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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생각을 했다 / 박은숙

 

 

오늘은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또 두어 명의 나를 생각했다

 

거울이 늘어나면 결국,

반사되는 얼굴들은 조각이 되겠지

생각과 오래 대화하는 일이

조각난 거울 속을 한데 모아

와장창 깨지는 일과 닮았을까

문득, 또는 불현듯 같은 순간들이

깨진 사금파리같이 눈을 찌를 때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내 생각에 찡그린 정각이 찾아온다.

때로는 늦은 일이 빠르기도 하고

더딘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정각이 울렸다는 것은 이미

늦었거나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두어 명의 남이거나

두어 명의 나의 일에 불꽃이 튀었다는 것이다

 

남의 일이 곧 나의 일

남처럼 두근거리는 일도 없다

내가 오늘 기쁘다면

그건 두어 명의 남이 해결된 일이다

 

남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넓다

그들이 나보다, 가 아닌

내가 그들을 더 미워한 일이 많다

어쩌면 남 생각에 너무 불려 다녔는지

오늘은 유독 피곤하다

 

 

 

 

[심사평]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심사는 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심사에서는 허연(시 인), 김소연(시인), 안현미(시인), 김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5명의 심사위원들이 응모된 모든 작품을 읽고 각각 우수작 후보 2~3인씩을 선정했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후보 작품들을 2차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 전원이 활발한 논의를 통해 검토하고 최종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과정을 통해서 논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응모작 가운데 산문시적 경향의 작품이 상당수 있었는데, 산문적 형식의 활용에 따르는 내적 필연성을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의 성취가 필요해 보였다. 둘째, 응모 편수가 많다 보니, 연작시적 경향의 시도 제법 있었는데 모티프의 반복 등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개별 시편들의 시적 성취에 편차가 있거나 기계적 반복에 머무르는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셋째, 시적 자아가 1인칭의 진술을 동반하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하더라도, ‘타자와 단절된 고립무원의 심경을 표현하는 데만 머문다면, 문학의 대화적성격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나와 타자의 접촉면을 고뇌하고 성찰하는 시적 태도는 여전히 필요해 보였다.

 

이런 단점들을 잘 극복하고, 나와 타자 사이에 연루된 관계성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천착한 남 생각을 했다9편을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시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안에서의 기대와 좌절, 인식과 오인, 희열과 절망과 같은 모순감정을 서늘한 미적 거리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수상작과 함께 응모된 9편의 작품들 역시 정제된 시적 형식과 대상에 대한 시적 자아의 섬세하고도 차분한 응시를 통해, 관성화된 일상을 뚫고 솟아오르는 인식론 적· 감각적 낯설게 하기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성의 생기(生氣)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통찰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심사위원 일동은 만장일치로 남 생각을 했다9편을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심사위원: 허연(시인), 김소연(시인), 김언(시인), 안현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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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욱

 

 

호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물줄기는 날카로워진다

연약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

어김없이 남자는 옥상에 올라

채소에 물을 준다 채소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다 정확히

박스는 사각의 스티로폼, 하얗게

모여 있는 알이 위태롭다

 

옥상 아래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언제 깨어나 울지 모른다, 시커멓게

동굴 같은 입 가득 허기를 물고 남자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없는 일

아내는 왜 나비를 좋아했을까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남자는 호스를 움켜 쥔다

우리는 무해한 짐승일까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처럼

담장 위로 박혀 있는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

 

 

 

여우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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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문화재단은 1322회 수주문학상수상작에 이동욱(42) 시인의 ()’를 선정했다.

 

수주문학상은 부천 출신 시인 수주 변영로(1897~1961)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전국 문학인 404명이 지원한 이번 문학상의 출품작은 총 3,308편이다.

 

심사위원단은 이미지의 전면화, 이미지를 제시하는 새롭고 신선한 언어의 운동이 눈길을 끌었다날카로운 물줄기의 반복과 채소의 순종이 대비되는 장면이 강렬하고 참신하다고 평가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 이동욱 시인은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바위제목의 글로 수상소감을 대신하고 이번 수상을 통해 시인으로서 나아갈 길을 명확하게 깨달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동욱 시인은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과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으며, 2019년 소설집 여우의 빛을 출간했다.

