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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계단 / 정숙자

 

 

직각이 흐르네

직각을 노래하네

 

     직각

 

          직각

 

             직각 한사코 객관적인

 

도시의 계단들은 경사와 수평, 깊이까지도

하늘 깊숙이 끌고 흐르네

 

날개가 푸르네

날개가 솟구치네

 

     다음

 

         다음

 

             다음 기필코 상승하는

 

건축의 날개들은 수직과 나선, 측면까지도

성운 깊숙이 깃을 들이네

 

설계와 이상. 노고와 탄력. 눈물의 범주. 계단은 피와 뼈와 근면의 조직을 요구하네. 인간이 만들지만 결국 신의 소유가 되는, 그리하여 쉽사리 올라설 수도 콧노래 뿌리며 내려설 수도 없는 영역이 되고 만다네.

 

바로, 똑바로, 직각으로 날아오른 계단은 자신의 DNA를 모두에게 요구하네. 허튼, 무른, 휘청거리는 발목을 수용치 않네. 가로, 세로, 직각으로 눈뜬 모서리마다 부딪치며 흐르는 물소리 콸콸 콸콸콸 노상 울리네.

 

계단의 승/강은 눈 VS 눈이네. 한 계단 한 계단 한 걸음 한 걸음 한눈파는 눈으로는 안녕 불가. 생사의 성패의 지엄한 잣대가 계단 밑 급류에 있네. 너무 익숙히, 너무 가까이, 너무나 친근히 요주의 팻말도 없이.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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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니체들 / 정숙자

 

 

그들, 발자국은 뜨겁다

그들이 그런 발자국을 만든 게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불/길이 맡겨졌을 것이다

 

오른발이 타 버리기 전

왼발을 내딛고

왼발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

 

그들에게 휴식이라곤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그런 불/길이 채워졌기에!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목록은 자신이 택하거나 설정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으므로 왼발과 오른발에 (끊임없이) 달빛과 모래를 끼얹을 뿐이었다.

 

우기(雨期)에조차 불/길은 지지 않았다. 혹자는 스스로, 혹자는 느긋이 죽음에 주검을 납부했다, 머나먼묘비명을 읽는 자들이뒤늦은 꽃을 바치며대신울었다.

 

늘 생각해야 했고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던 그들

피해도, 피하려 해도, 어쩌지 못한 불꽃들

결코 퇴화될 수 없는 독백들

물결치는 산맥들

 

강물을 거스르는 서고(書庫)에서, 이제 막 광기에 진입한 니체들의 술잔 속에서마침내 도달해야 할/, 속에서달아나도, 달아나도 쫓아오는 세상 밖 숲 속에서.

 

 

 

 

뿌리 깊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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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를 사랑한 / 김추인
  -매혹을 소묘하다

바람을 지운다

소리를 지운다
창을 설핏 열어 빛을 소환한다
하오의 잔광이다
동쪽 문은 유리의 캠버스
물의 입자들이 캠버스 위에서 응결되는 중이고 보얗게 채색되는 중이고 무거워진 몇 개 

물방울들 중력 쪽으로 가파르게 하강하며 긴 발자국을 남긴다 물의 족적 물의 붓질

 

캠버스 위 몇 개의 길고 투명한 금줄들은 스크레치 기법일 것이다 샤워실에선 더  촘촘해

진 김, 아지랑이

시계 소리는 화면 밖에서 똑딱이게 두어라

소녀가 뭍에서 오고 있으니

 

젖은 살내,
<타올을 든 소녀>*쪽으로 쏠리는 펄럭이는 후각들 
팔 하나가 불쑥 액자 속으로 들어가 몸을 반쯤 가린 무명 타올을 벗겨내며 빛을 조금 더 불러 앉힌다

 

전라의 소녀
어디선가 휘리릭 ~날아오는 입바람 소리들

아니다 역시 셀렘은 은밀하고 순연해야...과한 것은 금기, 팔에 걸치고 있던 

무명 타올을 그녀에게 돌

려준다 무채색으로 일어서는
  

<타올을 든 소녀>

 

아직 더운 김 날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독과 허무의 잿빛,잿빛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시다 제 본성의

색감으로 소녀를 감고 도는 추상의 오브제들도 빛난다 움직이는 수증기며 시

계 소리 그리고 유리를 달

리는 물의 발자국들이
  

세상의 덧칠된 시간을 지우며
존재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절대 미감의 영속성에 대하여

* 권옥연 화백의 유화

 

 

 

오브제를 사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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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질마재문학상 및 미네르바 2017 상반기 신인상 시상식이 오는 62일 오후 6시 서울 혜화동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계간 문예지 미네르바(발행인 문효치·주간 이채민)와 미네르바 문학회(회장 윤고방)가 함께 여는 이날 시상식에서 김추인 시인이 질마재 문학상을 수상한다.

