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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다 / 송종철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서로 집중하고 있다 폭우로 뻘겋게 드러난 교회 언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으로 변했다 몇 해 전부터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거리 빈터 여기저기에 경작금지라는 팻말이 보인다 누군가는 스며들고 또 누군가는 닮아간다

 

물든다는 것은 당신의 책 속 주장에 동의한다는 말이고 어릴 적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오랜 기침이 가라앉는 학하리의 아침은 새로운 습관이 된다 유튜브 내 편이 필요할 때광고 배경음악을 하나하나 찾아 듣는 오후 창문 안으로 스며드는 아카시아 향기, 물들고 싶다는 것은 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당신의 집에 다가가는 일이다 날 저물도록 걸어가는 벗어나기 힘든 길이다 길게 늘어진 주차 행렬이 내려다보이는 벤치 오래 머무르는 풍경이다

 

당신의 색깔로 변해가는 시간 맨 앞에는 두꺼운 기억의 막이 있다 머금고 있는 생각이 단단해진 땅을 흠뻑 적시는 동안 기억 속 이름들을 견딘다 사람들은 유행처럼 곧 지나갈 거라고 말한다 작은 흙 알갱이 사이로 촉촉한 생각이 울먹울먹 배어 나오는 동안 버릇처럼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당신

 

서서히 겹쳐지는 익숙한 화면 나는 나의 손을 놓는다

 

 

 

 

[당선소감]

 

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김사인 시인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나날의 형언들은 모두 시가 될 수 있다. 시는 무엇을 무엇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 무엇에 대한 존경과 경외의 표시가 바로 시이다.” 공학을 해오던 나에게 간단해 보이는 이 정의는 시를 쓰는 기본 알고리듬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마음속으로 늘 되뇌고 있습니다. 나는 특별하게 알아주고 불러줄 일상을 찾아내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무엇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애를 씁니다. 매번 원점, 시를 쓰기 위해 주위와 대면하는 시간은 늘 겸손해지려고 노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소바처럼 낮고 슴슴한 시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쁨보다는 부족한 글을 마지막까지 들고 읽어줬다는 놀라움이 앞섰습니다.

 

지금까지 한남대와 대전문학관에서 시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성은주 교수님, 길상호 시인님, 김영남 시인님, 양예경 교수님 그리고 최은묵 시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시간 동안 습작을 읽어주고 소중한 조언을 해주신 최현주, 김미옥, 김광명 시인님과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 소리 내 작품을 읽어주는 아내 한경민, 언제나 우리는 원팀 미란, 미선과 근홍 고맙고, 사랑해

 

어려운 시기에도 기회를 주시고 제 글을 뽑아주신 뉴스라인제주와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시를 쓰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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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부드러운 언어의 전개와 잔잔하게 발화하는 서정의 향기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2022 영주신춘문예>를 공모한 결과 전국에서 예년처럼 북적북적 많은 예비 시인들이 모여들어 그들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자본주의 세상과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야가 문학이라지만, 갈수록 팍팍해지는 우리들의 삶을 만져주는 작품들이 용호상박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최후까지 검토한 작품은 시조 2작품, 3작품이었다.

 

김미진의 시조 콩나물 이력서는 진술의 발상이 상큼하여 매력적이었다. 김미경의 시조 대숲을 읽다는 시상 전개가 깔끔하였다. 송종철의 시 섭지코지 문서물들다는 세밀한 묘사와 진술, 호흡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주었다. 송문희의 시뜨거운 외출은 땡볕 속에서 말라가는 지렁이의 모습을 펄펄 끓는 오후의 번제로 보고, 그것을 요즘의 구직인(求職人)과 결부시켜 형상화한 수작이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신선한 비유, 부드러운 언어의 전개와 서정의 향기가 잔잔하게 발화하는 송종철의 물들다에 눈길이 머물렀다. 이어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함을 확인하고 당선작으로 뽑아 들었다. 독특한 상상으로 N포 세대 청춘들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한 김미진의 콩나물 이력서와 송문희의 뜨거운 외출도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다음 기회에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당선자께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위원 김춘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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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일보가 코로나로 침체된 문학계에 불씨를 피우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해온 2021영주신춘문예 공모가 전국적인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올해는 공모작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영주일보는 1일 전국적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 또한 11월 한달 새 22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해 지역감염 우려가 높아져 부득이하게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영주일보 관계자는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리며,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치열하게 글을 써온 신인 작가들에게 죄송하다”며 “2022년 열리는 영주신춘문예 공모전에서 통통 튀는 상상력과 새로운 감각의 문장 실력을 펼쳐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영주신춘문예 전국 공모는 올해 14회째로, 문단의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인터넷 신문으로는 전국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역점사업이다.

그동안 영주신춘문예는 시․시조․수필 부문에 34명의 당선자를 배출, 등단의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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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공 / 한영미

 

재봉틀 소리가 창신동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담장이 막다른 대문을 맞춰 다리면
원단 묶음 실은 오토바이가 주름을 잡았다
스팀다리미 수증기 속으로
희망도 샘플이 되던 겨울


어린 객공은 노루발을 구르다 손끝에 한 점
핏방울을 틔우곤 했다 짧은 비명이
짓무른 패턴에 스미면,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이었다
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붕대처럼 동여맨 구름


자수의 밤하늘은 그녀의 눈물을 진열한 쇼핑센터가 아닐까
화려하게 화려하게
너무나 눈이 부셔서


쪽가위처럼 날카로운 바람에
이따금 실밥처럼 잘려나가는 유성을 보았다

 

 

[당선소감]

 

세상을 돌리는 동력은 고단한 일손들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유성처럼 끝내 져버리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 세상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울 수도 있었음을.

 

시 한 편을 써 내려가기 위해 변변한 제목도 없이 무수히 버려졌던 미완성의 시편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쌓여 이 순간이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허기를 재우지 못해 갈급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물이 두려우면서도 바다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 닿지도 못하는 걸음엔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늘 그 언저리를 돌며 끄적였습니다.

 

詩는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제게 숨통이 되어주기도 하고, 깊어질수록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다림의 골목이 길었던 탓인지 당선 통보가 기뻤습니다.

