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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계절을 앓는 꽃 / 김형미

 

아버지 가슴에서 꽃이 핍니다

한 방향으로 돌며 가만 가만 몸을 여는 화관에

고인 울음을, 새는

뭉툭한 부리로 읽고 갑니다

영등할미 극성을 부리던 그해 삼월, 바다는

머리를 풀고 골목까지 넘실대며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다 물러갔습니다

소금기 간간한 땅이 키워낸 빈한한 초목들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함성을 줄곧 흘리곤 했습니다

울대가 터진 산하는 자주 신열을 앓다

등 푸른 새벽에 스러지곤 했지요

아득한 생처럼, 꽃잎은 피었다 쓰러지고

빈 성호를 긋던 어머니의 얼굴 뒤로

함성을 밀며 떠난 메아리도 몸 저 누웠던 여름

허공을 울리며 지나가는 한줄기 일성

그날부터 아버지는 예속되지 않은 둥근 시간처럼

몸의 바깥으로 상처를 밀어 올리는 꽃이 되었습니다

절박한 순간의 애절한 기도가

영원히 시들지 않은 무궁의 빛으로

가슴 한켠 불씨를 데워

하나의 이야기로 심지를 밝히는 꽃

붉은 화심(花心)을 감싸 안고

실 피톨 따라 희망을 파문처럼 번지며

아버지 왼쪽 가슴에서 꽃이 핍니다

 

 

 

 

 

[은상] 무궁화 꽃 속에 있으면 / 조정이

 

[동상] 무궁화 울 / 정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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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무궁화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김강인

 

금상

무궁화 편의점 / 김강인

 

 

길가의 무궁화가 오늘도 영업을 시작한다

가지런히 꽃잎 펼치고 기다리면

흥겹게 날아드는 벌 한 마리

노란 꽃가루 그득한 날개 맘껏 부빈다

이따금 찾아드는 구름 그림자

아슴아슴 가슴에 차오르면

말없이 향기를 거슬러 주기도 한다

무궁화편의점에는 바코드가 없다

가격표도 흥정도 없는 고요한 점포

무궁화의 계산법에는 등호가 없어서

언제나 덜 받고 더 주는 엉터리 영업이지만

따뜻한 엉터리야말로 편의점의 인기 상품

고였다 가는 바람을 전송할 때면

딸랑딸랑 종 소리 대신

꽃잎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새들이 바닥을 쪼며 총총이다 고개를 갸웃갸웃

 

무궁화는 그 모습이 좋아 선뜻 그늘을 내어준다

이 편의점의 가장 빛나는 조명은 진심

착시현상 같은 건 전혀 없는 정직한 영업점

오늘 무궁화편의점이 새 행사를 시작한다

한 송이 행복과 한 줄기 여유를 묶어 합니다

잠시 당신의 눈길을 내게 머물게 한다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아도 좋답니다.

 

 

 

 

동상

무궁화 꽃 / 조영기

 

 

모시적삼같이 하얀

다섯 꽃잎들 중심에서

실핏줄 터지듯

붉은 피 배어 나와

그 옛날 나라 잃었던

민족의 슬픈 혼 달래듯이

붉게 꽃 피웠네

 

어질고 기품 있는

연분홍색 마음에

수줍음 붉게 묻어 있는

고운 겨레의 향기

삼천리강산에 수놓은 듯

아름다움, 정겨움

곱게 빛 발했네.

 

 

 

 

동상

우리는 / 조경화

 

 

신이 허락한 날마다

싱그러운 초록나무에

일편단심 분홍의 꽃잎이 열리고 있다

무궁 무궁한 무궁화

매일 매일 경이롭게 피고피는

이 땅에서 부지런하고 착하게

욕심껏 누리는 자유로움에 족하다

어떤 것에도 걸림 없이

무궁화 그늘에서 안식하며

늘 품어 주고 감싸 주는 여기서

흙으로 돌아가도

다시 또 살고지고

영원한 내 나라.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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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창궁의 도서관 / 정재돈

 

수십개의 무궁화가 햇살을 대출한다

시푸른 창궁은 나무들의 도서관

한 여름 무궁화 꽃이 몇 권의 태양을 빌려온다

햇살 속에 박혀 있던 미지의 새들

꽃들이 미소 지을 때마다

미쁘게 날아와 꽃잎 위에 둥지를 튼다

새들이 날아오는 동안

이슬이 새벽 언저리에 서서

꽃잎 위에 소담한 아침을 만들면

새들은 바지런히 꽃잎 깨우고

무궁화는 한동안 사유의 길을 걷는다

새가 부리로 여름을 읽는 동안

숙련된 손으로 책갈피를 넘기는 바람

쉴 새 없이 화단을 들락날락

고루한 생각 흙속에 집어넣고

신선한 새들 흡입하는 무궁화들

한 여름 속 붉은 빛이 한 움큼씩 자란다

새들은 땅 속 심오한 곳으로 날아가고

줄곧 척박했던 대지는 삽시간

사색의 배설물로 후줄근하다

머지않아 책으로 가득했던 창궁이

허연 속살 삐죽 내밀며

화사한 날개를 퍼드덕 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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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무궁화의 아침 / 김화섭

 