 

수상자 김추인 시인은 시력 삼십여 년을 넘긴 중견시인이다. 그 만만찮은 시력에 걸맞게 시세계 또한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녀는 괄목할 만한 몇 가지 시적 특장(特長)들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삶과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그 한 축으로 보며 또 다른 하나의 축으로 존재,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인의 깊고 넓은 공간의 확장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이 넘나드는 모든 경계의 안과 밖을 보는 시안(詩眼)으로 해서 더욱 증폭된 상상력을 이끌어내며 사소한 일상이나 작은 모래알에서우주를 바라보는 뛰어난 상상력이 펼치는 유감없는 세계는 아늑하고도 깊숙하게 다가온다.

 

만 번을 미워하고 천 번을 사랑한끝에 꽃으로 피어나는 생명부여에 대한 지극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함에도 이 곧 존재의 부활이며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음이 간파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유장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사유는 자신의 내적 시공간을 치열하게 전개해 보임으로써 다중적 말의 함의(含意)를 형상화하는 시의 운용에 맺힘이 없고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한국 서정시의 무한한 시공간적 확장을 가능케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겠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그녀의 시적 언술들은 한마디로 매우 유려해 잘 읽히며 시의 어세들은 대체로 거침이 없다"고 평가했다.

 

요즘 시단의 일부 시들에서 보는 과도한 시적 조사와 그에 따른 독해의 정체(停滯)가 없는 것이며 이 같은 특장의 대부분은 특유의 활달한 상상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일 뿐만이 아니라 상상력은 진폭이 넓고 크며 그 진폭은 천체의 광막한 구석구석에서부터 자기내부의 모래사막까지 다양한 공간에 넓고 크게 걸쳐 있고 그런가하면 일련의 과학적 정보들을 매개로 삼아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새로움도 보여준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이러한 활달한 상상력은 그녀 나름의 시적 방법론으로 읽힌다. 곧 시적 주체가 겪는 삶과 세계와의 불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또한 그 불화는 때로는 야유하듯 때로는 진지한 언사들로 작품 속에 펼쳐지고 있다.

 

시를 쓰면서 여행을 하면서 심지어는 그림이나 음악을 접하면서도 불화는 계속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단하고 세계는 흉포할 마련이다. 그녀는 이런 세계와 삶에 대한 불화와 그 의미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불화야말로 씨의 남다른 시적 동력이 아닐까 싶다". 라고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주최 측은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펼쳐지는 시상식에 문학인이 많이 참여해 축하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날 행사가 끝나면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도 진행한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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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네르바는 제7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이경철 평론가를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평론가는 중앙일보 '문예중앙' 주간을 역임하고, '천상병·박용래 시 연구','21세기 시조 창작과 비평의 현장','미당 서정주 평전'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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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 / 이규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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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네르바는 제6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이규리 시인을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수상작품집은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8회 미네르바작품상은 조동범 시인이 받았다.

 

이규리 시인은 1994'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등의 시집을 냈다.

 

 

시상식은 오는 52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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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옷을 입은 구름 / 이은봉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자꾸 달과 나 사이의 교신을 끊는다 교신이 끊기면 달에 살고 있는 잠의 여신을 불러올 수 없다

 

옛날 구름은 그냥 수증기, 수증기로는 나와 달 사이의 교신을 끊지 못한다 지금 구름은 고름 덩어리, 걸레옷을 입은 구름은 제 뱃속 가득 납과 카드뮴 감추고 있다

 

이제 내 숨결은 달에게로 가지 못한다 달의 숨결도 더는 내게로 오지 못한다

 

달과 숨결을 주고받을 때라야 잠의 여신은 숨결을 타고 내려와 내 몸을 껴안을 수 있다 잠의 여신이 내게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 제 뱃속에 납과 카드뮴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 중화학공장 출신이라도 되는가

 

도대체 바람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비닐장갑을 낀 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저 한심한 바람이라니!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도시의 뒷골목 어슬렁대고 있는 저 조폭 똘마니 같은 바람이라니!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자꾸 나와 달 사이의 교신을 끊는다 교신이 끊기면 달에 살고 있는 잠의 여신을 불러오지 못한다

 

바람이 걸레옷을 입은 구름을 밀어내지 못하면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 하느님도 눈 부릅뜬 채 몇 날 몇 밤을 깨어 있어야 한다.

