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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견디는 법 / 김명기

 

 

보증 서준 친구가 야반도주를 하고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구경해 본 적도 없는 큰 빚이 너무 억울해 

배를 내밀어 보았지만 보증서에

핏자국처럼 선명한 날인이 말라갈수록 

점점 더 단단하고 큰 빚쟁이가 될 뿐이었다

통장에서 빚이 빠져나가는 날이면 

세상 있는 모든 욕을 끌고 와

저주를 퍼부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한 마음이 짓무르고

삶이 수척해졌지만 신기하게 

빚은 점점 야위어 갔다

몇 해 동안 빚을 다 갚고 나니

그제야 도망간 친구의 안부가 궁금했다 

더 이상 빚이 빠져나가지 않는 통장과

세상 모든 욕과 저주는 할 일을 잃었다 

더는 만날 일 없을 테지만 한동안 나는 

네게 보내는 욕설과 저주의 힘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이제 나는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 같다

어느 순간 우린 둘 다 절망이었을 텐데

너는 그 많은 욕과 저주를 어떻게 견뎠을까

 

 

제22회 고산문학대상에 현대시 부문 김명기 시인, 시조 부문에서 선안영 시인이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품집은 각각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와 ‘저리 어여쁜 아홉 꼬리나 주시지’이며 상금은 각 2000만원.

 

고산문학대상 운영위는 지난 1년 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현대시와 시조 부문에서 각 100여 명의 시인, 평론가들의 추천을 받아 심사에 들어갔다.

 

현대시 심사를 맡은 김명인·이문재 시인, 문혜원 평론가는 “거듭 읽어낼수록 삶의 파장들이 깊은 감동까지 거느리며 가슴속으로 번져나가 그 파문에 흠뻑 젖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으며 “삶의 우여곡절과 신산고초를 통과해온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정성의 언어’로 절묘한 표현이나 세련된 구성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김명기 시인은 경북 울진 출신으로 2005년 시 전문지 ‘시평’ 겨울호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 ‘종점식당’을 펴냈으며 2017년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제2회 작가정신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조 심사는 박기섭·박현덕 시인·황치복 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현실언어를 끊임없이 초월언어로 바꾸어놓고, 적확한 표현으로 말미암은 수사의 적중률이 높은 데다, 그 형식의 운용은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닿아 있다”고 평했다.

 

보성 출신의 선안영 시인은 조선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초록 몽유’, ‘목이 긴 꽃병’ 등이 있으며 중앙일보 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올해의 시조집상 등을 수상했다.

 

아울러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에는 현대시 부문 윤계순 시인의 ‘실비집’이, 시조 부문에는 강영임의 ‘벚꽃, 천라지망’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상금 각 300만원.

 

올해 6회째를 맞은 고산신인문학상은 미등단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다. 올해는 신인상 응모에 시부문 700여 편, 시조 부문 500여 편이 접수됐다.

 

한편 시상식은 제22회 고산문학축전과 함께 오는 10월 14일 고산의 고택이 있는 해남읍 연동리 고산유적지 땅끝순례문학관 문학의 집 ‘백련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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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 김승희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 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프로이트의 박물관처럼 본심은 어둡고 원초적이고

진심 뒤에는 꼭 본심이 도사리고 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본심이다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지도 않고 숨겨진 본심이 나는 무섭다

과녁에서 벗어난 마음들을 탁 꺾어버릴 때 나오는 진심,

허심이란다

적어도 단무지는 뼛속까지 노랗고 베이컨은 앞뒤로 하양 분홍 줄무늬다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 지 오래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올해 제21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현대시 부문에 김승희, 시조 부문에 김일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각각의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창비)과 시조집 ‘깨끗한 절정’(서정시학)이다.

열린시학이 주관하는 고산문학대상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시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김승희 시인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 대해 “진리가 부재하고 진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에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면서도 다층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며 날렵하고 재기 넘치는 언어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이번 시집은 ‘모더니스트’ 김승희를 ‘리얼리스트’로 불러도 손색없을 다채로운 시 세계를 품고 있다”고 평가했다.