 

수주문학상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올곧은 시 정신과 뛰어난 문학성을 잇고 발전시키기 위해 1999년 제정됐다. 시 부문 문학상으로 수주문학제 운영위원회와 부천문화재단이 주관하며 부천시가 주최한다. 수상자는 상금 1,000만 원을 받고 당선작은 현대시’ 9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919일 복사골문화센터 2층 복사골갤러리에서 열리며 수주 변영로의 정신을 연구하는 콜로키움을 함께 가질 계획이다. 이날은 9월 초 당선작 발표 예정인 부천신인문학상의 시상식도 열려 부천에서 발굴한 신인과 지역 문학인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로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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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 김재원

 

 

동물원이었어요

걷고있었어여

자꾸만 안으로 들어갔어요

줄서서 입장했는데 아무도 없어요

아이스크림통에 아이스크림이 없었어요

풍선은 쭈그러들어 있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아무도 없었지만 용기내서 말했어요

이건 아니야

길이 깊어지고 끝도 없어지고

아무도 없는 동물원에서 길을 잃은 이야기는 재미없어

사람들은 있어야 하고

나무들은 파래야 하고 새들은 지저귀는 거야

자꾸만 이런 곳으로 이끄는 너는 누구니

내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듯 동물원을 텅텅 울렸어요

비는 기치지 않았고

기린이 있던 자리에 기린이 없었어요

설마 폐허를 보고싶은 거니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어요

그때 호주머니가 벌어지듯

풍경 안에서 손이 나왔어요

다섯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손이

나를 향해 내밀어지져 있는데

그걸 잡아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몰랐어요

그건 아이의 손이었어요

그걸 잡고 끌면 그 애가 죽을 거 같았어요

그걸 잡고 들어가면 다시 못 올 거 같았어요

어쩌면 좋을지 몰라 비를 맞고 서 있었어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빗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나봐요

길 한가운데 서서 내가 울고 있더라고

나중에 엄마가 말해줘서 알았어요

엄마를 따라가면서 돌아보니

그 애 손은 없고 갈라진 검은 공간에

흰 얼굴이 보였어요

세상에 와서 맨 처음 본 얼굴처럼

그 애는 나를 보고 서 있었어요

가지 않고 거기 있었어요

 

 

 

 

[심사평]

 

우선 450명이라는 응모자 수에서 수주문학상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어서 놀랍고도 반가웠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올린 24명의 본심 작품 중에서 당선자를 가려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당선자의 작품 중에서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는 꽤 많은 논의가 오갔다. 한 편의 시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는 있게 마련이어서 당선자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줄 한 편을 집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당선작이라는 절대적인 한 편을 고르는 데 심사위원들은 끝까지 미련을 놓지 못했다.

 

오랜 논의 끝에 기린도 없고 아이스크림도 없고 풍선도 쭈그러진 텅 빈 동물원이라는 꿈속의 폐허를 통해, 어린 화자가 느끼는 결핍의 막막함으로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삶의 한계를 보여준 동물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는 한 세계로부터 희미해지는 일은/위독한 꿈에서 여러 번 깨어나는 일검은 숲이라는 현대인의 불안의식과 서로에게 다가서는 순간 각자로부터 멀어져가는 세계일몰라는 도시 한 구석의 삶을 지키는 우리 자신들의 소외의식을 표현한 비교적 고른 시편들로 주목을 받았다. 심사자들은 억압적인 도시 현실에서 무의식의 심연을 응시하는 섬세하고도 깊은 관조의 힘과 시편마다의 표현의 밀도를 높이 평가했다.

 

당선작과 가장 많이 거론된 작품은 사과와 식탁4편이었다. 이 작품은 식탁 위에 놓인 사과 한 알을 통해 수만 세기의 별들이 돋아 사라지는 식탁의 끝없는 시간의 세계와 사막의 모래는 바다로 변하고/식탁 위에서 사과가 날개를 펴는 땅과 바다와 허공의 세계를 이어 무한한 공간으로 상상력을 넓혀간 수작이었지만, 당선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 편차가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적했다.

 

또 다른 유력한 당선 후보로 논의된 작품은 장화였다4편이었다. 늘 장화를 신고 생활하는 상목 아재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의 궤적과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생의 비애감을 자연스러운 필체로 그려내 눈길을 끌었으나, 어딘가 익숙한 정서와 단선적인 전개가 작가의 개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 밖의 논의 작품은 문신4편이었는데 문신을 보면 몸의 가장 외로운 곳을 보는 것 같다/중략/묶인 꽃은 떨어지지 않고/어느 눈알보다도 더 검은 입묵이 기록된 곳이다라는 발견이 인상적이었으나 치열함 없이 너무 쉽게 단정 짓거나 밀고 나가는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무엇보다 도시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사고하고, 깊고 검은 사유의 숲속을 함께 거닐게 해준 당선자를 만난 것은 심사자 모두에게 큰 기쁨이다. 응모작이 풍성한 가운데 수상의 영광을 얻게 된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수상하지 못한 모든 응모자들께도 응원과 감사를 전한다.