 

 

 

 

걸레옷을 입은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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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질마재신화혹은 질마재문학상에 대한 몇 가지 상념

 

졸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으로 질마재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질마재문학상은 우선 미당의 시집 질마재신화(일지사, 1975)를 떠올리게 한다. 질마재신화는 이내 미당의 고향마을로 달려가게 한다. 미당의 생가와 문학관을 방문했던 적이 모두 몇 번인가. 10여 차례가 넘으리라. 학생들과 함께 찾았던 적만 해도 여러 차례이다.

 

질마재문학상은 미당의 시업을 기리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 세대의 시인 중 미당의 시를 읽지 않고 시를 공부한 사람은 없다. 나도 역시 미당의 시를 읽으며 시를 공부해왔다. 미당 전집을 읽다가 쓴 논문만도 2편이나 된다.

 

한국현대시사에서 미당만큼 좋은 시를 쓴 시인은 많지 않다. 미당의 시집 가운데에서는 질마재신화보다 떠돌이의 시(민음사, 1976)80소년 떠돌이의 시(시와시학사, 1997)를 좀 더 좋아한다. 물론 미당의 시집 중에는 ??늙은 떠돌이의 ??(민음사, 1993)떠돌이라는 말을 쓰고 있기는 하다. 내가 미당의 시집 가운데 떠돌이의 시80소년 떠돌이의 시를 좀 더 좋아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이들 시집에는 미당 나름으로 받아들인 당대의 삶과 생활과 현실이 좀 더 잘 육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당의 시집 떠돌이의 시80소년 떠돌이의 시를 좀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질마재신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시집 질마재신화역시 미당이 받아들인 당대의 삶과 생활과 현실이 잘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런 이유만으로도 나는 미당의 이 시집 질마재신화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미당의 이 시집 질마재신화는 첫째 백석의 시집 사슴에 대한 대타적 자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이 시집에는 새마을운동, 산업화, 개발과 건설 등 이른바 근대화에 대한 미당의 대타적 자의식이 작동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집과 함께 하는 미당의 대타적 자의식 중에는 1960년대 이래 우리 시단을 풍미해오던 모더니즘시에 대한 반감도 들어 있다고 이해된다.

 

미당의 고향 질마재는 아직 그런 대로 잘 보존이 되어 있다. 하지만 내 고향 막은골은 흔적도 사라져버려 자꾸 가슴을 아프게 한다. 세종시가 건설되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나는 내 고향의 모습을 시로라도 남기고 싶어 막은골 이야기연작시에 매달리고 있다. 백석의 시집 사슴이나 미당의 시집 질마재신화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질마재문학상을 받은 만큼 더욱 분발해 졸시집 막은골 이야기를 잘 완성해볼 생각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세 분의 심사위원, 김남조, 문효치, 김승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데도 받는 상, 고맙고, 송구할 따름이다.

 

 

 

걸어 다니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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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인생을 배운 후에 시가 나올 때의 무르익음의 언어

 

5<질마재 문학상> 심사에 올라온 시집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지난 한 해의 시집 출간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매우 풍성했다는 것과 다양한 개성의 스펙트럼을 지닌 시인들이 기량을 빛내며 만만찮은 성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열권 남짓한 시집들을 논의했으며 우리 시단의 풍성함과 다채로움에 오롯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어떤 시집들은 전문적으로 기교를 배운다는 요즘 가수들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서 기량은 우수하지만 무언가 허전하고도 화려한 공허함을 주기도 했다. 결국 좋은 문학이란 포스트모던 감각으로 명멸하는 이 어지러운 세계에서 그 표피를 스치며 지나가는 얇은 언어들의 무도회라기보다는 깊은 삶에서 시간과 경험의 가혹함을 견디면서 오랜 숙성의 항아리를 거쳐 우러나온 무르익음의 언어가 아닐까, 라는 의견이 오갔다. 결국 시적 언어의 문제는 교감과 감동인 것이다.