‘깨끗한 절정’에 대해서는 “운율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해 극서정을 최고치로 끌어올린 점과 정형시의 기품에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로 더욱 깊고 넓은 시 세계를 보였다”며 “짧은 시조에 화룡점정 자안(字眼)이 박혀있다”고 호평했다.

이밖에 신인상에는 현대시 부문에 김미향 시인, 시조 부문에 김재용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본상이 각 2000만원, 신인상은 각 3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5일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 있는 전남 해남군 고산유적지 땅끝순례문학관 문학의 집 ‘백련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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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름다움 / 조용미


당신은 늘 빛을 등지고 있다
내가 만든 구도이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더불어
당신의 아름다움은

윤리적이어야 한다

당신은 최종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빈틈없어야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고독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나로부터 발생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게 늘
가장 큰 시련이다

당신 뒤에는 빛이 있다
당신은 빛을 조금 가리고 있다

 

 

 

 

당신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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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고산문학대상에 현대시 부문에선 조용미, 시조 부문에선 이송희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고산문학대상 운영위원은 지난 1년 동안 출간된 시집들을 대상으로 현대시와 시조 부문에서 각 100여명의 시인, 평론가들의 추천을 받아 심사에 들어갔다.

 

현대시 부문 대상을 받은 조용미 시인의 <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2020)은 슬픔을 통해 삶이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을지를, 스스로 자신을 바른 자리에 두려하는 윤리적인 집요함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조 부문 대상인 이송희 시인의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시인동네, 2020)는 가장 혁신적인 발상과 참신한 이미지를 토대로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시조를 창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은 올해부터  미등단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로 바꾸어 신인 등용문이 되도록 했다. 

 

공모제 첫해인 올해 신인상 응모 작품은 시부문 800여 편, 시조부문 500여 편이 들어왔으며, 예심과 본심을 통해 현대시 부문에서는 김일하의「먼지구름」이, 시조 부문에서는 장수남의「격렬비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제20회 고산문학축전과 함께 오는 10월 9일 고산의 고택이 있는 해남읍 연동리 고산유적지 녹우당 백련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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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 나희덕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볼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 줌

손톱 몇 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 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 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 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 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 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 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 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이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 Deckname<Lyrik>.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

 

 

 

파일명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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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현대시 부문에선 나희덕, 시조 부문에선 오승철 시인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고산문학축전이 열리는 1011일 해남읍 연동 백련재에서 거행된다.

 

고산문학대상운영위측은 지난 1년 동안 출간된 시집들을 대상으로 현대시와 시조 부문에서 각 100여 명의 시인을 고르고, 평론가들의 추천을 받아 심사에 들어갔다.

 

현대시 심사를 맡은 정현종 시인, 최승호 시인, 권희철 평론가는 최종심에 오른 5권의 시집들 가운데 나희덕의 파일명 서정시(창비, 2018)를 올 고산문학대상으로 고르는 데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이 시집은 세월호 사건에 즈음해 죽음과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에 강렬한 외침으로, 모두를 침몰케 한 슬픔을 부력처럼 끌어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주목됐다.

 

현대시조 부문은 비교적 젊은 세대의 심사위원들이 맡았다. 이승인 시인, 박현덕 시인, 황치복 평론가는 본심에 오른 5권의 시조집들이 각각 고유한 개성과 질적 수준이 뛰어나 수상자 선정에 고심했다고 한다. 긴 토론 끝에 오승철의오키나와의 화살표(황금알, 2019)가 시조부분 고산문학대상으로 선택됐다.

 

이 시조집은 제주 4·3사건이 남긴 상흔의 무늬들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현재적 삶에 예리하게 새겨놓았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고산문학대상운영위측은 제17회 이후, 크라운-해태의 후원으로 젊고 참신한 작품을 쓰는 등단 10년 미만의 시인들에게 신인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올해의 신인상에는 유순덕 시인의 시조집구름 위의 구두(고요아침, 2018)와 권민경 시인의 시집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문학동네, 2018)가 선정됐다.

 

고산문학축전운영위원회는 최근 귀향한 황지우 시인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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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는 어렵다 / 박구경

 

 

1.