 

- 심사위원 천수호, 오형엽, 이기성, 신용목, 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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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 저편 / 장정욱

 

 

질긴 죄목이었다

 

젖은 아이를 안고

무지개가 이어진 계단을 올랐다

 

아이의 입이 지워졌다

 

울음을 모르는 입에서

뚝뚝

 

이승의 끝과 끝이

파르르 떨렸다

 

환청의 기저귀를 채우고

빈 젖을 물리고

 

젖지 않는 오줌

아물지 않는 배꼽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

 

 

 

 

빨랫줄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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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절실한 상처의 기록

 

본심에 오른 서른아홉 분의 응모작들을 심의하여, 20<수주문학상>의 수상자를 가리는 것이 선자들의 소임이었다. 서정성 짙은 가편(佳篇)들이 주를 이룬 가운데 실험을 앞세운 역작들 또한 적지 않아서, 심사는 즐겁지만 고심 어린 작업이 되었다. 필요 이상으로 분량이 많아 산만해진 작품군, 묘사와 상상의 적절한 균형을 기하지 못한 경우들, 너무 낡았거나 너무 기발한 것에 관심이 치우쳐 작시(作詩)의 의의를 찾기 어려운 사례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다섯 분의 작품이 마지막으로 손에 남았다. 이들을 놓고 숙의를 거듭한 끝에, <빨랫줄 저편> 4편을 응모한 장정욱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서리태> 4편을 응모하신 분은 자연물을 관찰하고 거기 상념을 섞어 삶의 지혜로 바꾸어낸다. 몇몇 작품들에서 옳은 말을 익숙한 방식으로 거듭 개진하는 무난함이 느껴졌다. <나사를 위한 협주곡> 4편은 흥미진진했다. 노동이 소외를 거쳐 주체의 분열에 이르는 과정을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천착하고 있다. 이 공모의 안정적이고 정격적인 심사 틀에 개의치 말았으면 한다. <망치질하는 사람> 4편에서 현실과 꿈, 사실과 비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민한 감각과 심리의 변동을 조율하는 언어의 힘이 느껴졌다. 여러모로 매력적이었으나, 이 분에게 더 어울리는 다른 무대가 있을 것이다. <동태는 오일장으로 회귀한다> 4편은 끈기 있는 언어 세공, 섬세한 의고(擬古) 취향이 눈길을 끌었다. 기교가 승하고 미문의식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빨랫줄 저편>4편은 시가 절실한 상처의 기록에서 출발함을 확인시켜주는 사례이다. 내면에 박힌 기억의 파편들을 섬세한 언어 감각과 적절한 비유로 정교하게 들추어낸다. <빨랫줄 저편>은 빨래 너는 행위와 초혼의식을 절제된 정념으로 응축해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상 전개가 번거롭지 않고 사물과 말의 선택이 빈틈없고 순조롭다.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는 결구는 별 기교 없이도 슬픈 전율을 선사한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도 고된 연마의 자취가 엿보였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이영광(시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중에는 참신한 시각과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한 시들이 최종적으로 선택될 수 없었던 것은, 시적 발상을 끝까지 탄력 있게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다.

 

<한차례>, <서리태 콩>, <울렁거리는 나선>을 쓴 응모자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뛰어났고, 위트도 있었다. 그러나 <한차례>의 경우, 반짝이는 1, 2, 3연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이 흐트러졌고, 그것은 시가 설명적이 되거나 상투성을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울렁거리는 나선> 은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으나, “잘못 그린 나선의 상징이 약한 점이 아쉬웠다. <망치질하는 사람>의 응모자에게서도 여러 모로 시인의 자질을 느낄 수 있었으나, 평이한 주장이나 상투적 전개가 종종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처방전>, <아버지와 탁주>, <나사를 위한 협주곡> 외 다수의 응모작이 시선을 끌었으나, 전체 응모작의 완성도를 통해 평균적인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인 <빨랫줄 저편>을 쓴 응모자는 투고한 시들이 가장 고른 수준을 보였으며, 완성도 역시 높았다. 특히 <빨랫줄 저편>은 우리 민족에게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시를 쓴 사람의 개성적인 감각에 상상력이 더해져 짧지만 울림이 크다. 그러나 환청의 기저귀” “젖지 않는 오줌처럼 시의 맛을 감소시키는 표현을 덜어내거나 구체화시키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시란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거친 세상에서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축을 견지하며 차분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언술 형태이다. 그처럼 가련(!)하나 당당하고 짜릿한 세계에 한 발 더 들어온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조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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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 장유정

 

 

수백 년 전 누에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모서리죽임 같이 흙으로 쌓아올린 사각기둥

실을 짓던 시간들이 뭉쳐있었다

무한한 옷 한 벌 품은 실들이 껍질 속에 있었다

집을 바라는 열의의 모형처럼 타임캡슐엔

우주에 관련한 보고서도 발견되었다

 

집 한 채 따로 들고 나앉듯

방안에는 숨을 뽑아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좁은 침낭 속에 들어 잠을 자는 듯 죽어 있는 누에고치

 