 

결국 심사위원 전원의 일치로 이은봉 시인의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 제5<질마재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만만찮은 인생의 무게와 시간의 숙성을 거쳐 깊은 상상력과 따뜻한 언어로 묵직한 삶의 정경을 보여주는 이은봉 시인의 시세계는 자연의 넓은 생명력과 인간애를 바탕으로 산업화 시대에 버려진 우리 이웃의 그늘을 잘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늘 비속한 세계에서 망가진 개인들의 이력이 들어있고 아픈 기억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넓은 가슴의 긍정이 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폐타이어에서 지장보살을 보며 지장보살이 아프다/ 땅도 아프다 검게/ 저무는 것은 다 아프다// 아픈 몸으로 그는 다시/ 거름을 만들고 있다 샐비어 몇 송이/ 빨갛게 꽃피울 꿈을 꾸고 있다처럼 망가진 자연의 순환 속에서도 자연과 이물질인 문명과의 불가능한 순환을 꿈꾸기도 한다. 그의 시 속에는 만물이 그물코처럼 얽혀있는 존재의 꿈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이물질(문명)로 인해 그 만물의 순환이 깨어진 끔찍한 현장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시인이란 바로 그 불가능한 것의 순환의 둥근 원환圓環을 포기하지 않고 꿈꾸는 자가 아니겠는가.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삶의 어두운 이면을 그리면서도 황폐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의 생을 관찰하는 안정된 상상력”(김남조)민들레꽃이 보여주는 따뜻한 감수성과 자연과의 교감 뒤에 숨어 있는 개인의 슬픔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문효치)을 통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도 무언가 망가진 부조화를 느끼는(만드는) 근대 인간의 소외와 슬픔을 웃음기 묻은 시선으로 원숙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제5회 질마재 문학상의 수상 시집으로 선정되었다. 축하를 드리며 더욱 대성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김남조, 문효치,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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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외롭다1 / 김승희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

절망은 중력의 평안이라고 할까,

돼지가 삼겹살이 될 때까지

힘을 다 빼고, 그냥 피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으면 되는 걸 뭐.......

그래도 머리는 연분홍으로 웃고 있잖아, 절망엔

그런 비애의 따스함이 있네

 

희망은 때로 응급처치를 해주기도 하지만

희망의 응급처치를 싫어하는 인간도 때로 있을 수 있네,

아마 그럴 수 있네,

절망이 더 위안이 된다고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찬란한 햇빛 한 줄기를 따라

약을 구하러 멀리서 왔는데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믿을 정도로

당신은 이제 병이 깊었나,

 

희망의 토템 폴인 선인장......

 

사전에서 모든 단어가 다 날아가 버린 그 밤에도

나란히 신발을 벗어놓고 의자 앞에 조용히 서 있는

파란 번개 같은 그 순간에도

또 희망이란 말은 간신히 남아

그 희망이란 말 때문에 다 놓아버리지도 못한다,

희망이란 말이 세계의 폐허가 완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왜 폐허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느냐고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면서

오히려 그 희망 때문에

무섭도록 더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희망의 토템 폴인 선인장......

피가 철철 흐르도록 아직, ,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인데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

희망이 외롭다

 

 

 

 

희망이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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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계간지 미네르바가 운영하는 제4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김승희(61·왼쪽) 시인이 선정됐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태양 미사’ ‘달걀 속의 생()’ ‘희망이 외롭다등 시집을 펴내고 현재 서강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상식은 61일 오후 5시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역시 미네르바가 운영하는 제6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의 영예는 권덕하(56·오른쪽) 시인에게 돌아갔다. 시인은 2002작가마당’, 2006시안을 거쳐 등단한 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시상식은 질마재문학상 시상식과 나란히 61일 오후 5시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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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당신 / 김요일

 

 

태초의 이전부터 오신다더니

꽃과 바람

물과 불

하늘과 땅 어디에도 보이시지 않네

 

터진 듯 쏟아 내리는 별빛 속에도 묻어오지 않으시고

전생의 전생에도 보이지 않으시는

 

우주의 바깥에 계신 당신

 

모든 이즘ism의 프리즘인

처음의 줄기이자 분열의 마지막인

 

, 당신은

 

 

 

 

애초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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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질마재 문학상에 시집 '애초의 당신'을 펴낸 김요일(48) 시인이 선정됐다.

 

질마재 문학상은 미당 서정주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계간지 '미네르바'가 제정한 상이다.

 

김 시인은 1990'자유무덤' 4편의 시를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94'붉은 기호등'을 펴낸 바 있다.

 

주최 측은 "'붉은 기호등'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사랑 노래들이 '애초의 당신'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후광처럼 거느리고 있다""절망과 신음으로 가득 찬 작품들 또한 새로운 관점으로 읽게 만든다"고 평했다.

