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보리굴비 / 박찬희

 

 

깊은 곳, 동안거에 들 날이 가까워지면 옆구리가 가려웠다

수년을 가로거침 없던 길 없는 길이 아른거리기만 하고

바싹 말라버린 감정이 압착된 채 눌어붙어 겉보리 색깔이다

 

꼬아 내린 새끼줄이 미명을 건져 올리는 때마다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억, 잊은 물질의 기법을 유추해

켜켜이 돋워 꿰면 아가미에서 배어 나오는 소금기

바람이 낙관을 찍고 갈 때마다 입술이 들썩거리고

항아리 깊은 속에서 오장육부를 비워내면

아가미를 통해 내통하는 바다와 육지

 

숨이 찬 시절이 건조되는 동안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흘러 빠져나가는 너울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음께를 바람이 변주하면

뭉툭하던 허리를 조여 맨 상처가 껍데기에서 바삭거린다

 

잠이 깰 때 아무 느낌이 없게 될지도 모르는 귓속말을

차곡차곡 채우면

봄 건너 가을에 이른 연록의 찻잎이 움 트는 게 보이고

긴 호흡으로 너른 바다를 마시고 뱉던 간절기의 촉감이

비워낸 속에 사분사분 채워진다

 

무뚝뚝한 등대의 시선이 흘리고 간 은빛 주단 위를

미끈하게 흐르다 누워 동경했던 뭍을

응달을 비집고 든 볕에 기대어 다시 찍어내는

데칼코마니

오랜 기억이 바람에 말라가면

허공에 박제되는 바다의 냄새

 

동안거를 마친 날엔 점점이 찢겨도 좋다며

그만큼 찢긴 바다가 청보리밭을 덮는

그 하나로 가뿐해지는 몸이

시간의 변곡점 속으로 너끈히 헤엄쳐 간다

 

 

 

 

 

 

 

 

제16회《바다문학상》 대상에 박찬희씨 ‘보리굴비’

제16회 바다문학상 대상에 박찬희 씨의 시 ‘보리굴비’가 선정됐다. 본상에는 김원순 씨의 수필‘화두話頭, 혹등고래가 풀다’가 뽑혔다. 전북지역에 거주하고 해양문학 발전에 힘쓴 공로자를

www.jjan.kr

 

728x90

채낚기 / 김숙영
 


조류의 방향을 따라온 길
지금부터는 어둠의 슬하다
달빛 아래 야광 줄이 주저하지 않고 빛을 끌어모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물로 바쳐진 미끼들
오로지 입술만 공격해야 한다
갈고리의 신호음이 울음으로 번진다
아버지는 여러 날 불황을 끝낼 거란 다짐을
밑밥으로 던진다
한 개의 낚싯대에 여러 개의 바늘을 걸어두었으니
바닥에 닿자마자 끌어올린다
장갑 속 지문이 다 닳은 손가락
운명선마저 지워져 버린 쩍쩍 갈라진 굳은살
감각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물고기가 잡히는 순간 경련이 인다
이빨이 드러난 갈치의 체표가 반짝인다
해저 밑에서 나풀거리듯 칼춤을 추며 올라온 실루엣
비린 향기를 품은 은백색
아버지가 오랜만에 웃는다
그러나 만선만이 결론은 아니다
자식들 다 성장했으니
바다가 내준 만큼만 거둔다
느긋하게 물고기 아닌 생각들도 끌어올리며
트로트 한 소절까지 가미한 아버지
이 손가락이 다 잘려나갈 때까지
물고기를 낚을 것인 게 니들은 걱정 말고 공부만 혀라
그 목소리가 지금도 내 심장 속을 헤엄쳐 다닌다
아버지가 낚아 올린 것이 물고기만은 아니라는 듯

 

 

 

 

제15회 바다문학상 대상에 김숙영 씨, 본상에 김주선 씨, 찾아주는 상에 전병윤 시인이 선정됐다.

 전북일보사와 ㈜국제해운이 주최하고 바다문학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바다문학상’은 바다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무량의 보고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문학을 통해 바다를 사랑하는 작가들과 함께 자연 친화 정신을 높이고자 매년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 한 달간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작품의 총응모자 수는 466명의 1,296편이었다. 시 부문에 364명의 1,092편이, 수필부문에 102명의 204편이 접수됐다.

 심사결과 ‘바다문학상’ 대상에 시 부문에 응모한 김숙영 씨의 ‘채낚기’가 선정, 주제가 선명하고 따뜻한 작품이었다는 평가다.

 본상에는 수필부문에 응모한 김주선 씨의 ‘바다를 한 상 차려놓고’가 뽑혔다. 바다를 향한 은밀한 언어의 조탁이 뛰어났고 그러면서도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는 시선은 일품이었다는 설명이다.

 시 부문 심사는 김년균 시인, 소재호 시인, 김영 시인이, 수필부문 심사에는 김경희 수필가와 전선자 수필가가 참여했다.