 

아득한 길 위에 표지 하나 만난 것처럼 다리에 단단한 힘을 얻습니다.

 

지친 누군가가 올려다볼 밤하늘에 자수를 놓듯이 앞으로도 한 땀 한 땀 혼신을 다해 시를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시안을 넓혀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님들과 윤성택 시인께도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딸의 시를 읽고 필사하길 즐기시는, 투병 중인 친정어머니께 좋은 선물이 되리란 생각입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가족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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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전국에서 응모된 편수가 천 편을 넘었다. 시집은 팔리지 않는데,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 씁쓸하다.

 

예심 본심을 거쳐 세 사람의 시가 결심에 올라왔다. 정옥희 님의 ‘아버지의 의족’ 외 2편, 전진욱 님의 ‘빗살무늬 고3’ 외 2편, 한영미 님의 ‘객공’ 외 3편이다.

 

정옥희 님의 ‘아버지의 의족’은 불편한 몸으로 가족들을 위해서 당당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에 대해서 담담히 써 내려간 수작이었다. 걸리는 부분은 다른 2편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연결어미의 사용을 자제했으면 좋았다.

 

전진욱 님의 ‘빗살무늬 고3’은 선 자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 재기 넘치는 시였다. ‘블루계열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딸’이며, ‘빗살무늬는 참 솔직한 것 같아/알잖아, 애써 단속해도 시험만 보면/그 무늬, 지천으로 나댄다는 거’ 같은 표현.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쏟아내고 말았다.

 

한영미 님의 ‘객공’ 외 3편은 고른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 신뢰가 갔다. 어린 객공의 작업을 떠올리며,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밤하늘 별자리를 이었다/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기시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객관적 거리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좋았다.

 

굳이 주문한다면,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는 문운을 빈다. 

 

- 심사위원 김성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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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원기자


일면식도 없는 햇살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 십자가로 세워집니다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는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할머니가

외줄 위의 어름사니처럼 아슬아슬하게 넘어갑니다

헐렁한 약속을 꿰어보자고

옷고름 풀고 앉아 빈 하늘에 보내는 침묵을

귀 세워 듣는 이 없네요

열세 살 어린 꽃송이

군용트럭에 실려 어둠의 터널로 들어섰지요

속살 드러낸 허공이 이제 막 달거리 시작한 꽃잎으로

휘파람을 불며 달려들던 밤에는

비린내가 사라질 때까지 노래를 불렀지요

그 노랫소리 배경삼아 스스로 껍질이 된

한 여자의 붉은 생, 반듯한 체면을 따라가면

목숨처럼 그러안은 기도가 쏟아집니다

인생이란 단막극을

주연으로 살아본 적 없는 몸, 숨이 멈추면

"미안합니다"

듣고 싶은 그 말 한 마디  염원으로 남기고

십자가 높은 푸른 하늘에 한 줌 햇살이 되리

 

 

 

[당선소감]

 

김군자 할머니의 영면 소식이 전해지던 날

햇살보다 더 환한 모습으로 수요집회에 모인 학생들이

십자가처럼 오랫동안 평화의 소녀상 앞을 지켰습니다.

낙엽 같은 당신이 눈에 밟혀 낮선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그날의 슬픔이 오늘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오다니, 꿈만 같습니다.

어린시절 목이 긴 양말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것처럼 우편물을 보내놓고 짧은 오침 시간에도 전화기를 꼭 쥐고 얕은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당선 전화를 받고 히죽히죽 웃으며 거리를 걷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선물처럼 다가섭니다.

허리가 휘도록 자식들 뒷바라지한 어머니, 당신의 거친 손마디가

한없이 그리운 날입니다 당신 딸이 시인이 된 것을 알면 두 눈 가득 눈물 글썽일 어머니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처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적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제 글이 미흡하여 그분들께 오히려 상처가 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듬직한 남편, 사랑하는 딸들

늘 엄마를 자랑스럽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두 손 꼭 잡고 웃으면서 함께 가보자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원님, 영주일보 사장님과 관계자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영주일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뚜벅뚜벅 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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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좋은 시 한 편에 가닿기까지 숱한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겪어야만 되는 것 같다. 응모 된 천여 편에 가까운 시를 읽으면서 시를 향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한 편을 찾기 위해 정성스레 세세히 살피면서 읽어 내려갈수록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져 식상 단계에 다다른, 새로운 감각을 만들려는 시도는 엉뚱한 단어와 억지스런 문장으로 조립된 시들로 넘치고 있었다. 마땅한 자리에 적확히 놓인 단어를 통해서 우리의 생각은 구체화 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생각의 구체화를 통해서 다른 생각으로의 이행 혹은 비약, 깊어지면서 새 길을 찾을 때 우리는 그러한 시에 매료되는 것이다.

 

심사자는 고심 끝에 최종 세 편으로 압축해서 살폈다. 「분보후에」를 쓴 송종철의 시선은 현미경처럼 정밀하다. 사물을 세세히 묘사하는 솜씨 또한 놀라웠다. 응모된 다른 두 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응모된 작품이 세 편뿐이라서 그런지 세 편 모두 시의 소재가 낯선 것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할 것 같아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고영숙의 「나를 낳아주세요」는 언어를 비틀어 이미지의 신선함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원기자는 「기도」 외 두 편의 시를 응모했는데 진부한 주제와 제목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면서도 다시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우리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시인의 속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웃의 비극적 삶에 대해 무관심했던 우리의 시선을 공동체의 삶 속으로 끌어 들이는 울림이 컸다. 그렇다고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시적 미학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2019년 벽두에 원기자의 발견으로 우리 시단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길 바란다.

