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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찾다 / 김종숙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지나고

잦아든 잘 지어진 밥

 

까칠한 쌀알들이

반지르르한 한솥밥이 되기까지

가령, 몇억 년 동안 쌓인 사막의 무늬들이나

물에 씻긴 돌의 생김새 같은

저의 격렬을 저도 종잡지 못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다

 

또는, 반듯한 간격을 맞추어

파랗게 자란 벼포기들이

탈곡이 되고 같은 자루에 동량으로 담기는 동안

바르르 떨다 잠잠해진 저울의 바늘이 함께 들어 있어

더도 덜도 없는 정량,

들쭉날쭉 흐트러진 적이 없다

 

흔들릴 만큼 흔들린 벼 포기들

털릴 만큼 털려 본 낟알들

 

갈 만큼 다 걸어가 보고야

능숙하게 제 길을 가거나 돌아오는 답습처럼

그 뒤끝은 저렇게

결 고른 한솥밥이 되는 것이다

 

이쪽도 넘보고 저쪽도 넘보던

휘청이며 허기진 몸이 그 고요해진 밥을 먹고

제힘을 힘껏 잡는 것이다

 

 

 

 

[수상소감] "마흔 중턱 늦깎이 해거리 공부, 뚜껑 열린듯 결실"

 

뚜껑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의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결국 열지 못했던 뚜껑, 그건 내가 아직 미끄럽고 땀이 많이 나는 손을 가졌다는 뜻이었겠습니다. 어쩌다 뚜껑이 열리는 패는 늘 허수였지만, 꽉 잠긴 한계에서 한 호흡을 더 힘준 덕분일까요, 열린 뚜껑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 지경입니다.

 

한때 삶을 견딜 수 없어 신을 찾았고, 신은 내게 자유와 시를 주셨습니다. 몸부림을 칠 때마다 애착이 떨어져 나갔고 또 공허했지만, 마흔 중턱에서야 늦깎이로 시에 입문했습니다. 바쁜 직장 일들로 해거리 시 공부를 했습니다. 절실한 시간을 할애한 만큼 모든 결실들이 생긴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예부터 시인은 신과 인간의 메신저로서 삶 자체가 구도의 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시를 쓸수록 와 닿는 말입니다. 때로 '신은 시인에게 인간의 오관으로 느낄 수 없는 초감각 계들을 몽환처럼 열어 보이기도 한다' 고 생각합니다.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런 감각조차도 벼려 이 시대에 일익을 해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앞서 걸으며 방향이 되어 준 분들이 계십니다. 졸고를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맹문재 선생님과 문우님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명서 선배 시인님, 그리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신춘문예 공고에서부터 당선자 고지까지 한 번도 나이를 묻지 않아 주신 머니투데이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두보, 소동파, 이백, 김삿갓의 한시(漢詩)를 들려주시던 아버지와 솜씨를 물려주신 어머니도 하늘나라에서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곁에서 알게 모르게 외조를 아끼지 않은 남편과 응원해 준 세 아이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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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인 삶의 깊이 에 고스란히

 

올해엔 시 부문 응모작품 수가 적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많았다.

 

<도배사>는 여자 도배사의 아슬아슬한 삶과 닮은 작업 과정을 통해 "벽이 꽃그림자 속으로 환하게 스며드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종결어미가 모두 "~"로 계속 이어지면서 시가 둔탁하고 리듬감이 부족했다.

 

<어머니 몸 속에는> 작품은 뼈마디마다 삶의 무게로 점철된 통증들이 신음소리인 비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애정이 잘 담겨져 있다. 다만 응모작 대부분이 시의 주제나 의도와 달리 너무 길어 산만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목수의 딸>은 목수였던 아버지의 삶을 아련하게 반추하고 있다. 목장갑을 빨면서 아버지의 한 생애를 뒤돌아보는 시인의 눈이 따뜻하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선정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고요를 찾다>였다. 벼 낟알이 쌀이 되고 밥이 되기까지, 하여 고요해지기까지 과정을 그야말로 '반듯하게' 그리고 있다. 잘 익은 따뜻한 밥을 앞에 대하듯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작품 중에 "가령", "또는" 같은 추임새도 시적 긴장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를 느끼게 하고 있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심사위원 이순원 소설가, 이희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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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천(母川) / 김철

 


청계천 골목 어디쯤
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양양의 남대천이 아닌
뜨끈한 국수를 파는 국수 집 근처 어디라고
국수 발 같은 약도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간
미물도 명물로 만든다는 그 만물상
주물 틀에서 갓 나온 물고기 몇 마리 사왔지
수백 마리 수천 마리 붕어빵 구워낼 빵틀
파릇한 불꽃 위를 뒤집다 보면
세상의 모천을 찾아오는 물고기들
다 중불로 찍어낸 붕어빵 같지
한겨울 골목 경제지표가 되기도 하는
천원에 세 마리, 구수한 해류를 타고
이 골목 입구까지 헤엄쳐 왔을
따뜻한 물고기들
길목 어딘가에 차려놓으면
오고 가는 발길 멈칫거리는 여울이 되는 것이지
파닥파닥 바삭바삭
물고기 뛰는 모천의 목전쯤 되는
영하의 파라솔 아래
엄마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

 

 

 

 

[경제신춘문예 수상소감-대상]"사물에 사유와 시선 새겨넣을 것"

 

나의 직업은 늘 웃어야 합니다. 나의 직업은 언제나 반가워야 했습니다

보이는 시간이 모두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만한 사유가 있다 믿었고 관심이 없는 것은 눈에서 제외 했습니다.