자기만의 중심축으로

한곳에 치우침 없이

부드러운 곡선 속에 계속 굴러가는 방향지시등처럼

마찰계수가 작았을 것이다

뾰족한 끝이 보이고

자꾸만 균형 잃고 흔들릴 때

세상과 닿는 유연한 포장

쉼 없이 돌고 도는 지구의 자전처럼 모서리가 둥글다

 

잠자는 머리를 어느 쪽으로 돌리지 않은 것들은

화려한 변태를 겪을 수 있다는 듯

 

미사일 저장고를 개조하듯

우주선 캡슐에 건전지 넣는다

긴급 피난형 집처럼 누에가 고치를 짓고 있다

우화등선처럼 손끝에는

하얀 벌레가 한 마리씩 꿈틀거렸다

 

 

 

 

그늘이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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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있는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고경숙)'19회 수주문학상' 당선자로 군포의 장유정 시인(본명 장봉숙)<누에>를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상금은 1천만 원이다.

 

문효치(시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문태준(시인)은 심사평을 통해 "'누에'는 과거의 시간을 불러내고, 옛 시간이 쌓인 공간 즉 분묘를 누에의 공간으로 바라보지만, 그 유택에 보관된 시간만큼은 둥글고 유연한 것으로 해석하는 부드러운 상상력이 특별했다. 개성적인 시안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유정 시인은 당선소감을 통해 "하얀 누에가 꿈틀거리며 고치를 짓고 있는 것과 마치 알 듯 모를 듯 시를 만날 때의 감정이 문득 닮았다는 느낌, 무엇보다도 수주문학상을 받게 되어 더 큰 영광입니다. 부족한 제 시에 면역력을 키워주신 문효치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 두 분께 큰절을 올립니다. 수주문학상의 시 정신을 이어받아 더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81일에서 20일까지 접수된 462명의 작품 2,500여 편이 예심을 통하고, (40명 작품 선정) 본심(심사위원: 문효치 시인, 문태준 시인)을 거쳤으며 시상식은 20171028() 오후 1, 부천 송내어울마당 부천예총 교육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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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정어리고래 / 하수현(하성훈)

 

 

바람 떼가 시장통까지 따라 들어와

쇠정어리고래 주위를 맴돈다

생고등어 뱃속에 왕소금을 던지던 한 아낙은 바람결에 움찔하다가

고래 쪽으로 눈길을 단단히 꽂았고,

행인들도 언 발을 머리에다 이고는 모두 입을 닫는다

어쩌다 운명의 그물 안으로 뛰어든 고래가

시장 바닥에 드러누우면

흡사 집 한 채 통째로 자빠지기라도 한 듯

무조건 시장통 빅뉴스가 된다

쇠정어리고래의 허연 배에 어설픈 현관문 하나

뚝딱 만들어지고부터

창자 허파 태평양의 물결이 토막토막 잘려 나오고

뒤이어 나온 살덩이들은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애를 통곡한다

고래 창자에도 작은 창문을 내고 나니

소화가 집행유예된 오징어들,

()을 모를 만큼 절반쯤 무너진 물고기들,

한때 콜라가 주인이었던 붉은 페트병도 나온다

붉은 페트병은

그간의 암흑기를 털어내고 부활의 나라로 가리라 나는 믿는다

그다음으로는 포유류를 향한 알 수 없는 동정심도 도려내고

인도양 대서양의 수심(水深)을 후려치는

고래 떼의 장엄한 유영(遊泳)마저 뜯어낸다

비운의 쇠정어리고래는 잘린 살덩이들이 개별적으로 울었을 뿐

몸통이 절반이나 해체될 때까지

이 초유의 현실을 외면하느라 줄곧 눈을 감고 있다

어시장 바로 뒤편, 파란 바닷물 쪽을 보면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 쇠정어리고래의 진혼을 위해

겨울바다를 비장(批狀)으로 달려온 고래 떼들이

상기된 낯으로 수런거릴 터인데,

울컥거리던 저녁바람도 이젠 날을 세운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38명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상상력의 과잉이나 언어의 위축 없이 각자 자기 시의 길을 걷는 시적 개성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 노인의 아침4, 꿈에 단골집 하나 있다6, 쇠정어리고래4편의 작품이 돋보였다.

