이네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 놓아보니

집안에서 흙길에 돋아나던 솔바람 냄새 가득 차오르네

시집 읽다 종종 옆에 있는 돌멩이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서로 맞부딪쳐 보기도 하네

 

나는 돌멩이가 앉아있던 그 산길을 생각하네

등산객들 발길에 툭툭 채이던 그 자갈길을 생각하네

산바람에 긁히고 산짐승 발톱에 긁혀

고분벽화처럼 조각나기도 했을 저 돌멩이

비 오는 날엔 풀잎 아래 웅크리고 있었을까

햇빛 반나절, 냇물 소리 두어 달,

바람 냄새 한 됫박 들어있을 저 돌멩이

 

그 산돌멩이 어머니 손에 들켜 예까지 잡혀 왔을까

아무리 산노루 같은 눈망울로 쳐다보아도

이제 저 돌멩이는 더 이상 산돌멩이가 아니네

고향도 잃고 야성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저 돌멩이 햇볕이, 봄바람이 그리운지

자꾸만 여울처럼 울고 있는 것 같네

 

 

 

[으뜸상] 할아버지의 자전거 / 황재연

 

해거름이 낮게 깔린 오후

우리 외갓집 마당 한편에 놓인 자전거는

꼭 할아버지를 닮았어요

쪽마루에 앉은 할아버지의 버짐 핀 손은

자전거 바구니처럼 금이 가 있어요

칠이 벗겨진 자전거에선 녹슨 냄새가 피어올라요

 

할아버지가 힘차게 밟았던 페달은

정지된 채 허공에 박제가 되어버렸어요

헤드라이트는 할아버지의 어두운 앞날을 비추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낡은 짚신 옆에는 지난 신문들이 쌓여있어요

공중에 희석되지 못한 찬바람이

신문을 자꾸만 들춰봐요

할아버지의 눈은 길을 잃어버린 바퀴 같아요

초점 잃은 두 동공은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 바퀴는

찌그러진 날들을 머금고 있어요

이제 자전거 브레이크도

할아버지의 흘러가는 세월을 잡지 못해요

망가진 자전거는 고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빛바랜 기억들은 고칠 수 없어요

 

벌겋게 변색된 하늘의 색이

할아버지의 허연 머리칼 사이사이 스며들었어요

자전거 안장에는 할아버지 대신

타들어 가는 노들이 자리 잡았어요

외갓집 마당에서 낡은 체인랑 소리 대신

시곗바늘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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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실개천 / 박선민(고등부)

 

실개천은 견고한 실학實學이다.

누구든 이 가늘고 긴 배움 앞에서

반나절만 앉아 있으면

벌떡 일어서는 깨달음을 알게 된다.

 

독실한 본분을 몰두하는 실개천은

훌륭한 포장사이기도 하다.

푸른 논배미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묶고 있다.

실개천을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 땀 한 땀 논을 깁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로질러 묵직한 궁리 몇 개 놓아두고

누구든 발 젖지 않고 건너가라는

조언 같기도 하다.

 

실개천 끝에는

작은 돌다리들이 매달려 있고

또 실개천 끝에는

푸른 논배미가 달려 있다.

그러니까 실개천은 물의 오솔길이다.

 

커다란 강이 풀리는 소리

논과 논을 연결해 꿰매고 있는 소리가 밤낮을 새우고

오랜 시간을 한 번도 끊지 않고

흐르는 실개천은 바느질법이다.

 

음계를 열어놓고 실개천에

발을 첨벙거리면 아이들의 음악 시간이 펼쳐진다

 

넘치는 강을 허물어

마음을 감싸고 흐르는 실개천은

구휼을 베푸는 박애주의자일 것이다.

 

 

 

 

 

[으뜸상] 숲 속에 가다 / 차유오(고등부)

 

할머니 숲 속에 첫발을 딛자

소멸해 버린 잎들이 가득 날렸다

낡은 검정 고무신을 따라 숲길을 걸을 때면

나무그늘로만 내 손을 이끌던 할머니

늘 잘 익은 열매 한 알을 따서 내게 건네셨다

잘 익은 알알을 따라 구르던 생이 재생되고

알싸한 맛에 코끝이 찡해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나

어렸을 적 가난에 배를 곯으면

선산 뒤에 숨어 개딸기를 훔쳐 먹었다던 할머니는

배탈이 나고 두드러기를 앓고 했더랬다.

이제는 먹고살 것이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뜰에 앉아 숲을 배부르게도 바라보는데

바치춤에 딸기를 한 아름 담던 할머니의 소매엔

이미 붉은 물이 스며들고

허리춤까지 따라 든 노을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

아물면 다시 짓무르고

짓무르면 다시금 아려오던 삶의 생채기 속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던 걸까

광 밑에 숨겨둔 오동나무 지게의 나이테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기만 한데

숲 속으로 희미해지던 마지막 발자국을 찾아

빈 숲을 찾아 온종일 헤맨다

빨갛게 짓무르던 생애의 골목에서

수줍게 딸기를 따 먹던 소녀는

오동나무 지게에 실려 숲으로 희미해져 갔는데

주인 잃은 열매들만 선명히도 피어나는 걸까

할머니 숲 안으로 사라진 오늘

서쪽 너머로 녹음이 짙기만 하다

 

 

   

 

[으뜸상] 숲의 기억 / 안지숙(대학 일반부)

 

팔레트의 갈라진 물감들이 하늘에 흩뿌려진다

거대한 메아리들이 경계를 품고 온몸을 휘감는다

사내가 연두, 라고 발음을 하자

되돌릴 수 없는 사월의 봄이 지나갔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꽃들은 단단히 주먹을 쥐고

나무와 나무의 간격은 더 멀어진다.