멸치 몇 마리로 국물을 내

국수를 말아 먹는다

 

국수 속엔 국수를 닮은 이야기가 있고

그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그 사람들이 거듭 얽혀 있다

 

국수.

짧고 긴 생명의 이야기

 

 

2.

쓸수록 어렵고 힘든

시의 본령

 

자르고 토막 내고

겹쳐진 의미의 말들을 거둬내고

너무 짧아져

여백의 미에 낙서하고픈

짤막한 또는 한줌

 

뭘 하자고 처음 생각했던가?

촌철살인

 

나이 먹어가며 하나씩 버리고

정리하는 것과 같이

 

 

 

 

국수를 닮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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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이 지원하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정희성)와 계간 "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2018년도 제18회 고산문학대상 본상 수상자로 시조부문에 오세영 시인이, 시부문에 박구경 시인이 선정되었다. 또한 크라운-해태가 후원하는 제2회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자로 시조부문에 김영순 시인이, 시부문에 유희경 시인이 선정되었다.

고산문학대상 본상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오세영 시인의 "춘설"(책만드는집, 2017), 시부문 수상시집은 박구경 시인의 "국수를 닮은 이야기"(애지, 2017)이며, 신인상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김영순 시인의 "꽃과 장물아비"(고요아침, 2017), 시부문 수상시집은 유희경 시인의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문학과지성사, 2018)이다.

본상 선고위원은 시조부문에 이경철 평론가, 박현덕 시인이, 시부문에는 강형철, 박두규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지난 1년간의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신인상 선고는 시조부문에 선안영, 임성구 시인이 시부문에 나희덕, 안상학 시인이 최근 2개년 시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정희성 시인, 구중서 시인, 이상국 시인, 이근배 시인, 김제현 시인이 맡았다.

고산문학대상은 지난 2001년에 제정되어 8회까지는 학술과 시조 작품 1인에 대해 시상해왔으며, 9회부터는 시와 시조 시인을 각각 선정하고, 이 수상자에 대하여 계간 "열린시학"에 특집을 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켰다. 작년 17회부터는 크라운-해태 제과의 도움을 받아 신인상을 확대하여 시상하게 되었으며, 젊고 참신한 작품을 쓰는 등단 10년 미만의 문학인들을 격려하기로 했다. 

상금은 본상 각 1천만 원, 신인상 각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해남에서 2018년 10월 6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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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은 어디서 왔나 / 성선경

 

 

코끼리는 코끼리에서 왔다면

기린이 기린에게서 왔다면

매화는 매화에서 오고

동백은 동백에게서 오고

매발톱은 매발톱에서 왔겠지

 

팥은 팥에게서 오고

콩은 콩에게서 왔다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겠지만

저 꽃은 어디에서 오나

 

밤은 저녁에서 오고

아침은 밤에게서 오고

낮은 아침에게서 온다면

내 하루의 노동은 어디서 오나

 

나는 아버지에게서 오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서 오고

할아버지는 증조에게서 왔다면

검고도 흰 하루

너는 어디에서 오나

 

저 파랑은 어디서 오나

 

 

 

 

파랑은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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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고산문학대상 본상에 시조 부문 김정희 시인, 시 부문 성선경 시인이 선정됐다.

 

고산문학대상은 고산 윤선도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추진되어 오고 있으며 전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고산문학대상은 고산문학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정희성)와 계간 열린시학에서 주관하고 해남군이 후원해 열렸다.

 

시조 부문 양점숙·정용국 시인과 시부문 안상학·복효근 시인이 맡아 지난 6월과 7월 지난 1년간의 시집·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고, 본심 심사는 정희성·백무산·김사인·이근배·조오현 시인이 참여했다.

 

그 결과 본상 시조 부문 수상시집은 김정희 시인의 '구름 운필(고요아침, 2017)'이며 시 부문 수상시집은 성선경 시인의 '파랑은 어디서 왔나(서정시학, 2017)'이 선정됐다.

 

특히 올해는 (주)크라운·해태제과가 후원해 등단 10년 미만의 문학인들을 대상으로 제1회 고산문학대상 신인상도 수여키로 했다.