 

- 심사위원 김성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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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소개서 / 이예인

 

빗방울은 등에 지고 땀방울은 지르밟아

가락시장 삼십여 년 공손히 함께해온

온몸에 보푸라기가 훈장으로 매달린 너

 

골 깊은 허기에도 비상구 없던 외길

숱하게 부대낀 날 짐받이에 걸어두고

힘차게 달리고 와서 숨고르는 발동무

 

쭈글해진 두 바퀴에 기운을 넣어주고

다른 데는 괜찮냐고, 아픈 데는 없느냐고

폐달과 늘골사이에 더운 손길 얹는다

 

청지기 받침대가 남은 하루 받쳐 들면

윤나는 안장 위에 걸터앉은 가을 햇살

소담한 너울가지를 체인 위에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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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터넷신문 영주일보사가 시행한 ‘2018 영주신춘문예’에서 이예연 시인의 시조 ‘자전거 소개서’가 영예의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영주신춘문예는 해를 거듭할수록 관심과 열기가 더해져 올해만 전국 각지에서 총 2317편의 작품이 응모됐다.

 

2월 3일 영주신춘문예 시상대에 오른 이예연 시인은 “절제의 가락 속 언어의 숨결은 저에게 있어서는 격조 높은 울림이었다. 그 울림을 따라 달려오는 길은 즐거웠고, 행간의 여백을 추스르며 행복했다”며 “늦은 만큼 보폭을 늘려 달려가겠다. 만학의 길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한층 거듭난 모습으로 다시 설 것을 약속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예연 시인은 2015년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16년 샘터시조상 시조 부문 장원상을 수상했다.

 

장곡면 상송리가 고향인 이예연 시인은 故 이병철, 김봉제 씨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장곡초등학교(38회)를 졸업했다. 봄이 오면 앞 다투어 피어났던 꽃들, 보릿고개에 저도 배고프다고 소리 지르던 소쩍새, 으스름달밤이면 으레 들리던 부엉이 울음소리…. 지금도 눈을 감으면 고향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국어시간에 시나 시조가 나오면 설레어 눈이 반짝였어요. 그때는 교과서 말고는 딱히 읽을 책이 없었죠. 교과서에 실린 시나 시조를 보면 마냥 행복해 눈을 떼지 못하고 단물이 나올 때까지 잘근잘근 곱씹어 삼켰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장곡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잇지 못했다. 배움이 끝이라는 절망에 여러 날 울며 좌절했지만, 어머니를 위해 분연히 다시 일어섰단다.

 

“저에게는 위대한 세 여인의 표상이 있습니다. 6.25의 회오리에 죽지 잘린 아버지는 평생을 심신의 아픔 속에 가엾게 사셨어요. 졸지에 가장이 되어 필사적인 노력으로 저희 삼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를 지켜보며 철이 들었지요. 또, 꽃 같은 나이에 사변으로 남편을 보내고 자식을 훌륭히 키운 작은어머니, 서른아홉에 혼자의 몸이 되어 조카 셋을 반듯하게 세워놓은 올케언니의 숭고한 삶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세 여인의 고귀한 향기를 세상에 전함으로서, 어디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또 다른 어머니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2018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인 ‘자전거 소개서’에는 이예연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자신의 아픔을 대물림하기 싫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이예연 시인은 40년 가까이 밤을 낮 삼아 밤 12시에 가게로 출근하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던 남편의 뒷모습을 시로 옮겼다. 온종일 쉬지 않고 달리고 와서 문 앞에 비스듬히 받쳐놓은 자전거를 보는데, 그 모습이 꼭 남편의 뒷모습 같더란다.

 

영주신춘문예 김영란 심사위원은 올해의 당선작 <자전거 소개서>에 대해 “화자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자전거와의 교감이 애잔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네 수까지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끌어가면서 정형의 그릇 안에 다소곳이 앉힌 품이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따스한 마음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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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억새에게 내미는 시 / 임지나

 

 

할머니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마세요

똑똑 분질러져도 자꾸 휘어져도 같이 살아요

저는 꽃의 키만큼도 닿지 않은 걸요

사람이 사람을 뚫고 나오는 걸 알았네요

할머니의 뻣뻣한 발등에서 푸른 순이 올라오는 걸 봤어요

오늘은 밀알만 한 무당벌레가 어디서부터 기어 왔는지

얇고 가는 마른 대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더군요

모든 것들은 꼭대기라는 정자亭子를 향해 나는 걸 좋아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고 붕붕대네요

늙어서 너무 길어진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넓은 등이 되어 주셨잖아요

쓸쓸한 할머니의 은비녀 사이로 저수지도 보이네요

저수지는 삶이 관통한 듯 여지없이 파랗군요

누런 풀들 사이로 제 눈에 막 들어오고 있어요

그것은 드문드문 보이는, 만질 수 없는 영애令愛같은 고움

잠겨 있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죠

패물 상자처럼 언제까지나 우리 꽉 끌어안고 있기로 해요

몇 해가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늙수그레한 풀과 호수는

이 계절을 처음 앓는 듯 쑥쓰러워하네요

아, 저 성성한 머릿결 같은 햇빛, 약하지만 발걸음 소리 내는 풀

꿀을 머금고 있는 공기, 바람과 나부대는 나무는

저를 교란 시켜요, 할머니

저는요, 조용히 또 임신하고 싶어요

 

 

 

[당선소감]

 