 

노인의 아침외의 시는, 군더더기가 없다. 시의 형식은 온건하면서도 시 속에 전개된 인물이나 사건들은 일상 너머 비범한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들판 여기 저기 아침의 돛을 올리는/농투성이들의 목선,”의 시구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함께 보내온 시의 편차가 뚜렷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나머지 시가 단조로운 언어의 회로에 갇혀 있어 아쉬웠다

 

꿈에 단골집 하나 있다외는, 말과 상상력이 부드러운 관절로 이어져 시상이 자유롭고 활달하다. “작은 나무문을 열면 늙고 무거운 시인이 탁자에 엎드려 고래처럼 울고 있다/그를 바다로 옮기는 일은 그만 두었다, 분명 새로운 언어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그 언어가 관습화된 인식의 지표를 뚫고 들어가 어떠한 시적 개성을 획득할 것인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쇠정어리고래외는 쇠정어리고래의 허연 배에 어설픈 현관문 하나 뚝딱 만들어지고의 시구와 같이, 생생하고 적확한 묘사로 언어의 힘을 세운다. 잡혀온 쇠정어리고래의 해체를 통하여 생활의 파란만장과 삶의 비루함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뚝심있는 말과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대상을 윽박지르지 않고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걸어나오게 하는 솜씨도 돋보인다. 함께 보내온 작품의 수준도 고르고 치밀하다. 쇠정어리고래를 수주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응모작도 탄탄하거니와 앞으로 수상자의 시의 장래를 가늠해볼 때 그런 믿음은 더해진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씀을, 수상에 이르지 못한 이름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 심사위원  이승하, 송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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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의 비결 / 박형권

 

 

어제 잠깐 동네를 걷다가

쓸쓸한 노인이

아무 뜻 없이 봉창문을 여는 걸 보았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내 발자국 소리를 사그락 사그락

눈 내리는 소리로 들은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문 밖과 문 안의 적요寂寥가 소문처럼 만났다

적요는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탱탱하여서 느슨할 뿐

안과 밖의 소문은 노인과 내가 귀에 익어서 조금 알지만 그 사이에 놓인 경계는

너무나 광대하여

그저 문풍지 한 장의 두께라고 할 밖에

문고리에 잠깐 머물렀던 짧은 소란함으로

밤은 밤새 눈을 뿌렸다

 

어제오늘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관하여

나직나직하게 설명하는 저 마을 끝 첫 집의 지붕

 

나는 이제 기침소리조차 질서 있게 낼만큼

마을 풍경 속의 한 획이 되었다

나도 쓸쓸한 노인처럼 아무 뜻 없이 문 여는 비결을

터득할 때가 되었다

실은 어제 밤새워 문고리가 달그락거렸다

 

문고리에 손 올리고 싶어서

나는 문을 열었다

 

 

 

 

전당포는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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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50명의 응모작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심사했을 때와 달리 작품의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되어 놀라웠고 그래서 심사가 다소 힘들지만 즐거웠다. 수주문학상에 대한 문단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작품도 소홀하게 읽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해서 심사는 다소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박형권의 쓸쓸함의 비결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두 심사위원의 의견이 쉽게 일치했다.

 

쓸쓸함의 비결은 자연의 변화와 기운이 하나의 사물 속에서 감지되는 순간,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무심한 몸짓 속에 감춰져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포착한 수작이다. 이 시는 그 순간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이 광풍처럼 지나간 자리, 욕망과 희망과 기대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남는 쓸쓸함이 사실은 얼마나 풍요로운 세계인가를 슬쩍 내비쳐 보여준다.

 

노인이 봉창문을 여는 순간에 갑자기 생기는 안과 밖의 광대한 경계, 노인과 나를 가르는 낯선 경계,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득한 경계들이 문풍지 한 장의 두께로 압축되는 과정은 음미할만하다.

 

시적 자아가 사라져서 하나의 풍경 속에 조화롭게 녹아드는 희열의 경험, 세속적인 모든 것들의 가치와 의미가 무화되는 지점에 대한 종교적 미학적 원리를 한 노인이 문을 여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에서 이끌어내는 방법은 탁월하다.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중에서 시적 자아의 몸과 마음에서 오랫동안 숙성되어 일체가 되어버린 원시적인 바다의 싱싱함과 생동감을 실감나게 그린 가덕도 탕수구미 시그리 상향은 매혹적이다.

 

수상작과 함께 논의된 응모작들 중에서는 이정연, 김현서, 이성목의 작품이 주목할 만하였다. 이정연의 은 시적 자아의 몸에서 날아오르려는 새의 내밀한 움직임과 생명력을 칼날을 쥘 때의 감각으로 향상화한 가작이다. 설명할 수 없고 개념화할 수 없는 몸의 고유한 살아있는 느낌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힘이 뛰어나다.

 

김현서의 얼룩의 영역은 한 여자를 관찰하면서 내면의 미세한 움직임을 끓어 넘치는 냄비의 국물, 마른 양파껍질 등과 같은 사물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방법이 볼만하다. 시적 자아의 내면에서 그녀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꿈꾸면서 여자와 연애를 재구성하는 방법도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두 응모자의 작품이 보여준 기량과 개성은 수상작에 뒤지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다소 고르지 못해 아쉽게 내려놓아야 했다. 이성목의 찌라시는 지하실로 잘못 들어온 귀뚜라미며 매미 등을 관찰하며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의 세계를 허구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흥미로운 작품인데 몇몇 상투적인 시어들이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켰다.

