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18문학상 신인상은2월19일(월)부터3월31일(토)까지 총50일의 기간 동안 공모를 진행한 결과,시1024편,소설91편,동화46편의 작품이 접수됐다.접수된 작품은 공동주최기관의 의견에 따라 구성된 각 부문(시,소설,동화) 2인의 심사위원,총6인(조성국,서효인,이진,정용준,이상권,임지형)의 심사를 통해 각 부문별 한 편의 수상작이 결정됐다.
시 부문은「춤」(조성국)이 선정됐다.이 작품은 심사 당시 심사위원(시인 조성국,서효인)으로부터“5‧18의 기억을 집단의 기억이나 조직의 기억이 아닌 개인의 기억으로 내밀하게 잘 풀어낸 작품이다”며“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이 개인적인 형상화로 잘 형성되어 오히려 보편성을 획득한 아이러니를 지닌 작품으로서 개성 있는 문체 역시 다른 작품과 차별성을 지닌다”는 평가를 받았다.심사평에서는‘「춤」의 시어들은 기억함과 잊어버림의 팽팽한 줄타기이다’며‘돌올한 시의 개성으로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게 한다.’고 평가됐다.
소설 부문은「덫」(박철수)이 선정됐다.심사위원(소설가 이진,정용준)은‘고시원에서 살며 취업준비에 목매는 청년의 애환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며‘주인공의 분투가 젊은이들의 당대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을 뿐더러,자존감 상실과 회복이라는 두 축을 넘나드는 과정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념과 배제의 대상으로 그 위상을 넘나들곤 했던 광주5‧18의 은유처럼 읽히는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동화 부문은「소문」(한완식)이 선정됐다.심사위원(동화작가 이상권,임지형)은‘80년5월18일을 기점으로 어린이의 심리를 따라가며 풀어쓴 것이 인상적이었다’며‘실제 죽음을 목도하지 않았음에도 소문만으로 충분히 고통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통스러운 그날의 이야기가 어린이의 시각에서 차분하게 풀려나갔다.’고 평가했다.
한편, 5‧18문학상은2005년 제정되어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담아내며 새로운 관점으로 이를 계승할 수 있는 작품을 발굴하여 오월문학의 발전과 지속적인 집필환경을 조성하고 있다.특히2016년부터는 미등단 신인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5․18문학상 신인상(시,소설,동화 공모)외에도 기성작가의 발간저서를 선정하여 역량 있는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기 위한5․18문학상 본상을 제정․운영하고 있다.
그해, 컬러텔레비젼 시험방송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우리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컬러로 봄이 오고 있었지만 교실은 흑백에서 흑백의 교과를 배우는 날들이었다
느닫없이 빨간 폭풍이 중계되었다. 방송국이 불타고 흑백의 피가, 붉게 흘러나오던 친구들이 다시 영정 속으로 들어갔다 불행은 흑백이어도 좋았을 걸, 컬러로 만나는 이환한 죽음들 이라니, 불길 속에서 맞서던 검은 연기와 오열하는 흰 연기들, 어떤 진실도 송출되지 않던 컬러텔레비젼 시험 방송기간, 해 가 바뀌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온 나라가 총천연색 봄을 정식 으로 맞이했다
사라진 흑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드문드문 빈 자리의 교 실에서 언제나처럼 단색으로 앉아 있던 우리들, 목련이 지고 라일락이 피고 사라진 친구들이 빨갛게 불리어지던 다음 해인 가 아니면 그 다음 해였던가 교복 자율화가 되었지만 몇몇 친 구들은 여전히 카루란과 세일러복을 입고 있었다 컬러를 거부 한 이들은 사각의 틀에 갇힌 지도 수십여 년, 눈물조차 훔칠 수 없는 소매 끝엔 사슬에 묶인 무색의 시간들이 줄줄이 감겨 있을 것이다
흑백의 세월을 천연히 갈아입고도 그 봄은 무슨 자백을 강 요한 것인지, 심실의 문은 혈기 짙은 역류를 막기 위해 끊임없 이 적색 신호를 보내는 것이려니, 그때 알았다 우리 몸속엔 컬러의 피가 속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연속 재배하면 벌레 먹고 풀이 날개를 치면 한없이 나약해져버리는 무.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를 싹둑 잘라두었던 것인데, 잘린 쪽은 이미 구름으로 덥혀져 있다. 구름의 본성은 땅으로 스며들고 스며든 본성이 하늘을 닮아간다는 것. 부채 살 같이 퍼진 무의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는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함께 들어 있는 채소라서 무를 여러 번 말하면 맵고 지린 맛이 난다.