며칠 전 서점에 갔었는데 시집 코너가 없었습니다. 작은 서점도 아닌데 내가 못 찾는 게 아닌가 싶어 문의해 보니 직원은 한쪽 구석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서점 바닥에 딱 붙은, 책꽂이 맨 아랫칸, 먼지가 쌓인 곳에 시집들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읽기도 힘든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독자들과 소통이 안 되는 좁디 좁은 시와의 거리에서 난 뭘 얻고자 고군분투 하고 있는 건지 잠깐 상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말하자면 시를 담아내기에 내가 너무 작은 그릇이란 걸 깨닫기도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시란, 분명 다른 생각, 또, 사물 그 너머의 생각, 허투루 보는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 무엇이라도 저는 시에서 얻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 때문에 힘들었단 말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시를 공부하고 쓰면서, 삶을 많이 위로 받은 것 같습니다. 문학은 내게 위로였습니다. 쪼그려 앉아 다리가 저려도 서점의 남루한 그 시집들을 전 사랑하니까요.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멍해서 좀 주저앉았습니다. 설핏 마취가 된 듯 혼미했습니다. 그리고 서점에서의 쪼그림이 다시 생각났고, 속울음이 일었습니다. 절망의 힘을 다시 믿기로 했습니다. 우석대 안도현 교수님, 교수님은 역시 대한민국의 안도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진정 흠모했던 유강희 교수님, 교수님 덕분에 시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김혜원 은사님. 조만간 회에 소주 한 잔 올릴게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학우들, 만학도 아지매 품어줘서 고맙고, 평생 교육원 시 창작반 선생님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새해엔 더 뜨겁고 끈적거리게 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성실한, 제 시의 첫 독자이면서 시 어렵다고 머리 뜯으며 읽어준 남편 고마워. 무한히 사랑합니다. 시와 소금 임동윤, 박해림 주간 선생님, 언제나 따뜻한 식구처럼 끌어주시고 모든 선생님들 일일이 독려해주시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맞아 죽을까봐 나는, 빗방울까지도 조심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의 이 싯구처럼, 시가, 내가 필요하다고 속삭여 준 것 같습니다. 한걸음씩 정교하고 예민하게 시에게 다가서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혹시 금명간 비가 온다면 그날만은 비를 맞고 싶습니다. ‘나, 그렇게 열망하던 거 해냈다.’ 라고……. 크게크게 외칠겁니다. 부족한 시에 숨처럼 기회를 불어 넣어 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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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 송창권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숱한 바람 따라 머무른 그 곳

네모난 절벽에 떨어지고 만다

 

불빛만 화려해진 세상

정작

고요라는 추상은

저 몸짓에 지워져 가는가

 

여기

좁다란 땅에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콘크리트 벽으로

창살로

아!

 

동트는 새벽 미명이라도

만질 수 있으려나

아니,

보기만 해도

볼 수만이라도 있으려나.

 

세상 속에 푹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각진 영혼이여

시나브로 작아지고 있다

버려지고 있다

저 네모 속에 몸부림치는 고적(孤寂),

무덤 속의 침묵!

 

 

 

[당선소감]

 

끄적거리 시작한건 오래 되었지만, 감히 어딜 출품한다는 맘을 먹은 건 연하의 선배 시인의 권유로 인한다. "시인으로 등단하고부터 본격적인 시를 쓰는 것이지, 완숙미를 갖춘 후, 등단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란다.

 

용기를 내어, 어설픈 시인의 뒤안길을 헤매였다. 일반인들은 시인들이 어떤 시상에 빠져서 즉시 한 간의 돌담집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천재를 만들어 버린다. 물론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작가들도 초고는 끔찍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찰깍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 게다.

 

더욱이 나의 경우는 두 말 할 것 없다. 왜 퇴고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실감했다. 시상이 떠오르고 얼른 스케치하고 덕지덕지 유화의 붓질이 수 없이 가해져야 그나마 보였다. 그러다간 더 혼탁해지곤 했다. 지인들과 시인 여러분들의 지도와 애정이 보태지기도 했다. 지은이 송창권이라 쉬이 인치기는 아직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아마도 심사 선생님들께서 "다 내린 진한 아메리카노의 '한' 잔 커피보다는 '두' 잔의 양을 담은 깔대기 속 원두의 기다림에 더 기대를 표해 주셨다"고 여긴다. 만개한 꽃보다 터질 듯한 봉우리의 기대감에 더 점수를 주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활짝 피지도 못하고 그저 굳어 버리거나, 떨어져 버릴 봉우리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한다.

 

한편 만날 과락 수준이었던 아이가 70점대를 받고 기뻐 집 문을 보무도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마음도 한 켵 있다.

 

중학교 동창 여류시인은 "진정한 시인이라면 시와 악수하고부터는 시를 애인 삼고, 시와 희노애락을 나누며 해로해 간다"고 했다.

 

"나 정도가" 하고 있었는데, 덜컥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염치없지만, 그래도, 주체 못할 기쁨을 안고 벅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먼저 이런 기회를 주신 영주일보와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밤잠을 설쳐대는 남편에게 "현실을 생각하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늘 안타까운 기대를 거두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 김신영에게 감사하다. 제주시청 공무원인 김정수 시인, 중학교 동창 양순진 시인, 고등학교 친구 강기암 시인, 특히 시집을 건네 주면서 "좋은 시 많이 쓰라"건네 주었던 함민복 시인, 남제주요양원 김영진 목사님 등 여러분들께도 지도와 조언 그리고 응원에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인터넷신문의 깊이가 느껴지는 시인들의 열망

 

병신년 올해 10회를 맞이하는 영주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의 응모자들은 다양했다. 여러 해 동안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일념 하나로 작품을 쓰고 지우고 한 원고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로 보내온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주에서 공모를 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원고들뿐만 아니라, 국제우편으로 보내온 원고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또한 최근 추세에 컴퓨터 워드로 작성하는 시대에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쓴 작품들의 열정들도 뜨거웠다.

 

 

많은 신인작가들의 원고와 우편요금이 아깝지 않게 좋은 작품을 따지기 전에 그 열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옥고를 고르기 위해 쉴 여유가 없었다.

 

우선 심사를 하면서 완벽한 시보다는 현대시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중 새로운 감각을 지니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가려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본심에 부쳐진 작품으로는 김길전, 김진실, 송창권, 백승권, 임지나 씨의 작품들이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오랜 세월 습작의 이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신춘문예 작품의 취지에 맞게 열정적인 작가의 작품을 고르기로 합의하였다.

 

김길전의 ‘처남댁’이라는 시들에서는 세 편 모두 산문시 형식인 듯한데, 평이한 언어로도 개성을 살린 시편을 만들어냈다는 장점은 있으나 딱딱한 끝맺음의 어휘로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다.

 

김진실의 ‘즐거운 식사’는 독특한 제목으로 상상력을 구사하여 맛깔스런 시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산문적 어법이 아쉬웠다.

 

송창권의 시들은 응모한 3 편 중 산문시 형식이 아니어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표현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백승권의 ‘늘 같은 색의 겨울’ 이라는 시는 그리 도드라지는 표현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면 뒷입맛이 달짝지근해지는 느낌이 있는 시였다. 다만 제목과 내용이 조금은 거슬렸다.