 

사내의 얼굴이 흐려진 계곡 물에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복숭아를 베어 물자 입에 침이 고인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새들이 흘러가고

나이테처럼 부푼 배를 안고 사라진

그녀가 여기 있다.

 

들끓는 아기의 울음으로

계곡 물이 흐른다

사내의 발목이 자꾸만 사라진다

젖은 화장지처럼 찢어지는 사내의 조각들

연두, 라고 입술을 모으면

거대한 숲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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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늘벗 / 박세은(고등부)

 

사나운 파도 속엔

황금빛 모래알이 뒤엉키고

적막한 숲속에는 투명한 이슬방울이

조용히 파란 잎사귀에 내려앉는다.

 

뻣뻣한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들어

검은 너의 눈을 본다.

달밤에 별 본 듯 찬란해,

연꽃잎 같은 내 입술 다물어 지는구나.

 

별은 말이 없다.

꽃도 말이 없다.

별은 누구의 것인지.

꽃은 누구의 것인지.

 

사나운 파도 속

모래알 뒤엉키듯,

나는 너고.

너는 나고.

조용히 앉은 이슬방울

파란 잎사귀와 속삭이듯

우리는 친구다.

 

 

 

[으뜸상] 의자 / 황재윤(대학 일반부)

 

강의실 창틈을 기웃거리던 햇살이

슬며시 의자 위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지우갤 털어 칠판을 문지르고 걸레질을 하다

가만 들여다보니 교탁 테두리 선 사이로 내려앉은

먼지들! 허공이 착석한 채 떠나지 못한

이 흔적들, 일찍 끝난 가의 탓에

교수의 마음 밖으로 미처

뛰어나오지 못한 말들 같다

 

창밖의 화단으로 눈을 돌리니

바람이 좌정(座定)하다 간만큼의 무게로 흔들리는

저 자목련들! 중천에 허리를 곧추 세운

태양은 어느새 그 하늬바람 빗자루로

개나리 울타리에 올라앉은 잎사귀를 쓴다

겸사겸사 자잘한 금빛 편종들도 연주 한다

 

맞은 편 외떨어진 사과나무 아래에선

짓무른 돌사과가 지친 팔다리를

화단 흙 위에 내려놓는 중이다 서서히

의자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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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속에 피어있는 숲 / 허환


우리 집 안방에는요

엄마가 결혼 할 때 혼수해온 오동나무 장롱이 있어요

오동나무 장롱은 결혼기념일 마다 심장에 동그라미를 그려요

오동나무는 지난날의 태엽을 추억으로 감는 중이예요


장롱 문을 열어보면 이불들이 싱싱한 숲으로 피어올라요

어렸을 땐, 몰래 자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던 걸요

그때마다 오동나무 숨소리는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는지 몰라요

어린 나의 들숨소리가 열매들을 통통하게 불어 올리고

숲속엔 새떼들이 열쇠뭉치처럼 오종종 모여 있어요

종종 딱따구리가 나이테를 돌리고

햇빛이 부리 위로 미끄러질 때

바람은 쪼아놓은 나무들의 숨구멍을 더듬다 달아나고요

광활한 초원엔 얼룩말들이 벽돌 쏟아내듯 뛰어다녀요

나는 오동나무가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초원을 뛰놀고 있었을까요

장롱이 펼쳐놓은 어린추억으로 나들이 다녀온 셈이지요

낮잠이 몹시 몰려오는 한여름 날이에요


 

- 제12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대상




나무 / 김시라


수풀을 향해 손을 뻗는 버드나무를 닮은 할머니

세월을 광합성하며 자라난 이파리 가지에 매달리듯

할머니의 등허리에도 세월이 걸려있다


기억의 새순이 더 이상 피지 않는 할머니는

자라나던 어린 나를 행해

가지를 내뻗으며 힘껏 끌어안았다


새싹들이 잎을 띄워낼 때마다

하얗게 센머리칼 하나 둘 떨구는

이제 할머니의 나뭇가지, 앙상하게 뼈만 남았구나


할머니의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저만치 흘러가고

오늘따라 할머니는 자꾸만

할아버지 계신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그녀의 앙상한 버드나무 가지에

다시 새순을 띄어낼 수 없을까

나는 떨어진 잎들을 주워 기억들을 매달아본다

 

 


- 제12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고등부 으뜸상




대금 안에는 산천이 있다 / 이현주


대금 안에는 산천이 있다

바람이 낳은 그대의 몸

대금 앞에서 그대는

바람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공을 열고 닫으며

취구에 숨을 불어넣으면

산천 사이로 생기는

바람의 길

길 위에서 망설이며 물결치는 것은

그대의 떨림이다

자진하지 못하고 기어이 되살아오는

기억이다


그대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소리는 바람의 살결

우리는 살을 비비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산천을 스치는 소리

끊어지지 않는 흐느낌

대금 안에는 대숲이 있다

 

 


- 제12회 혜산 박두진 전국백일장 대학 일반부 으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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