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평화 신앙체험 수기 공모 16년만에 부활

 

20년 간 가톨릭 문학 저변 확산에 기여한 신춘문예 공모는 폐지하기로 
  

 

 

 

▲ 평화방송ㆍ평화방송 사장 안병철 신부가 지난 2월 소설 '아라'로 2013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 김인정씨를 시상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스무해 동안 시행해온 '신춘문예' 대신에 올 가을부터는 '2014 신앙체험수기'를 공모한다.

 엄밀히 말하면, 1993년 '신춘 평화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신춘문예와 신앙체험수기를 공모, 1994~97년 네 해 동안 함께 시행하다가 체험수기공모는 중단되고 신춘문예만 시행해왔으니 16년 만에 체험수기 공모가 부활한 셈이다.

 평화방송 평화신문이 신춘문예 공모를 폐지키로 한 것은 '가톨리시즘과 인간 존중, 평화와 사랑이라는 올바른 가치관을 사회에 널리 확산한다'는 제정 취지와 달리 문학적 작품성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가톨리시즘에 입각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과 확산이라는 대의가 다소 퇴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신춘문예 공모는 지난 20년간 한국 가톨릭교회 언론의 유일한 신인작가 등용문으로서 가톨릭 문학의 저변을 다지는 '겨자씨' 역할을 해온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의미는 '인간 본성의 내적 깊이와 가치'를 추구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 보낸 작가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994~97년에는 신앙체험 수기 당선자 4명과 함께 시ㆍ소설 2개 부문에서 7명의 당선자와 1명의 가작 당선자를 냈다. 1998년부터는 신춘문예만 공모, 2001년까지 9명의 당선자(1998년 시 부문 공동당선)를 냈다.

 이어 2002년에는 서울대교구 교육국(현 청소년국)과 함께 신춘문예 공모를 창작동극 부문으로 확대 개편, 4년간 9명의 당선자를 냈다. 그 사이 2003년에는 시ㆍ창작동극 부문에서, 2004년에는 창작공극부문에서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풍요롭게 문학적 역량이 풍부한 신진작가들이 배출됐을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파고든 역량 있는 작품을 배출한 시기이기도 했다. 창작동극 작품은 특히 월간 「가톨릭 디다케」를 통해 발표됨으로써 성탄이나 부활시기 때 새로운 공연작 선정에 어려움을 겪던 본당 공동체에 작으나마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06년에는 또 다시 유아동화 부문을 신설, 2012년까지 7년간에 걸쳐 시ㆍ소설ㆍ창작동극ㆍ유아동화 등 4개 부문 공모 체제를 갖춰 23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끝으로 올해 2013년 마지막 공모에선 시ㆍ소설 2개 부문에서만 2명의 당선자를 배출함으로써 대단원을 장식했다. 꼭 50명이었다. '작지만 큰 언론으로서' 교회문학의 기틀을 다진 의미 있는 시기였다.

 2013년 소설부문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노순자(젬마)씨는 "이제 신춘문예 시행이 20년을 넘기면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춘문예 출신작가들의 작품활동이 활발해지는 터에 신앙체험수기 공모 재개로 대체된다는 소식이 들리니 무척 섭섭하고 아쉽다"면서 "신앙체험수기 공모를 통해서도 좋은 작품을 발굴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처 : 평화신문 홈페이지 기사

 

 

 

728x90

 

 

은빛 보행차 / 오정순

 

 

앉고 싶을 때 앉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만은

저 노인은 서고 싶을 때 설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다

풀썩, 직립의 보행을 주저앉히는 것은 아득한 역진화의 기억이다

노인의 외출과 동행하는 은빛 보행차,

생의 마지막 공궤를 받들 듯

의자가 달린 보행기를 모시고 간다

비어있는 의자에 경적과 깜빡거리는 푸른 보행시간이 앉아 있다

걸음의 거리가 지리멸렬할수록

보행기가 굴리는 바퀴의 공회전이 많아진다

의자는 다리를 받치는 부속물

수시로 찾아오는 퇴행의 증세들이다

그럴 때마다 휘청거리는 걸음과 날카로운 통증을 모셔 들인다

 