구름에서 속 씨가 웅크리고 있다. 모든 싹은 처음에는 속잎이었다가 속잎이 겉잎이 되는 동안 사립문이 헐리고 철 대문이 달리고 송아지는 개의 값을 뒤집어쓰고 음매음매 컹컹 짖는다. 그 사이,
혁명은 손가락질 받았다.
무청은 줄줄이 엮여 내걸리고 반 토막 무만 남아 필사적으로 싹을 틔우고 있다. 철 대문에서 싹이 자라고 싹이 노란 송아지가 컹컹 짖는다. 한 개의 무를 할머니는 구름 쪽을 먼저 썰고 나는 파란 하늘 쪽을 먼저 썰자고 한다.
아쉽게도 작년에 비해 응모자의 수가 큰 폭으로 줄었다. 성급한 진단을 자제해야 하겠으나 아무래도 세월호 사건의 충격과 비통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 충격과 비통은 펜을 들어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높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문장도 쉽게 쓸 수 없게 하는 무력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분들이 ‘말해야 한다, 그러나, 말할 수 없다’라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고투했을까 우리는 짐작해 보았다. 이런 와중에도 몇몇 분들의 작품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대상에 선정되지 못했으나 심사위원들의 호감을 이끌어낸 분들의 이름을 적는다. <형> 외 5편을 보내준 한교만씨는 구면이었다. 지난해 응모작들 중에서 <살아있는 별>이라는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았었거니와 이 작품과 함께 새로운 작품 몇 편을 함께 보내주었다. 역시나 단단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시들이었다. 그러나 ‘시를 쓰기 위한 시’ 혹은 ‘잘 만들어진 시’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을 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가면> 외 9편을 보내준 김대성씨나 <파우스트> 외 8편을 보내준 이경자씨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이미지에 의한 ‘우회’와 솔직한 진술에 힘입는 ‘직진’을 유려하게 병행할 줄 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시를 쓸 줄 아는 분들이다. 그러나 관념이 생경하게 노출되는 장면들이 더러 있어 이를 좀 더 세련되게 통제하면 어땠을까 싶다. <안 한다고는 못한다> 외 8편을 보내준 이수안씨와 <길을 묻다> 외 4편을 보내준 성용구씨의 이름도 적어두고 싶다.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 아직은 손길이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분들은 진심을 힘 있게 전달할 줄 안다. 기교의 수련이 더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저 힘 있는 진심을 훼손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상은 <도토리의 계보>외 4편을 보내준 김성일씨에게 주어졌다. 김성일씨를 당선자로 뽑는 데에는 일찌감치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다섯 편의 시 중에서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세워야 할지를 두고 고심했다. 그만큼 각 시편이 소재 면에서는 다채롭고 완성도 면에서는 대등했다. 역사 속에서 고통 받은 이들, 사회적 죽음에 내몰린 이들에 주목하면서 그와 같은 비극의 이면에 어떤 ‘구조적 원인’이 있는지를 하나의 서사 혹은 우화로 축조해내는 능력이 출중했다. 당선작이 된 <검은 물 밑에서>는 우리시대의 계급격차와 비인간성을 ‘폭우로 인해 검은 물이 들어 차 있는 지하실에서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강렬한 설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검은 물속에 잠겨 있는 시체가 끝내 외면되고 폐기되는 결말은, 어쩌면 시인의 의도를 초과해서, 세월호의 비극을 환기하는 측면도 있다. 고통스러워도 눈 부릅뜨고 읽어야 할 이 작품을 올해의 당선작으로 천거하는 데 우리는 숙연한 마음으로 합의했다.
* 가난하여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다고 하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심사평]
세 사람의 심사위원(황지우 나희덕 신형철)이 각자 진행한 예심에서 추려낸 본심 진출작의 리스트는 거의 일치했다. 특수한 취향에만 호소하는 작품들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넉넉히 만족시키는 작품들이었다는 뜻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이들
작품의 수준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의 본심과 비교했을 때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문학상의 권위는 오로지 응모작의 우수성이 부여해주는 것일 뿐이다. 이만하면 5.8문학상의 권위를 흔쾌히 인정해도 좋으리라.