이슬 한 방울 이파리에 앉아 있다

도르르 말려 있다가 바닥을 적셔준다

사방이 환해지고 있다

순간 허공에 다리를 놓는 물안개

사방이 더욱 환해지고 있다

새로 돋는 잎과 봉오리 사이로 몰려들고 있다

환한 물결이 나뭇가지로 숨어들고 있다

희부연 물과 만나면서

연둣빛 진초록이 환하게 달아오른다

빛과 어둠이 조금씩 갉아 먹히면서

안개가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바람은 자기 끝에 희고 둥근 물살을 풀어놓는다

그 가운데서 나무들은, 매일매일

새로 눈 뜨는 꽃들을 우듬지에 매단다

단심의 방사형 종 하나를 매단다

푸른 하루가 가지 끝을 달구고

댕그랑댕그랑 흰 종소리 멀리 울려 퍼지는,

이 아침 우주가 온통 맑아지고 있다

 

 

 

 

 

[격려상] 어느 폐교에 핀 무궁화 / 임세한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무궁화꽃이 피어있다

환삼덩굴이 앵두나무를 친친 감아올린 화단

바람만 놀다 가는 자리마다 익모초와 바랭이가 한창이다

그 풍경을 측은히 내려다보는 나무들

잎겨드랑이에 매일매일 둥근 아침을 매달고 있다

환한 가지와 봉오리와 톱날 잎들

그것들을 보면, 살아있다는 말이 유난히 짙푸르다

짙푸르다는 말이 뭉클, 가슴에서 솟구친다

오늘도 고요히 폐교를 지키는 무궁화꽃나무들

떠난 아이들 그리운지 교실을 엿보기도 한다

이제 석 달 열흘, 화단 둘레는 흥청거릴 것이다

벌 나비와 진딧물이 창아와 종일 노닐다 갈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림자조차 없는 교정

종일 바람만 찾아와 제 그림자를 늘려가고 논다

충무공의 큰칼 든 손목은 뭉툭 잘려나가고

유관순 누나의 태극기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떠난 아이들 돌아올 수 있을까,

연분홍 그리움을 뭉게뭉게 피워 올리며

늘 같은 모습으로 연분홍꽃을 매다는 나무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때도

마냥 제자리를 지켜온 겨레의 꽃, 무궁화

이 여름 환삼덩굴에 시달리면서도

가지마다 연분홍 기다림을 주렁주렁 매달고 산다

무언가 베겠다는 듯 톱니바퀴 잎 쳐들고

감추지 못하는 단심을 푸르게 달구고 있다.

 

 

 

 

 

[입선] 무궁화 내력 / 송인환

 

아버지가 집을 짓고 맨 마지막 한 일은

뜰에 겹겹의 무궁화를 심는 일이었다

일편단심

한 집안의 내력들처럼 무궁화에게도 꽃말의 내력이 있다

꽃숭어리를 넘치게 피워 펄럭이는 내력

 

한 여름도 안 되었는데

저 일편단심의 넓은 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불 홑청 같은 초여름을 겹겹이 벗어버리고 있다

추워서 여러 겹 겹쳐져 있는 꽃

향이 없으니 기억될 지나간 내력도 없을 꽃

무궁화 진 자리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

 

뜻하지 않는 이사는 다급하다

무궁화잎 같은 보자기로 이불을 싸는 어머니

그릇들 마다에도 무궁화잎 무늬가 끼여 겹겹이 포개는 세간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잡고

한숨에 흔들리는 무궁화 그늘

이 집에서의 날들은 이제 다 지고

한때 넘치던 내력은 트럭 한 대에 다 실렸다

 

일편단심 빠져나간 세간을 실은 트럭이 출발하고

무궁화꽃에 세들어 살던 그늘도 아 이사 간 집

멀리 서쪽 하늘에

무궁화가 피고 있었다

 

저기 어디쯤에다 무궁화잎 같은 세간을 풀어 놓을 것이다

 

 

 

 

 

 

[입선] 천년의 무궁화 / 권정희

 

천년을 거슬러 날아온 나비를 보았습니다. 나비의 날개에는 수만 개의 눈동자들로 가득해 나비가 앉은 자리마다 하얀, 그리고 분홍색 꽃잎들이 소인처럼 찍혀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년의 시간을 지켜봐 온 눈동자자 이 땅의 색을 몸에 기록한 꽃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 자리를 불어오는 바람에는 씨앗이 있습니다.거친 바람 속에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온 씨앗. 이방인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도 혹은, 외세의 손아귀에 뿌리를 뽑혔을 때도 희망이라는 발걸음을 내디뎌왔던 우리의 꽃

 

꽃잎을 보며 옛 조상들의 옷을 생각합니다. 잊고 있던 백의민족의 피가 우리 모두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의 자궁을 닮은 꽃봉오리에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발자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배속에서 태어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형제들입니다.

 

무궁화의 꽃잎이 뜨거운 바람에 흩날릴 때 나는 옛 서적을 펼쳐보듯 꽃의 향기를 읽어봅니다. 흩날리는 꽃잎들이 내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 같습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민족의 뿌리가, 천년의 나비를 숙주 삼아 오늘도 이 땅에 만개하고 있습니다.

 

 

 

 

 

[입선] 날개 / 김요셉

 

차가운 비가 끊이없이 쏟아지는 밤

아기 새의 억지 미소가 어미의 고개를 떨구게 한다.

까마귀에게 날아가는 그녀의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는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고 하는 어머니의 방 안에서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의 미소는......, 어머니는 오늘도 무겁게 젖은 날개를 흔든다

아아, 그저 흔든다. 덧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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