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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공항 사람들 / 정수미


누군가의 자리를 쉴 새 없이 닦고 쓸던

비날장갑조차 사치였던 그 손엔

바삭 마른 북어같은 까슬한 잔가시가 올랐다

매일같이 비행기를 탔지만

비행기 여행이라곤 가 본 적 없는 그는

내 어머니고 네 어머니였다


프윽 삶은 우거지처럼 축축 늘어져

푸른 빛 다한 등 기댈 곳은

조업차 아래 잠시의 그늘 뿐

엔진 붙바람 속 가쁜 호흡 몰아쉬며

열독 오른 한여름 계류장을 종일 뛰던 아버지는

섭씨 50도 아스팔트 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한 겹 녹으면 두 겹 쌓이던 그 겨울 가루눈은

속눈썹 위로 무겁게 내려앉은 가장의 책임감이었다

한강마저 얼어붙은 날

수백 개의 기내식 카트를 싣고 내리기 위해

동작이 꿈떠선 안 된다는 남편에겐

부츠 안 두 겹 양말만이 최선이었다


길디 긴 하루, 구두 속 부르튼 발 달래는 퇴근길

내 새끼들 좋아하는 과자 사들고

오늘 들은 욕지거리는 또 한 번 마음에 묻는다

경력 7년 차, 젖은 눈 숨기는 법은 배웠어도

목젖 누르는 통증 숨기는 법까진 못 배운 그는

내 아내,

그리고 네 아내였다


먼지 속을 어지럽게 날아 꽂히던 작업반잘 고함소리

물 빠진 작업복 위로 허얗게 말라붙은 소금 땀 한주먹

시린 겨울 공기 사이로 비어져 나오던 젖은 한숨 한자락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었던 스케줄표


설렘으로 달뜬 비행기 안

그 뒤편에선 또 하루 묵묵하게 살아내고 있는

설렐 것 것도 없는 일상들











[우수상] 수말락을 저어요 / 조영석


기다리는 게 제일 쉬운 줄 알았어요 어머니

동쪽 하늘 구름을 헤집고 날아온 후

벌써 계절이 스무 번쯤 바뀌었는데

고향집 쁠롭 기름향이 코끝에서 맴돌아요


사장님께 장갑을 달라고 했어요

가문 땅바닥이 어머니 손등처럼 갈라져

손톱이 자꾸 입을 벌리는 통에

그것분이었어요 꾀부리지 않았어요

가구 공장에서 나올 때도

나은 일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만주로 갔던 의롭던 청년의 세월

세상 파도치는 방식대로 흘러간 지 팔 십 년

순응한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돌아선 순간

늦은 거보다 무서운 게 먼 거라시던

한 일생을 거슬러

오천 킬로미터를 달려 할아비 조 나라 국

돌아온 손자의 고달픈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요 어머니


어쩌면 산다는 건 수말락을 저을 때처럼

온 밤 지새다 한두 번 찾아오는 옅은 졸음 같은 건가요

정말 그렇대도 견딜 만한데요 그건 괜찮은데요

어쩌면 영영

길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겠어요

파르르 떨리며 지챙해온 삶의 N극 바늘이

먹통이 되었어요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비틀거리는 내가

스탬프 하난 찍지 않고 남겨진 엄마 유품 속 여권 같아서

무너져 울어요


황하를 건너고 천산 산맥을 넘어

양떼구름 몰고 비행기 꼬리 사라진 서녘으로

한 시절 가슴 위로 스러져가는 카레이스의 손자가

우두커니 손을 흔들어요 어머니

야샬롬 알레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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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야간비행 / 강사랑