가까운 거리를 몇 겹 덧대면 보이는 먼 곳

언제부터인가 가야 할 길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골목 어느 한 귀퉁이가 한 생처럼 휘어져 있고

처마 밑 그늘에 햇살 걸음도 잠시 쉬어 간다

앉을 수 있는 날들은 다 서서 걸어왔거나 걸어간 후에 있다

이제 마지막 의자에 통증과 나란히 앉아 있다

두 다리 위에 아이를 올려놓듯

의자를 묘지로 삼고 싶다는 듯 잔뜩 웅크리고 있다

 

노인이 다시 일어서고

남아 있는 길의 거리를 경배하듯 저 굽어진 몸으로 휘어진 골목을

돈다

네 개의 바퀴와 굽은 허리 하나

더 이상 수리할 곳 없는 오후의 한때가

은빛 바퀴를 굴리며 가고 있다

 

 

 

 

우주가 들어있는 작은 공을 찾는다

 

nefing.com

 

 

 

 

[당선소감] 늦은 시작이지만 열정은 영원히

 

 

   은빛 보행차를 밀고 가는 노인의 구부정한 허리와 절뚝거리는 다리는 가슴이 먹먹한 시였다. 하지만 나는 생의 마지막 공궤가 될지도 모르는 의자 주인의 푸르렀던 보행의 시간과 두꺼운 통증을 표현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내 왼쪽 무릎에 긴 흔적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빈 의자에 다리를 올려놓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골목처럼 휘어진 삶의 굴곡과 통증으로 굳어진 시간들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통증을 새긴 후에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체험의 부재에서 캐내야 할 시적인 발상과 상상과 비유의 작업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겠다. 늦은 시작이지만 시를 향한 열정은 시들지 않을 것이고 사유는 진화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비워있는 나의 의자에 긴 울림이 있는 시를 모시겠다.

 딸을 위해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 엄마, 남편 호걸씨, 두 아들 대식 윤식, 감사드린다. 사물에게 부지런히 말을 걸라고 하시던 손광성 선생님, 시의 발자국 떼는 법을 가르쳐주신 이재무 선생님, 큰 절로 감사드린다. 두목회 글 동지들, 덕희 수정 미자 그리고 선희 언니, 김주. 그대들의 거침없지만 끝은 아프지 않은 회초리, 사랑한다.

 감당하기 두려운 '시인'이란 이름을 주신 평화신문사와 심사위원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신 하느님께 모든 영광 드린다.

 

 

 

[심사평] 사물에 대한 관찰력, 묘사 돋보여

 

   시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시심이다. 마음의 바탕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으면, 인생의 희로애락과 인간 생로병사의 비의를 탐색하는 데 있지 않으면, 그 시인은 시를 쓰는 기술자이지 시인이 아닌 것이다.

 평화신문에 투고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자일 필요는 없다. 또한 주제가 신앙심이나 영성이어야만 하지도 않고,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와야만 하지도 않다. 우선 좋은 시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가 좋으려면 진실한 마음(흔히 '진정성'이라 한다)으로 써야 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정순의 '은빛 보행차'를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지팡이를 대신해 노인의 보행을 도와주는 유모차 비슷한 것이 있다. 이 시는 바로 그 보행차가 시의 초점이 된다. 몸이 불편한 노인에 대한 과도한 동정심이나 부자연스런 행동에 대한 과장된 표현 대신 사물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세심한 기록이 이 시의 덕목이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관찰기록 속에는 한 존재의 말년이 참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보행차는 은빛을 띠고 있고, 그 빛나는 사물이 바로 노인이다. '햇살 걸음'의 발견도 놀랍지만 '네 개의 바퀴와 굽은 허리 하나'가, '더 이상 수리할 곳 없는 오후의 한때'와 함께 은빛 바퀴를 굴리며 가고 있는 광경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미상불, 눈부시다.

 '피에타'(김형미)는 병실에서 늙어버린 어머니와의 나날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수놓은 작품인데 받쳐주는 시들이 약했다. '책의 장례'(김은호)는 전반부의 견고함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락방에서 본 풍경'(정순)은 추억담을 들려주는 입담이 여간 활달하지 않은데, 그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압록 매운탕'(조송이)은 참 좋은 소재인데 소품에 가까워 좀 더 의욕을 갖고 퇴고했으면 한다.

