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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공 / 한영미

 

재봉틀 소리가 창신동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담장이 막다른 대문을 맞춰 다리면
원단 묶음 실은 오토바이가 주름을 잡았다
스팀다리미 수증기 속으로
희망도 샘플이 되던 겨울


어린 객공은 노루발을 구르다 손끝에 한 점
핏방울을 틔우곤 했다 짧은 비명이
짓무른 패턴에 스미면,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이었다
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붕대처럼 동여맨 구름


자수의 밤하늘은 그녀의 눈물을 진열한 쇼핑센터가 아닐까
화려하게 화려하게
너무나 눈이 부셔서


쪽가위처럼 날카로운 바람에
이따금 실밥처럼 잘려나가는 유성을 보았다

 

 

[당선소감]

 

세상을 돌리는 동력은 고단한 일손들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유성처럼 끝내 져버리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 세상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울 수도 있었음을.

 

시 한 편을 써 내려가기 위해 변변한 제목도 없이 무수히 버려졌던 미완성의 시편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쌓여 이 순간이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허기를 재우지 못해 갈급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물이 두려우면서도 바다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 닿지도 못하는 걸음엔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늘 그 언저리를 돌며 끄적였습니다.

 

詩는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제게 숨통이 되어주기도 하고, 깊어질수록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다림의 골목이 길었던 탓인지 당선 통보가 기뻤습니다.

 

아득한 길 위에 표지 하나 만난 것처럼 다리에 단단한 힘을 얻습니다.

 

지친 누군가가 올려다볼 밤하늘에 자수를 놓듯이 앞으로도 한 땀 한 땀 혼신을 다해 시를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시안을 넓혀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님들과 윤성택 시인께도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딸의 시를 읽고 필사하길 즐기시는, 투병 중인 친정어머니께 좋은 선물이 되리란 생각입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가족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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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전국에서 응모된 편수가 천 편을 넘었다. 시집은 팔리지 않는데,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 씁쓸하다.

 

예심 본심을 거쳐 세 사람의 시가 결심에 올라왔다. 정옥희 님의 ‘아버지의 의족’ 외 2편, 전진욱 님의 ‘빗살무늬 고3’ 외 2편, 한영미 님의 ‘객공’ 외 3편이다.

 

정옥희 님의 ‘아버지의 의족’은 불편한 몸으로 가족들을 위해서 당당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에 대해서 담담히 써 내려간 수작이었다. 걸리는 부분은 다른 2편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연결어미의 사용을 자제했으면 좋았다.

 

전진욱 님의 ‘빗살무늬 고3’은 선 자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 재기 넘치는 시였다. ‘블루계열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딸’이며, ‘빗살무늬는 참 솔직한 것 같아/알잖아, 애써 단속해도 시험만 보면/그 무늬, 지천으로 나댄다는 거’ 같은 표현.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쏟아내고 말았다.

 

한영미 님의 ‘객공’ 외 3편은 고른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 신뢰가 갔다. 어린 객공의 작업을 떠올리며,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밤하늘 별자리를 이었다/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기시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객관적 거리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좋았다.

 

굳이 주문한다면,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는 문운을 빈다. 

 

- 심사위원 김성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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