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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퍼즐놀이 / 고은별

 

이 퍼즐은 모서리로 보내야 하지
자, 봐 파란 지붕 마당 넓은 집 한 채가 완성됐잖아
잘린 버드나무 가지 조각을 하늘 조각 사이에 끼워 넣으면
단발머리로 잠을 자던 버드나무도 번쩍 눈을 떠
담은 아예 골라내도 좋아 그 자리엔
보도블록 사이 피었던 들꽃 퍼즐을 놓아두자
나의 발길을 따라 풍경은 조각조각 나눠지지
내가 허공을 한 발 한 발 짚으며
꽁무니에서 경계를 뽑을 때마다
허물어진 이 동네는 알쏭달쏭하게 흐트러져
나는 신중하게 수치를 재며 졸고 있는 버드나무 사이에 발을 뻗었어
수많은 다리가 조수가 되어 내 작업을 도왔지
서울 바깥 변두리에 얌전히 걸려 있던 동네는
어느 날 포클레인 폭격을 맞고 흐물흐물 허물어졌어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이제 완성작을 기억하는 건 나 뿐
나는 조각들이 모두 떨어져
하늘과 버드나무가 뒹구는 동네를 다시 맞추는 중이야
좁은 퍼즐 속에서 지금도 자라는 뿌리들을
앞마당 텃밭에 옮겨 심는 중이야
깨진 창문 조각을 하늘에 두면 투명한 새털구름으로 새들이 돌아오지
시든 짚을 마당에 채워 넣은 날은
햇살 병아리가 쫑쫑 깨어나기도 했어
하늘을 한 조각 찾으면 빛도 한 조각 들어와 불 꺼진 집들을 밝히고
널브러진 그림자들 모아 맞추면
푸른 그늘 아래 멈췄던 바람이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
내 투명한 집 속에서 버드나무가 몸을 일으키는 게 보이니?
곧 저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휑휑 휘날리며 퍼즐의 먼지를 닦아낼 거야
슬레이트 지붕 틈에서 꺼낸 보름달이 홀쭉해질 때마다
햇살과 병아리와 사람이 버드나무에 기대 살던 동네는 깨어나겠지
어느 하루, 한참을 덜어낸 보름달이 다시 차올라 둥글어지고
그 통통한 빛이 버드나무 머리칼을 빗어주는 날
그 쯤 되면 사방으로 숨어들어간 웃음 조각들도
돌아오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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