 "백부가 인절미 담긴 칠기를 던졌다 학이 날던 다완도 함께 날아갔다"로 시작되는 시와 "누군가 걷어내는 걸 잊어버린 물그림자"로 시작되는 시를 쓴 두 응모자는 기성시인임이 심사과정에서 밝혀졌다. 전자는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았다 하고, 후자는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를 통해 등단한 뒤 시집을 2권 냈다고 했다. 이런 분이 구태여 신춘문예를 다시 두드릴 필요가 있을까? 공자가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한 이유를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 심사위원 정호승, 이승하

 

 

728x90

 

 

그늘 / 김현희

 

 

후박나무가 젖은 잠을 털어내고

며칠 품었던 그늘을 꺼내 펼쳐놓는다

나무가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때,

햇빛은 나무들의 거울이다

이리저리 몸을 비추느라 눈이 부신 나무들

거울의 각도에 따라 키는 늘어나고 줄어든다

 

나무의 품을 통과한 빛은 오직 검은 빛

제 몸이 푸르다는 걸 아는 나무는 세상에 없다

 

키만큼 깔리는 그늘멍석

둥근 그늘 속으로 한바탕 새소리가 내려앉는다

부리에 쪼인 그늘에 구멍이 났다

입이 가려운 참새들, 수다스런 풍경을 물고 건너편 회화나무로 날아간다

가지마다 소리가 열리고

저편 하늘이 넓어졌다

 

새들의 부산한 날갯짓에 낮은 한 뼘씩 줄어든다

 

이곳에 먼저 터를 잡은 후박나무, 가장 넓은 평수를 차지했다

지난여름 뼈마디를 늘리던 손

바람에 그늘이 찢어지고 나무의 거울도 금이 갔다

 

폭설에 팔 하나를 잃고 끙끙 앓던 나무

아름드리 저 품에 우레를 피해 몸을 웅크리던 절박한 순간들이 숨어있다

사라진 가지를 기억하는 박새가 후박나무를 맴도는 동안

나무는 내내 환상통을 앓았다

 

바람이 후박향을 물고 빠져 나간다

바람의 손짓 따라 그늘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선소감] 진심이 담긴 시를 짓겠다

무언가 뒷덜미를 당기는 증상에 잔병치례를 했던 날들, 원인 모를 고열이 온 몸에 열꽃으로 피던 날,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문학이 나를 치유했다. 중년을 새롭게 설계하는 힘이었다. 조금 늦게 만났지만 나의 결핍을 시로 메우리라.

공백으로 남을 뻔했던 나의 이력에 새로운 파일을 첨부해주신 평화신문과 이승하ㆍ정호승 두 분 심사위원님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 잡초 가득한 묵정밭에 시의 씨를 뿌리게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방송대 국문과 교수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함께 공부한 문우들과 친구 강옥, 내 시의 첫 번째 독자인 아들 이안, 철 지난 공부에 불평없는 외조를 해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에게 진심이 통하는 시를 짓는 시인이 되고 싶다. 일찍 고인이 된 부모님이 무척 그리운 날이다.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자연스럽게 와 닿는 주제의식, 수난을 통해 존재감 얻어가는 과정도 신선

투고자들이 '평화신문'이라는 발표 지면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시를 쓰고 있어서 이 점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종교인으로서 전교나 신앙심 표현을 위해 의도성을 갖고 쓴 작품이라면 문학적 진실에 못 미칠 수 있어 내심 걱정하며 심사에 임했는데 그런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책의 장례>를 쓴 김은호, <나는 풍경이 아니다>를 쓴 정지윤, <손톱>을 쓴 예시인, <오징어먹물 B2, 혹은 자산어보에 대한 고찰>을 쓴 황옥경, <목이>를 쓴 김현희 다섯 분은 모두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아직 등단을 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군의 작품이 눈에 안 띄는 대신 다 일정 수준에 이르러 있어 상대적으로 흠결이 덜한 작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수준이 상향됐다고 할까, 평화신문 신춘문예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책의 장례>는 초반부와 중반부의 신선함을 후반부에 가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잘 끌고 가다가 전환점에서 "할머니 강아지 '토토' 돌아가셨다" 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렸다. 마지막 연도 밋밋하다. <나는 풍경이 아니다>는 표현은 상당히 세련돼 있는데 궁극적으로 무슨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인지 잘 파악되지 않는다. 나는 풍경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시의 본문에 '않는다'라는 부정적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오는 것도 이 시의 주제를 흐리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손톱>은 10개가 넘은 쉼표를 쓰면서 중문과 복문이 많은 산문시로써 시의 운율이 완전히 죽어버린 결함이 있지만 손톱을 유리창으로 본 발상의 참신함과 시적 표현의 세련됨, 현란한 이미지 묘사는 선외로 밀치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오징어먹물 B2…>는 좋은 소재를 찾아냈지만 '고찰'까지 이르지 못했다.