 

임지나의 시들은 앞에서 지적한 시들의 단점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어 맛깔스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의 유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시적 이미지가 난잡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으로는 임지나와 송창권 두 사람의 작품이 남아, 심사위원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한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에 이르러, 공동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신춘문예에 공동 수상이 마땅한 일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을 제외하는 것은 너무 큰 아쉬움이었기 때문이다. 낙선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당선하신 수상자들에게는 큰 박수로 우리 시단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 심사위원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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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 / 김종화

 

 

너의 서식지는 날짜 변경선이 지나는 곳,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가방 속에 접어 넣은 지도의 모서리가 닳아서 어떤 도시는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오늘의 해가 다시 오늘의 해로 떠오를 적도 부근에 숙소를 정한다 날개를 수선할 때는 길고양이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해야 한다 난 철새도 아니고 지금은 사냥철도 아니니까 너에게 이미 할퀸 부분을 다시 또 할퀴는 일 따윈 없어야 하니까

 

기착지를 뒤적이다 마지막 편지를 쓴다 마지막이 마지막으로 남을 때까지 쓴다 나를 전혀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는 너에게

 

삼일 전에 보낸 안부가 어제 도착한다 너는 나를 뜯지 않는다 흔한 통보도 없이 너는 멀어졌고 난 네가 떠난 지점으로부터 무작정 흘러왔다 너의 안부는 고체처럼 딱딱하고 나의 안부는 젤리처럼 물컹하다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기미조차 미약하여 난 비행(非行)이 너무나 쉽다

 

싸구려 여관방에서 보이는 야경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오늘도 나의 다짐은 추락하지 않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나의 착란은 뼈마저 버린다 너는 결코 이방(異邦)이 아니다 태초부터 회귀점이다

 

 

[당선소감]

 

시는 어쩌면 시인이 벼랑 끝에서 호명한 존재들의 처절한 몸짓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오늘 호명되었다. 누가 나를 이토록 간절하게 호명한 것인가? 나의 오랜 고독이, 운명처럼 달라붙은 시마가 나를 삼킨 것인가?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마음 속 고향인 제주일지는 몰랐다. 여행 할 때마다 나를 기꺼이 다독여주었던 제주. 제주의 길을 걸으면 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는지를 이제 알겠다.

 

저수지의 둑길로 은륜의 바퀴가 굴러간다. 커다란 자전거에 타고 있는 사람은, 키가 아주 작은 소녀였다.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는 소나무의 푸른빛을 머금어 몽환적이다. 소녀는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십 리 거리 마다않고 달려온 것이다. 둑 위에 앉아서 해가 떠오르는 순간,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을 본다. 소녀는 일기를 쓴다. ‘마흔 쯤 되면 시인이 될 거야. 시인이 될 거야.’ 오늘 그 소녀는 ‘시인’이 되었다. 조금 늦어졌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나의 시에 진정성과 젊은 피를 수혈해 주신 하린 선생님, 항상 뒤에서 어깨를 다독여 주시는 박선우 선생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열린시학아카데미>의 詩友님들, 일일이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저를 아껴 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 ‘呼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밥 대신 시를 짓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남편과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시를 향한 나의 태도는 끝끝내 ‘맹목’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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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참신한 비유와 이미지 돋보여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 보내온 많은 응모작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지난해에 비해 응모 작품의 양도 양이려니와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이 많은 것은 심사를 하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예심을 통해 고른 10여 명의 작품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양세정의 「수면은 모든 것을 구부린다」, 임지나의 「나비의 자석」, 김탄의 「맹목」을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모두 나름대로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양세정의 시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수면’에 반영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어떻게 하면 시의 삼투압에 흡수되는지 그 방법에 아쉬움이 있었다. 임지나의 시는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은 착실히 다져져 있으나, 중복되는 이미지를 걸러내지 않아 산만한 느낌을 주어, 초점화에 실패한 점이 아쉬웠다.

 

이에 반해 김탄의 시는 주제가 상투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앞의 내용을 극복하면서도 참신한 은유와 환유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소화해낼 줄 아는 능력이 돋보였다. 「맹목」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자가 걷는 문학의 길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낙선한 분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 김영남(대표집필), 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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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색조七色鳥 / 김태운

 

 

 

빈첩의 조짐이라 했다

미실과 제6대 풍월주 세종

둘 사이의 종자라는데

 

한 뿌리에서 자라 잘 뻗친 나뭇가지인 셈

이 새가 처음 이 세상으로 다가왔을 땐

그 이름이 하찮으면서도 아주 도도했다

어느 돌섬으로 비친

이도 저도 다 아우르는 소리의

 

며칠 지나자 그의 이름이 오선지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에서 로 차분히 오르는가 싶더니

감흥에 따라 윗줄 ,

붕 뜨거나 아래 빈칸 ,

착 가라 앉는 날이면

대충 겉치레만 헤아렸다

속내의 리듬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한 두 음을 건너뛰는 건 기본

 

날마다 악보를 따라 날뛰며 오선지 위아래는 물론이요

산새들 음역을 짓밟은 채 덧칠하며 색칠하고 있으니

하루가 다르게 치장한 제 이름 속으로 비친 색색 거동

 

수상한 저 새!

 

구색을 갖춘 봉황이라면 좋으련만

애간장을 녹이는 저 본색이 이도저도 아니라면 더욱이

그냥 보통의

 

 

 

 

[당선소감]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다시 고치고...

그럼에도 끝내 완성 되지 않은 글들이 나의 시였다.

시가 곧,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이어서 그렇겠거니 막연한 생각들뿐이었다.

늦게 시작한 것, 시험공부마냥 시간이 없다싶어 빨리 따라잡아야겠다싶어 씨부렁거리며

서두르던 것, 다작 다작하던 글들이 모두 초고인 상태다 싶었다.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어설픈 흠결이 내비치던,

몽당연필로 뒤죽박죽 갈겨버린 것 같은 내 글에서

또 다시 고치고 싶어 안달난 내 글에서

축하한다는 메아리로 귀청이 울렸다.