그러다 잊었던 상황을 찾기 위해 시계바늘을 역행 했습니다. 간절함을 바랄 때 찾게 되는 원인들, 방관에서 오는 타협과 외면이 만든 대화, 설마의 순간은 사실이 되고 약점이 되었으며 사각지대가 되었습니다.

정체된 시간들이 박제된 환경 속에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지 말 것’ 의 말.

꿈을 꾸되 현실에서 꿈을 꾸어야 한다 생각을 했고 날 것을 찾기 위해 사물의 시간을 쫒으며 마주했습니다. 관행처럼 버려진 사물들의 서사. 사물과 삶의 반복됨을 보았고 시간의 흐름에 방치된 의식은 화자와 결부되는 관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시간이 관계와 관심이라면 그 사물로 하여금 잃어버린 시간 장소 공간에 사유와 시선을 새겨 넣겠습니다. 조금 더 낮은 자세로 사람과 사물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야기가 사실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방목으로 교육을 하시고 울타리 예절을 덕이라 가르쳐 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동생 고마워. 언제나 실행하라 말씀하신 선생님, 성숙의 시간을 지켜봐 주신 사장님 매니저님 고맙습니다. 잠재적 불길을 피울 극단 놀, 극단 빛 그리고 B.S.D 발화를 꿈 꾸겠습니다. 원두의 향을 알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로즈에게, 기본 원칙에 충실하도록 침묵에서 피어나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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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상상력과 상징, 현장성 돋보이는 수준작들

 

경제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소재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일반문예 수준으로 올라온 듯하다. 수필이나 수기보다 소설 쪽 수준이 높았다.

'페니 스탁 스캠'은 제목 그대로 1페니의 주식을 작전으로 부풀려 고가에 파는 사기방식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이상한 명상수련 단체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하는데 우선 소설의 문장이 거칠고, 사건의 전개 방식도 치밀하지 않다.

'발효 초콜릿'은 장학재단 설립과 이 재단에 대한 국제송금이 주 이야기를 이루는 작품으로 일단 긴장감 있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후속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나, 기대하며 끝까지 읽히게는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다 읽고 났을 때 작품의 완결도가 떨어진다.

산문 부분 대상작으로 뽑은 '초파리들'은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반도체의 특성, 세계 반도체 시장 움직임의 특성, 그리고 이 외국계 회사의 본사와 지사의 움직임, 그에 따른 내부 인력들의 경쟁과 협력, 협잡 등을 아주 리얼하고 현장성 있게 다루었다. 한 편의 기업소설이자 경제소설로 제목 초파리의 상징성까지 두루 잘 구성하고 또 형상화해냈다. 앞으로 작가로서 좋은 활동을 바란다.

시 부문에서는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적었다. 본심에는 김철씨의 '모천', 송종관씨의 '트럭에게 빗길이란', 정소망씨의 '폐차장 풍경', 권수진씨의 '흔들의자', 최명진씨의 '나룻배'가 올라왔다. 이 가운데 최종 경합은 동반작품들도 우수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모천'과 '폐차장 풍경', '나룻배'가 벌였다.

'나룻배'는 함께 출품한 '홍시'와 함께 시적 수련이 잘된 분의 작품 같았다. 그렇지만 시적 정조가 아련하긴 한데 신인에게 기대하게 되는 참신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폐차장에서 자동차가 해체되는 과정을 다소 과격하게 그려낸 '폐차장 풍경'은 "삶은 때론 멈춘 곳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라는 마무리가 시적 긴장감을 배가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출품작들 곳곳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의문의 도로", "노동자의 손" 같은 어색한 관형격 조사 '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다.

응모작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의'와 관련한 오용이나 남용은 글을 어색하고 딱딱하게 만든다는 점을, 특히 시 쓰는 분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김철씨의 '모천'을 당선작으로 선정키로 했다. 경제신춘문예라는 주제에도 걸맞고 엄마가 파라솔 아래 붕어(빵)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이 곧 모천이라는 시적 상상력 또한 돋보였다. 춥고 삭막한 겨울,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시를 향한 정진을 기대할 만하다. 응모하신 모든 분들께 분투를 기원 드린다.

 

심사위원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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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꽃 지폐 / 이선주

 

 

무안군 성동리 170번지 임금례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양파밭일 온품 반품 바꾸어 모은 팔십오만 원

 

빳빳한 저고리 은빛 테두리 두른 단아한 신사임당 한 장씩 장판 밑에 깔아 놓고 늘어진 난닝구 고부라진 등골 부리고 누워도 손주들 학원비도 대주고 용돈도 쥐어 주며 율곡선생을 빌어주는 순간은 알싸한 파스 몇 장이면 무릎뼈 엉치뼈까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아 내일 또 어느 밭으로 갈까 노곤달근한 꿈이 깡그리 타버렸다

 

아침에 나가면서 끓여 먹었던 누룽지 양은냄비 불 끄는 걸 깜빡 잊어버렸던 탓이었다

 