총 여덟 분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반성> 외 5편, <하숙방 참사> 외 4편, <고장 난 체육시간> 외 9편, <반디의 시위> 외 7편, <구름일기> 외 6편, <말을 하고 있었네> 외 6편, <눈동자> 외 6편, <꽃씨의 수화> 외 6편.
<반성> 외 5편은 ‘반성’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 일련의 연작시들인데, 상투적인 인식과 표현을 배반하고 말겠다는 시인 자신의 긴장 상태가 작품 전편을 관통하고 있고, 말을 하는 방법은 산문적인데도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유려한 리듬이 형성되게 만드는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수련을 한 (아니면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 기교를 갖고 있는) 응모자로 보인다. 그러나 연작 전체를 보면 뛰어난 결과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개별 작품들이 각자 홀로 설 수 있을 만큼의 독자적 완성도를 갖고 있지 못해서 그중에서 특별히 우수한 한 편을 고르기가 어렵다(즉, 당선작이 될만한 작품은 없다)는 점이 결정적인 결함으로 지적되고 말았다.
<하숙방 참사> 외 4편은 5.18의 참상을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그려내고 있어서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5?18문학상의 취지에 잘 근접해 있다. 여리고 민감한 감수성으로 일상과 기억,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넘나들며 죽음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소재의 핍진성에 비해 시상을 전개시키는 힘이나 표현력은 다소 떨어진다.
<고장 난 체육시간> 외 9편은 다채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부조리한 현실과 역사의 폭력성을 그려내는 솜씨가 활달하다. <양치기 소년의 증언>에 나타난 잔혹 동화나 <죽음의 춤>에 나타난 이발사의 우화, <귀 먼 자들의 도시>에 나타난 환청과 시체놀이 등은 단순한 알레고리가 되고 만 것이 아니라 풍부한 전언들을 함유하고 있어서, 5.18을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은유적이고 메타적인 시선으로 역사적 상처를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고장 난 체육시간>이나 <사기인간지구력> 같은 미숙한 작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시적 완성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지 않은가 한다.
<구름일기> 외 6편의 경우 보내온 시가 모두 골고루 뛰어나지만 <나무도마>와 <살아있는 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후자는 한 문장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할 만큼 잘 짜인 시다. 80년 5월에 대한 책을 읽다가 책에 나오는 어느 아름다운 죽은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
하는 일이, 하늘의 별을 향해 전화를 거는 일이 되고, 그 별이 다시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지금도 살아 있는 별이 되는 이 상상력의 흐름이 아름답다. 그러나 80년 광주를 제재로 삼았으되 그로부터 새로운 역사적 실존적 인식을 생산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는 점, 기타 다른 시들의 ‘단정한’ 완성도가 ‘소박한’ 인식론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천거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고 있었네> 외 6편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연작들이라는 점에서 5.18의 또 다른 타자를 발굴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비극적인 죽음을 증언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 한편에 진심 어린 노력이 투여돼 있다는 것이 충분히 느껴지지만, 시적 형상화는 전반적으로 소박하다.
<눈동자> 외 6편은 언어적 감각이 섬세하고 신선하며, 전체적으로 시적인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일상의 풍경 속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예민하게 포착해 내고 그것을 오래 되새김질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이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목소리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5.18문학상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선정하기는 어려웠다.
<꽃씨의 수화> 외 6편에서 특히 빼어난 시는 <꽃씨의 수화>였다. 이 시는 광주항쟁 초기 사망자 중 한 사람인 김경철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사한 유형의 시들이 고루함과 생경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빼어나다. 과거와 현재, 상처와 극복, 현실과 이상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시를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으며, 꽃씨와 수화의 이미지도 제 몫을 아름답게 해낸다. 부분적으로 어색한 표현들이 있지만, 여느 응모작들보다 한결 더 진실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응모자가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의 수준은 이만하지 못했다.