 더불어 전북지역에 거주하고 해양문학 발전에 힘쓴 공로자에게 전하는 찾아주는 상에는 20여 명의 후보자 중에 전병윤 시인이 이름을 올렸다. 심사는 소재호 시인과 정군수 시인이 맡았다.

 전병윤 시인은 1996년 3월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해 첫 시집 ‘그리운 섬’과 제5시집 ‘바다의 언어’에서 바다에 관한 다수의 시를 창작해 바다 사랑을 노래했다. 진안문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제10회 온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6월 15일 오후 4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2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728x90

[대상] 그리운 상어 / 이은원

 

어떤 소리는 먼 데서 굴러온다

멀리서 오는 것들은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소리의 바퀴는 날카롭고 건강한 이빨을 가졌지만

함부로 물진 않는다

 

희부연한 동체가 물끄러미 미끄러져가는

먼 훗날 바다속 이야기

그것은 간격과 반격에 대한 사유

간격은 빛과 어둠을 만들고

너와 나를 만들고

깊은 물살을 만든다

 

꼬리를 만들고

지느러미를 만들고

차르르 차르르 데본기의 바다를 유영한다

우리는 붙잡히기 위해 달아나고

사라지기 위해 나타난다

 

부레가 없어 끊임없이 폐달을 밟아야 하는

운명의 바퀴살은 한곳에 머무는 순간 사라져버릴 것이다

장렬히 끝내는 것만이 최선이었던

사랑이라는 형태가 주는 기기묘묘한 내용들

기억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가을이 오면

붉은 나무는 붉은 눈물을 흘리고

모든 소리는 네게로 선회하는 날개를 가진다

붙어있던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

먼 데로 굴러가는 소리

 

그리움은 어딘가 오고 있을 먼 먼 사랑의 시제

구김살 있는 삶의 정경과 전방위적 슬픔

핏빛 주검들 사이로

막가는 재미를 바퀴는 안다

 

차르르 차르르 먼 길 돌아

나는 나에게 도착한다

소리가 소리를 반격한다 

 

 

 

728x90


[대상] 해름 / 홍성남


뻘밭 속으로 황홀이 숨어든다 찰진 갯벌에서 잡조름한 심장 하나씩 품고 저녁에 가솔들이 꿈들대기 시작한다


노리개처럼 짱둥어가 재롱을 부리고 구름발치에 알섬이 대부를 자처한다 헛구역질, 신트림을 속으로 삭이고 입덧을 재우려고 겟물까지 삼킨다


바람조차 모르게 비약한 소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 속에서 한기를 다스린다 올망졸망한 씨알들이 개흙 품에서 가능성을 늘린다


보름달이 꽉 차오르자 만삭의 끝이 다가온다 부서지는 은빛 모래톱 사이로 진통이 시작되고 젖은 땅에서 터져 나오는 통증을 스스로 앙다문다


훗배 앓던 아낙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끌고 갯벌에 주저 앉아 굵은 저녁을 캔다 바지락 속으로 새끼를 쏟아낸 먼 기억들이 딸려 나온다


모든 것이 묵직하다 그런데도 집중은 멈추지 않는다 내밀하게 생의 표피를 밀착하여 산란하는 조가비의 몸짓과 흡사하다


때가 잰걸음으로 밀려온다 진창을 뒤집어쓰고도 일어설 줄 모르던 여자, 이젠 기필코 일어서야 한다


회기의 시간, 여자만*이 여자를 위로한다 여자들이 모두 돌아가면 사곡리 바닷가엔 밤새도록 소곤소곤 갯벌의 서사가 풀어지겠다


* 여수시에 있는 내해





 


728x90


[대상] 출항의 새벽 / 안연희


째보선창에 거대한 녹슨 쇠닻 하나,

긴 잠 속 웅크린 잠꼬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해저 뻘을 파고들던 야생의 쾌감도 잊은 지 오래,

마른 새벽 달빛이 시든 본능을 콕콕 쪼아대자

늑대처럼 부스스 깨어나 고개 쳐들고 우우 흐느낀다

 

식전부터 통통거린 발동선

수부(水夫)가 달빛에 퍼덕이는 오늘의 기상(氣象)을 가늠하며

뒤엉킨 그물채들을 힘껏 조이자

저도 모르게 흐르는 인중의 차디찬 콧물이 짭짤하다

(어디 이 바닥에 애초부터 항로(航路)라는 게 있었능가)

 

먼 시공 쪽으로 호스의 물줄기처럼 뿜어지는

등대불빛을 타고

구릿빛 물결 출렁대는 어깨춤사위 따라,

달덩이 같은 스치로폼 부표들이 어스름 물길을 튼다

 

해풍과 너울파도인들 어찌 수부의 욕망을 다 어거하랴

어류 탐지기에 포착된 연안의 반점뭉치들이

배보다 앞서 출어(出漁)한 냉동실의 얼음내를 맡았는지

저만치 바다 속을 흩어져 달아난다

(어쨌거나 투망질은 타이밍인 거여)

 

백중사리,

모래톱에서 이물로 튀어 오른 달의 허연 배 위로,

발기한 하늘에서 별들이 사출되듯 덤벼든다.