흙 속에 거꾸로 머릴 박고 살아도 하늘 딛고 땅 속으로 알알차게 살찌우던 양파돈 생각에 연기 자욱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장판 먼저 걷어보고 까맣게 타버린 지폐를 발견하고는 기가 막히게 서럽고 허전하던 밤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야 했는데 동네 노인들 하나씩 하나씩 찾아와 성님 잊어부러야제 어쩌겠소 하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양파 냄새나는 사임당 몇 잎씩 꺼내 쥐어 주고는 엉거주춤 펴지지도 않는 다릴 끌고 흰 달빛 속을 걸어 돌아가더라는 밤새 그러고선 다음날 또 새벽같이 날품 가는 경운기에 동글동글 모여 앉았더라는 흙먼지 날리는 길가에 하얀 양파꽃도 무리무리 환하게 피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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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무엇'을 쓰기 위해 관성처럼 다시 일어나기 반복

 

오랜 시간 문학을 앓으며 열망은 자꾸만 박제되어가고 현실은 단호했으며 나는 무력했다. 무언가 써보겠다고 끙끙댈 때마다 종이가 사람 키만큼 쌓이도록 습작을 해야 뭐라도 쓸 수 있다는 말을 생각했다. 나는 그 ‘뭐’라도 쓰고 싶었지만 그 ‘무엇’도 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좌절해 자주 넘어졌고 그러다가도 어떤 관성처럼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사이 깨진 무릎에 앉는 새 살 속으로 세포들이 무한분열 생장과 치유를 반복하며 나를 지탱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쇳짐같은 하루 노동이 끝난 밤이면 생선냄새 김치냄새 나는 밥상 위에 원고지를 펴고 돋보기 너머로 국어사전을 찾으며 글을 썼던 그래서 내 키의 반 정도는 미리 쌓아주고 정작 당신은 무명 글쟁이로 가신 엄마 김은행 여사의 이름에 이제야 빛을 달아줄 수 있어 기쁘다. 불혹을 훌쩍 넘어선 제자에게 먼 길 찾아와 이제는 글을 다시 시작해라 용기를 주셨던 명기환 은사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시를 가르쳐주신 채수영 교수님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은혜를 입었다. 내 모세혈관처럼 나를 잘 알기에 오래 기다려준 남편과 엄마가 글을 제일 잘 쓴다고 착각하고 있는 세 아이들이 삶의 큰 힘이다.

당선소식을 전하는 목소리를 행여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의심했고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불러달라는 것이 아닌 걸로 봐서 진짜인가봐 할 때 덜덜 떨리던 손의 전율이 짜릿했다. 기쁘고 또 기쁘다. 당선자들이 하나같이 당선 이후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되었다고 할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과 머니투데이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끝없이 발전하는 시인이 되도록 정진하겠다는 약속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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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연대기 / 정지윤  

 

마을이 사라지면 그뿐,  
그 누가 전설을 남겨두겠는가  
마을보다 먼저 뿌리내렸을 당산나무 
나이테에 지나간 그림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황량한 벌판의 바람이 주인이었던 때가  
아름드리 등고선에 박혀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드린 치성이 
깊은 주름 골로 새겨 있다  

점차 들어오는 발길보다 나가는 발길 잦아진  
내리막 황톳길 희미하게 새겨 있고 
사십 넘겨 맞선 보러 간 큰집 삼촌 
퇴짜 맞고 거나하게 부르던 ‘목포의 눈물’이 묻어 있다  
고모가 맡기고 간 젖먹이를 업어 키우는 할머니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해거름 당산나무 가지에 자장가를 걸어두었다  

족보의 어디쯤 마디를 잘랐는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내 가지들  
당산나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백 년 전 어느 그림자 내 지문을 닮아있다 

마을은 캄캄한데 당산나무만 밤새 
팔이 근질거린다

 

 

 

 

참치캔 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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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기록되지 않은 삶의 숨소리를 기록하겠습니다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입니다.

 

존재와 부재, 모순되는 두 현상이 공존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대신 자아의 내면에 투영된 쓸쓸한 풍경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오래된 마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어 많이 안타깝습니다. 톨스토이는 당신이 우주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마을은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이며 일상적인 삶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무한하게 녹아 쌓여 있는 곳입니다. ‘마을이란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되는 물리적인 공간만일 수 없습니다. 한 마을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거대한 역사책이면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사가 누적된 신화적인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외피에 연역적으로 명기된 역사적 사실보다 그 사실들의 보이지 않는 행간에 숨어있는 기록되지 않은 삶의 숨소리가 진정한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역사의 행간을 살다간 민초들의 찰나적인 생과 아픔 그리고 햇빛과 바람과 꽃들을 누가 호명해 줄까요. 기억은 사랑보다 아름답습니다.

 

뜻 깊은 상을 받게 되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께 깊이 감사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심사평] 해 거듭할수록 작품 수준 높아져현장감 넘치는 흡입력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가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소설, 수필, 수기를 망라한 산문 부분에서는 김기남씨의 수기 '경매는 대박이다', 오승경씨의 단편소설 '별을 그리다', 김태식씨의 수필 '철판을 다듬는 사람들', 신정근씨의 수필 '수표 한 장', 노현수씨의 단편소설 '대리인'이 최종 심사대상에 올랐다.