결국 대상은 <반디의 시위> 외 7편을 응모한 김완수씨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데 심사위원들은 흔쾌히 합의할 수 있었다. <반디의 시위>와 <혀짤배기 사관>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둘 중 <반디의 시위>를 대상작으로 선정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응모작 대부분이 골고루 우수했거니와, 심사위원들의 아래 논평은 이 응모자의 투고작품 전반에 대한 것이다. 골자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를 다시 읽는 것 같은 강렬한 부정의 정신과 그 심지에서 타오르는 시적 사유가 돋보인다. 군데군데 다소 자의적인 어색함이 시를 뻣뻣하게 경화시키는 대목이 있지만, 텍스트 안에 스스로 꿈틀대는 사유의 근육이 완강하게 느껴진다.”(황지우)
“간결하고 담백한 시어로 대상을 정확하게 조준해내는 집중력이 있고, 시적인 논리나 구조가 탄탄하다. 5.18이라는 사건의 재현보다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풍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주제 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지성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딱딱하거나 도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서정적 온기와 비판적 의식이 적절한 협업을 통해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나희덕)
“시에서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 언제나 제1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무지 하고 싶은 말 자체가 없어 보이는 시들을 읽다가 지칠 때 즈음이면,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백퍼센트의 상태로 전달하기 위해 역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들 앞에서 반가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품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5.18문학상이니, 이러한 장점이 더 크게 대접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는 한편 시적 표현의 묘를 놓치지도 않고 있으니 여러모로 모범적인 작품들이라고 해야 하겠다.”(신형철)
김완수씨의 수상을 세 사람의 뜻을 모아 경하(敬賀)한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와중에 5.18문학상 수상작이 우리의 분노와 슬픔을 논리화하고 역동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전혀 엉뚱하거나 과도한 것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모두 163명의 845편의 응모작을 읽었다. 하릴없는 삼류 사랑타령과 열혈청년 기질의 피 튀기는 구호의 숲에서 건져낸 작품은 20여명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의 수준은 예전보다 기량 면에서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었으나 여전히 문제의식 면에선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다. 그 중 나는 5편을 주목하였는데, 「아내의 자리」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너무도 진정스러워 작품을 보다가 하마터면 울 뻔했다. 「광주」는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 이후 광주를 제대로 그리고 폭넓게 은유화 해내며 큰 감동을 자아냈다. 「점, 구름의 고고학」은 자신의 생은 알지 못하고 "남의 생만 읽을 수 있는 여자" 곧 점치는 여자를 구름의 고고학으로 읽어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고독사」는 "한생의 밑바닥을 토해내는 라마승처럼 아무런 남길 것이 없이" 고독사한 사람을 독사와 매칭시켜 팩트와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 수작이었다. 「사이시옷과 사람 인(人)」은 산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며 내는 '파찰음'을 알뜰살뜰 따뜻한 인정의 '접속사'로 이어내는 솜씨가 이미 기성작가 수준이었다. 이 분들은 누구를 뽑아도 괜찮을 수준을 보여주어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설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예심> 이승철
<예심통과작>
1. 봄날 버스 외 6편
2. 일요일 외 5편
3. 치약의 전설 외 5편
4. 꽃샘추위 외 6편
5. 무간도 외 8편
<5·18>을 형성화한 작품들이 지난해보다 많은 편이어서 좋았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각이 돋보여 심사자의 마음을 흡족케 했다. 시상(詩想)이 상투성, 단조로움을 벗어난 작품을 찾으려고 했다. 문학은‘언어를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문제는 사물과 현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적 통찰력이 남다름과 언어를 상투화 시키지 않되, 세상 속 비의를 발견케 하는 시적 자세가 중요하다. 또한‘신인'에 걸맞는 패기, 진정성, 세상과의 대결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선정작 5명의 간략한 평은 이렇다. 「봄날 버스 외 6편」은 광주항쟁의 전과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형성화하는데 성공했다. 「일요일 외 5편」은 일상의 삶과 현대인의 소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치약의 전설 외 5편」은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는 발견의 시각을 갖추고 있다. 「꽃샘추위 외 6편」은 치열한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무간도 외 8편」은 다양한 시각과 시적 형식의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본심> 정희성
예심을 통해 올라온 여덟 분의 작품을 일독하고 그중 세 분의 작품「봄날 버스 외 6편」과「무간도 외 8편」과「조롱박이 된 주먹밥 외 6편」으로 범위를 좁혔다. 명색이 5·18문학상이라면 그 명칭에 걸맞는 주제의식에서 자유롭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는 시가 반드시 5·18을 소재로 다루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5·18에 광주라는 지역명칭을 얹는 것도 5·18을 협소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5·18은 4·19와 같은 것이지 ‘광주사태’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민중들의 열망’이 담겨있는 작품이면 5·18문학상에 값한다고 보았다.
