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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출항의 새벽 / 안연희


째보선창에 거대한 녹슨 쇠닻 하나,

긴 잠 속 웅크린 잠꼬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해저 뻘을 파고들던 야생의 쾌감도 잊은 지 오래,

마른 새벽 달빛이 시든 본능을 콕콕 쪼아대자

늑대처럼 부스스 깨어나 고개 쳐들고 우우 흐느낀다

 

식전부터 통통거린 발동선

수부(水夫)가 달빛에 퍼덕이는 오늘의 기상(氣象)을 가늠하며

뒤엉킨 그물채들을 힘껏 조이자

저도 모르게 흐르는 인중의 차디찬 콧물이 짭짤하다

(어디 이 바닥에 애초부터 항로(航路)라는 게 있었능가)

 

먼 시공 쪽으로 호스의 물줄기처럼 뿜어지는

등대불빛을 타고

구릿빛 물결 출렁대는 어깨춤사위 따라,

달덩이 같은 스치로폼 부표들이 어스름 물길을 튼다

 

해풍과 너울파도인들 어찌 수부의 욕망을 다 어거하랴

어류 탐지기에 포착된 연안의 반점뭉치들이

배보다 앞서 출어(出漁)한 냉동실의 얼음내를 맡았는지

저만치 바다 속을 흩어져 달아난다

(어쨌거나 투망질은 타이밍인 거여)

 

백중사리,

모래톱에서 이물로 튀어 오른 달의 허연 배 위로,

발기한 하늘에서 별들이 사출되듯 덤벼든다.

 

물보라로 떠 날리는 뱃고동소리에

갑판의 카바이트 불빛들이 확 옮겨 붙으며

얼마 남지 않은 새벽 어둠을 마저 태운다

닻올린 발동선이 투우처럼 파도를 씩씩 뒷발질하며

거대한 낯선 하루 속으로 쳐들어간다

 

트이는 먼동 속을 섬들도 우따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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