그 가운데 '경매는 대박이다'는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문장이 거칠다는 점에서, '철판을 다듬는 사람들'과 '수표 한 장'은 문장은 미려하나 이야기의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혹은 누구나 자료를 찾아보면 나오는 이야기를 벗어나 그 소재에 대한 작가만의 경험과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거기에 비해 소설 두 편은 이야기의 짜임새가 뛰어나고 지금 현재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리고 일어났을 수도 있었던 일을 잘 그려냈다. 오승경씨의 '별을 그리다'는 여자라는 이유로(물론 다른 이유가 더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지방에 있는 리조트로 발령이 난 여자 주인공이 겪어온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잘 풀어나갔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이해는 빠르게 전달되지만 그런 만큼 전체 이야기의 구조가 단순하다. 이 작품을 가작으로 올린다.

노현수씨의 '대리인'은 우리가 지나온 정권 어느 시기에 충분히 있었을 법한 해외자원 투자에 대한 금융기관 상층부의 담합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이 방면의 업무 구조나 해외자원 투자에 대한 정책 사정을 모른 채로 글을 쓰면 자칫 허황하게 들리기 쉬운데 노현수씨는 이 방면에 대해 치밀한 취재와 업무 이해를 통해 실제 없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있었던 이야기처럼 현장감있게 글을 써나갔다. 현장감을 바탕으로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도 대단하고 결말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솜씨도 대단해 올해의 대상으로 올린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정진하길 바란다.

시 부문에서는 작품의 수준이 극명하게 갈렸다. 출품작은 많았으나 마지막 심사 대상에 오른 응모자는 박용운·이은주·강신명·정소망·정미경씨 5명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박용운씨의 '불씨를 품다'와 이은주씨의 '타래실', 그리고 정미경씨의 '당산나무 연대기'가 경합을 벌였다.

'불씨를 품다'는 불타기 위해 "어깨를 맞대고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장작들"을 "인력시장에 줄지어 선 사내들"에 빗대어 쓴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아직은 관념적이어서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다. '타래실'은 "엄마와 내가 함께" 실패에 실을 감고 풀었던 ‘실의 시간’을 성공의 반대 개념인 '실패'와 연결해 매우 유니크하게 풀어간 수작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동반 작품들이 아쉬웠다.

'당산나무 연대기'는 당산나무에 서리었을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연대기’적으로 풀어가는 솜씨가 뛰어났다. "벌판의 바람이 주인"이었을 때부터 "젖먹이 업어 키우는 할머니의 자장가"까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당산나무'를 그립게 만드는 정미경씨의 출품작을 우수작으로 선정한다. 함께 응모한 '경주마', '나의 느티나무' 같은 작품에도 오랜 습작의 시간들이 녹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시인으로서 정진하시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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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 / 오영록

 

 

면과 면이 모여 사는 곳
면과 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둥근 모서리


당신의 면과 나의 면이 모여 우리가 되었듯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서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건물 속에 수만 개의 모서리가 산다
저 많은 모서리도 건물이 되기 전에는 하나의 모서리나 각이었을 뿐, 건물이 되지 못했다


모서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많은 뼈가 모여 유연한 각을 만드는 인체처럼
모서리는 각이면서 부드럽기에 따스하다


너와 나의 두 각이 모이면
사랑이라는 모서리 하나 겨우 생길 뿐
화합이라는 모서리 속에는 셀 수 없는 각들이 모여야 산다


산모퉁이 구부러진 철길을
모서리들이 각자의 각으로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면들을 모아 모아서 가는
모서리가 눈부시다

 

 

 

 

[당선소감] "눈물 뒤에는 또다른 웃음어젤 버틴 건 행복한 오늘 때문"

 

늦은 나이에 자아 성찰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쓰기였습니다. 생업에 얽매이다 보니 그 흔한 문예반이나 어느 대학 교수 이름 하나 적을 사람이 없네요.

과연 나의 스승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니 20년 세월 동안 가사를 도맡고 늘 독수공방 선잠을 청해야만 했던 아내의 눈물이 스승이었네요. 설익은 풋과일 같은 글을 늘 엄지 척 세워주던 제훈, 대섭, 금순이 그리고 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신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양형근 선생님, '다시올문학' 김영은 선생님 그리고 습작시를 돋보기 너머로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내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병석에서 사경을 넘나들고 계신 구순 노모가 스승이었습니다.

이 시가 탄생된 것은 얼마 전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 19통 통장을 맡고서였습니다. 수많은 자재가 모여야 건물이 되는 것처럼 사회가 형성되고 역사가 쓰이는 것도 건물이 서는 것처럼 서민들 각 가정의 크고 작은 애환이 모여 한 사회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삶은 모서리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가시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픈 삶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건물에 실내가 있고 외벽이 있는 것처럼 눈물 뒤에는 또 다른 웃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량의 객차를 끌고 구부러진 길을 가는 우리도 많은 모서리를 포용하며 살기에 아름답다 못해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어제가 아프고 쓸쓸할지라도 버텨냈던 것은 꿈처럼 찾아온 웃음과 행복의 오늘이 있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동남풍 같은 시를 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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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실제 경험 바탕글·추상어보다는 구체어에 높은 점수

 

올해는 소설과 수필, 수기, 논픽션을 포함한 산문 부문은 응모된 작품이 많았지만 수준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수필 부분에서는 수기 형식을 띤 '경매는 대박이다'가 경매 경험과 장점, 조심할 점을 잘 전달해 눈에 띄었고 '롱패딩의 긍정적 시그널'은 재미있는 발상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엄마가 들려주는 회사와 돈 이야기'는 어린 아이에게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기업과 돈에 대해 친근한 느낌으로 주제를 전달했다.