김현희의 투고작 중 제일 앞의 <목이>는 세련된 감각이 돋보였지만 표현기법이 낯익은 것이 문제였다. 제일 뒤에 있는 <그늘>은 생명체의 생명 유지 비밀을 캐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박나무를 키우는 것은 햇빛만이 아니다. 나무를 의인화한 뒤에 그늘과 바람과 새와 폭설의 의미를 짚어보면서, 생명이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아독존해서 안 되고 주변의 모든 사물과 교류해야 함을 말해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나무가 수난을 통해 존재감을 얻어가는 과정도 신선한 발견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해줄 것을 당부한다.

- 심사위원 이승하, 정호승 시인

 

728x90

 

 

죽부인(竹夫人) / 김후자

 

 

재활용 쓰레기 더미 위에

죽부인이 누워계신다

다른 건 다 가져가도 사람들

죽부인에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다

상처가 상처를 달래줬을 시간들이

구멍 뚫린 살 속으로 파고든다

조강지처 어머니도 버려진 적이 있었다

틈만 나면 밖으로 도는 아버지

휘파람 따라 둥둥 떠다닐 때

대숲에 휘청이는 바람소리만 안고

뒤척이던 어머니는

얇은 잠속에서도 늘 깨어있었다

아무것도 줄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

노을처럼 느적느적 돌아오신 아버지

버려진 아버지를 품에 안은 건

죽부인 당신이었다

곧은 성품,

흐트러짐 없는 당신이 누워계신다

움푹 패인 상처마다

괜찮다, 괜찮다 나지막한 소리

달꽃이 피었다

 

 

 

 

[당선소감] 시의 문고리를 잡고 제 글 중심에는 늘 어머니가

 

'시가 뭔지 아느냐'라는 질문엔 아직도 쭈빗쭈빗 말문을 잇지 못합니다. 이제 막 시의 문고리를 잡은 정도랄까요?

 

시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모호하고 불확실한 그 무엇에 나는 오늘도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아직 멀고도 먼 길이지만 제가 가는 이 길목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 제가 빚어낸 시들이 그분들의 가슴에 위안이 되길 바래봅니다.

 

시가 뭔지 문학이 뭔지 잘 모르시는 어머니, 그래도 당선 소식을 알리자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저의 글 중심에 늘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시를 알게 해주신 제 주위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내일처럼 기뻐해준 선자와 언니, 오빠. 나를 안고 빙그르르 돌며 엄지손을 치켜든 딸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와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좋은 시인이 되길 바라던 나의 동생. 수정, 정화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다 못해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겠지요. 너무나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 상은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죽부인' 통한 삶의 통찰력 돋보여 군더더기 없는 표현·선명한 주제의식 높이 평가

 

예년에 비해 수준 높은 응모작들이 많았다. 지나치게 멋 부리거나 애매모호한 작품은 줄어든 반면, 서정성 짙은 시들이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우경주씨의 '시계들의 소풍', 이경옥씨의 '해바라기', 김후자씨의 '죽부인' 등 세 편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우경주씨의 <시계들의 소풍>은 달리의 미술작품을 시적 소재로 삼아 인생에 은유한 점이 신선했다. 그러나 시계라는 소재에만 너무 국한한 나머지, 표현이 작위적이고 결구 부분이 안이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경옥씨의 <해바라기>는 소재를 파고드는 집요함과 표현력은 높이 살만했으나, 시어의 명징성이 부족해 읽는 맛을 떨어뜨려 아쉬움을 남겼다.