올해는 어찌어찌 운수의 행보가 운율로 메아리치나싶다

주름진 감정으로 파장이 일고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한동안 안절부절한 설렘으로 부둥키더니

잠시 나이마저 잃는 듯했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시마을]이라는 사이버공간을 접하면서부터 시를 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곧 나의 스승이며 동료이며 내가 아는 시인들 대부분이다.

고향선배 시인이신 강경우 선생님과의 첫 인연이 여기서부터,

가끔씩 꼭꼭 꼬집어주시는 시마을동인 최정신 시인님,

시마을 운영위원장이시며 갑장인 김선근 시인님,

그 외에 김부회 시인님, 작소 시인님과의 만남과

동료로 공부하다 먼저 등단하신 이진환 시인님,

그리고 지난해 시마을문학상에 빛나는 향호 시인님,

그 외에 지금은 원로이신 한기팔 시인님 등 많이 계시지만

지면상 또는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생략하게 됨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일일이 거명하지 못한 분들 모두가 값진 인연들이다.

 

끝으로, 오늘의 영광에 기회를 주신 영주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우리 시문학의 발전에 한 몫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더불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큰솔, 대영에게

이래저래 걱정꾸러미만 잔뜩 안겨준 것 같아

이 기회를 빌어 미안한 마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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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골목 / 최연수

 

시접 좁은 집들이 답답한 그림자를 벗어놓은 골목

봄볕이 은밀한 속살까지 훔쳐보자

눈치 빠른 꽃다지가 보도블록 틈으로

한 뼘 여유분을 풀어놓는다

 

걸음들이 서둘러 시침과 박음질을 오가고

안경 쓴 민들레가 골목입구부터 노란 단추를 채운다

 

꼬박 달려온 노루발이 숨을 고르는

지퍼 풀린 시간

바짝 죄던 마감이 커피를 뽑아 내리면

잠시 농담 속을 서성이는 슬리퍼들이 붉은 입술을 찍는다

 

고단한 품이 넘쳐 돌려막기에 바쁜 카드들

골목이 느릿느릿 바람 쐬러 나가면

쪽창을 열어젖힌 채 갖가지 공정에 바쁜 꽃밭,

마감에 채 눈꼽을 떼지 못한 꽃도 있다

 

뒤집은 오후에 납기일을 접어 넣고 체불을 오버로크해도

자꾸만 뜯어지는 생의 밑단들

한 톨 한 톨 땀방울을 꿰면

낡은 목장갑처럼 올 풀린 하루도 말끔해질까

 

손이 입을 먹여 살리는 골목

날짜는 지문 닳은 둥근 거울 속에서 풀리고

한겨울 맥문동처럼 쳐져있던 사람들 다시,

하청으로 일어선다

 

 

 

[당선소감]

 

가 곁이 된지 오래입니다.

껴안고 쓰다듬어 키웠지만 늘 이름 하나 붙여주지 못했습니다.

유산流産된 생각들은 어디론가 구름처럼 흘러갔습니다.

수없이 만났던 좌절, 제게 주어진 무게를 습작이란 이름으로 위로했습니다.

문턱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끝이 없는 터널에서 다짐으로 출구를 향해 걸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쁘고 감사한 시간입니다.

이제 이름 하나 붙여 세상으로 보냅니다.

기도로 힘을 주신 마경덕 선생님, 숨 가쁜 길에서 손을 맞잡아준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심지에 불을 붙여주신 심사위원님과 귀한 자리를 마련해준 영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믿고 기다려준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다시, 겸손하고 치열하게 시의 길을 가겠습니다.

 

 

 

 

 

  [심사평] 모더니즘과 서정의 스밈으로 만들어가는 시의 맛

 

  올해도 영주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의 응모자들은 다양했다. 삐뚤빼뚤 쓴 손글씨 원고를 비롯해 잡지의 편집을 보는 듯한 프로다운 편집이라든지, 제주에서 공모를 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원고들뿐만 아니라, 국제우편으로 보내온 원고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작품은 확연히 구분되었다. 아직 기초훈련이 덜 된 응모자들은 막무가내 원고를 보내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할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심사위원들은 현대시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중 새로운 감각을 지니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가려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본심에 부쳐진 작품으로는 임지나, 엄정숙, 오경(오미현), 송복련, 최연수, 김태운 씨의 작품들이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오랜 세월 습작의 이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약점이 적은 작품을 고르기로 합의하였다.

 

  엄정숙의 시들에서는 세 편 모두 산문시 형식인 듯한데, 평이한 언어로도 개성을 살린 시편을 만들어냈다는 장점은 있으나, 컴퓨터 사용의 미숙일지는 모르지만, 행갈이의 불완전함과 맞춤법이 틀린 부분들이 제일 먼저 눈에 거슬렸다.

 

  엄정숙과 오경의 시들은 공통적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구사하여 맛깔스런 시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산문적 어법이 아쉬웠다.

 

  송복련의 시들은 응모한 네 편 중 산문시 형식이 아니어도 좋을 작품들이 산문시로 씌어 형식과 내용의 필연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슴이 아닌 머리로 쓴 시라는 느낌으로, 흔히 모더니즘시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정서의 휘발이 아쉬웠다.

 

  김태운의 시들은 그리 도드라지는 표현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면 뒷입맛이 달짝지근해지는 느낌이 있는 시였다.

 

  최연수의 시들은 앞에서 지적한 시들의 단점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어 맛깔스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의 유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시적 이미지가 난삽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으로는 김태운과 최연수 두 사람의 작품이 남아, 심사위원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한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에 이르러, 공동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신춘문예에 공동 수상이 마땅한 일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을 제외하는 것은 너무 큰 아쉬움이었기 때문이다. 낙선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당선하신 수상자들에게는 큰 박수로 우리 시단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김영남(시인) 변종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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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 / 김지희

 