 

- 심사위원 최문자 (시인. 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김기택 (시인.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새로움에 보내는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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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구자룡)'17회 수주문학상' 당선자로 경남 창원의 박형권 시인의 쓸쓸함의 비결7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있는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구자룡)는 지난 81~820일까지 접수된 전국 305명의 작품 2,600여 편이 예심(50명 작품 선정)을 거쳐 본심에 올라왔으며, 심사는 최문자 시인(배재대학교 교수)과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이 맡았다.

 

심사위원은 " '쓸쓸함의 비결'은 자연의 변화와 기운이 하나의 사물 속에서 감지되는 순간,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무심한 몸짓 속에 감춰져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포착한 수작이다"면서 "이 시는 그 순간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이 광풍처럼 지나간 자리, 욕망과 희망과 기대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남는 쓸쓸함이 사실은 얼마나 풍요로운 세계인가를 슬쩍 내비쳐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히 "노인이 봉창문을 여는 순간에 갑자기 생기는 안과 밖의 광대한 경계, 노인과 나를 가르는 낯선 경계,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득한 경계들이 '문풍지 한 장의 두께'로 압축되는 과정은 음미할만하다."고 평했다.

 

더불어 "시적 자아가 사라져서 하나의 풍경 속에 조화롭게 녹아드는 희열의 경험, 세속적인 모든 것들의 가치와 의미가 무화되는 지점에 대한 종교적 미학적 원리를 한 노인이 문을 여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에서 이끌어내는 방법은 탁월하다."고 밝혔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20151027() 오후 3, 부천시청 5층 만남실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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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 이병일

 

 

기린의 목엔 광채 나는 목소리가 없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릴 수가 있지

그러나 강한 것은 너무 쉽게 부러지므로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지

 

기린의 목은 뿔 달린 머리통을 높은 데로만 길어 올리는 사다리야

그리하여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쉽게 잡아챌 수도 있지만

 

사실 기린의 목은 공중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중이야

쓸데없는 곡선의 힘으로 뭉쳐진 기린의 목은

일찍이 빛났던 뿔로 새벽을 긁는 거야

 

그때 태연한 나무들의 잎눈은 새벽의 신성한 상처와 피를 응시하지

 

아주 깊게 눈을 감으면 아프리카 고원이,

실눈을 뜨면 멀리서 덫과 올가미의 하루가 속삭이고 있지

 

저만치 무릎의 그림자를 꿇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기린의 목과 목울대 속으로 타들어가는 갈증의 숨을 주시할 때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유연하고 믿음직스럽게

아름답지 힘줄 캄캄한 모가지 꺾는 법을 모르고 있으니까

 

 

 

나무는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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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서정시란 어떤 대상을 빌려 내면 고백, 즉 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대상의 선택과 출현, 내면 고백은 하나로 자연스럽게 빚어져야만 한다. 한 시인의 어법을 빌리자면, "나는 뱀을 빌려 고백하겠다. 나는 뱀의 성질이 아니라 뱀의 모양을 빌릴 수 있다."(김행숙, 사춘기) 대상과 표상의 적합성이 이루어질 때 시의 깊이도 생성된다.

 

그러니 시의 대상을 선택하는 찰나 시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40여 분의 작품들이었다. 저마다 다채로운 개성으로 시적 진경에 가 닿았기에, 그걸 한 편 한 편 읽어내는 일이 즐거웠다. 최종심에서 다뤄진 시들은기린의 목은 갈데없이,가막조개,꽃마리,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방식,사랑하는 이에게,미안의 피안등 여섯 분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수준이 기대에 비해 상당히 높아서 놀랐다. 다들 시의 기본을 충실히 다진 단단한 시편들이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시를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기대되었다. 그중에서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외 작품을 낸 응모자가 빼어났다.

 

처음 시를 읽을 때 왜 하필이면 기린일까,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지만 "곡선의 힘으로 뭉쳐진 기린의 목"에 대한 상상력은 단박에 독자를 아프리카 고원으로 안내한다. 기린은 강하기보다는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연약한 짐승이다. 그 길고 아름다운 목을 가진 기린이 사는 아프리카 고원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엄연하고 "덫과 올가미"들이 널린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고원이 먹고 먹히는 정글 법칙이 엄연한 신자유주의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자본 논리가 판치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 탈바꿈할 때, 우리 심사자들은 이 시인의 솜씨에 감탄했다. 당선작과 함께 응모한진흙여관,풀피리,녹명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언어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 독창적 발상, 사물에 대한 해석력, 능란한 시행의 배열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빼어난 시편으로 수주문학상을 수상한데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고형렬, 장석주()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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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구자룡)는 제16회 수주문학상 당선자로 이병일(33, 서울) 시인을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수주문학상은 부천이 낳은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있으며 총상금은 1000만원이다.

