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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에서 / 장시우


열리지 않는 섬
꽃망울을 피어 올린 몸짓은 힘겹다
눈뜨지 못할 아침이 찾아와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햇귀는 그늘을 지운다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풀꽃은 잠시 흔들렸다
가슴깊이 물이스며
들숨 날숨이 뒤섞인 섬강은
뿌리 속으로 물이 들었다
물떼새 날갯짓 따라 흐른다
눈감으면 발목에 감기는 강물소리
그는 울음을 강바닥에 묻었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달맞이꽃과 같아서
그에게 가서 입을 맞춘다
풋잠처럼 씨앗처럼.

 

 

 

섬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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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있었습니다
무작정 그 길을 걸었습니다
한참 걷다 보니 과연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주저앉아 돌아가고 싶은 순간
문득 눈앞에 보이는 이정표 하나,
길 열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길을 물었을 때 가르쳐 주신
양진오, 오봉옥, 이충이 선생님께,
늘 힘이 되어주는 남편과 두 아들 준호, 준형이
그리고 내 편에 서서 함께 길을 걸어준 친구에게
늘 빚쟁이가 되어 살아가는 느낌 지울 수 없습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처음 길을 나설 때 신발끈 조여 매는 마음으로
이 길 걷겠습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벙어리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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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에서 넘어온 12편의 작품 중 진유의 `풍경' 장시우의 `섬강에서' 김린의 `눈이 녹지 않는 집' 김정학의 `가벼워지는 집' 장은선의 `산골 폐교에서'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장은선의 `산골 폐교에서'는 폐교가 간직한 세부를 무리없이 담아냈으며 김정학의 `가벼워지는 집'은 집에 묻어 있는 삶의 얼룩들이 정감있게 형상화되고 있으나 후반부가 소홀했다는 느낌이다.


김린의 `눈이 녹지 않는 집'은 생의 온기가 빠져나간 현실을 밀도있게 다뤘지만 거기에 그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유의 `풍경'은 한(생각)을 담아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없다는게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장시우의 `섬강에서'도 문제점이 없는것은 아니나 유연하고 신선하다.


신춘문예가 작품의 완벽성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과 새로운 비젼을 제시한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것이고 보며 기쁜 마음으로 `섬강에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이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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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몸 / 고현수


나무를 자르고 나서 나무의 몸 안을 본다.
나무의 몸속은 티끌도 없이 눈부시다.
뿌리의 하얀 뼈를 세우고
세월의 둥근 집을 새겨온 나무의 몸.
잘려진 나무의 몸속에
싸 한 향기 가득하다.
몸 밖의 비바람을 키우며
몸 안의 그리움을 따라 돌고
돌아온 나무의 세월.
나무는 알았을까
아득히 멀어 끝도 없이 이어진
세상속 길.
잘려진 나무의 둥근 길따라
몸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한줌의 눈물마저 침묵으로
다져 놓은 하얀 빛
나무의 몸안에는
천년의 세월 견디며 켜 놓은
둥그런 등불하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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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마음은 항상 아름다움으로 가고자

삶을 아름답게 껴안을 수는 없는걸까.

내가 나를 사랑하는만큼 내 곁의 바람들과 구름들을 사랑할 순 없을까.

혼자서 걸어온 길이 여유롭지만은 않았지만 마음은 항상 아름다움쪽으로 가고자 했다.

뜻밖의 당선소식이 훈훈하다.

먼곳에서 시를 쓰시고 계실 아버지,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신 엄마에게 고마움을 드린다. 웃음이 선할 형제들, 형수님 계수씨 부산 울산 모두들 내 마음과 같으리라. 항상 발길 가까이 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도 소식 전한다.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기쁨한다발 안겨준것이 나의 기쁨이다. 바램이라면 아내의 건강이 조금씩이나마 괜찮아졌으면… 멀리 가 있는 우리 효진이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겨울이다. 모두가 따뜻한 사랑 가슴안에 품었으면 한다.

부족한 글을 올려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사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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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도 의사소통의 한 가지이다. 말하자면 작가로부터 독자에게 주어져 이해되고 공감되는 것이 시의 일차 목표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 편의 시는 상상력의 치밀성과 구조의 완결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 소통으로서의 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심을 거쳐 넘어 온 올해의 시들은 대체로 치열한 시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매우 고무적이기도 하였지만, 불행히도 상상력이 치밀하지 못하고 구조가 완결되지 못해 이해와 공감이 제대로 안 되는 시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상력이 어느 정도 치밀성을 가지고 있고, 구조가 제법 완결성을 얻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시들이 기존의 시들과 차별화되는 참신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하여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고현수, 김정순, 나정호, 오영애, 최숙자 씨 등 다섯 분의 시가 관심을 끌며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최종선에 오른 위의 다섯분의 시는 오랜 수련을 통해 제법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요건들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고현수씨의 「나무의 몸」은 시적 치열성과 참신성 면에서 남다른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결국 고현수씨에게 당선의 영광을 주기로 했지만, 구조의 완결성 면에서 다소 부족함이 지적되는 것이었다. 부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며 훌륭한 시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비록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치열한 시정신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많은 투고자들에게도 격려를 보내어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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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집  / 박대성


정겨운 이웃들이 궁금한 소식들을
보퉁이에 담아 보냅니다.

앞서가는 계절의 깃을 달아 보내기도 하고
지난 계절을 잠 깨워 가기도 합니다.

섶섶에 묻어 온 향긋한 피로와
땀으로 얼룩진 소망의 연흔들
보드랍게 풀려나간 욕망의 실밥들을
맡겨두고 갑니다.

털어내고, 지우고
펴고, 접고
줄이고, 늘이고
이어 붙여야 하는 나른한 소식들이
따갑게 쪼아대는 재봉틀에 붙들려
한 땀 한 땀 다시 일어섭니다.

생살이 미도록 해어진 그리움 하나
누가 이 그리움의 솔기를 미어 놓았을까

튼튼하고 곱다란 사랑 조각 찾아내어
기워줍니다.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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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는 언어를 매체로 하여 이루어지는 예술의 하나이다. 그러나 예선을 거쳐 넘어온 대부분의 작품들이 상상력이 일상적이고, 언어 구조가 느슨하여 예술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박대성씨의 「수선집」과 김정순씨의 「감자꽃」, 조숙향씨의 「낡은 무명자루」는 상상력 면이나 언어구조면에서 어느 정도 일상적 평범성을 뛰어 넘고 있고, 언어 구조도 제법 완결성을 이루어 주목되는 것이었다.

 

김정순씨의 「감자꽃」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상상력의 특이함이 제법 높은 수준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 연에서 지금까지의 상상력을 뒷받침해 주는 힘이 갑자기 약화되어 감동을 허물어버리는 구조적 약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시를 하나의 구조라고 할 때, 무엇보다도 끝 부분에서의 완결성이 중요한데 이것이 제대로 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조숙향씨의 「낡은 무명자루」도 마찬가지 지적을 할 수가 있다.

 

앞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약점에 비해 박대성씨의 「수선집」은 상상력이나 언어 감각 면에서 상당한 수준의 완결성을 갖는 것이었다. 결국 박대성씨의 「수선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은 특히 「연흔」이라든가 「생살이 미도록」, 또는 「솔기를 미어 놓았을까」와 같은 설익은 표현들이 있어 옥에 티가 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대성씨의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 시를 향한 도전적 노력이 당선작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도 밝혀 두고자 한다.

 

시인이 되는 일은 시에 대한 프로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진지성이 요구되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박대성씨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무한한 노력을 통해 훌륭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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