한잔 노동이 넘실대는 부엌에는
여자의 일생이 부조되어 있다

엄마 허벅지 베개 삼아 달게 잠들었던 소녀시절이
캄캄해 보이지 않는 새벽 어스름
잠든 아이의 꿈자리를 지나 
슬그머니 부엌에 나가 불을 켠다 
문득 완전한 어둠 속에 던져졌던 세상 한 곳이 환하다
옹이 박힌 가슴으로 숭숭 새는 물소리를 잠근다
부엌 속에 갇혀 맵고 짜고 달고 
가끔 바삭바삭 타는 소리 너머
나는 세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존재하지 않은 가을이었다
부엌에 앉아 작은 상을 성좌처럼 펴고
나의 언어를, 별을 찾다가 웅크린 어깨선이 
어느 파도에 부딪혀 무너지는지 속이 거북하다 
살다 남은 시간을 쪼개고 
찬 손을 비비고 
싱크대 속에 갇혀 몇 년째 속앓이 한 냄비를 닦고
예리한 어둠에 그을린 낯선 도시를 헹구며
깊은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세우고 국을 끓인다 
파, 시금치 온통 날것인 것들이 불꽃으로 저를 살라
새로운 맛을 낸다 
모든 사랑의 고통의… 뉘우침으로
한 그릇을 위한 부엌의 노동엔 어떤 해석도 필요치 않다
성찬식 밀떡처럼 작은 평화를 입에 물고
부조의 문을 밀고 나와
식구들의 잠든 귀를 깨끗하게 여는 저 폐경기의 새벽!

 

[당선소감]

 

“시를 결코 허욕과 명예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다. 시라는 견고하고 딱딱한 옥석을 말없이 석수장이처럼 갈고 닦는 일만을 했을 뿐이다” -발레리

 

새벽녘 ‘별’을 가지고와 ㄹ을 갈고 갈아 ‘벼’를 만들기도 해보지만, 과연 나는 시를 쓰며 ‘시라는 옥석을 말없이 석수장이처럼 갈고 닦는 일만을 했을 뿐’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까? 늘 반문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보다는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며 언어 속에서 마음의 극치를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언어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안으로 갇혀 캄캄한 바위 속 소통할 수 없는 무늬만 그리고 있었다.

 

노을이 모닥불처럼 피어, 식어가는 12월을 태우는 거리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느 상점에서 흘러나온다. 절망도 경쾌하게….

 

낡은 전통에 매달려 있는 언어를 지우고, 손 끝마디로 새겨 넣은 뿌리로, 달의 큰 통 안에 있는 여자로, 투명한 모음들이 풍선처럼 솟아오르는 언어로, 겨울 가로수 가지 끝에 걸린 새벽별로… 말없이 견고하고 딱딱한 시라는 옥석을 석수장이처럼 갈고 닦을 것이다. 이번 겨울이 지독하게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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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곡진한 국면과 신선한 이미저리의 조화

 

올해 마지막 수확을 거두고자 하는 의욕 덕분인지, 이번 영주 신춘문예에는 멀리 호주와 미국을 비롯 한국어의 영토가 펼쳐진 곳들로부터 많은 응모작들이 쏟아졌다.

 

문학적 열정으로 가득 찬 1천여 편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며 선자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응모작들의 분량도 예년에 비해 몰라보게 불어났지만, 문학적 성취의 경중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시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자들은 흔히 신춘문예 투라 불리는 지나친 수사와 단단하게 엮여 있지 않은 이미저리의 남발이 불거지는 시편들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데 합의하였다.

 

개중에 어떤 이의 작품은 명징한 이미저리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시적 전개를 뒤에서부터 뒤집었더라면 더 효과적일 것 같기도 하였다. 그만큼 작자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작위적이고, 파편적인 사유가 팽배된 시편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선자들은 시적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분별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네 삶의 다양한 국면을 진지하게 담고 있는 시들, 시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는 이미저리의 구사 능력, 사전적 의미를 넘어 사물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을 가졌는가 등의 여부에 중점을 두어 본심에서 논의할 만한 작품들을 골랐다.

 

그 결과 김은정 씨의 <폭설>, 김곳 씨의 <읽어버린 길>, 이명옥 씨의 <구두코를 향하여>, 김지희 씨의 <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 등을 본심에 올려놓고 논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하는 묘사력과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신선한 의미망을 환기하는 데 상당한 수준을 견지하고 있었다.

 

김은정의 작품들은 그 같은 점에서 주목이 갔지만 작자가 품은 세계관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고, 시상의 전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아직 착근이 덜 되었다는 데서 아쉬움을 남겼다. 김곳의 작품들은 이중적 의미망을 엮어가는 알레고리의 구사에 치중하였지만 모호하거나 충분한 전개가 되지 못한 채 마무리를 서두르는 미숙함을 노출하였다.

 

이명옥의 작품들은 해체적이면서도 명징한 이미저리들이 돋보였지만 현실과의 긴장 관계가 이완되어 그 절실함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김지희 씨의 작품들은 여성의 삶의 무대인 살림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한 사려 깊은 천착에 바탕해 있다. 피로를 유발하는 도로를 넘어 화자를 참인간으로 재탄생하게 하며, 나아가 식구들의 건강하고 밝은 삶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사랑의 정신을 담지하고 있다.

 

그것들이 과하지 않은 이미저리를 동반하여 처리되고 있는 점들이 주목을 끌었다. 몇 군데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은 산문적 잔재와, 다소 부족한 정적(靜的) 모티프 들이 선자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선자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을 놓고 벌인 토론과 장고 끝에 최근 들어 지나치게 언어 유희와 낯선 상상력의 세계로만 치닫는 신춘문예의 병폐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에 따라 삶의 곡진한 국면들을 시의 그릇에 담아내면서도, 명징한 이미저리의 강구를 통해 사상(事象)들에게 새롭게 접근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점들을 사서 김지희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하였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앞으로의 정진과 분발을 당부하며, 아울러 이번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도 더욱 정진하여 새로운 기회의 문을 활짝 열기 바란다.