창 없는 하늘이 열리고 있어요
처음으로 밤의 속내를 본 것만 같아
당신 괜찮은가요, 라고 썼다가
별들의 길고 하얀 손가락을 섬기며
우렁거리는 하늘 바다를 건너가요
극점에는 지지 않는 태양이 있다는 이야기
매일이 환한 낮잠 속을 거닐고 싶어서
어느 날 당신의 이불 속으로 들어온
하얀 부리의 비행기가 있어요
수많은 깃털을 가진 구름에게서 묻혀온
바람의 냄새, 당신의 꿈, 나는
당신이 써내려간 보내지 않은 편지에요
사막을 걷고 있는 낙타에게 데려다 주세요
속눈썹을 앓는 슬픈 아이들의 손에서
검은 베일을 쓴 여자들의 손으로 옮겨지다
수 백 년 째 같은 자리를 맴도는 모래 폭풍을 건너
영원한 미소로 뒤설레는 대양에 가닿을 거에요
젖은 종이처럼 어둠을 빨아들이는 창문
당신을 보듯 눈 맞춤하다가 동이 터오면
나는 붉은 태양을 등에 업고 날아가고 있어요
당신이 또 다른 당신이 되어 돌아오도록
이곳과 저곳을 잇대며 쉼 없이 활공하다가
두 날개를 다 쓰고 울어버려도 괜찮을까요
지구에는 헤지고 터진 구석들이 많아서
공항마다 나그네처럼 비행기들이 머물다 가요
낮은 곳에서도 가장 높은 바람이 불어오는 날
그리운 것들의 또다시 목소리를 내며
입이 큰 활주로처럼 쇄도하고 있어요
가슴이 시리도록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겨 넣은 별들의 언어 속으로
야간들을 달고 날아가는 당신의 얼굴을 보아요







[우수상] 타슈켄트 가는 길 / 함국환


오후 5시, 지난 시절을 얼레로 감으며

두 팔 펼쳐 서역으로 날아갔다

아득한 공간 아래로 보이는

동서를 연결했던 타클라마칸 사막

땀 흘리며 달렸을 군마

시간을 마시며 걸었을 낙타들

그들의 비릿하고 묵은 발자국이

날개 아래에서 예닐곱 떠올랐다

꼬리가 구름을 수직으로 가를 때

기체 안으로 흡입된 몽실몽실한 끼니

먹고나면 어디쯤 도달할까

지나간 모든 걸 품에 안고 가기에는

가늘어진 다리와 얇은 날개

프테라노돈* 타고 하늘 올라 저녁이 되는

서쪽으로 한참을 날아가도

머리 물들이던 해는 앞에 있었다

하늘에 닿아 능소화빛 얼굴 되면

담장 밖 사랑 잊게 될까? 초승달 뜨면

기억이 살아나는 비행기 안으로

모래 밟았던 발들 움추리며 스며들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접힐 날개에

양떼구름 꼬물꼬물 매달려 나부꼈다

어두워져 수 놓아진 별꽃을 보며

일곱 시간 날갯짓해 도착한 타슈켄트

손목시계는 자정, 벽시계는 저녁 8시

 

할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까레이스키 3세

숯내로 끌어 당긴 여인의 식당 벽에

삽 하나로 일궈낸 논이 걸려 있었다.

 

*프테라노돈 : 텍사스의 빅벤드 국립공원 백악기 말기 퇴적층에서 발견 된 날개폭이 최대 15.5m 가 되는 익룡으로 역대 가장 큰 비행동물

 





[우수상] 당신을 자카란다 그늘에 앉히고 싶어 / 장서란


당신을 자카란타 그늘에 앉히고 싶어
레이스로 짠 자리 위에서
푸른 차를 마시고 높은 케이크를 먹고
손으로 쌀을 맛보고 맨발로 걷다가
고양이가 다가오면 고개를 숙이는 거야


낯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우리는 된소리 투성이인 말을 듣게 될 거야
세 개의 옹알이를 알아듣던 당신은
모르는 언어를 거끈히 알아채고
분명 이 곳에서도 누군가를 웃게 하겠지


압테니아 오니소갈럼 란타나 로엘리아
당신이 모르는 꽃의 이름을 알려 주고 싶어
당신이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낯선 것들에 둘러싸여 당신은 당신을 잊어버리고
먼 곳에 두고 온 웃음을 찾겠지


이쪽의 오늘이 저물면 서쪽으로 날아가자
저쪽은 노늘이 한창이니까
내일이 보이는 수평선으로 날아가면
당신은 내일보다 어제인 오늘에 있는 거야
하루씩 늦어지는 매일을 선물할게


당신에게 머나먼 어제들을 주고 싶어서
나는 당신과 함께 날아가고 있어
잠든 당신과 함께 날아가고 있어
잠든 당신의 곁에 앉아 노래를 불러 줄게
당신이 나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를
멀리 멀리 날아라 우리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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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당신 거기 잘 계신가요 / 이정민

 

