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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웃는다 / 백숙현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담배를 돌렸다

담배에서 녹차 맛이 났다

가볍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다 연기처럼 가벼워지고 싶었다

외투를 벗었다

양말을 벗었다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스카프를 휘날리며 춤을 추었다

친구들이 킥킥대며 웃어댔다

그들을 향해 탁자에 있던 귤을 던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머리에 명중하자 웃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벽이 눈물을 흘렸다

깨진 귤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창문은 창문

탁자는 탁자

술잔은 술잔

귤은 귤

그러므로 나는 나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도마와 밥솥을 집어 던졌다

저울과

모래시계와

금이 간 거울

때 묻은 경전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던졌다

담배 한 개비 다 타들어 가도록

나는 던져버릴 게 너무 많았다

 

* 가브리엘 가르세아 마르케스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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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를 사랑했다.

시의 언저리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시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은 채.

베란다 빈 화분에 씨앗이 날아와 뿌리를 내렸다.

싹이 나고 줄기를 세우고 잎이 자랐다.

남천이었다.

폭염에도 혹한에도 끄떡없었다.

키를 높이며 푸른 그늘을 드리웠다.

남천이 오고, 씨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날마다 썼다.

시 쓰는 아침이 얼마나 황홀한지

아침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누웠다.

매일 그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같았다.

사흘간 내린 눈이 하얗게 덮어버린 두타산 골짜기

작은 오두막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다.

와닿지 않은 현실에

조금 멍했고, 몹시 기뻤고, 전화를 끊고 나선 가슴이 뛰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두려운 일이다.

 

부족한 제 시를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큰 격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과 사람과 삶이 다르지 않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파킨슨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친구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싶습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집을 나서, 바닷가로 산속으로 모래 들판으로 유목민처럼 떠도는 나를 언제나 자유롭게 보내주고 맞아주는 남편에게, 늘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발랄한 두 딸 예인과 예지, 무심한 듯 다정한 아들 진우에게 감사합니다. 계속 시를 쓰도록 이끌어주신 이성미 선생님 고맙습니다. 은빛 머리카락 소년에게도 감사합니다.

 

 

 

[심사평]

 

올해는 응모작의 편수도 역대급이었고.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 또한 그 어느 해보다 많았다. 특히, 오랜 수련을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위원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윤계순의 「계량」, 서희의 「침전의 방식」, 원미소의 「원룸」, 김송리의 「카블」, 백숙현의 「귤이 웃는다」 등이었다. 「계량」은 폐지 트럭의 무게를 재는 계량에 대한 묘사를 통해 삶의 고단함과 “헐값의 부피”를 그려낸 작품으로, 리얼한 현장성과 빈틈없는 직조 능력이 돋보였다. 「침전의 방식」은 감자 전분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평생 고름 쏟던 마음을 치마폭에 담아/ 어레미로 감자 전분 내리던 어머니”와 가계를 그려낸 작품으로, 제목처럼 잘 ‘침전’된 비유가 빛을 발했다. 「원룸」은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이 있는 원룸”에서의 일상을 묘사하면서 관계와 외로움을 그려낸 작품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젊은 감각이 돋보였다. 「카블」은 제목 그대로 아프카니스탄의 수도 카블에 대한 상상을 통해 전쟁의 상처와 전장 같은 삶을 그려낸 작품으로, 숨가쁜 리듬과 강렬한 비유가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최종에 오른 작품들은 각각의 장점과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동시에 너무 잘 짜인 작품이 주는 익숙함 때문에 미래에 대한 설렘을 감소시키는 면이 있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백숙현의 「귤이 웃는다」는 무엇보다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과 전개가 돋보였다. 이러한 활달함 속에서도 “그러므로 나는 나” “나는 던져버릴 게 너무 많았다” 등의 구절을 뽑아내는 힘이 있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장점들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있어 최종에 오른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설렘이 이어질 수 있도록 당선자의 정진을 빈다.