 

- 심사위원 : 박몽구, 변종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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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지다 / 권행은

 

저 집, 독거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목련꽃 져 내리고
조문하듯 비가 지난다

꽃은 새의 깃털처럼 허공에 기대었을 때에도
신의 영역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맨 땅에 누워 듣는 하늘의 말씀이 희다

툭, 떨어질 때
공기가 잠시 출렁했을 뿐
저 꽃은 첫 번째 고백부터
쪽방 밑에 버려진 마이너리티

뒤척이는 바람이
한 계절 백발이 성성하던 꽃의 외로움을 뒤집고
풍문처럼 누르스름하게
해묵은 발자국도 잠시 석양에 문지른다

한 때 속절없이 눈부시던 봄빛에
하얗게 저항하던 그녀의 몸짓을
그 누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붓을 들어 마지막 유서를 쓰듯
혼신으로 써내려간 꽃의 낙화를 안다면
어둑어둑 밤의 담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내리는
한 장 어둠이 이불인
저 독거의 노추老醜를 함부로 밟지는 못할 것이다

 

 

[당선소감]

원고를 보내던 그날은 하늘 보자기가 풀린 듯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하늘도 무언가 쏟아내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요? 조곤조곤 하늘의 하얀 말씀을 들으며 돌아오는 길이 미끄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올해 신춘은 어쩌다 보니 주요 일간지의 마감일을 놓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동인들 덕에 마감일 전날에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는 눈발이 쌀밥처럼 부풀다가 한 줄 물이 되어 주루룩 흐릅니다. 모자라는 시를 선하여 빛을 보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손 모아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 말없이 응원해준 남편과 아이들, 늘 웃음으로 격려해주던 친척들과 친구들, 시의 열정으로 한 식구가 된 아바동인들, 그리고 뒤늦게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문효치 선생님과 박남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납니다. 시는 저에게 길을 밝히는 별이자 빛입니다. 빛을 잃은 별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 겨울 숲의 나무들에 매답니다. 제 우듬지의 빙점을 통과하며 아름다운 눈꽃 세상을 만드는 나무들, 그 신비한 찰라 속에서 나무들의 인내를 배우며 낮은 걸음으로 시를 통하여 세상과 만나고 싶습니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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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진정한 피투체로서의 시

 

겨울 들어 내린 대설이 다음해에 풍년이 들 것을 예고하듯, 이번 영주 신춘문예에 투고된 만만찮은 분량의 수작들을 접하면서 우리 시의 밝은 미래를 예감하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분포된 투고자들은 이 신춘문예의 위상과 공신력을 말해주는 한편, 새삼 우리 사회에 시인 지망자들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이같이 전국에서 답지한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서 당선작을 가려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열을 가려야 하는 신춘문예의 성격상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서기 위한 탄탄한 레토릭과 공감대를 넓게 하면서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 등에 우선 주목하였다. 하지만 기교를 위한 기교나 작위적인 면이 지나친, 이른바 공모 제도에 병폐를 노정하고 있는 작품들에는 눈길을 빼앗기지 않는 데 유의하였다.


이번에 공모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모 제도에 횡행하는 낯선 소재 선택 및 지나치게 작위적인 레토릭 구사에 치중한 시편들이 적지 않았다. 시는 무엇보다 진정한 삶에 바탕하여야 하며, 지나침이 없이 시인이 염두에 둔 주제에 걸맞는 수사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경향에 편승하기보다 더욱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수사가 강구된 시편들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


그 같은 고심의 결과 장고 끝에 손석만 씨의 「사월」과 권행은 씨의 「목련꽃 지다」가 선자들의 손에 끝까지 남게 되었다. 「사월」은 예전에는 풍성한 호수였으나 지금은 물이 말라버린 타클라마칸 사막을 둘러싼 드라마를 알레고리로 하여 우리네 삶에 내재된 삶의 삭막함과 그로부터 일탈하고픈 욕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눈썹 깜박거리는 모반을 꿈꾸는/ 이 모래먼지는 우주의 피부다’ 등의 구절을 통하여, 모래먼지로 상지되는 무소유의 정신이 현대를 새롭게 하리라는 사유를 펼쳐 보이고 있다.


「목련꽃 지다」의 경우에는 독거노인의 삶을 둘러싼 생의 비의를 ‘목련꽃’을 환유로 하여 풀어낸 작품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물질적 풍요에 역행하는 비인간화의 풍경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가운데 선명한 이미저리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낯선 수사를 찾아내는 데 골몰하지 않고, 목련의 눈부신 개화와 쇠락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점에 눈에 띈다. ‘꽃은 새의 깃털처럼 하공에 기대었을 때에도/ 신의 영역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맨땅에 누워 듣는 하늘의 말씀이 희다’는 대목에 보이듯, 비록 육신의 쇠락은 어쩔 수 없이 맞았지만 내면에 간직한 영혼은 깨끗하다는 사유가 잘 녹아 있다.


두 작품이 다 일장과 일단을 갖고 있다는 데 선자들은 동의하였다. 앞의 작품은 소재의 신선함과 잘 다져진 수사가 선뜻 눈길을 끄는 반면에, 추체험만에 바탕하여 구축한 사상의 전개와 다소 작위적인 수사가 마음에 걸렸다. 권행은 씨의 작품은 명징한 이미저리의 구사를 바탕으로 한 수사와 공감대가 넓은 주제의 구현이 강점이지만, 다소 다양하지 못한 시상의 전개와 결구의 미진함이 엿보였다. 선자들은 두 사람의 여타 투고 작품들을 함께 검토한 끝에 권성은 씨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견지하고 있으며, 흔히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노출하기 쉬운 상투적인 골격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아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합의하였다.


결선에서 함께 논의된 몇몇 작품들도 선자들의 손에서 놓기가 아까웠다. 정순 씨의 「빈 통장 같은 오후」는 디지털 세상이 노출하고 있는 비인간화와 과소비의 문제를 실감있게 다루고 있으나 좀더 치밀한 수사의 강구가 아쉬웠다. 주대생 씨의 「태안 검은 얼굴 앞에서」는 서해 오염 문제를 소재로 삼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지만, 보다 폭넓은 환기력과 적절한 수사가 요구되었다. 김창호 씨의 「감기」는 신선한 이미저리의 처리가 일품이지만 소재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주제의 모호함이 지적되었다.


이상 결선에서 논의된 작품들은 당장 기성 시단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역량을 보여주어 선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분발한다면 어느 지면을 통해서든 우리 시단의 일원이 될 역량을 지닌 이들이니만큼 더욱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기 바란다. 아울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시단의 일가(一家)를 이루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심사위원 : 변종태(시인), 박몽구(시인․문학평론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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