바람은 구름을 이고 천천히 행진 중이에요

혈관 같은 강과 만년설을 덮고 잠든 산 위로

구름이 꼭꼭 숨겨뒀던 창공의 지퍼를 열며

내가 갑니다 내 방 거울만한 창문을 향해

저 멀리 태양이 말간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여요

땅에 발이 닿지 않아 천년을 떠돌고 있는 바람과

무릎이 시려 앉은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별들

이별한 사람들의 얼굴이 보름달과 함께 떠오르면

살포시 창문에 귀를 대어 봅니다

당신이라는 온도 당신이라는 음정 당신이라는 섬

날개에서 날개로 옮아가 피어나는 감정들

비행기도 그림자가 있겠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겠지요

계절에서 계절로 새들의 항로엔 국경이 없고

지상의 마른ㅁ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뒤꿈치를 들어 남쪽으로 움직이는 나무들

비행기에서 비행기를 접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당신이 준 편지로 비행기를 접었어요

마음의 빗장을 열어 비행기를 날릴 수 있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띄운 종이배보다

단단한 활자가 되어 영겁을 떠돌겠지요

편서풍이 창문마다 걸린 얼굴들의 엉덩이를 밀어주어

무사히 당신의 어제에 당도했습니다

밤하늘을 반으로 접어 찍어낸 것처럼

찬란한 샌프란시스코의 밤을 가르며

이제는 내일을 살고 있을 당신에게

시차만큼의 편지를 모국어로 씁니다

당신 거기 잘 계신가요

 

 

 

 

 

[우수상] 플라잉 타임 / 김형미

 

하늘은 받들고만 사는 줄 알았어요

권태의 계단을 딛고 올라 내려다볼 줄은 꿈에도 몰랐죠

미맹에 시달리던 어느 날인가,

새들은 꽃피는 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크게 몇 번 손뼉을 치고 나니

떨리는 손에 건네받게 된 것은 불면의 허공 뿐

더는 견딜 수 없었죠

 

잃어버린 잠을 찾아야 했어요

폐업신고를 알리는 입간판 사이로

펄럭이던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둥근 시간을 품고 포란하듯 한동안 엎드려있었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살아오는 동안

메아리도 사라져 버린 헌 집 같은 나에게

퇴화된 날개 하나 겨드랑이에서 돋아났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 올랐죠

 

이국의 밤은 황홀했어요

날 모르는 사람들, 익명으로 행복한 거리는

비밀이 담긴 선물 같았죠

몇 뿌리 양파를 놓고 흥정하는 사람들

사라지지 않는 해를 두고 밤에 드는 적도의 사람들

먼 곳에서 날아와 알게 되었어요

두고 온 것들은 언제나 그리움의 질료가 된다는 것을

떠나야 내가 보인다는 것을요

 

아슴아슴 꽃잠이 밀려오는데

아득한 곳의 어둠을 지우며 새벽이 오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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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블라디보스톡행 후 / 조수일

 

아직 단단한 이름을 갖지 못했나요

물 밖 세상은 꿈꾸지도 못하는 수조 안의 삶인가요

바다 건너 창공을 꿈꿔보세요

구름 깃털 속에 지친 부리를 묻고

퇴화한 날개를 펼치고

푸른 창공을 한번 마음껏 날아보세요

용기가 없다구요

늘 닻처럼 발 묶인 하루하루일 뿐이라고요

지금 구름의 속살을 날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세 아이 고3 엄마와 각기 달리 불리는 호칭들

각진 구석으로 몰려다니다 얼든 사과 한 알

훌쩍 지천명을 넘는 내가 보였어요

기다렸다는 듯 몸이 수신호를 보내 왔어요

과부하 걸린 듯 소리를 내는 관절들,

냉대와 열대의 극지점을 오르내리는 체온은

숨겨지지 않는 생의 복병이었어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하룻밤은?

아무르 강가에서 커피 한 잔은?