세 분의 작품 가운데「봄날 버스 외 6편」은 5·18 당시의 참상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사건을 정밀하게 묘사하고는 있지만 강렬한 시적 감동에는 이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조롱박이 된 주먹밥 외 6편」도 주제의식이 강하고 감정이 잘 절제된 단정한 시였다. 그러나 ‘주먹밥’이라는 이미지가 주제의식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상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 눈에 거슬렸다.
「무간도 외 8편」은 한편 한편이 짜임새가 있고 참신해 보였다. 그 가운데서「서소문 밖」에 눈이 간 것은 주제와의 관련성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서소문 밖 순교자 헌양탑 이야기에 주력하면서 그 위에 슬그머니 5·18을 오버랩시키는 수법이 자못 능청스럽다. 이는 5·18을 정면에서 접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형상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시상(詩想)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시적형식의 새로움이 엿보이고,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적 통찰력이 남달랐다. “누구든 자신의 믿음에 목을 걸 수 있다면....순교가 아닐까”,“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시행은 천주교 순교자만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본심 심사위원으로서 이 시를 맛있는 시로 보고 당선작으로 추천하며 아직 이름을 모르는 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한다.
누이야, 혁명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지는 말자. 군인들 팔둑에 돋은 힘줄이 도드라진 오월, 죽음을 탁발하는 누이들의 행렬이 길을 메웠다. 그때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무릎은 깨져 피가 별처럼 고이고, 군화는 내 머리통을 밟고 지나가는데
구름이 해를 가리던 낮에 큰 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목적없이 와불이 되었다. 돌멩이와 풀은 어둠과 햇빛과 상관없이 어둑어둑해지고 죽음은 살덩어리로 발견되었다. 커튼이 쳐진 방 안의 귀머거리들은 큰 죽음을 모른다. 작은 죽음도 잘 모른다.
지평선의 목구멍에 걸린 해는 극락강 수면에 일몰의 저녁을 토해낸다. 알 수 없는 곡소리가 들리고,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노 젖는 시간만이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이름 없는 모덤을 찾아간다.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작은 팽나무 아래의 새들이 퍼덕거리지 않는다. 군인들은 계속 행군 중이고, 저녁의 낯이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러나 더 이상 밀려가는 벼랑이 없는 나는, 뱀눈 그늘나비와 춤을 빌려와서 꿈을 꾸고 있는 세상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내 몸에서 그림자가 엎질러진 날이기도 했고, 꿈을 벗으려고 하면 총 맞은 자리에서 붉은 피가 왈칵 쏟아지는 오월이기도 했다.
[수상소감]
찔레꽃그늘에 앉아서 나를 솎아내고, 앵두나무그늘 접어서 나를 섞어보고, 나는 나를 방정식으로 풀어보듯,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서 초록이파리가 빽빽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쓰는 시가 허구의 세계지만 그 안에는 허황되고도 아름다운 것들이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 진안에 내려가서 부족한 일손을 돕다가 앞 산 넘어온 비를 바로 마중 나가는 뒷산의 그림자와 젖은 빗방울이 발밑의 묵묵한 목숨들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작은 날숨들이 만들어낸 오월의 들녘 속에서 5.18문학상의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작년 시월에 사내아이를 얻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아이와 아내에게 좋은 선물 하나 해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이는 지금 말문을 트기 위해 옹알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 합니다. 어쩌면 저는 지금 시에게 말문을 트기 위해, 시에게 가기 위한 배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호기심을 갖듯이 그런 눈빛으로 사물들에게 사랑의 말을 걸어볼까 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아내 이소연과 아들 이서진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의 여리고 작은 사물들의 비애를 꿰뚫어보는, 그런 촉이 예민한 시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금년도 5․18문학상에 대한 시 예심자는 다음 사항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예심을 진행하였다. 먼저 5․18기념재단에서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 예술성, 대중성, 독창성, 문학성, 주제의식을 기본적 참고 사항으로 삼되, <5․18문학상>이 기존의 신인문학상과 달리 ‘5월’의 시대정신 구현과, 광주정신의 참다운 재현을 이룩한 작품이어야 하며, 이 때 신인으로서의 언어적 참신성, 신선한 패기, 기존 5월시의 시적 성과를 뛰어넘는, 예술적 수월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굴하고자 했다.그리하여 응모작 중 5월의 주제의식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않고, 시적 성과를 뛰어넘는 신선한 시적 발상을 보여준 작품을 위주로 예심을 진행하였고, 예심자의 그러한 소망을 담아 본선에 총 28명의 응모작을 올리기로 하였음을 밝힌다.
