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산조(散調) / 조이풀
누구는 가을비라 했고 누구는 장마라 했다.
가끔 번개 빛줄기 없는 천둥이 오기도 했고
낙엽이 되지 못한 시월 하순의 나뭇잎들이
알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그 아침 나는 단골로 드나들던
폐업한지 꽤 오래된 술집 앞에 서 있었다.
뽀얀 입김이 금세 성에가 되는 유리문 사이로 일간지며 고지서며
명세서며 독촉장이며 광고 전단지
수북이 쌓아둔 한숨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를 못내 쫓겨났다고도 하고
외상이 많아 어려웠다고도 한다.
이혼을 했다고도 하고
눈 맞은 남자와 멀리 도망갔다고도 한다.
나는 짐짓 이 주인이 로또에 당첨되어 여길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다는 인사를 듣지 못했기에
이 자리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나와 내 친구들의 체취정도는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투덜대고 있었다.
비 내린다.
오늘은 퇴직하는 친구를 위하여
마음 빈 구석에 뎁힌 정종술 한잔 정도는 채워야 할 텐데
지금은 이 비가 내게 다가와서 술이 된다.
가을비라서 좋구나.
천둥 칠 때마다 빨간 홍시 하나 던져 줄 것 같아서 좋구나.
따듬따듬 적셔오는 시월의 산조라서 가을비 네가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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