거절할 수 없는 생의 첫 유혹은 감미로웠어요

손발 움직임과 토막 영어로 통용되는 세상이

거기 있더라니까요

서두를 줄 모르는 느긋한 걸음에 실린 생의 의미가

돋음체로 읽혔다니까요

발밑에 몸담고 살던 세상이 가까와져요

, 건물, 산과 강이 장난감 같아요

구물구물 기어가는 까만 개미 떼 같아요

수국 같은 웃음의 스튜어디스가 커피 한 잔을 건네와요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배낭을 메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이제는, 나들이하듯

날아 볼래요

땅만 보고 먹이를 나르느라 하루가 저문 줄도 모르는 개미떼가

문득, 아파와요

단단한 이름을 가질 준비 되셨나요? 당신,

 

 

 

 

[우수상] 항공여행 / 박덕은

 

여행 책자에서 가르랑거리던 음절이

한순간 등받이로 몰리는 추억에 휘말려든다

비스듬히 쏠리는 오후 여섯 시의 기울기에서

남루한 어휘들이 빠져나가

하늘 강가에 뭉텅이째 떨어진다

 

별빛은

가느다란 수초 사이로 파문 일으키지만

저녁은 말이 없다

시트에 목베개를 고정시켜 준 당신처럼

책날개 같은 하늘이 마냥 좋다

가만히 귀 대어 보면

쿵쿵 가슴 뛰는 둥근 창,

아직도 그 파닥거림을 기억하나

 

기내식의 두근거림을 먹다가

눈동자 속에서 바라보았던 노을이

반짝이는 낱말들을 팽팽히 잡아당기며

휘파람 분다

무수한 책갈피의 입술들이

허밍으로 따라하며 깔깔거린다

 

흐릿한 바람이

손등에 얹혀져 있던 노래 물고 날아간다

불안한 발이 머무는 좌석의 무릎공간은

점점 좁아져 자간마저 사라진다

 

향기 잃은 박자는 행간을 넘다가

차가운 여울물에 닿아 파르스름히 몸 떨고

어긋난 음표는 기슭으로 자꾸 떠밀려 간다

 

창문 가림막을 올리니

쓰디쓴 고음 한 문장의 폭우가 그치고 맑다

이젠 더이상 궁금하지 않은 마지막 페이지

 

어순에 맞게 엔진은 힘차게 돌며

흰구름 건너 공항으로 향한다

여명 자락에 슬쩍 끼워 두웠던

풍경이 흘러나와 지평선이 새붉다

저항은 늘 있지만

짙푸른 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

비행기의 발목이 눈부시게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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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야자나무의 날개 / 이미순

 

어머니, 야자나무의 열매는 올해도 여전한가요.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하얀 눈을 보았어요.

창공에 얼음 꽃이 피는 계절이 있다는 걸

꿈의 날개를 펼친 후에야 알게 되었지요.

찬바람 속 날개는 꽁꽁 언 것처럼

한 번도 접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 꿈도 비행기 날개처럼

활짝 펼쳤어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길을 내던

비행기의 두 날개는 두고두고 꺼내어 읽는

소중한 한 권의 책과 같아요.

점점 실밥이 터져가는 내 작업복

겨울 가로수 길에 은행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속을 걸을 때면

마음 깊이 숨겨 둔 그 책을 꺼내어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지 않는 법을 자꾸 읽어요.

까만 동그라미가 많아진 통장

내 가슴 주머니에 꼭 찔러 넣어요.

껍질이 우툴두툴 해어질 때까지 살아온

계절을 아는 나무들

하늘을 향해 이륙할 준비를 하는지

잎 날개들 펼치는 소리가 들려요.

야자나무는 여전히 뜨거운가요.

 

 

 

 

[우수상] 최초의 비행 / 안지숙

 

비행

눈을 감았다 뜨면 여름이었다

뿌리 얽힌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계절을 건너뛴 풍경을 따라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불꽃을 당겨 환한 어둠 속으로

입 벌린 허공 속으로

비행기의 양 날개가 어둠을 가로지른다

오래전 묻어두었던 약속을 가슴에 품고서

어머니의 미소가 부풀어 오른다

꿈속을 횡단하는 새처럼 어깨가 들썩이고

악보 없는 음표들이 입안을 맴도는 이 순간

어머니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인데

당신의 큰 눈동자는 빈집을 닮아있었다는 걸

나는 너무도 늦게 알았다는 생각

허공을 움켜쥔 눈동자에 색이 덧입혀지고

기내의 적당한 온도가 온몸을 감싼다면

몇 개의 추억이 자리를 바꾸며 견고해질 것이다

최초의 비행을 꿈꾸던 당신의 그림자가

삶의 무게를 한꺼풀 벗어던지고

들뜬 아이의 콧노래처럼 가벼워지기를

당신의 환한 이마에

몇 줄의 문장이 꿈틀거리며 빛난다

교복을 입은 수줍은 소녀가

어머니의 품속으로 뛰어든다

 