우수상으로 뽑은 '철, 선박으로 태어나다'는 철이라는 금속이 선박이 되는 과정과 한국 조선업계의 현황에 대한 설명문이다. 썩 재미있지는 않으나 읽어 나가는 동안 철과 선박에 대해 새로운 지식이 쌓인다. 문학적으로 부족하나 직장 경험을 살린 설명문 형식의 글도 응모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대상으로 뽑은 '쉰 줄에 공돌이'는 40대 후반까지 스포츠신문의 편집부장을 하는 동안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울 줄 모르던 ‘문돌이’가 신문사를 나와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 새로 들어가 바닥에서부터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을(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수작이었다. 형식을 소설로 집필했어도 읽으면 누구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올해 시 부문에서는 작품의 질과 양 모두 예년보다 부족했다.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이야기이고 이 시대의 삶이란 어느 면으로든 경제에 닿아있는 것이어서 굳이 작품에 경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응모작들을 보면서 감각에 인식되는 어떤 구체어들이 아니라 관념적인 추상어들이 많았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오영록씨의 '모서리'와 정지윤씨의 '경주마'였다. '모서리'와 '경주마' 자체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는 점에서 시적 주제로 다루기에 손색이 없다. '경주마'는 퇴역 경주마를 인생에 빗댄 회한을 잘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회한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논의 끝에 가작으로 선정한 '모서리'는 모서리에 이어져 있는 나와 너, 우리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그려낸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랑', '화합'이라는 관념어들이 이 작품을 가작에 머물게 했다. 내년엔 시 부문에서도 대상이 생산되길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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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 강태승

 

 

밖에는 죽어라 무너져라 눈이 내리고
찬바람은 빈틈으로 칼을 들이미는
너덜너덜한 신발들만 모인 식당
옆 탁자에서 한 사람은 명퇴자이고
한 사람은 명퇴하여 사업 중이고
한 사람은 명퇴 대상자라는데
펄펄 끓는 선짓국이다
처음엔 꽃송이를 주고받다가
말과 말 사이 핏물이 보이더니
칼을 쥔 것처럼 솔직한 손짓발짓에
누룽지 까맣게 탄
이야기 내 술잔에 배인다

딸이 고3인데 명퇴하였다는
아들이 대학2학년인데 명퇴금으로
조그만 사업을 하다가
사기당해 다시 취직했다는
노모가 암에 걸렸는데 명퇴 대상자라는
날고기가 안주로 배달된다
살점 떼어 주는 것처럼 권하는 소주
어린 사람은 피처럼 받아 마신다
금세 꽃이 다아 떨어졌는지
대화가 묵처럼 엉키고
컴컴한 데에 못질하는 소리
관(棺)뚜껑처럼 깔리는 눈꺼풀
이때다 하고 창문 후려지는 눈보라,
나이 든 사람이 소주잔을 중앙에 놓는다
다시 놓인 선짓국
나도 문제를 가로질러
막걸리를 사발에 부었다
눈보라가 팽팽하게 들이치다 도망가고
멀어지다가 죽은 듯이 펑펑 내린다.

 

 

 

 

격렬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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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두 번 맞은 부도…혼자 마신 막걸리에서 나온 시

 

서울 충무로 인쇄소 골목 구멍가게에서 친구와 술을 먹다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이른 오후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인쇄소 골목, 20년 넘게 인쇄출판업을 하면서 세상물정 제대로 모르고 일을 했다가 부도를 두 번 맞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 중구 약수시장 골목 순댓국집에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는데 옆 탁자에서 나보다 더 뜨겁거나 가슴 아픈 애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썼습니다. 좀 서럽거나 아쉬운 이야기들을 함박눈이 아늑하거나 따뜻하게 덮어주는 날이었습니다. 좋은 일이나 가난한 날도 봄이 오면 같은 봄을 맞으니 세월 지나고 나면 여름엔 같은 나뭇가지에서 꽃이 핍니다. 오히려 가난했던 시절의 줄기가 더 곱게 단풍 들기도 하겠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경제를 걱정하기보다 국민의 걱정거리를 생산하는 정치권을 보면 답답해지는 현실이지만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면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정치·경제가 조속히 제자리 찾기를 소망하며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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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명퇴자의 애환·거리의 간판 묘사, 섬세하고 리얼했다

 

올해 경제신춘문예에서는 시 부문과 산문(소설 수필 수기) 부문에서 공동 당선자를 내게 됐다.