 

이에 앞서 지난 81~20일까지 접수된 331명의 작품 2.800여 편이 예심(40명 작품 선정)과 본심 (심사위원: 장석주 시인, 김명인 시인)을 거쳤으며, 시상식은 오는 1028() 오후 3, 부천시청 5층 만남실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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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의 방식/ 심강우(심수철)

 

 

개미를 낱말로 개미들을 문장으로 아무 데나

펼쳐진 개미집은 구멍 난 책으로 읽는다

여왕개미의 혼인비행은 표지를 장식한 제목이다

첫 문장의 고비를 넘기면 문장이 문장을 물고 나가는 법,

잉크병에서 듬뿍 찍어낸 낱말들이 길바닥도 모자라

나무와 새의 몸통까지 적어 나가는 왕성한 필력

아파트 화단이며 담장이며 경계 너머

창틀과 침실까지 서술하는 바람에

주제를 벗어났다는 비판에 시달린다

낱말을 쿡 찍는 지적보다 신발 밑창 단위의 어절로

지워지는 현실, 그래도 마침표를 찍지 않는 건

분량 제한이 없어서일까

 

당신과의 만남을 제목으로

내 몸에서 빠져나간 문장을 생각한다

처음엔 내가 말할 수 있는 영역, 만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가지런히 써 내려갔었다 연애와 혼인엔 수식이 많았고

아이를 키울 땐 각주가 많았다 변명과 책임만으로

다 쓰지 못한 본문은 늘 빈약했지만 금박 장정,

베스트셀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구름은 그래서 과중하다 싶으면 비를 내리고

강과 바다는 뜨거운 태양과 거래를 했던 것이다

체중을 줄여나갔던 것이다

 

오타로 찍혀 찾아온 공원 벤치

풀린 구두끈을 타고 구겨진 바짓단을,

그 위의 보푸라기까지 설명하려 드는

저 문장의 행갈이를 선뜻 털어버리지 못하는 건

적정한 매수(枚數)를 잊고 살아온 까닭이다

상투어를 버리고

군더더기를 버리고

아직 묶지 못한 나란 원고를 퇴고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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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5회 수주문학상의 예심에서 추천된 수상후보작들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것은서술의 방식」「기울어진다는 것」「먼지의 계보등을 응모한 심강우 씨의 시편들이었다. 이 응모자의 작품에서는 쉽게 해독되는 것 이상으로 진중한 심사를 가라앉히는 차분한 서정성이 돋보였다.

 

시인은 대상 속으로 스며들면서도 결코 함몰되지 않는 시선의 집중력을 유지한다. 진심을 온축시킨 이 응시에는 그리하여 고요한 활기가 느껴진다. 사변적인 주체조차 사물의 구체성과 어울리게 주제의 시선을 대상 깊숙이 끌어다 놓는 수사적 재능은 오랜 시간 시를 갈무리해온 결과이리라. 말하자면 그것은 이전의 시 세계를 모질게 닦달해서 얻어낸 전취물이 아니라, 우리 시의 전통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발전시킨 능력이라 믿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새로운 시의 미학을 향한 문제적 시선이 옅은 대신, 발화된 심상의 근거를 안고 가는 그 나름대로의 형상성이 살아있다. 그리하여 이 응모자의 시 세계는 이즈음 시들이 보여주는 장황하고 난삽한 중첩에서 비켜서게 되는 것이다. 아쉽다면 수사적 평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만의 개성을 뚜렷이 구사하는 구상력을 배가시키는 것이 형상성의 묘미를 살려내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선자(選者)들은 위의 응모자 외에도 쫄깃한 끼니, 만삭, 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외 등을 각각 제출한 응모자의 시편들도 개성적인 사유와 감각의 우수성 등으로 그 나름의 시 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판단했다. 수상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격려의 몫에 들기에는 충분하였다.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이 상이 오래도록 눈부시게 문학사의 중심에서 타오르길 바란다.