 

 

 

[장려상] 민들레의 비행 / 최선옥

 

눈 밝은 햇살이

푸른 활주로를 정비하는 봄

먼 이국여행을 앞둔 민들레가 한 올 한 올 사연을 말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곳엔

눅눅한 기억을 말려야만 쉽게 풀리는 전례가 있고

바람의 갈피에 슬쩍 끼워 넣는 오래된 비행이 있다

추락과 결항과 불시착도 있어서

질 좋은 바람을 선별해야만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차도나 바다 속으로 뛰어든

깜깜한 비행

노선을 잊은 꽃씨들이 오들오들 떨기도 한다

스스로 날아갈 수 없는 불안한 활주에

기분이 시들기도 하지만

하얀 날개는 차츰 부풀고

유실을 고려한 민들레는 더 많은 씨를 껴안는다

 

말장화 같은 이탈리아와 코뿔소 같은 캄보디아와 엎드린 강아지 같은 페루,

지구본을 돌리며 착지점을 계산하고

새털구름을 압축해 뒷목에 괸

낙천적인 꽃씨 하나,

잠꼬대를 기내식으로 떠먹으며 꿈을 순항할 거라고 한다

하강기류를 감지하면

애기똥풀 노란 점멸등이 착륙을 안내해줄 것이다

 

난기류를 벗어나 공단으로 착지한 반쪽의 언어들은

뿌리가 얕아서

가벼운 부주의도 허투루 넘기지 못한다

몸살 앓는 송금이 있어야만 피는 국경너머의 웃음이 있다고

철야에 아직 귀항하지 못한 꽃씨들도 있다

 

연착 없는 알람시계가 깨우는 이른 아침

피부색 다른 걸음이

잠이 모자란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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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항공 풍경 / 정재돈

 

창궁에 오르면 구름은 소금밭이고

시푸른 하늘은 광활한 바다이다

바다위에 소금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물음표

모두가 풀지 못한 저 의문 속에 살고 있다

 

나도 하늘에 올라 깜냥깜냥

칩거해 있는 나를 찾아 본적이 있다

검붉은 혼돈의 땅에 살고 있는 나

그 안에서 허둥지둥 세월에 떠밀려 살아왔다

창궁에 오르면 그 속에서

알 수 없던 내가 불쑥 튀어나온다.

하늘에는 잃어버린 내가 살고 있다

 

잠시 땅을 잊고 오롯이 하늘 품에 안으면

나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

별보다 빛나는 꽃이 된다.

하늘에서 비행기보다 좋은 말은 없고

조종사보다 말을 잘 다루는 마부는 없다

 

비행기가 날개를 펼치자 잠긴 하늘이 열리고

열린 문으로 잃어버렸던 새들이 날아왔다

방안에 앉아 기분 좋은 노래를 불렀다

 

비행기는 승무원들의 푸근한 보금자리

시푸른 창궁은 승객들의 미더운 소망 저장고

구름 위에 올라 한껏 하늘 문 두드리니

얼키설키 묶인 매듭이 비단실처럼 스르륵 풀렸다

 

 

 

 

 

[우수상]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 이병철

 

아프리카를 찾아 떠나는 비행에는

나침반이 필요 없어요

바람이 공기결을 오물오물 물어뜯어

지름길을 표시해주거든요

새들의 발바닥이 날개를 두드리면

리듬에 맞춰 한 걸음씩 쿵쾅거리는 세계의 초침

오늘의 여행은 경쾌한 음악이지요

바오밥나무의 기지개는 소낙비만큼 향기롭고요

태양이 누는 똥은 사탕수수보다 달콤해요

날다가 힘들면 지나온 길들을 잡아 당겨

촘촘한 그물침대를 만들어요

사바나의 노을은 탯줄을 닮았고요

꾸불텅꾸불텅 늘어진 콩고강 끝엔

킬리만자로의 배꼽에서 만년설이 빛나고 있어요

상아해안이 멀리서 젖냄새를 띄워 보내면

내 엔진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와요

노래는 나비가 되어 죽은 물소의 뼈에 내려앉고

푸르디푸른 빗방울이 되어 건기의 초원을 적시지요

나는 언제나 아프리카를 꿈꿔왔어요

바람의 젖니가 뾰족해지면

내가 날아가는 따사로운 길은

천 개의 파인애플이 열린 밤하늘까지 이어지고

때마침 지평선과의 줄다리기 끝에 딸려오는 바다가

파도 속에 글썽거리는 눈망울로 나를 알아보네요

활주로를 쓰다듬는 건초 냄새

달빛이 커다란 상아를 휘두를 때

무거운 몸을 천천히 내려놓은 나는

아프리카의 젖을 물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어요

 

