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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뽑다 / 이서령
어딘가 비밀통로가 있었나봐요
그는 단 두어 번의 노크로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분명 창문도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인데 왜 이렇게 반짝이나 했어요
그가 귓속말을 할 때면 텅텅 울리는 기분이에요
이곳은 방음이 되지 않는 동굴, 엽서도 편지도
날카로운 것들은 모두 미끄러져 버린대요
그래서 작게 뚫린 공간으로 몰래 침입했대요
그 통로라는 게 참 오묘하게 열쇠는 없지만 계단은 있고
계단과 계단 사이를 건널 때 발이 빠질 수도 있으니
울퉁불퉁한 신발이 꼭 필요하다고 했어요
나는 밤마다 나를 찌릿찌릿하게 깨우는 그가 미웠어요
머리를 묶을 때나 책을 보거나 화장을 할 때마다
그가 열어놓은 창문 때문에 시큰시큰 머리가 아파왔죠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는 생각들은 그를 불러댔어요
한동안 내 몸을 한참 긁어댔어요 나는,
자두향기가 나는 그의 입술을 꼭꼭 씹어 먹으면서
주머니 속에서 나를 그만 꺼내주기로 했어요
자물쇠는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았어요
나는 그의 단단한 성벽을 허물고 빈 정원을 세웠어요
통증은 부드러운 모서리가 되려나봐요
밤새도록 나의 철문을 닦았어요 이제 자유로울 수 있어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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