먼저 시 부문에서 어느 해보다 응모작이 많았다. 다만 작품의 우열이 뚜렷해 양보다는 질이 아쉬웠다. 총 5명의 작품이 최종에 남았다. 그 가운데 이OO씨의 <세탁사의 미로>와 정OO씨의 <타이어>가 눈에 띄었으나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신뢰를 깨뜨려 일찌감치 탈락됐다. 응모자들은 무엇보다도 순수한 자신의 창작품으로 승부하는 기본을 어겨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박봉철씨의 <바지랑대>는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능력이 돋보였으나 입상작으로 하기엔 호흡이 너무 짧았다. 결국 넙치와 그 넙치로 회를 뜨는 남자를 긴장되게 묘사한 김상현씨의 <넙치회>와 눈보라 몰아치는 밤, 허름한 식당에 모여 술을 마시는 명퇴자나 명퇴 대상자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는 강태승씨의 <눈보라>가 마지막까지 경합을 펼쳤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경제신춘문예라는 주제에 더욱 충실한 <눈보라>를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너덜너덜한 인생 같은 사람들이 모인 식당에서 펼쳐지는 ‘부도수표’와도 같은 삶의 모습이 술과 음식들과 엉켜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다. 시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한 것은 어쩌면 우리네 삶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눈보라>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산문 분야에서는 우선 소설에서 권행백씨의 <악어사냥>, 수필에서 임철순씨의 <부녀가 나누는 경제 이야기>, 박지영씨의 <시애틀의 백년 된 치킨집 이야기>가 최종에 남았다.

소설 <악어사냥>은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나 작품 초반에 유지했던 흥미와 긴장감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돈벌이를 위해 악어를 남획해 그것을 팔고 사는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인간이 기본으로 지켜야 할 자연주의에 반하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남은 두 편의 수필은 모두 뛰어나다. 당선작으로 뽑은 <시애틀의 백년 된 치킨집 이야기>는 지난 몇 년 동안 한 자리에 여러 업종의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와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한 업종이 장사를 하다가 문을 닫고 나가면 그 자리에 다른 업종이 새로운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이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고 또 분석적이다. 마치 거리의 경영학을 살피는 듯한 모습이 반듯한 문장으로 그려졌다. 이 작품을 시의 <눈보라>와 함께 공동 당선작으로 정했다.

또 한편의 수필 <부녀가 나누는 경제 이야기>는 ‘성수기와 비수기’ ‘재래시장과 마트의 차이’와 같은 우리 일상생활 속의 경제이야기를 부녀의 대화로 알기 쉽게 설명해나가는 방식인데 특히 그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비유가 뛰어나 가작으로 결정했다.

세 사람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입선에 들지 못한 모든 응모자들에 대한 위로와 함께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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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 유택상

 

 

들판은 왜 저리 푸른가

 

아버지는 늙어서도 솟대이다
들판을 한 평생 지키시다 한 마리 새가 되었다
지적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땅을 지키기 위해
비를 맞고 눈을 맞고
가난한 살림에 몸피가 말라 있었다
자갈밭을 논으로 만든 옹이는
힘겹게 일궈 온 들판들 언제쯤 아버지 가는 주름살의
내력을 읽어 낼 수 있을까,
이것만은 지켜야 자식들 산목숨 이어줄 수 있다고 콜록콜록 막걸리 한 사발
가득 마시던 순간, 야윈 갈비뼈 사이에 깊이 앓았던 병이 도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들판에서 자꾸 흔들렸다
빛보다 어둠이 두려웠던 나는 들판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아버지의 깃털을 뽑아 내 몸을 덮었다
겨울 동면에도 흘러 들어온 견딜 수 없는 추위 때문에
조금씩 아버지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 평생 내내 몸이 젖은 들판은 살과 뼈로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아버지의 몸이 된 들판은
새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바람 찬 방안에서 비가 새는 걸 막으려고
밤새 솟대가 된 몸
밥그릇에 메아리치는 뜨거운 목숨의 노래
수풀 사이 땅바닥에 낙석처럼 버려진 삽 한 자루
아버지의 몸이다

 

 

 

 

[수상소감] 나의 고단함을 녹여준 희망의 글

 

어두운 그림자를 앞세우고 일터로 나갑니다. 


언제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작은 꽃으로 다가오는 것. 그 꽃이 흔들릴 때마다 따스한 시선으로 보내준 향기. 그것은 나의 희망이었습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서는 나의 고단함을 녹여 주었습니다.

 

늘 모난 돌처럼 살아온 날들이 녹록하게 생활에 배어나오면 그 표현의 무수한 글자들. 나는 글귀를 통해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때론 어둠 속에서 진흙과, 모서리에서 나를 지켜준 시어들이었습니다. 원고를 보내놓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갈대의 서걱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갈대는 그곳에서 추위와 함께 겨울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감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남편 등 뒤에서 기도해준 아내와 가족 그리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머니투데이 관계자분들과 작품을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유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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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가족의 삶도 청춘의 고민도…더 풍성해진 '생활속 경제이야기'

 

올해 경제신춘문예는 응모편수도 지난해보다 양적으로 늘었고, 질적으로 아주 풍성했다. 시 응모작도 많이 늘어났지만 특히 소설과 수필(수기)쪽의 응모편수가 지난해 곱절 정도로 늘어났다. 심사결과 대상은 소설부문에서 나왔고, 우수상은 시 부분에서, 또 가작은 수필(수기) 부분에서 나왔다.

