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공항 사람들 / 정수미
누군가의 자리를 쉴 새 없이 닦고 쓸던
비날장갑조차 사치였던 그 손엔
바삭 마른 북어같은 까슬한 잔가시가 올랐다
매일같이 비행기를 탔지만
비행기 여행이라곤 가 본 적 없는 그는
내 어머니고 네 어머니였다
프윽 삶은 우거지처럼 축축 늘어져
푸른 빛 다한 등 기댈 곳은
조업차 아래 잠시의 그늘 뿐
엔진 붙바람 속 가쁜 호흡 몰아쉬며
열독 오른 한여름 계류장을 종일 뛰던 아버지는
섭씨 50도 아스팔트 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한 겹 녹으면 두 겹 쌓이던 그 겨울 가루눈은
속눈썹 위로 무겁게 내려앉은 가장의 책임감이었다
한강마저 얼어붙은 날
수백 개의 기내식 카트를 싣고 내리기 위해
동작이 꿈떠선 안 된다는 남편에겐
부츠 안 두 겹 양말만이 최선이었다
길디 긴 하루, 구두 속 부르튼 발 달래는 퇴근길
내 새끼들 좋아하는 과자 사들고
오늘 들은 욕지거리는 또 한 번 마음에 묻는다
경력 7년 차, 젖은 눈 숨기는 법은 배웠어도
목젖 누르는 통증 숨기는 법까진 못 배운 그는
내 아내,
그리고 네 아내였다
먼지 속을 어지럽게 날아 꽂히던 작업반잘 고함소리
물 빠진 작업복 위로 허얗게 말라붙은 소금 땀 한주먹
시린 겨울 공기 사이로 비어져 나오던 젖은 한숨 한자락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었던 스케줄표
설렘으로 달뜬 비행기 안
그 뒤편에선 또 하루 묵묵하게 살아내고 있는
설렐 것 것도 없는 일상들
[우수상] 수말락을 저어요 / 조영석
기다리는 게 제일 쉬운 줄 알았어요 어머니
동쪽 하늘 구름을 헤집고 날아온 후
벌써 계절이 스무 번쯤 바뀌었는데
고향집 쁠롭 기름향이 코끝에서 맴돌아요
사장님께 장갑을 달라고 했어요
가문 땅바닥이 어머니 손등처럼 갈라져
손톱이 자꾸 입을 벌리는 통에
그것분이었어요 꾀부리지 않았어요
가구 공장에서 나올 때도
나은 일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만주로 갔던 의롭던 청년의 세월
세상 파도치는 방식대로 흘러간 지 팔 십 년
순응한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돌아선 순간
늦은 거보다 무서운 게 먼 거라시던
한 일생을 거슬러
오천 킬로미터를 달려 할아비 조 나라 국
돌아온 손자의 고달픈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요 어머니
어쩌면 산다는 건 수말락을 저을 때처럼
온 밤 지새다 한두 번 찾아오는 옅은 졸음 같은 건가요
정말 그렇대도 견딜 만한데요 그건 괜찮은데요
어쩌면 영영
길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겠어요
파르르 떨리며 지챙해온 삶의 N극 바늘이
먹통이 되었어요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비틀거리는 내가
스탬프 하난 찍지 않고 남겨진 엄마 유품 속 여권 같아서
무너져 울어요
황하를 건너고 천산 산맥을 넘어
양떼구름 몰고 비행기 꼬리 사라진 서녘으로
한 시절 가슴 위로 스러져가는 카레이스의 손자가
우두커니 손을 흔들어요 어머니
야샬롬 알레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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