 

물보라로 떠 날리는 뱃고동소리에

갑판의 카바이트 불빛들이 확 옮겨 붙으며

얼마 남지 않은 새벽 어둠을 마저 태운다

닻올린 발동선이 투우처럼 파도를 씩씩 뒷발질하며

거대한 낯선 하루 속으로 쳐들어간다

 

트이는 먼동 속을 섬들도 우따라 나선다




'국내 문학상 > 바다문학상(해운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4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9.10
제13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11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10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9  (0) 2020.03.30
728x90


[대상] 바다횟집 / 박선우


서너 평 수족관

바다의 서사를 지느러미로 쓰고 있는

농어의 비린 필체가 활처럼 휜다

물살, 물에도 살이 있다는 말

마지막까지 실감한다

뜰채에 잡힌 부력이 곧바로 허공에 충돌한다

낯선 눈동자들이 숨통을 조여오니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물의 지문을 따라 회귀했던

어미에 대한 기억이 거기서 끝났다

탁, 그녀의 칼끝은 타이밍이다

기억을 잘라내는데 가차가 없다

물결무늬로 각인된 농어의 동공이 풀리고

칼끝은 빠르게 부위별로 해체를 한다

쫄깃한 공복을 느낀 바람이

살점 하나를 물고 바다로 내빼고 있을 동안

포를 뜬 살점이

그녀의 칼끝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죽음의 무늬가 저렇게 맑고 투명할 수 있다니

그 현란한 해체 앞에 사람들의 눈은 싱싱해지고 만다

그러나 그녀가 삼십 년 넘게 되풀이한 건

물고기 칼도마 접시만은 아니다

망각이다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비롯됐다는 비난 속에서

바다가 남편을 삼키고

자식이 소식을 끊어도

참고 또 참아도 되살아나는 울분이 있어

팔딱거리는 기억을 잘라내고 있는 거다

반복이란 무서운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도 과거를 묻지 않고 손놀림만을 본다

다만 그녀가 혼자 있을 때

몸뚱이를 잃은 어두처럼 하늘을 존다는 걸

죽음을 앞둔 물고기들만 알 뿐이다




 

'국내 문학상 > 바다문학상(해운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3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12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10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9  (0) 2020.03.30
제8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728x90



[대상] 삮미친 바람 / 김종선






[본상] 빅뱅 / 강동일


뭇별들까지 바다가 우주를 안을 때

하늘은 거미줄에 걸려

휘둘리고

바다는 중력의

그네를 탄다


몸뚱아리만큼의 질량으로

출렁이고

숨의 진동만큼 휘어진 시간 끝에

거미가

파도를 탄다


발톱 끝으로 끠엄띄엄

빛을 당겼다 퉁기고

파도는 찰나의 가루를 뿌려

생명을

발광한다


몇백 억 년 파도는

검게 탄 거미의 발톱을 표백하고


아기는 바다로 갈 시냇물에

하얀 발을 씻는다










'국내 문학상 > 바다문학상(해운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2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11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9  (0) 2020.03.30
제8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7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728x90

9

'국내 문학상 > 바다문학상(해운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1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10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8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제7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6  (0) 2020.03.30
728x90


[대상] 바닷가 시인학교 / 최일걸


출항을 서두르는 분주함으로

옹기종기 모인 시 창작 수강생들이

어군탐지기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저 깊은 바다 속 비릿한 시어를 쫓을 때

바다는 거대한 괄호로 열린다

기마부대의 말발굽처럼 밀려드는

저 거센 파도를 

단 한 줄로 요약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다만 심중에 자맥질하여

절망의 깊이를 가늠할 따름이다

모음과 자음과 짜 늘이는 그물에

코를 꿰는 시간은 

다급하게 지느러미를 터는데

얼마나 더 애태워야

시의 행간에 목숨을 걸 수 있단 말인가

패배를 인정하는 쓰디쓴 눈물만이

시를 불러들일 수 있단 말인가

와락 달려드는 파도의 자락에

나침반처럼 떨리는 펜으로 휘갈겨 쓰면

팽팽하게 당겨진 수평선이

빠르게 밑줄을 긋는다






'국내 문학상 > 바다문학상(해운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9  (0) 2020.03.30
제7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6  (0) 2020.03.30
5  (0) 2020.03.30
728x90


[대상] 과녁 / 유대준


바다 위에 붉은 과녁 하나 떴다

내안에 부러진 큐피터의 화살

뽑아, 시위에 건다

쏜살같이 날아가 박힌

화살을 삼킨 해가

폭발하듯

참 부시다


저녁망 남은 바다에 흉터처럼

초승달 떴다








'국내 문학상 > 바다문학상(해운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0) 2020.03.30
제8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0) 2020.03.30
6  (0) 2020.03.30
5  (0) 2020.03.30
4  (0) 2020.03.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