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최재영
길을 나서면 안개가 먼저 다가온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내력
지상의 열린 틈마다 안개가 스며들고
사람들은 한 번쯤 기침을 호소한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으며
길은 늘 젖어있다
세상의 새벽은 잠 못 이루는 곳에서 먼저 깨어나
충혈된 소음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밤새 안개에 젖어 퉁퉁 불은 가로등이
불면의 문장처럼 침침하다
정오가 되기까지는 완전한 침묵이다
이곳의 시간은
안개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다
사물들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때쯤이면
정오의 햇살이 길의 한복판까지 나와 있다
지루한 변명들이 길게 꼬리를 남기고 사라진다
내 안에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것들처럼
대부분의 안개는 길 위에서 소멸해 버리고
구부러진 생의 길목마다
어둠은 먼저 찾아드는 법
새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을까
[심사평] 수련과정 거친 솜씨 탁월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이번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전국 시인 지망생들이 무려 2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낸 1,500여 편의 시 작품 중에서 오직 한 편만이 당선작으로 뽑힌다. 그래서 시인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시인이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갖는다.
예선을 거쳐 넘어온 12분의 작품 중 조용숙, 최재영, 심은섭, 이순주 씨의 작품들이 최종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네 분 다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작품을 보여주었지만, 많은 논의 끝에 최재영 씨에게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기로 하였다.
심사 위원 두 사람이 무엇보다도 관심을 둔 것은 시의 완결성과 참신성이었다. 시의 완결성이란 곧 시의 구조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는 특히 독자 공감의 의미 구조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참신성이란 언어 선택과 언어 조합에서 느껴지는 시적 탄력을 말하는 것으로, 신인으로서의 신선한 언어감각과 문체의 힘이 확인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 분의 시가 모두 부분부분 구조적 오류와 진부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선택이 어려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최재영 씨의 작품은 많은 수련 과정을 거친 솜씨가 돋보였고, 시적 완결성과 참신성 면에서도 높은 가능성이 인정되는 것이었다. 축하하며, 치열한 분석적 성찰을 통해 보다 좋은 작품 창작에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낙선한 분들이 가진 가능성도 매우 큰 것이었다. 도전 의식도 좋고, 상상력도 남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부분과 전체를 관계 짓는 안목에 미숙함이 보였다. 스스로가 지닌 시적 결함이 무엇인지 살피는 ‘눈’을 형성하여 새로운 창조적 도전 있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 심사위원: 신승근, 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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