 

상금은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525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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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꽃 / 조정권

 

 

호수에 앉아

무속력의 수면에

취한다

 

잔잔히 퍼져오는

소 얼굴에 취한다

 

저물 무렵 올라오는

하얀 꽃에 취한다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하얀 꽃에 취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물 속 뿌리를 쥐고

잠 들 물빛에 취한다

 

찾아야 할 마음도 있지도 않거니와

따라야 될 마음도 없다

 

가만히 뿌리를 쥔 손 놓고

잠 든 물빛에 취한다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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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네르바는 금년으로 제2회를 맞는 질마재문학상에 조정권 시인의 시집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질마재해오름문학상에 길상호 시인의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남조, 김종해, 문효치 시인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각 부문 10권씩의 시집들 중에 각각 수상작을 선정하였는데 시집들은 모두 문학적 우수성과 개성적 세계를 보여주는 가편들이었다고 평가했다.

 

두 작품집 모두 새로운 의미 창조의 탁월한 언어적 성취를 이룸으로써 본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충분히 값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조정권 시인은 197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40여 년 동안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떠도는 몸들』 『고요로의 초대』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등의 시집을 펴내면서 우리 시단의 핵심에서 70년대 시인의 선두주자로 활동해 왔다. 그는 순연한 시적 감성과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 대상으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탄력 있는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가 추구해 온 드높은 정신의 세계는 시집산정묘지에서 크게 꽃피워 건강성과 역동성을 함양하면서 혼탁한 세상을 질책하고 자기 초월의 상향적 세계를 표상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는 창조적 에너지가 충만한 시집이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시 속에서 흰 꽃처럼 탈색되어 무위와 공의 세계로 승화됨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의 힘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승화된 에너지에 힘입어 세속의 현실적 집착이나 번뇌로부터 청정무구의 대자유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언어의 절약 또는 함축의 묘이다. 말을 아끼면서 말 옆의 여백에 많은 뜻을 숨겨놓음으로써 오히려 시적 스케일을 키우고 깊음과 풍요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요즈음 난삽한 산문적 언어가 횡행하는 우리 시단의 현상에 큰 경종이 되고 있다.

 

섬세하고 정확한 촉수로 삶과 사물을 탐색하여 그 밑바닥에 갈앉아 들어가 명상하고 사색하면서 길어올리는 창조적 언어들은 그가 얼마나 예민한 언어 감각의 소유자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언어의 끝으로 밀어 올리는 신세계가 놀랍다.

 

질마재 문학상은 2010년 미당 서정주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그분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계간 미네르바에 의해 제정되었으며 우리 시문학을 이끌어갈 중량감 있는 작가를 선정하여 매년 한 번씩 수여하는 이 문학상은 제1회에 장석주, 고영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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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질마재문학상 및 신인상 시상식 초대합니다-미네르바

출처 : 한국낭송문예협회
글쓴이 : 목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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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해항로1 / 장석주

- 樂工

 

 

누가 지금

내 인생의 전부를 탄주하는가.

황혼은 빈 밭에 새의 깃털처럼 떨어져 있고

해는 어둠 속으로 하강하네.

봄빛을 따라 간 소년들은

어느덧 장년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네.

 

하지 지난 뒤에

黃菊과 뱀들의 전성시대가 짧게 지나가고

유순한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꽃봉오리를 여네.

곧 추분의 밤들이 얼음과 서리를 몰아오겠지.

 

一局은 끝났네, 승패는 덧없네.

중국술이 없었다면 일국을 축하할 수도 없었겠지.

어젯밤 두부 두 모가 없었다면 기쁨도 줄었겠지.

그대는 바다에서 기다린다고 했네.

그대의 어깨에 이끼가 돋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네.

 

갈비뼈 아래에 숨은 소년아,

내가 깊이 취했으므로

너는 새의 소멸을 더듬던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라.

네가 산양의 젖을 먹고 악기의 목을 비틀 때

중국술은 빠르게 주는 대신에

밤의 邊境들은 부푸네.

 

 

 

 

몽해항로

 

nefing.com

 

 

 

계간 미네르바가 주최하는 제1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장석주(56·사진), 질마재해오름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고영(44)이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각각 몽해항로너라는 벼락을 맞았다이다.

 

심사위원들은 장씨의 시집 몽해항로깊은 사유가 녹아있으면서도 감각적인 면을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자연사상을 통해 현대문명의 모순을 풀고자 한 점을 높게 샀다고 평했다.

 

고씨의 시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에 대해서는 상투성 또는 시류성과 담을 쌓고 제 자신의 시를 썼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라고 평가했다.

 

질마재문학상은 10주기를 맞은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를 기리고자 올해 처음 제정된 상이다. 시상식은 29일 서울 대학로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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