 

 

 

[장려상] 항공 / 황익순

 

비행기에 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눈시울 속에 있다

크림처럼 떠다니는 구름은

공중 위로 여행의 순간을 운반한다

내 어깨에 지난 기억이 창밖에 그림 그려지고

그리운 사람의 눈시울 속에 있듯

말이 없는 순간, 빗장뼈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뜨거운 여름의 순간이 마음 가득해질 때

서편 하늘에 여울로 고여 있는 노을

 

먼바다가 보일 때

이제는 지상조차 아득한 구름 사이로

보이는 물결무늬로 밤은 찾아오겠지만

어둑한 밤도 일출도

물결로 오가는 여정

공항으로 불어오던 먼 바닷바람은

여행길의 말 없는

첫 배웅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 풍경에 붉은 꽃다발을 안고 가는 듯

비행운은 공중 위로 길을 내고 있고

창밖의 바람이 내 이름을 부른다

 

어느새 끝난 여행, 귀갓길의 이 짧은 안식을

포옹의 방식으로 비행기에 앉아

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듯

이제는 여행을 끝내야 할 때 다시

한 번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 착륙의 순간

 

 

 

 

 

[장려상] 비행의 꿈 / 이지현

 

내가 아주 어릴 때

비행기 흉내를 내려면

두 팔을 뒤로 뻗고 몸을 앞으로 굽혀

온몸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내가 노란 옷 입은 병아리일 때

비행기를 그리려면

몸통을 그리고 날개 둘을 가로로 하여

색연필로 비행기를 그렸다.

내가 초등학생이란 이름으로 불릴 때

비행기 노래를 부르려면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목청을 돋워 비행기 노래를 불렀다

내가 처음 교복을 입은 청소년일 때

비행기를 만들라면

글라이더에 고무동력기 날리며

푸른 꿈을 창공위에 펼쳤다.

소매에 금줄 달고 금테 모자 쓴 어른일 때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여행하는 모두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라며

승객을 안전하게 모셨다.

 

 

 

 

 

 

[장려상] 활주로 / 김선홍

 

너른 잔디밭에 누워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문득 비행기 한 대 지나가고

상념은 그 꼬리를 따라 기차놀이중

 

숨바꼭질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생이라는 회전목마 위에서

뱅글뱅글 맴돌이치던 너와나

 

추억들이 지나치는 비행기의 꼬리를 물고

새파란 하늘 한가득 무대를 펼쳐

하나뿐인 관객을 위해 연극을 하지

 

어쩌면 추억은 그리도 가볍게

자유롭게 창공을 훨훨 날아가는지

나도 미친 듯이 사랑이라는 활주로 내달리면

그 한결같이 곧게 뻗은 짧은 길을 내달리면

그러면 하늘위로 올라 널 잡을 수 있을까

여전히 추억 속에서 숨바꼭질 하는 너를?

 

오롯이 곧게 뻗어 하늘로 오르는 유일한 길

거기엔 어떤 속임수도, 가식도, 거짓말도 없어

출발선에서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며 널 기다려 본다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함께 하늘로 오르기를 바란다

 

나를 유혹하는 그 모든 거짓들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오로지 너만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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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구름 위의 저녁식사 / 서용기

 

오랜만에 네 가족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는다
입맛 까다로운 딸아이의 얼굴에 나팔꽃이 핀다
창밖에선 구름도 케첩을 발라먹는지 온통 붉다
이토록 높은 고도, 빠른 속도 안에서
아내는 그 동안 얼마나 이 밥을 먹고 싶었을까
아주 천천히 저녁식사를 즐기는 동안
식사를 마친 구름의 얼굴빛은 점점 검붉어간다
지구가 어둡다고 불을 켜고 일어서는 별들
철지난 영화 한 편 되살리는 리모콘
우주 미로 출구라도 찾는 듯
제각기 헤드폰을 낀 채 응시하는 모니터
땡볕 고스란히 스며든 고추장 튜브를 짠다
우리가족의 설렘도 사과처럼 익어가고
지상의 고달픔은 모래알처럼 작아진다
구름 속을 날아가는 새들처럼
아내여! 우리도 모처럼 흰 구름 한 잔 할까?
온가족 오붓이 식사하는 그 무렵
이미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증 반납하신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 자꾸만 떠오르고