 

신인상 시조 부문 수상시집은 유헌 시인의 '받침 없는 편지(고요아침, 2015)'이며 시 부문 수상시집은 이설야 시인의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창비, 2016)' 이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21일 오후 3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된다.

 

상금은 본상 각 1000만원, 신인상 각 500만원이다. 또한 열린시학에 수상자들과 관련된 특집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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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송경동

 

 

2014 1 2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 카나디아 공단

한국계 기업 '약진통상' 정문 앞

봉제노동자 백여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127개 공장이 파업 중이었다

 

공단 내 다른 한국 기업인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노동자 피룬도 춤을 추고 있었다

하루 평균 열시간 일하며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의

월수입은 130달러, 한화로 14만원

한시간 잔업수당 50센트 의료수당 5달러

아침 7시 출근을 한번이라도 어기면 나오지 않는

보너스 5달러 교통비 5달러를 포함해서다

 

"나도 ''이란 것을 가져보고 싶다"

서른한살 여공 파비도

댄싱 파업에 참가한 까닭이었다

네댓 명이 함께 사는 쪽방 월세가 40달러

식비 60달러 십년을 일했지만 남은 건 200달러 빚뿐

그것도 육개월에서 일년 단위 비정규직

지난 이년 동안 카나디아 공단에서

영양실조로 작업 중 쓰러진 봉제노동자 4,000

 

춤추는 노동자를 향해

트럭 열대에 나눠 타고 온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 30

약진통상 공장 부지를 나눠 쓰는 911 공수부대원들도

쪽문을 열고 나왔다 911부대 차프소포른 소장은

약진통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울부짖는 소리 끌려가는 소리가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분노한 카나디아 공단 노동자 만명이

오전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침 8

내무부를 향한 시위대가 이백 미터쯤 전진했을 때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죽고

삼십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의사는 없고 간호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시각, 시위와 관계없이 병원을 찾은 한 여성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여성은

되돌아가는 길에 숨졌다 단층집 옥상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폭은 왼쪽과 오른쪽 발목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오토바이택시 기사 세론은

손님을 기다리던 중에 총을 맞았다 생선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임산부도 총을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병원을 향해 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유혈 사태 전 '긴급' 서한을 통해

"정체불명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없을 시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

캄보디아 정부와 정치권의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

캄보디아에서 2012년 기준 한국은 중국을 제치고

캄보디아 투자국 1위 한국 대사관이 1 6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치안안전정보' 안내문에 따르면

"현지 수경사령부와도 접촉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캄보디아 국가대테러위원장과 접촉하고 내무부·법무부·경찰청 등 정부 주요 기관에

우리 기업의 안전과 피해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이렇게 캄보디아 정부를 재빨리 설득해

"금번 상황을 심각히 고려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들 공이라고 자평했다 캄보디아 군 병력이

특별 보호조치를 취한 공장 건물은

한국 공장이 유일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진압에 앞장선 훈센 총리의

'총리 경호부대' '70여단'의 공개적인 후원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훈센 총리의

경제 자문위원이었다 2011년 총리 경호부대가

2,800만 달러의 기갑장비를 도입할 때도

한국 정부가 지원했다 60여개 업체가 모인 한국봉제협회는

사태 후 좀더 발빠르게 움직였다

캄보디아 의류생산자연합회를 움직여

통합야당 대표 삼랭시와 8개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갔다

 

비슷한 때인 2014 1 9

방글라데시 남부 치타공에 위치한 '영원무역' 해외공장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다른 수당들을 삭감해

도리어 전체 임금을 깎은 사측에 분노해

노동자들의 돌발 시위에 나섰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 공장 열일곱개를 소유한 대기업

월급날인 그날, 경찰 발포로

갓 스무살 여성 노동자 파르빈 악타르가 죽고

십수명이 다쳤다 작년 말에 올랐다는

최저임금은 5,300타카, 한화로 7만원

오르기 전엔 4만원이었다 영원무역에서는

2011 4월에도 경찰 발포로 세명이 죽고

250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방글라데시에선 2013 4

닭장 같은 한 봉제공장 건물이 붕괴해

노동자 1,235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파르빈 악타르가 죽은 날

새벽 6 50,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 옌빈

삼성전자공장 신축현장에선

작업시간에 늦어 출입구를 뛰어넘는 한 노동자를

삼성보안서비스 용역들이 구타하고 전자충격봉으로 기절시켜

베트남 건설노동자 4,000명이 '폭동'을 일으킨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베트남 노동자들