 

- 심사위원 : 이문재·이홍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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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다보 / 송하담

 

 

아버지는 목수였다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 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 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 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 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 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빈 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신에겐 노동은 어려운 말. 그의 일은 산책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였다. 숲과 숲 사이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걷고 걸었다.

 

신은 죽어 나무에 깃들고

 

아버지는 죽어 신이 되었다

 

나무가 햇살을 키우고

 

나는 매일 신의 술어를 읽는다

 

목어처럼 해저를 걷는다

 

 

 

 

 

[당선소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라는 못 박을 것

 

긴 채굴의 시간이었습니다. 탄차의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시 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거리두기를 외칠 때 저는 무엇보다 나와의 거리두기가 중요했고 그 거리 언저리에 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출구가 저기 보이는 듯합니다. 이번에 강원일보에서 부족한 글꾼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고대하던 등단은 또 다른 나와의 거리두기가 될 것이고 힘든 싸움의 시작임을 알고 있기에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한 걸음씩 걷겠습니다. 당선작의 첫 구절처럼 아버지는 목수이셨고 막노동의 현장 한가운데 서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쉼 없이 못과 망치를 쥐시던 거친 두 손처럼 저 역시 보이지 않는 벽에 시라는 못을 박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벽이 너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과 싸우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못을 박겠습니다. 조금 더 겸손하게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나의 아픔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무거운 옷들을 걸 수 있도록 열심히 시라는 못을 박겠습니다. 쉬지 않는 목수가 되겠습니다. 힘든 시간 옆에서 응원해 주신 전다형 시인님, 황윤현 시인님, 김선미 시인님, 활연 시인님, 세상에 나갈 물꼬를 터주신 용인문학회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분들과 강원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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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상상의 폭 넓게 두고 적확한 시어 찾아내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대부분 오랜 습작의 내공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왜 이 시를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한 답을 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달아나기만 하는 언어를 붙잡아 내 존재의, 삶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시 고유의 장르적 힘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자들이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이용원의 무심하게 미시령' 4편과 송하담의 목다보' 4편이었다. 이용원의 시들은 마치 베틀로 피륙을 짜내려가는 듯한 직조의 맛이 돋보였으나, 이러한 정성이 오히려 시를 단조롭고 밋밋하게 만드는 아쉬움을 남겼다.

 

송하담의 시들은 이용원의 시들에 비해 좀 더 과감한 면이 있었다. 거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다보'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이 작품이 이러한 응모자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상의 폭을 넓게 두면서도 적확한 시어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이 상상과 언어 속에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거를 담아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그를 좋은 시인으로 우뚝 서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이영춘·이홍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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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 / 김겸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다

바람이 마른 모래처럼 일어난 눈가루를 휘몰아간다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斷指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무제無題라고 할

너의 순일한 마음에 대해 쓸까

영어囹圄에 갇힌 너의 죄 없는 욕망에 대해 쓸까

새하얀 너를 앞에 두고 토해냈던

내 먹물 같은 설움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깨어나지 못한 너의

침묵에 대해 쓸까

이 쇠잔한 생에 표착한 너의 불운에 대해 쓸까

외로워, 외로워 말하는 가오나시顔無し 같이 끼니마다

밥을 보채는 너의 허기진 영혼에 대해 쓸까

정해진 과오를 범하고 정해진 책망을 듣는 너의 차갑 게 굳어진 습習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하지만 내 가난한 가슴과 옹색한 문장으로는

너를 쓸 수 없다

너라는 이름의 눈밭은 오늘도 그만큼의

햇빛, 그만큼의 별빛을 받아 홀로 아득하다

너의 눈밭에 그물 같은 붉은 칸을 내려 한

미욱한 나를 연해 뉘우친다

아무도 미워해 본 적 없는

아무도 시기해 본 적 없는

너라는 이름의 눈밭

저 깊고 아득한 너의 설원

 

 

 

 

아직은 괜찮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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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생 지탱하는 구심적 시선

 

