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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희망 / 복연금

- 거미 한 마리

 

 

고층 아파트 계단 꼭대기에

집 한 채 지은 거미 한 마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나

바람에 떠밀려 왔나

 

마실 이슬 한 방울도

향긋한 들꽃내음도

눈부신 햇살도 느끼지 못할텐데

 

가늘게 짜놓은 거미줄이 흔들린다

어두컴컴한 사각 모서리 끝에서

생존의 찌가 흔들린다

 

깔끔하기로 소문난

1901호 젊은 새잭 눈에 띈 날

죽을힘을 다해 지어 놓은 무허가 집 한 채

 

한순간 먼지털이에

울울 감겨 사라지고

놀란 거미 한 마리

계단 난간 사이로

몸을 숨긴다

 

거미 한 마리

등짝에 희망 하나 들쳐 업고

아래층으로 아래층으로

기어 내려간다

 

 

 

 

 

 

[우수상] 어느 날 / 이재홍

 

 

찬란한 해 뜸에도

몸둥이는 굼벵이가 되고

두발은 지네다리가 되어 부산을 떨지만

갈 길은 멀다

 

해지면 검은 어둠이 허망해져

땅만 보고 퇴근 하지만

서산은 언제나 해를 기다리느라

저 만큼이다

 

가까워지지는 않지만 만정이 서린 동네 어귀를 돌아설 때

어둠은 도베르만처럼 달려오는 데도 매미는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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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고물선풍기 / 김금숙

 

 

다 안다고 하셨다

 

툭 누르면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말을 건다

 

고맙다,

고생이 많다,

에고 좀 쉬어야지,

 

귀도 있고

눈도 있고

얼굴도 있다는 것을

 

다 알았다고 하셨다

 

 

 

 

 

 

까치밥 / 김금숙

 

 

누가

할아버지 까만 차에

똥을 사놓고 갔다

 

바로 위

전봇줄에 앉은

까치밖에 없다고

 

감나무 곡대기

빨갛게 익은

 

모조리

따버리겠다고

긴 막대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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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공덕비 / 안시헌

다섯 번으로 족한 일을 수북이 쌓아놓고
동여 맨 넥타이처럼
암만 몸부림쳐도 빠져들거나 아니 빠져나오지 못해
평생을 친정 한번 못 가진 할머님의
공덕비를 우해
올 것 같지 않은 시간에
이미 끝났을 버스를 기다렸다
가을비가 모처럼 내려
익어가는 낱알에 목을 축이게 하다 보니
벌써 산기슭에 경사진 햇살이 비치고 있다
공덕비는
이전에 여인네들을 위해 세워져야 하는
꼭 세울 수밖에 없는
내 마음에 일정이 드나들고 있다
숨겨도 알아차리고 몸을 맡길 수도 없는
지금은 작은 가슴에 숨어 있다
의뢰하지 않은 번외에 표를 받고 나니
정말 이번 명절에는 고향에 갈 수 있을까
깊이 패인 포트 홀을 지나치려면 심한 통증이 찾아온다
결정적으로 내 머릿속엔
돌아가신 어머님의
오석 공덕비를 세워야 하는데
어둠이 길을 어둡게 할 때
멀리 절집에 걸려 있는 나무물고기 배를
두들기는 소리 들린다

 

 

 

 

 

 

 

[우수상] 화분 / 정수경

화분에 구멍이 있군요
뿌리는 그곳에서 왔을까요
열쇠로도 채울 수 없는 문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건 화분에
무언가를 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러니까 몸에도 문이 있군요
입구와 출구가 뒤바뀌는 회전문 같은
아시죠?
때론 몸도 출구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일탈 하나쯤 간직하고 싶어지는 날은 돌고 고양이가 가득
심어진 화분을 들고 나가죠 빈 몸으로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죠
문틈으로 파고드는 한 가닥 빛
그러니까 빛이 빠져나가는 저 문의 틈은
화분의 구멍 같은 것일까요
고양이를 심은 화분이라고 불러도 좋겠어요
구멍이 뚫린 화분
내 몸에 있는 빛들은
어느 구멍으로 흘러나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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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꽃피는 의류 수거함 / 유택상

 

아파트 모서리 헌옷 수거함 앉아 있다

혼자 앉아있기에 미안한지 쓰레기통 끼고 있다

조금만 다가서면 배고픔으로 식욕을 가지고

설렘으로 끓고 있는 심장, 반 쯤 열려진 창으로

옷가지를 가지고 손을 밀어 넣으니

따뜻한 살덩어리들이 만져진다

철지난 옷이 들어간 봉지 속옷가지들

때 절은 아이들 웃음이 보름달로 웃고 있다

놀이터에서 할퀸 미소 꽃별로 꾹꾹 눌러져 있다

밤하늘엔 버려지고 잘려진 것이

또 나를 바라보는 하나의 세상

비정했던 톱날이 비정함을 잊지 않기 위해 파문처럼 번진다

어둠을 잡아 두는 것은 칠흑 같은 환한 세상을 꿈꾸는 일

쇼핑몰마다 날개 달린 충혈 된 옷들이 허공을 향해 서로

등댄 틈새로 모든 벽을 향해 눈물겹게 꽃망울을 매다는 것

버림받아 어이없는 낯빛으로 시름시름 누워 있어도

바들바들 떨면서 모스부호로 남는 일

추락한 개인사의 상처 그대로 피안이다

구겨진 치마 속에 숨겨진 채근담들

아직도 꺼내어 펼쳐보던 노랠 듣지 못했다

살아온 날들이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고

헛기침 하며 어둑어둑해져가는 얼굴들

눈물이 푸르게 반짝인다

철이 지나면 너나없이 던져지는

이삿짐 속 낙관주의들

아파트 공터 앞 헌옷 수거함은 패션도 폐선이다

눈부신 적막의 풍요함속

구멍 난 양말이 무르녹아 살 비비는데

구부러진 것은 실루엣이다

 

수거함 속 헌옷들

살 비벼 살아가고 버려진 마을 어쩌지 못해

떠나고 다시 오는 사람은 품고 시절을 잇고 있다.

 

 

 

 

 

 

 

[우수상] 생몸살 / 황금숙
 
늦봄이었어
벚꽃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피어났지
바람이 살짝 한번 스쳤을 뿐인데 다 떨구려고 들었어
꽃눈이 쌓여 갈 때
나 멋모르고 아득하게 휘날렸던 것 같아
 
넋을 놓고 바라보았지
아마 그쯤이었을 거야
정신없이 꽃잎은 쏟아지는데
푸른 가지 하나 느닷없이 툭 부러지던 때가
천둥 번개도 이보다 더 요란스럽지는 않았어
 
얼떨결에 나도 덩달아
한숨을 내려놓을 뻔 했지
생가지 꺾인 곳은
해마다 소금 같은 벚꽃을 피워
 
오늘도 늦봄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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