최저임금은 12만원이었다

 

약진통상은,

캄보디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었다

서울 송파구에 작은 본사를 두고

다국적 노동자 2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바나나리퍼블릭, , 올드네이비 등

유명 브랜드 의류를 주문생산한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와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에 공장을 두었다

본사 한국인 직원은 448명이고

현지고용인은 52,530명이다

노스페이스를 생산하고 나이키 등을 주문생산한다

 

삼성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해외공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수술을 두번 남겨둔 피룬은

당분간 춤을 출 수도

미싱을 밟을 수도 없다

그날 이후 피룬의 병실을 방문한 한국인은

취재진 몇명 말고는 없었다

 

한국의 수출자유무역공단에서

이십여년 노동운동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사양산업이 도산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도산, 폐업, 해외 이전하는 봉제공장 전자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십수년 '빠이빠이' 눈물바람이나 하며 살아 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를

직접고용 정규직화하고 생산라인을 다시 돌리라고 싸워 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며 위장폐업한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복직을 요구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필리핀 수비크에 2조원을 들여 조선소를 세우고 비정규직 2만명을 고용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게 맞서 싸우던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모든 게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당한 정리해고이며 비정규직화라고

나아가 이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로도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

오늘도 열심히 방망이를 두드리는 법 앞에서

속수무책 망연자실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정규직 자녀 우선채용에 합의하는

'대공장 민주노조'를 위해

비정규직 확산과 우선해고에 눈감는

'대공장 민주노조'를 위해

이젠 해외여행깨나 다니는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 고용안정을 위해

한국 사회 중산층의 다수를 이루는

'민주노총 정규직 조합원'들을 위해 힘써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5.18 광주 학살에 분개해 해마다 망월동을 찾는

해마다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맞춰 전국노동자대회를 찾는

용산 철거민 학살을 오늘도 잊을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1985년 구로동맹파업 기념사업일을 맡아 하고

가끔 구로공단 산업화 관련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다시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 된 이곳에서

싼 전세 탓에 오도 가도 못하고 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전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 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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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제16회 고산문학 대상 수상자에 시조부문에 이지엽 시인, 시부문에선 송경동 시인이 선정됐다.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이지엽 시인의「내가 사랑하는 여자」(책만드는집, 2016)이고, 시부문의 수상시집은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2016)이다.

 

이지엽 시인의 수상 시집「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단시조의 고차원적인 압축과 단아한 정형의 틀을 가장 정확하게 고수하면서 그 나름의 아름다운 서정까지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시집은 세월호 이후 구조화된 사회적 아픔을 구체적인 시의 질료로 삼아 국가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시로써 묻고 시로 완성하며 마침내 시의 지평을 담대하게 넓혀가고 있는 시집이라는 심사평을 받으며 선정됐다.

 

이번 심사 선고위원으로는 시조부문에 정용국 시인, 박명숙 시인이, 시부문에는 이정록 시인, 안상학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5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박시교, 김제현, 강형철, 이하석 시인이 맡았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8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1000만 원이다.


고산문학대상은 계간《열린시학》에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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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여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은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 때 그 곳에서 뿌리 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 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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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제15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시부문 안상학 시인, 시조부문 이승은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해남군(박철환 군수)이 주최하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 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고산문학대상은 국문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정신을 잇기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시부문은 안상학 시인의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사, 2014), 시조부문은 이승은 시인의 <넬라 판타지아>(책만드는집, 2014)가 각각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안상학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애써 꾸민 흔적이 없어 무심히 적어간 산문과 같이 작위적인 교성이나 가성을 거의 쓰지 않지 않지만 무게와 깊은 울림이 예사롭지 않은 드문 시적 배포의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또한 이승은 시인은 일상적 체험을 시적 서정세계로 승화시킨 <넬리 판타지아>의 시편들이야 말로 시적 진정성과 감성이 자아올린 역작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됐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시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김사인 시인(동덕여대 교수), 조오현(신흥사 회주), 김제현 시인(가람기념사업회 회장)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 기간 중인 오는 1017일 오후 3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며, 상금은 각 1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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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 강형철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老母