열심히 헤엄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생에서 단지 떠 있다는 사실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시가 그 부력의 총량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어 아무도 모르게 절실했다. 하지만 나의 시 쓰기는 부끄러운 것이 되기도, 괜한 욕심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미 평론으로 소설로 나름 글을 써 왔기에, 하나의 장르에 대한 순정의식이 강한 우리 현실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적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것은 그동안 시 비평을 해 오면서 대했던 귀한 시편들이 내 마음에 옮아온 것이기도 하고, 세사에 현목하던 시선이 낮게 가라앉으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구심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겸'이란 시인으로서의 필명은 내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에 나오는 아들의 이름이다. 곤한 마음, 잡아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의 은(恩)에 깊이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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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근래에 보기 드문 유장미와 순정미 갖춰 눈길”


어렵고 힘든 시기에 더욱 풍성해진 응모작들을 보면서 '과연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됐다. 실존에 대한 깊은 질문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질문과 해답의 진폭은 크고 넓었다.

최종적으로 조미희의 '귀뚜라미에 대하여' 외 4편, 서이나의 'CU편의점' 외 4편, 김겸의 '설원'외 4편 등을 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조미희의 작품들은 시를 직조해 나가는 힘이 뛰어났으나 응모작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서이나의 작품들은 젊고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나 마무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겸의 작품들은 산문적이고 현학적으로 빠지는 위험이 노출되기도 했으나 이를 뛰어넘는 유장미와 순정미를 획득하고 있었다. 이는 최근 우리 시단에 부족한 부분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설원'은 응모작들 중 이러한 장점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당선작으로 올리게 되었다. 아쉽게 탈락한 두 분에게는 다음 기회를, 당선자에게는 신인다운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이영춘 · 이홍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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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사랑 / 박성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소양강 돌다리까지 달렸다

강변에 먼저 와 있던 문자는 조용히 앉아

막 피어난 안개로 손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물풀처럼 흔들리며

흐르는 물살이 입은 햇살이 부러웠다

강 건너 우두동의 저녁을 향해

문자는 어른처럼 익숙한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게 잠긴 목소리로

처음 `그대'라고 불러 보았다

 

저녁 강이 비치는 하늘은 깊은 분지를 향해 흘러갔다

나는 역 광장에서 서성이며 미군부대 헬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담 밖 꽃 진 나무들이 어떻게 바람소리를 내는지 궁금했지만

서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기적소리 길게 레일을 벗어날 때

검은 안개 본 적 있니? 미군부대 녹슨 철조망에 기대어

헝클어진 머리 문자는 짓궂게 웃기만 했다

 

 

 

 

[당선소감] “가슴속 녹슨 이정표 안고 시인의 길 걸어갈 것

 

추수가 끝난 논 위로 덤불이 삶처럼 얽혀 굴러간다. 아카시아나무 질긴 뿌리 끝에 바람의 생장점을 가지고 있는 곳. 남대천 옆 소금창고에는 나이 든 제설공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덜그럭거리는 창을 고치며 몇 번째 안간힘인가 셈해본다. 해풍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인제 쯤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창밖 빈 가지들이 어떻게 겨울을 버티는지 바라보며 나는 시를 쓴다.

 

당선 소식을 듣고 어린 내가 봤던, 오랫동안 의심했던 녹슨 이정표가 맞았음을 알게 됐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지만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오규원, 김혜순 교수님, 가족들, 친구 연호와 주현, 그리고 같이 겨울을 보내는 동료들이 떠오른다. 말 없는 내게 말 걸어 준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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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오늘 날 생활양식 서정적으로 반영 인상 깊어

 

80여편이 예선을 거쳐 올라왔다. 대체적으로 해석되고 존재하는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응모자 연령대가 상당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다' 할 만큼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다.