예심통과작
파도 속에 떠도는 섬 외
스펙에게 외
춤추는 병정 외
그래서 나는 빨갱이였나 보오 외
낙화2 외
오월은 외
망월동 연가 외
광주의 눈물 외
광주 외
1980. 5. 18. 외
서로서로 굳게 손잡아 외
맛의 기억 외
오월의 햇살 외
솟대의 꿈을 꾸는 철새
4월 20일 Pm 8:34-혈흔 외
묵상의 늪 외
맹 외
민둥산의 밭 외
어떤 말에 관한 기억 외
비계공을 위한 서시 외
희망의 사막 외
마그마 외
통곡 외
봄동 외
뿌리론 외
염원 외
때는 5월
칸의 나무배트 외
5·18, 벌써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날을 직접 겪은 이들은 나이가 들었다. ‘그날’은 영상물이나 교육이나 그것을 직접 겪은 어른들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오늘 우리는 스물여덟 분의 168편의 시를 심사하여 한 편의 당선작을 가려냈다. <오월>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5·18이 이제는 생생한 기록화가 되기도 어렵지만 먼 풍경화일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5월의 정신이 오늘에 어떻게 살아있는가이다. 투고작은 전체적으로 5월을 과도하게 의식해서 설익고 관념적인 어투의 시를 뽑았다. 시각의 참신성, 수사의 활달성, 삶의 구체성, 역사적 건실성을 구현하려는 시적 진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도 현실인식의 튼실성, 5월의 구체적 형상성이 뛰어난 작품을 골랐다.
이십 오년 전 밤 그때도 검은 눈이 내렸단다 태양의 중심부를 향해 새들이 부리를 박았지만 빛은 쏟아지지 않았단다
지하로 흐르는 물길을 부정하자고 별들과 합의했지만
차가운 발등 위로 내장처럼 먼지가 쌓였고 그때 나는 경찰과 학교와 부모의 그림자를 피해가지 못했단다
주저앉는다
마치 제 스스로 제 뿔을 꺾은 짐승처럼
극장으로 향하는 네거리의 사람들
일렬로 앉아 액션 멜로 판타지로 감금된 사이
총성이 울리고
발을 내밀자 보폭만큼 비가 쌓인다
아니다 각오를 품고
과녁을 노리고 싶은 날들이 있다
나는 킬러이기에
우상을 거부하며
총을 쏜 자보다 총을 쏜 자의 배후를 의심한다
촛불의 원리로
혁명이라는 한 점을 향하여 한 점을 저격한다
교묘하게 흘러가는 잿빛 구름들
번개를 의심하라 구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림자 위로 내리꽂히는 햇빛
침묵을 깬 통증이 빛난다
희다
당선작 <아름다운 테러리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긴장감’에 있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이 언어에 끌려 다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시인은 시의 언어와 언어의 관계망을 조직하는 역량이 있었고 그 속에서 긴장감을 연출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분명한 자기 사유가 시의 바닥에 깔려 있었다. 각기 장점이 있는 다섯 편의 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였다.
* 수상소감
밤새 시 한 줄도 못 썼다 / 죄 짓고 우는 사형수의 기분이다 / 가슴이 사막이다 / 공복이고 포식성을 잃었다 / 알았다, 내 얼굴이 처참하게 못나 보일 때는 / (왕녀 옆의 시녀처럼) / 내 질투가 내 심장을 도려낼 때는 / (칼이 사과를 베어먹듯) / 내가 삶에 핍진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 (김수영처럼 최승자처럼) /내가 허무와 살의에 미쳐 날 뛸 때는 / (문제적 인간 연산처럼) / 시 앞에서 내가 절망하고 열망할 때였다 / 아, 매독 같은 생이여 / 너를 받아들이겠다 / 날것의 언어로 나를 파괴할 수 있다면 / 지금까지 난 별것도 아니었다 / 앞으로도 난 별것이 될 생각이 없다 / 다만 쓰지 않으면 /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현재를 알았다 / 독은 독으로 해독해야 풀린다는 사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