 

우선 소설 부문에 일차로 뽑아낸 작품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와 '전경련 회장 실종사건', '팬티M'인데, 경제에서 돈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그냥 돈이 부족해 돈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만으로는 그걸 경제이야기라 말할 수가 없다. 또 주인공이 전경련 회장이라고 해서 그게 경제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소설 안에 기업 전반에 대한 얘기든 금융흐름에 대한 얘기든, 주인공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경제 이야기가 녹아들어야 한다.


대상으로 뽑은 소설 '팬티M'은 경제신춘문예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단의 일반 문예공모에 응모하더라도 거기에서 뽑힌 당선작들과 비교해서도 아주 잘 쓴 작품이었다. 젊은 남녀 3명이 여자 속옷을 만드는 작은 회사를 공동으로 창업해 디자인에서부터 봉제와 판매(인터넷 몰) 광고에 이르기까지 작은 회사의 경영전반에 대한 얘기를 소설 속에 아주 잘 그려넣었다. 경영이야기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 가족의 삶, 청춘의 고민도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라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앞으로도 큰 활동을 기대한다.

 

시 부문에서는 전체 수준은 예년과 비슷했지만, 출품작들의 우열이 너무 극명한 느낌이었다. '솟대', '간재미', '아가미 숨과 생활', '트레이더스 개점하다'가 최종 경합을 벌였다. '트레이더스 개점하다'는 시적 전개가 활달하고 주제도 선명했지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가미 숨과 생활'은 어판장 생선가게에서 젓갈을 담그는 그녀의 일상이 그림처럼 전개되나 '꽃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와 같은 생경한 표현이 시적 긴장을 약화시켰다. '간재미'는 간재미를 무치는 엄마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하듯 새콤하게 그려냈으나 마지막 마무리 연의 처리가 하나의 추억으로 전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솟대'는 아버지를 마을이나 집을 지키는 수호신의 상징물인 솟대로 비유하며 아버지의 일생을 그려낸 수작이다. 솟대와 들판, 버려진 삽 한자루가 모두 아버지의 몸이다. 한 겨울 ‘아버지의 깃털을 뽑아 내 몸을 덮었’던 시인이 말하는 ‘밥그릇에 메아리치는 뜨거운 목숨의 노래’가 가슴 아프다. 이 작품과 소설 부분의 '팬티M'을 놓고 작품의 성취와 완성도를 따진 끝에 우수작으로 결정했다.

 

또 한편의 가작은 수필 부분에서 나왔다. '귀촌의 경제학'과 '경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놓고 여러 논의를 거쳤다. 둘 다 수기적 성격이 강한 작품 가운데서도 '경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한 가정의 위기 극복 과정을 실감나고 설득력 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귀촌의 경제학'이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귀촌하는 과정과 귀촌 후 실생활 속에 일어나고 있는 실경제 이야기를 마치 이야기하듯 들려준다는 점에서 저마다 강점이 있지만, '귀촌의 경제학'이 귀촌 가운데서도 흔히 보는 농촌으로의 귀촌이 아니라 아주 드물게 어촌으로의 귀촌을 그렸다는 점에서, 또 주제 전달력이 높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가작으로 선택했다.


심사위원인 이순원 소설가와 이희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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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시라시 / 염민숙

 

 

초봄이면 한강으로 시라시를 뜨러 갔다

빚보증으로 논밭을 날린 후 어머니는

책값이며 차비가 없어 꾸러 다녔다

어머니가 떠오는 시라시는

식구들 마른 삶에

도랑물을 내었다

 

시라시를 따라 강의 깊은 데까지 가

등에 업힌 막내와 자맥질도 하였다

눈물자국 같은 물빛이 뜰채에 걸려나왔다

물의 정수리를 오래 들여다본 죄로

햇살에 눈이 멀어

어머니 돌아오는 걸음이 출렁거렸다

 

어디 먼 바다로부터

제 어미의 길을 되짚어

시라시가 오는 철이다

곁에 감기던 식구들 다 떠나고

어머니 혼자 봄밤을 지새우는 날

얼음장 떠가던 그 밤처럼

무릎 시리게 떠오르는

물빛 기억들

 

*시라시: '시라시'라고 부르는 작고 가는 실뱀장어. 외국에 양어종자로 팔았다

 

 

 

[밀크북] 시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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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시의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 저에게"

 

지난여름 교통사고로 눈을 조금 다쳤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녹내장 초기증세를 알게 되어 앞으로 올 실명을 예방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식은 시의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 저에게 모닥불로 다가왔습니다. 껍질 벗기려다 심은 도라지가 꽃 핀 것처럼 숨어 있는 것 꺼내고 싶은 열망이 듭니다.