 

박여원의 `등대와 함께한 밤', 김겸의 `귀로', 권소영의 `물기', 박성민의 `문자와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등대와 함께한 밤'은 산문시로 시상 전개의 역량이 돋보였으나 시적 장치가 단조로웠다. `귀로'는 전개 방식은 특이했으나 특정 언어 체험의 일반화에 무리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물기' `문자와의 사랑'이 당선을 겨뤘다. `물기'는 시적 전개와 상상력의 완성도가 높았으나 볼륨이 약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최종으로 오늘날 생활양식을 잘 반영한 `문자와의 사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의견을 모았다. 모든 분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이영춘, 이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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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 울타리 / 송연숙

 

 

누가 아무도 없는 벌판에

측백나무 울타리 세워놓았나

안쪽도 바깥도 없는 그 울타리 드나들며

나는 안쪽에서 바깥을, 또 바깥에서

안쪽을 넘겨보거나 내다보곤 했다

또 아주 오래전 허물어진 옛집을 수습해서

울타리에 기대 놓았다

그럴 때면 앞마당과 뒤란이

저희들까지 순서를 정하곤 하였다

 

집을 품지 않은 울타리는 울타리가 아니어서 벌판에서 벌판으로 몇

천리 가면 기차가 떠나는 간이역이 있고 또 어느 쪽에서 몇 시간 동

안 그 기차를 타고 가면 어리둥절할 양떼들이 있다 양들에게 측백나

무 울타리에 관해 물으면 예전 자신들이 구름의 일족으로 흘러 다닐

때 언뜻 본 것도 같다는 말을 하였다

 

측백나무 울타리에

오래전에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운다

거미는 아침이슬로 기둥을 세우고 처마도 만드는데

머리가 먼저 이슬에 들어가 집을 짓는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둥근 배마저 이슬의 방을 하나씩 차지한다

 

안쪽도 바깥쪽도 없는 집

순서도 모서리도 신음도 만들지 않는 집

측백나무 울타리엔

거울 하나 둥실 매달려 있다

 

 

 

 

측백나무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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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당선소식 위로이자 충고 … 내 십자가 詩 끝까지 정진”

 

어제는 알레르기 쇼크로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 낯선 병명을 되뇌다 보니 “아나(얘야) 필(감정) 락(즐거울) 시스(복수)”, “얘야 즐거운 감정을 많이 가지고 살아라”하는 생각이 기도의 응답처럼 딱하며 깨지는 호두알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적막의 시간을 먹여 키운 나의 시들이 “아나필락시스”하며 건네는 위로다. 또 예민한 시인의 눈을 가지고 정진하라는 호된 충고다. 시는 나의 십자가다.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것이다. 스승님께 먼저 감사 올린다. 최돈선, 최승호 시인님, 박무웅 대표님과 시와표현 식구들, 한림대 문우님들, 강원여성 문인들, 두 딸, 심사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심사평] 깊은 사유·상상력 풍부 … 예리한 관찰력 높이 평가

 

 최종 논의된 작품은 이민주의 `그늘의 기원'과 전금례의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만큼 흔들린다', 송연숙의 `측백나무 울타리'였다. `그늘의 기원'과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만큼 흔들린다'는 함축적 시로 주지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나 시적 긴장감과 참신성이 결여된 것이 흠이었다. `측백나무 울타리' 외 4편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이뤘고 시적 사유의 깊이와 상상력이 풍부하며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이 예리하다. `측백나무 울타리'는 단면만 유지한 사회나 가정의 시대상을 암시한 시로도 읽힌다. 안쪽과 바깥쪽도 없는 집을 짓는 거미의 형상 같은 화자는 마치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단독자의 외로움 혹은 생의 공허함을 표출해 내고 있다.

