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당신 거기 잘 계신가요 / 이정민
바람은 구름을 이고 천천히 행진 중이에요
혈관 같은 강과 만년설을 덮고 잠든 산 위로
구름이 꼭꼭 숨겨뒀던 창공의 지퍼를 열며
내가 갑니다 내 방 거울만한 창문을 향해
저 멀리 태양이 말간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여요
땅에 발이 닿지 않아 천년을 떠돌고 있는 바람과
무릎이 시려 앉은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별들
이별한 사람들의 얼굴이 보름달과 함께 떠오르면
살포시 창문에 귀를 대어 봅니다
당신이라는 온도 당신이라는 음정 당신이라는 섬
날개에서 날개로 옮아가 피어나는 감정들
비행기도 그림자가 있겠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겠지요
계절에서 계절로 새들의 항로엔 국경이 없고
지상의 마른ㅁ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뒤꿈치를 들어 남쪽으로 움직이는 나무들
비행기에서 비행기를 접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당신이 준 편지로 비행기를 접었어요
마음의 빗장을 열어 비행기를 날릴 수 있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띄운 종이배보다
단단한 활자가 되어 영겁을 떠돌겠지요
편서풍이 창문마다 걸린 얼굴들의 엉덩이를 밀어주어
무사히 당신의 어제에 당도했습니다
밤하늘을 반으로 접어 찍어낸 것처럼
찬란한 샌프란시스코의 밤을 가르며
이제는 내일을 살고 있을 당신에게
시차만큼의 편지를 모국어로 씁니다
당신 거기 잘 계신가요
[우수상] 플라잉 타임 / 김형미
하늘은 받들고만 사는 줄 알았어요
권태의 계단을 딛고 올라 내려다볼 줄은 꿈에도 몰랐죠
미맹에 시달리던 어느 날인가,
새들은 꽃피는 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크게 몇 번 손뼉을 치고 나니
떨리는 손에 건네받게 된 것은 불면의 허공 뿐
더는 견딜 수 없었죠
잃어버린 잠을 찾아야 했어요
폐업신고를 알리는 입간판 사이로
펄럭이던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둥근 시간을 품고 포란하듯 한동안 엎드려있었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살아오는 동안
메아리도 사라져 버린 헌 집 같은 나에게
퇴화된 날개 하나 겨드랑이에서 돋아났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 올랐죠
이국의 밤은 황홀했어요
날 모르는 사람들, 익명으로 행복한 거리는
비밀이 담긴 선물 같았죠
몇 뿌리 양파를 놓고 흥정하는 사람들
사라지지 않는 해를 두고 밤에 드는 적도의 사람들
먼 곳에서 날아와 알게 되었어요
두고 온 것들은 언제나 그리움의 질료가 된다는 것을
떠나야 내가 보인다는 것을요
아슴아슴 꽃잠이 밀려오는데
아득한 곳의 어둠을 지우며 새벽이 오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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