 

걸어온 모퉁이 돌아보면 고통은 혼자 오지 않고 기쁨도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어깨의 짐을 걸머지고 오는 동안 웃음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나고 보면 삶의 자락에 빛이 들거나 그림자가 지든지 그것이 모여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환희가 그 자락에 밝은 그림 하나를 짜 넣는 일이기에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길이 맞닿을 때까지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시인 장석남, 김우섭 선생님과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새얼문학 찬용, 진채, 수조, 선우, 선호, 계숙······ 함께 길을 걸어온 문우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끊임없이 문학적 소재와 이야기들을 길어다 부어주는 성식씨와 가족들 사랑합니다.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준 광미, 경희, 지은, 명자, 여러 친구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작] 뿌리 / 최재영

 

 

뿌리는 힘이 세다

수십 년 세월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매일 쥐눈이콩 같은 눈망울을 매달고 길을 낸다

기억 켜켜이 어둠의 지층을 뚫고 나아간 흔적이

시퍼런 강물처럼 겹겹이 굽이치는 저녁

뿌리는 뿌리만으로도 온전한 몸통을 이룬다

어둠보다 두터운 벽이 있으랴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뿌리의 내력을

더운 숨결 내뿜는 잔털이 말해준다

축축한 흙냄새에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 말랑해지고

이제부터 모든 어둠은 뿌리의 시작이다

뿌리의 문을 밀면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쿵쾅이며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들

지상의 푸른 잎들이 땅 밑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파르르 가녀린 심호흡을 내 뱉는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 있었으리라

폭풍우 몰아치는 날에는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어느 종족이 이리 형형한 눈빛을 가졌는가

단단한 암벽을 파헤치는 힘으로

여전히 길을 탐색하는,

뿌리에게는 어둠도 환한 불빛이다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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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가 주최하고 금융위원회 후원, 신한은행 협찬으로 실시된 '제10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당선작을 선정했습니다.

 


우수상(신한은행장상)에는 상금 300만원, 가작에는 상금 100만원이 각각 지급됩니다. 당선작은 2015년 1월 1일 머니투데이신문과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1일(수) 오후 3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국화실에서 열립니다.

당선자께서는 시상식에 참석해 상장과 상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응모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12월 '제11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공모가 이뤄질 예정이니 많은 성원과 응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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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 / 권삼현

 

그동안 뭐 했냐고 묻지 마라
우체국으로 걸어간 봄은 온통 꽃 필 생각이다
울퉁불퉁 생긴 대로 볼품없는 세월
집배실 옆 차르르르 햇살 엎질러진 모과나무는 안다
향기란 어쩌면 제 몸을 뚫고 나오는 연둣빛 새순 같은 것
오늘도 백오십리길
꽃 소식 앞장세우고 배달 나가는 집배원
빨간 오토바이 휘청이도록 봄바람 분다
풀빛 연애편지는 내가 업어주고 싶은 것들
바람 불고 황사 자욱한 땅에 모과나무는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꽃 필 생각이다
봄을 찾아 가다가 막막했던 모든 것들이 꽃길이다
번지가 지워진 봄날의 주소를 한 땀 한 땀 기워가며
환한 우표로 들여다보았을 그처럼
제 몸에 감춘 것들은 기다리다가 꽃이 된다
아침 오는 길목 푸른 물길 지피는 봄바람 속에
우리 살아가는 동안 봄날이다
꽃 피는 나무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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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가 주최하고 금융위원회·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 후원, 신한은행 협찬으로 실시된 '제9회 대한민국 경제올림피아드' 시상식이 21일 오후 서울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경제신춘문예 대상(금융위원장상)은 수기 '바람은 가끔 옆으로 분다'를 출품한 김정진씨가 수상했다. 금융경시대회 부문 대상(금융위원장상)은 'Fun&이자 플러스 정기예금'을 출품한 김용훈씨에게 돌아갔다.

 

우수상(신한은행장상)은 소설 '어느 교수로부터의 편지'(경제신춘문예)를 낸 채종성씨와 '반려동물노후보장보험'(금융경시)을 출품한 이영호씨가 각각 차지했다. 가작(신한은행장상)은 시 '집배원'의 권삼현씨와 '소액금융대출자의 저축률 향상을 위한 서민 대출저축상품'의 염경선씨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경제올림피아드는 금융상품 공모와 신춘문예라는 신선한 방식을 통해 국민들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금융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게 행사"라고 평가하고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진원 신한은행장도 축사에서 "일상 생활 속의 금융을 감동적인 문학작품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풀어내 준 모든 참가자들에게 감사하다"며 "수상자들의 아이디어는 은행의 상품과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홍선근 머니투데이 미디어 회장은 인사말에서 "국민들의 경제, 금융에 대한 이해를 높여 경제의 기반을 탄탄히 하고 건전한 금융소비 행태를 정착시키기 위해 시작한 경제올림피아드가 어느새 9회째를 맞았다"며 "참신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작품으로 수상하게 된 수상자 모두 축하한다"고 밝혔다.

 

금융경시부문 대상을 차지한 김용훈씨는 수상소감을 통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상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아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며 "본인의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홍선근 머니투데이 미디어 회장, 수상자 가족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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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둔 고래 / 최영정


밤새 헛기침하는 저 구두
신발장에서 꺼내 한 손에 낀 채 닦아내다가
밑창에
작게 뚫린 고래의 숨구멍을 보았다

비가 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컴컴한 동굴 같은
저 안에서 솟구치고 솟구쳤을까

내 마음이 내딛는 자리마다
생겨나는 커다란 물웅덩이에
빠진다.

정년퇴임 후 아버지가 가지런히 벗어둔
저 구두는
숨 쉬러 물 밖으로 가끔 뜬소문처럼 올라온다는
고래들처럼
요즘엔
경조사 빼곤 좀처럼 밖을 나서는 법이 없다.

다시 마른
헝겊만으로 구두를 닦고 또 문지르는데도
무슨 일인지
자꾸만 눈부신 물광이
구두에서 난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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