 

심사위원 : 이상국·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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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질은 이렇게 / 이인애

 

 

엄마의 엄지와 약지는

사이에서 놀고 있는 손가락들을

움직이게 하는 두 가닥의 힘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

낮은 간판 아래 무릎을 꿇는다

빠져나갈 구멍만 있으면, 하며 집을 나와

미장원 열쇠구멍이나 찾는 엄마

날이 마모된 커트용 가위가

정수리에서 밀려나온 머리카락을 씹는다

언젠가부터 밥알도 질기다던 아버지처럼

잘근잘근 이로 뭉갠 머리카락을 토한다

중심에서 멀어진 것들은 잘라내야 한다는 생각

아버지가 다니던 석재공장에서도

돌가루처럼 번져갔던 걸까

남편의 까맣고 윤기 나는 직장을 두 동강 내는

엄마의 가위질을 탓하는 점쟁이

눈 뒤집힌 말들, 미용실 바닥에 쌓인다

 

가위질하는 두 손가락 사이에서 졸고 있는

검지나 중지보다도 가늘어진 아버지를

자를 때가 왔다는 통보가 왔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다 오던 날

엄마는 가위가 돌아간다고 했다

손가락이 자꾸만 구멍에서 빠진다고

아버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고

 

 

 

 

[당선소감] “활자 앞에서만 자유로워…부끄럽지 않도록 노력”

 

감은 눈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 근육들이 눈으로 웅크렸다. 나는 엉성하게 꿰맨 구멍처럼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을 의식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얼굴에서 힘을 뺐다. 그때 시가, 살짝 벌어진 틈으로 들어왔다. 비밀처럼 조금만 벌어진 나의 간격, 눈이 감길 때까지 안으로 걸어왔다. 눈이 더 감기자 속눈썹이 허술하게 눈을 막았다. 나는 속눈썹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티다 부르르 떨리는 눈꺼풀로 시가 말을 걸었다. 첫 옹알이를, 이번에도 엄마를 통해 시작하게 됐다. 부모님이 잠든 후에야 옆구리에 파고들어 안겨봤다. 가족도 아니고 남도 아닌 것처럼 대해왔다. 나에게도 부끄러운 사람이라 그랬다. 활자는 나를 뻔뻔하게 만든다. 그 앞에서만 자유롭다.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더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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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서민적 삶의 애환 보편적인 정서로 잘 그려내”

 

본심 작품은 300여 편이 넘었다. 작품의 수준도 예년보다 높았다. 우리는 시가 얼만큼 문학적 진정성을 획득하고, 자기 삶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과 새로운 진술로 승화시키고 있는가를 눈여겨봤다. 최종 논의된 작품은 김화연의 <사과 벌레가 사과를 기다리는 동안> 외 4편과 이인애의 <가위질은 이렇게> 외 5편이었다. 김화연은 오랜 습작의 연륜이 느껴졌으나 작품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채 시의 밀도가 떨어졌다. 이인애의 작품은 완성도가 높고, 체험을 바탕에 깔면서 서민적 삶의 애환을 보편적 정서로 잘 그려냈다. 젊은 감각과 번뜩이는 사유의 깊이를 내장한 20대 문청의 시를 세상에 내보내는 기쁨을 누렸다. 참신한 시로 정진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영춘·고진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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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 김태인

 

 

어둠이 입술에 닿자 몸 안의 단어들이 수척해졌다 야윈 몸을 안고 섬 밖을 나갔다가 새벽이 오면 회귀하는 조류(潮流), 금이 간 말에서 아픈 단어가 태어나고 다 자란 말은 눈가 주름을 열고 떠나갔다

 

남겨진 말의 귀를 열면 치어들이 지느러미를 털며 들이 닥쳤다.은어(隱語)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욕설이 귀를 깨문 몸 안에 손을 넣어 상한 심경을 꺼내 놓자 말수 줄은 언어의 생식기는 퇴화되어 갔다

 

파도를 멀리 밀어낸 밤은 등대를 잡고 주저앉았다 부레를 떼어낸 언어는 외딴섬에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발굽에 물갈퀴가 생기고 단어에 부리가 자랐다 비늘이 깃털로 변해 조류(鳥類)로 진화지만 텅 빈 죽지에 감춘 내재율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아주 오래된 하늘에 운율이 돌면 첫 문장은 가슴지느러미부터 따뜻해졌다 야윈 말들이 하나 둘 돌아온 섬은 언어의 기원에 종말을 고하고, 밤은 더 이상 섬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동쪽으로 흘러든 난류는 바다거북 등껍질에서 불가사의한 문자를 캐고 암염처럼 굳어버린 죽은 언어를 떼내었다

 

남쪽 염전에서는 느린 운율과 음가들이 뿔 고동의 귓가에서 보송보송 말라갔다 새벽이 되어 방에 불을 끄면 되살아난 단어들이 몸 안에 환한 섬을 산란하는 것이었다

 

* 찰스 다윈이 발견한 섬 혹은 제도.