 

 

 

 

 

 

[우수상] 산골에서는 / 김수희

 

김을 메다가
콩을 따다가
비행기 날아가면
허리 한번 펴시고

 

고추 따다가
무 뽑다가
비행기 지나가면
무릎 주욱 펴신다

 

나물 뜯다가
감자 캐다가
비행기 날아가면
온 몸 주욱 펴신다

 

우리 할머니
쉬어가며 일 하라고
아픈 허리 펴시라고

 

말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산골 하늘 비행기는

 

천천히,
일부러 천천히 간다

 

 

 

 

[장려상] 멀리뛰기 / 김민중

 

-할머니가 기다리실 텐데......
-제주도 바다는 어떤 색깔일까?
-미국 가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두근두근
콩닥콩닥
그 마음
모두 모아

 

두 팔을
날개 벌리고

 

힘차게 도움닫기해서
땅을 박차고
한숨에 날아오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멀리뛰기

 

 

 

 

 

[장려상] 활주로의 내력 / 박미림

 

섬이다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사람들 썰물과 밀물 되어 오갈 뿐
벼랑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탄탄대로
길만 길이되는
섬과 섬을 이어주는 관제탑은 등대다
그곳에는 수시로 별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육중한 별은 천천히 내려왔다가
서서히 접어드는 하늘 길
가끔 연착된 별이 덤으로 반짝일 때도 있다
먼 곳에서 날아와 쉬고 있는 깃털 사이
비상하는 새떼들이 자유롭다
정비사의 지친 어깨를 길게 늘어놓고 있는 나른한 오후
별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
바닥은 모든 것들에게 공평하였다
우리만 욕망이 발동하여
어느 날 덜컥거렸을 뿐,
하늘 문 열리고 닫히는 곳에서
천개의 점멸 신호등들
적절한 각도에서 붉거나 흰 눈빛의 유도등
어둠의 저 편, 천리 경계 너머 밝혔다
곧은 길 솔기 끝이 시위를 당기는지
바닥이 기립 자세로 총총
나,
섬이 되고 싶다

 

 

 

 

 

[장려상] 즐거운 상상 / 김경구

 

왜 가끔 그럴 때가 있지.

남 앞에 섰을 때

말도 제대로 못해

나만 점점 작아 보이고

자신감이 뚝 떨어질 때 말이야

그럴 때 이런 건 어때?

비행기 탔을 때

내려다 본 세상을 떠올려 보는 거

아파트도 지우개처럼 작고

큰 논밭도 색연필로 칠한

그림처럼 작아 보이고

학교도 레고처럼

운동장도 손바닥보다 작게 보였잖아.

어때?

거인이 된 거 같지 않니?

마치 걸리버 아저씨처럼

영화의 킹콩처럼 말이야.

힘이 퐁퐁 솟을 거야.

이 세상의 나는 나 혼자 뿐이야.

 

 

 

 

 

[장려상] 어떤 초대 / 류미월

 

멕시코공항 착륙 직전

상공에 펼쳐지는 야경이 절창이다.

보석한줌 뿌려놓은 듯 신대륙을 발견한 듯

도심의 불빛은

검은 모래 털고 갓 세수한 얼굴처럼

투명하게 빛을 발한다.

좁은 기내에서 움츠렸던 세포들이 툭툭 깨어나며

바람구두 신은 듯 일제히 몸이 가벼워진다.

고도를 낮추며 원경이 근경으로 바뀌는 진풍경은

공중을 누비는 비행기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유화 한 폭 같은 선물이다.

오랜 시간 낯선 곳 떠돌다

인천공항이 가까워지면

서해안의 절묘한 선과

진초록 김포평야는 엄마 품 같다.

삶의 동맥에서 뿜어오는 기운이

여독을 솜사탕처럼 녹여준다 .

구름위의 산책자처럼

초대된 공중의 그림 전람회를 마치고 오는 길은

한 폭 한 폭 멋진 풍경들이 가슴속에 스며

삶의 에너지로 불끈불끈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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