옛 기억이 되살아나시는지 밥 안치는 일을 자청하신다

손목 아래로 빚어지는 정겨운 리듬

썩썩 씨스럭, 써-억 써억 썩

바가지가 요란해진다

쏟아지는 수돗물이 시원타며 손등이 웃고

어둑한 집 안의 오후가 환해진다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식구들의 사발에 깨끼밥도 푸고

때로 고봉밥 눌러 펐으리라

떨어지는 밥알은 손으로 주워드시면서

 

“엄니, 다시 시집가도 되겠네, 쌀 씻는 소리 들응게”

“야 좀 봐라, 못 혀는 소리가 없네, 떼-엑!”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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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시부문에 강형철 시인, 시조부문에 김영재 시인이 선정됐다.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는 2014년도 고산문학대상에 시부문 수상시집은 강형철 시인의 ‘환생’(실천문학사, 2013),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김영재 시인의 ‘화답’(책만드는집, 2014)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선고위원으로 시부문에는 정우영 시인, 이민호 시인, 시조부문에는 오종문 시인, 박명숙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시인, 김준태 시인, 민영 시인, 김제현 시인(가람기념사업회 회장), 박시교 시인이 수고했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18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부문별 1000만 원이다. 고산문학대상은 지난 2001년에 제정해 8회까지는 학술과 시조 작품 1인에 대해 시상해왔으나 9회부터는 시와 시조 부문으로 확대했다. 또한 수상자는 계간 ≪열린시학≫에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켰다.

계간 ≪열린시학≫ 2014년 가을호는 이들 시인들의 대표작과 연보, 시인론, 작품론 등을 특집으로 꾸며진다.

한편 고산문학대상 수상자인 강형철 시인은 전북 군산 출생으로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외 5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집 ‘해망동 일기’(1989), 평론집 ‘시인의 길 사람의 길’(1993)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재 시인은 전남 승주 출신으로 197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도서출판<책만드는집에서 시집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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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내밀다 / 맹문재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사과를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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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3회 고산문학축전에서 맹문재 시인이 시부문 고산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번 수상시집은 ‘사과를 내밀다’이다.


고산문학대상은 국문학의 비조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잘 우려낸 고산시가의 문학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상당한 권위와 명예를 지니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친 뒤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공고를 졸업한 맹 시인은 한 때 공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수상소감에서 맹문재 시인은 “고산문학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고산의 시들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오우가’를 비롯한 ‘산중신곡’, ‘어부사시사’를 읽고 이번에 발견한 점은 화자가 움직인다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고산은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맹 시인은 “그 움직임이 이치를 벗어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치를 지향하는 바가 분명했지만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고산의 시에는 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품위를 지니고, 담백한 시선이었지만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산의 어조는 힘이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어 맹 시인은 “저는 고산의 시에서 움직임을 배웁니다. 이치를 고민하는 움직임, 새로운 이치를 지향하는 움직임, 물러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움직임, 개인을 넘어서는 움직임, 시비를 가리는데 타협하지 않는 움직임, 이약하지만 큰 움직임...등”이라며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신경림 시인은 심사소감에서 "'사과를 내밀다'의 시들은 사회문제나 노동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화 하면서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점을 상당부분 극복해 내고 있다"며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시, 말장난으로 시종하는 시가 문학성 혹은 전위성 이라는 미명아래 횡행하는 우리 시단에서 이와 같은 시집은 아주 소중할 수 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해남군이 이끌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 ‘열린시학’이 함께 주관했으며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조오현 큰스님이 펴낸 ‘적멸을 위하여’가 수상했다. 심사위원은 본상 심사에 김재현(현대시조포럼 회장·박시교(추계예술대 문창과 교수)·신경림(시인)·정희성 시인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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