 

 

 

 

 

[당선소감] 언어 다듬던 섬에서 느낀 진화의 과정

 

어느 날, 낯선 조류를 만나 외딴섬에 조난당한 기분이 들었다. 외로운 날을 견디려 몸속에 흐르는 언어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몸이 뒤틀리는 진화의 과정이었다. 그렇게 단어와 운율을 섞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았다. 사람들은 제각기 갈라파고스 섬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섬을 나와 뭍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시라는 문장 앞에 서면 늘 부족하고 작아진다. 도반이 되어준 시산맥 식구들에게 늘 고맙다. 문정영, 이진욱, 이상윤, 전비담, 최연수 시인님 그리고 강원대 경영대학 동료들, 6명의 처제들,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묵묵히 지켜봐준 아내와 딸, 아들에게 그리고 부족한 시를 선택해 주신 강원일보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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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절망적인 세상속 시에 대한 신뢰 돋보여

 

높은 응모의 열기를 뚫고 본심까지 올라온 작품을 놓고 고심했다. 특히 김서림의 `갈라파고스'와 김형미의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 앞에서'가 눈을 사로잡았다. 김형미는 널리 알려진 소재를 무난하게 형상화했으나, 시어의 묘사가 너무 평범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김서림은 언어의 문제를 갈라파고스라는 섬과 상징적으로 결합시키며 언어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언어의 생식기가 퇴화된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김서림은 시적 기율을 통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하늘에 운율이 돌면 첫 문장은 가슴지느러미부터 따뜻해졌다 혹은 단어들이 몸 안에 환한 섬을 산란하는 것이었다라는 시 행에서 우리는 응모자의 시에 대한 신뢰를 흔감할 수 있었다.

 

- 심사위원 : 이영춘·고진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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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찾아서 / 구녹원(구애영)

 

 

마침내 양은 사라졌다

한 의식을 잃고서 나는 은주발에 담긴 눈*이 되고 싶었다

갈피가 다 바랜 경전 속에 없던 신이

밑창 닳아 낮아진 가죽신 아래에서 흘렀다

눈 내리는 게르 뒤란에서 그 의식은 치루어졌지

양 한 마리는 선택되었고

모든 자연의 의식 속에서 가장 무죄한 저 걸음걸이

죽음으로 걸어갈 때 누구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볼 것이다

단도가 양의 숨길을 통과하는 직전 그 눈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지고

목자牧者 는 숨 털 한 올을 뽑아 속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한다

산자에게 건너간 울음소리, 가슴에서 질척이고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

양떼구름이 언덕으로 무리 지어 지나갈 때

두루마리 편지처럼 자꾸 도사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

만나고 싶은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침상 캐시미어에 머리를 파묻고 싶었다

천년을 흐르는 구름도 있었다

양은 어디에 있을까

 

* 벽암록 제 13 칙 파릉(巴陵)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차용.

 

 

 

 

나의 첫 사과나무에 대한 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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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나만의 나무를 찾는 사유의 길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왜 그날이 떠오를까? 달걀 3개로 석유 한 홉을 바꾸고 환한 심지를 바라보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훌쩍거렸던…. 사유하는 내 의식, 내 표현은 늘 허기졌다.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발언이다'라고 매슈 아널드 영국의 시인, 문학비평가는 말했다. 나만의 나무를 찾고 싶었다. 어쩌면 저 광활한 초원 위에서 나의 구름을 찾는 한 마리의 양이었을까?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느린 저를 사유의 길로 이끌어 주신 경기대 이지엽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지전문대 이경교 교수님, 열린시학아카데미 하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와 길, `아카데미' 시우님들 친구분들 모두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다섯 번의 장례의식을 치렀지만. 떠난 그 오솔길에서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더 겸허히 공부하여 좋은 작품 쓰겠습니다.