 

- 심사위원 : 천양희, 김명인

 

 

 

 

꽁치가 숨쉬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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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 낳은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있는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구자룡)2013920일 제15회 수주문학상 당선작으로 대구의 심강우(본명 심수철)시인의 <서술의 방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81~20일까지 접수된 343명의 작품 2.800여 편이 예심(39명 작품 선정)과 본심 (심사위원: 천양희 시인, 김명인 시인)을 거쳤으며, 시상식은 1029() 오후 3, 부천시청 5층 만남실에서 열린다. 수주문학상 대상 상금은 100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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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거미줄 / 정용화

 

 

덕천마을 재개발 지역

반쯤 해체된 빈집 시멘트벽에 걸린

깨진 거울 속으로 하늘이 세들어 있다

무너지려는 집을 얼마나 힘껏 모아쥐고 있었으면

거울 가득 저렇게 무수한 실금으로 짜여진

거미줄을 만들어 놓았을까

구름은 가던 길을 잃고 잠시 걸려들고

새들은 허공을 물고 날아든다

 

거미줄에 무심히 걸려있는 지붕 위

주인도 없이 해가 슬어놓은 고요를

나른한 오후가 갉아먹는다

간절함은 때로 균열을 만든다

한때 두 손 가득 무너지는 인연 하나

잔뜩 움켜쥐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가느다란 손금이 조금씩 깊어졌다

심경, 마음을 들여다볼 때 마주치는 거울 속으로

손금이 흘러들어 무수한 실금을 남겼다

균열은 어떤 부재를 품고 갈라진 틈 속마다

허기진 풍경을 흘려 넣는 것인가

 

무너짐이야말로 더 큰 열림이기에

거울 속 거미줄은 어떤 것도 붙잡아 두지 않는다

나를 흘리고 온 날

서까래 같은 갈비뼈 사이로 종일 바람이 들이쳤다

그러고 보면 깨진 거울은 무너지는 것을

움켜쥐고 있던 집의 마음이었음을

 

 

 

 

서투른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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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수주문학상이 금년 14회째라는 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불어 응모자의 수가 많다는 데 대해서 놀랐고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도 놀라운 마음이 있었다. 모두가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들이었다.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름이 가려지고 번호로만 표시된 40인의 응모작들을 둘로 나누어 각각 읽고 다시 돌려서 읽고 끝내는 한 사람의 작품을 골랐다. 읽는 과정에서는 힘이 들었지만 합의하여 당선작을 내는 데는 별반 이의 없이 순조로웠다.

 

응모작품을 읽으면서 대체로 느낀 점은 응모작들이 대체로 장황하다는 점이다. 결국 시라는 문학 형식은 마음속 원망을 언어로 풀어내되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표현하자는 데에 그 출발점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면의 감흥이 뒤엉켜 있고 표현이 또한 뒤엉켜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시들이 길어지면서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능하면 짧은 형식 속에 많은 내용을 응축시키자는 것이 애당초 시의 약속이기도 하다. 또한 서사와 서정 형식이 혼동된 작품들도 다수 발견되었다. 더구나 문학상의 주인이신 수주 선생은 매우 단아한 형식미와 언어 감각을 지닌 서정시인이신데 이런 점에서도 응모자들은 십분 고려해 주었으면 싶다는 소감을 가졌다.

 

결국 당선으로 결정된 정용화의 시작품 거울 속의 거미줄5편은 응모작 모두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을뿐더러 시가 지녀야 할 품격을 고르게 갖추고 있어서 쉽게 믿음이 갔다. 형식상 잘 짜여 있고 언어를 매만지는 솜씨가 정교했다. 한구석도 빈틈이 없다는 점이 심사위원들 간에 오간 평가의 말이었다. 버려진 사물을 바라보는 데서 얻어진 미세한 시각이 자신의 내부로 돌아와 자아 성찰의 세계를 얻어냄은 조그만 화엄의 불꽃을 만들어냄이다. 좋은 시적 재질과 정진을 좋은 시를 쓰는 데에 오래 바쳐서 이 땅의 시문학 발전에 기여해 주기 바란다.

 

이와 함께 '울음이 닿아있는 동대구로 7', '철새도래지 ', '자귀나무 ', '새들이 떠나는 서쪽 하늘은 깊다 '의 작품이 끝까지 남아 종심을 겨뤘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일가견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이들 작품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작품들이 물밑에 숨어있는데 심사위원들의 눈이 어두워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크게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도 시를 사랑하며 시를 생산해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좋은 날이 오리라고 본다.

 

- 심사위원 오세영, 나태주

 

 

 

 

나선형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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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 낳은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제14회 수주문학상 당선작으로 정용화(안양) 시인의 거울 속의 거미줄이 대상으로 결정됐다.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는 10일 접수 기간(8/1~8/20)에 응모된 작품 수는 해외를 비롯해 395 3,000여 편으로, 이 중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이 40(200여 편), 본심에서 최종 5작품 중 정용화님의 거울 속의 거미줄  4편이 당선되었다고 밝혔다.

 

정용화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으로 동국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수료.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2001 <시문학> 2006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바깥에 갇히다등이 있다.

 

운영위는 "그간 대상 1, 우수상 3명을 선정하던 방식을 바꾸어 올해부터 당선자 1명을 선정하고 상금 또한 1천만 원으로 올린 것이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심사는 오세영 시인, 나태주 시인이 맡았으며 시상식은 오는 10 26 () 오후 3, 부천시청 5층 만남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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