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판 / 조윤희(우석대 문예창작학·2)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보았어
낡은 인켈 전축, 턴테이블은 사라지고
나무 밑동처럼 남은 자리
엄마가 혼자서 레코드판으로
켜켜이 나이테를 쌓아올리던 그 자리
그 많던 판들은 다 어디로 갔니
골목 끝으로 머리채를 붙잡고
언성을 높이던 엄마 목소리가 멀어지니까
갑자기 잡음 섞인 노래가 듣고 싶어
내가 몽땅 갖다 버렸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기억이 안 나
장롱 밑에 들어갔을지도 몰라
납작하게 엎드리면 보일 수도 있어
컴컴한 밑바닥 속으로 손을 뻗어
먼지 낀 레코드판 한 장을 꺼내들었어
무뎌지면 안 돼, 까다롭게 굴어야 해
콕 하고 찌르는 바늘이 날카로워야
그래야 음악에서 빗소리가 나지 않는대
이 판에서는 남편 없으면 무시당한대
평면이 된 지구가 턴테이블 위로 돌아가지
커다란 레코드판 위로 통근버스가
바늘이 되어 골목 곳곳을 찔러
사람들의 노래를 만들어 내지
그것 참,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 엄마가
뜻 모르고 흥얼거리던 샹송이 생각나
화장품 가방을 들고 훑었을
후미진 골목과 가방끈 맨 자리,
푸르게 퍼진 멍 자욱이 생각나
바늘처럼 뾰족하던 엄마는 찾아봐도
없어, 이제 내가 대신 바늘할래
골목과 골목을 긁으며
뱅글뱅글 돌아볼래
母音을 기다리는 새벽 / 박성준 (경희대 국어국문학· 2)
어머니가 재봉틀 위에 밤하늘을 올려놓고 별자리를 박아 넣을 때마다 촘촘히 빛나는 밤의 혈관들 예리한 바늘 끝이 막 태어난 바람을 내 몸속으로 가라앉히네 그때 부풀어 오른 허공과 별똥별 떨어져 나와 오래 내통한 분홍 초크자국들이 일순간 혼미해진 내 몸에 가득, 수풀이 무성한 물가에 가 있고 다시 축축한 바람을 키워 밤과 헤어진 별빛들 나는 막연히 기다리다 몸에 오돌토돌한 바느질 선만 만지네
몸 경계, 곡선을 빠져나오던 거친 물소리에 두 귀를 띄우면
까치수영꽃 다리 저린 곳마다 오래 아리고 시린 곳이 있어
그곳에 웅크려 목에 걸린 바늘 찾아 헤매자
첫 한글을 배우던 내 어린 입술이 어머니 관절 속에서
오독오독 밤하늘을 씹고 싶었네, 젖은 곳을 찾아 찢어진 밤
오므렸다 폈다 다시 오므릴 때마다 올 풀린 별자리들이
내 입술주름 위에서 헝클어지고 뒤집혀 문드러지고,
공기를 껴안고 몸속에서 밀려오는 그 첫 소리가 나를 오래 오래 어리게 했던 거라
이제 내가 깍두기공책만큼 좁은 방이어도 좋았네
갈비뼈 아래 바늘 대신 연필심을 꾹꾹 눌러
온전치 못한 내 그림자! 母音을 기다릴 때마다
작은 방에는 늘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어머니가 계셔
내가 쓴 커다란 글씨가 공책 벽에 미끄러져 녹아내려도
배설하듯 그 첫 소리를 내뱉을 때
꼭 그 공책 만해지는 내 방, 어린 몸이 아파
밤을 새도 어머니가 다 기우지 못한 그림자를 주워 입고
물렁물렁한 공책 속에 눈도 뜨지 않고 살고 싶었네
목소리의 언저리마다 휘어 자란 까치수영꽃 하염없이 물가에 모두 띄우며, 母音을 기다리는 새벽, 끝나지 않는 따가운 소리가 목안 가득 고이고 있었네
[심사평]
예심을 거친 13명의 작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중에서 「하늘 장례」 외 2편, 「꽃이 피었다」 외 2편, 「아버지똥」 외 6편, 「묵을 씹는 밤」 외 2편, 「외출」 외 3편, 「박쥐의 서곡」 외 5편, 「공(空)과 폭(爆)」 외 2편을 먼저 내려놓았다. 상상력의 진폭이 좁거나, 시적 대상을 상투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그치거나, 표현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나머지 6명의 작품을 놓고 오래 비교하면서 읽었다. 각각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어 당선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언젠가는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펜의 힘을 믿고, 시적인 순간을 만나려는 열정을 접지 않는다면 말이다.
「팬티를 입지 않은 여자」 외 2편은 특이하게도 성적인 언어와 상상을 동원하여 쓴 시들이다. 성기, 허벅지, 브래지어, 성감대, 아랫도리 따위의 말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에로티시즘도 하나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시적 놀이’가 그저 가벼운 놀이로 끝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 시로 ‘한 번 질퍽하게’ 놀았는지 따져볼 일이다.
「하이힐을 신다」 외 2편과 「바람의 잉태」 외 5편은 균형 잡힌 언어감각, 고통을 겪은 사유의 흔적이 돋보인다. 트집을 잡자면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하다는 것이다. 너무 시다운 상황, 너무 시다운 언어를 선택하다 보니 시의 울림이 크게 확장되지 않고 있다. 시를 쓰면서 때로는 일탈을 꿈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상승할 수 있다.
「나무미장원」 외 2편은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는 작품이다. 어조의 얽매임이 없고,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활달한 생각에다 좀 더 맛있는 언어를 비볐더라면 더 좋은 시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남은 두 사람의 작품이 나를 괴롭혔다. 「모음(母音)을 기다리는 새벽」과 「레코드판」이 그것이다. 두 편 모두 어머니와 화자인 ‘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잘 짜인 구성, 부드러우면서도 기발한 시상의 전개, 솜씨 있는 언어 운용 면에서 크게 나무랄 것이 없는 수작들이다.
앞 작품은 역동적인 이미지의 구사와 언어의 밀도가 풍성하고, 뒤의 작품은 시를 잡아내는 날카로운 시선과 언어의 절제미가 뛰어나 딱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작품을 공동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큰 시인이 되어 미래에 계명문화상의 자부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