 

 

 

종이는 꽃을 피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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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선한 상상력·큰 스케일이 마음 사로잡아

 

본심에 30여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 편수는 많았으나 산뜻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적 철학이나, 시적 사유의 폭이 약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종적으로 논의가 거듭된 작품은 송현숙의 `배고픈 이름'과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였다. `배고픈 이름'은 잊혀져 가는 `도장'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독특한 시각과 발상으로 `불운한 가족사'를 잘 그려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적 긴장감이 떨어졌다. 제목 또한 상징성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당선작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는 오랜 숙련의 흔적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사라진' 양의 죽음을 통해 삶을 영속하게 하는 존재의 비의에 천착한다.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는 시구의 깊이,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는 신선한 상상력과 큰 스케일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심사위원 : 이영춘·고진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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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담의 차이 / 봉윤숙

 

 

우리의 이야기는 지붕 속에서 산다

지붕을 가지고 있는 벽과 지붕이 없는 담 안엔

사슴벌레 달팽이 사금파리 장지뱀 등 여러 종류가 산다

벽은 못, 시렁 아버지의 맥고모자

달력의 날짜로 불리기도 한다

드나들거나 넘을 수 있는 높이의 담은

그림자와 낙서의 한 영역이다

벽은 문 없는 간극과 문의 사고가 가끔 어긋나기도 하지만

옷들은 그 사이에서 잘 기대어 무늬를 새긴다

담을 넘어간 소리는 키 큰 소문이 되고

담 밖에 있던 사람이 훗날

벽의 못에 걸리기도 한다

담은 올록볼록한 퍼즐 같다 퍼즐을 맞추려 틈새의 흐름을 허용한다 그 사이로 번식하고 바람이 드나들며 물길도 흐른다 구멍이 없어 마음, 다만 낙서로 대신하는 일들이 있고 수직의 소문들이 넓다

커다란 순록을 보면 따뜻한 벽이 생각난다

그들은 스스로 진화된 지붕을 가지고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뿔로 계절은 완성되고 빨강은 절판된다

숲은 담이다

나무들은 지붕이 없으므로 흔들린다

이야기가 없을 때는

흔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꽃 앞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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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링거액처럼 떨어지던 은유들아 고맙다

 

내가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그러나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눈뜨니 새벽이었다.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내 앞의 계절은 시였을까? 귀를 쫑긋거리는 이야기들이 벽과 담을 넘나든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끌림의 미학. 아니, 기우뚱거리는 불안. 손끝을 날아올랐다가 살포시 내려앉는 공포. 일어서지 않는 언어를 일으켜 세우려는 즈음 아버지는 벽의 못에 걸려 이제는 이야기가 되셨다.

 

웃는 얼굴의 아버지가 새삼 그립다. 매만지지 못 한 바람은 무늬를 새길 수 없고 꿰지 못하는 것들이 늘 범람했다.

 

똑 똑 링거액처럼 떨어지던 은유들아 고맙다.

 

숭의여대 강형철 선생님, 전기철 선생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은유의 날개를 달아주신 김영남 선생님과 정동진 회원님들 모두 고맙다.

 

곁에서 함께 해준 신랑과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있어 행복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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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낯선 형식이지만 기본 위에 축조된 시

 

본심에 200편 가까운 응모작이 올라왔다. 최종 논의된 작품에서 `달과 비누'는 이미지 형상화 능력이 뛰어났으나 모호했다. `내 마음 속 국어사전'은 삶과 죽음의 도정에서 학습하는 언어를 국어사전으로 은유한 전개가 돋보였으나 단순 평이가 흠결로 `달과 비누'와는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물고기는 첨벙하는 소리가 귀다'는 참신한 설정과 감각적 이미지 전개가 돋보였으나 응모작의 수준차가 컸다는 점에서 `벽과 담의 차이'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벽과 담의 차이'는 활달한 수사와 짜임새 있는 전개로 재치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근사한 시를 넘어 좋은 시는, 낯선 형식이되 의미를 배반하지 않는 시다.

