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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테러리스트 / 김성태

 

 

나는 킬러다

하얀 구두를 신은 푸른 수염의 고독한 사냥꾼이다

그리운 敵이 없다

늠름한 敵이 없다

결단하듯 넥타이를 맨 패배뿐이다

 

이십 오년 전 밤 그때도 검은 눈이 내렸단다 태양의 중심부를 향해 새들이 부리를 박았지만 빛은 쏟아지지 않았단다

 

지하로 흐르는 물길을 부정하자고 별들과 합의했지만

 

차가운 발등 위로 내장처럼 먼지가 쌓였고 그때 나는 경찰과 학교와 부모의 그림자를 피해가지 못했단다

 

주저앉는다

 

마치 제 스스로 제 뿔을 꺾은 짐승처럼

극장으로 향하는 네거리의 사람들

일렬로 앉아 액션 멜로 판타지로 감금된 사이

 

총성이 울리고

발을 내밀자 보폭만큼 비가 쌓인다

아니다 각오를 품고

과녁을 노리고 싶은 날들이 있다

나는 킬러이기에

우상을 거부하며

총을 쏜 자보다 총을 쏜 자의 배후를 의심한다

촛불의 원리로

혁명이라는 한 점을 향하여 한 점을 저격한다

 

교묘하게 흘러가는 잿빛 구름들

번개를 의심하라 구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림자 위로 내리꽂히는 햇빛

침묵을 깬 통증이 빛난다

희다

 

 

당선작 <아름다운 테러리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긴장감에 있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이 언어에 끌려 다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시인은 시의 언어와 언어의 관계망을 조직하는 역량이 있었고 그 속에서 긴장감을 연출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분명한 자기 사유가 시의 바닥에 깔려 있었다. 각기 장점이 있는 다섯 편의 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였다.

 

* 수상소감

밤새 시 한 줄도 못 썼다 / 죄 짓고 우는 사형수의 기분이다 / 가슴이 사막이다 / 공복이고 포식성을 잃었다 / 알았다, 내 얼굴이 처참하게 못나 보일 때는 / (왕녀 옆의 시녀처럼) / 내 질투가 내 심장을 도려낼 때는 / (칼이 사과를 베어먹듯) / 내가 삶에 핍진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 (김수영처럼 최승자처럼) /내가 허무와 살의에 미쳐 날 뛸 때는 / (문제적 인간 연산처럼) / 시 앞에서 내가 절망하고 열망할 때였다 / , 매독 같은 생이여 / 너를 받아들이겠다 / 날것의 언어로 나를 파괴할 수 있다면 / 지금까지 난 별것도 아니었다 / 앞으로도 난 별것이 될 생각이 없다 / 다만 쓰지 않으면 /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현재를 알았다 / 독은 독으로 해독해야 풀린다는 사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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