 

정서적 고양과 정화, 공감 공명이라는 시의 기본 위에 축조된 시다.

 

신인다운 패기를 잃지 말고 정진 대성하시길 바란다.

 

- 심사위원 : 이영춘, 홍성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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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 최영숙

 

 

장독대 옆에 살던 뱀은 산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허술해져 경계처럼 빗금을 긋는다

 

저렇게 주먹 불끈 쥐고 가는 길

 

너를 향해 가는 고추 벌레 구멍 같은 길

 

툭 부러지고 싶다 이제 그만 자리 잡고

 

눕고 싶은 생각

 

생각은 자면서도 깨어 있을까

 

꿈틀 나의 손을 치우는 돌서덜

 

그 돌서덜 위에서

 

숲은 작은 몸을 하고 툰드라의 바람으로 운다.

 

 

 

 

 

[당선소감] 비탈길 눈 녹듯 한 우물 판 지 15년 만에 기쁨 만끽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러나 오늘은 눈이 녹아 내린다. 처마 밑에 서서 손을 내밀어 본다. 목숨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21g의 무게가 줄어든다 한다. 한 방울의 몸, 차고 가볍다. 응달의 눈은 여전히 녹지 않는다.

 

눈을 치우며 보니 내가 다니는 곳만 눈이 두께로 앉아 있다. 이 넓은 세상에 소심한 나의 발자국이 어둑어둑 보인다.

 

어두워지도록 눈을 치우고 있는데 당선 소식이 왔다. 일시에 얼었던 몸이 쫙 녹아내리는 듯, 불꽃으로 타오른다.

 

너무 기뻤다. 이 길에 들어선 지 어언 15년 만의 기쁨이다. 한 우물을 파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몸은 어느새 하늘로 둥둥 떠 찬 비탈길 눈을 다 녹인다. 이 길을 걷는데 가끔 발목을 걸던 남편에게도, 그리고 늘 힘을 실어 준 나의 아이들과, 한림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교수님과 교우들, 빛글문학 동인들, 홍천문협회원님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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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군더더기 없이 행간의 여백 만드는 솜씨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을 상회했고 개성적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조의 경우, 시와 시조가 한 자리에서 경합한다는 점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응모작이 늘고 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시조의 율격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와 시적 언술에 미치지 못하거나 진부한 소재와 발상을 보여 아쉬웠다.

 

시의 경우, 좋은 작품이 많아 즐거운 고민을 하는 가운데 의구심도 있었다. 새로운 독법을 요구하는 듯 보이는 낯설게하기가 지나친 기교주의로 흐른다는 느낌. 비틀리고 장황한 언술들을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 공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최종에 오른 작품은 `적멸보궁', `디딤돌이 있는 풍경', `모서리의 비밀', `상강'이었다. `적멸보궁'은 사유의 깊이와 묘사력이 돋보였으나 참신성과 독창성이 부족했다. `디딤돌이 있는 풍경'은 한 폭의 동화를 보는 듯 시상이 맑고 깨끗하게 다가왔으나 시는 사상과 형식의 등가물이란 점에서 볼 때 내면적 깊이가 약했고, `모서리의 비밀'은 전체를 견인하는 결미의 주제의식이 부족했다. 최종적으로 최영숙의 `상강'은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은 가운데 산뜻하게 응축된 시상이 참신하고 진정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다가와 당선작으로 올렸다. 상강 절기의 자연이법을 선명한 이미지로 포착하면서 고도의 상상력과 직관으로 군더더기 없이 행간의 여백을 만드는 솜씨가 탁월했다. 함께 응모한 `풍장' 역시 절제된 비유와 표현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영예의 당선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시인으로서 대성하길 축원 드린다.

 

- 심사위원 : 이영춘·홍성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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