 

심사위원들은 김후자씨의 <죽부인>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시적 표현과 비유에 노련함이 엿보였고, 선명하게 주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쓰레기더미 위에 버려진 죽부인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어머니의 삶에 투영하는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고 능수능란했다. '움푹 패인 상처마다/괜찮다 괜찮다 나지막한 소리/달꽃이 피었다'와 같은 끝맺음도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김종철, 신달자 시인

 

 

728x90

 

 

송전탑이 있는 풍경 / 김승원

누구나 가파른 고개 하나 품고 산다

마른 노간주나무에 금종이 뿌린 듯 달이 뜨면 하수구엔 통증처럼

달라붙은 흰 밥알들, 새벽까지

도둑고양이는 오줌지린 골목 담벼락을 훌쩍훌쩍 뛰어넘고

달빛 가닥을 풀어 지붕 밑에 획득의 눈 시린 그물을 치는 대왕거미들

옆집 미장이시다 김 씨 손놀림보다 든든하다

달이 져도 쉬이 잠들지 못한 사람들, 아슬아슬 살아온 날만큼

가까스로 켜든 알전구 하나 가슴 안쪽에 단단히 밀어 넣고 산다

이제 살아갈 날들이 더욱 아득해 어쩔 수 없이 한 뼘씩 세월을 늘이며

새벽에 출항했다가 늦은 밤 귀가를 한다

능소화가 피워 올린 지난여름도 이 고개에선 언제나 주춤거려야 했다

구부러진 길은 끝내 채울 수 없는 허기로 남고

그 허기, 어느 길목에 내려놓을까

눈보라도 한 번쯤 숨을 고르는 이곳은 영 해발 부근

오르는 사람들만 보인다 아니, 누구나 계단을 오르고 싶은 것이다

밤새 빨랫줄은 젖은 옷 내려놓지 못하고 바람에 내장을 말리고 있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송전선만 파밧파밧

빈 하늘에 고압전류를 흘려보낸다

모두들 가만히 어제의 무게를 달빛 속에 풀어놓는다

[당선소감] 이 세상 모든 시, 나의 스승 /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시는 유일한 위안

투시력도 없는 주제에 앞만 꿈꾸며 살았다. 사물의 너머를 관통하지 못하고 불안과 망설임에 나를 내맡긴 꼴이다. 가끔 누군가 뒤통수를 잡고 흔들 때면 두통에도 시달려야 했다. 첫 생리통의 날카로움보다 새벽이 남긴 숙취의 묵직함과 닮은, 왼 손바닥을 힘껏 벌려 관자놀이에 지문을 누르면, 남은 손은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열 손가락에 맞춰 디자인 된 자판을 외팔로 다루기란 쉽지 않다. 결국 통증에 굴복하기로 한다.

당선 통지를 받던 날, 사무실 일로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불현듯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사 분의 사 박자 메트로놈을 닮은 일정한 리듬의 통증 속에서 이 기쁨을 누구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잠깐 시를 떠나 있었기 때문일까.

나의 습작기도 늘 이렇게 두통으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스승이 따로 없어서 이 세상 모든 시가 나의 스승이었다. 내 생에 있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가르침 그 자체를 의미한다. 시가 벗어놓은 묵은 속옷이라도 훔쳐 입을 때면 그 어떤 찐득함이 나를 전율케 했다. 감당하기기 쉽지 않은, 그래서인지, 나의 글은 촌스럽고 투박하다.

금방 불똥이라도 튈 것 같은 전선들이 하늘을 까맣게 메운 골목길 풍경이 좋다. 어쩌면, 매끈한 출퇴근 길에 줄 맞춰 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사는 내게, 시는 유일한 위안일지 모른다. 자위의 소산물이 이렇게 사고를 칠 때면 난 더욱 부끄러워진다. 졸작을 품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머리를 부여잡은 손을 놓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두통이 반가울 때가 다 있다.

못난 딸자식을 마냥 사랑해주시는 부모님, 또 가슴으로 이어진 이들과 이 부끄러움을 나누고 싶다.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절묘한 시적 배치 돋보여 / 시어 다루는 솜씨에 시를 읽히게 하는 매력

올해에도 투고한 작품 중에는 종교성을 지닌 시편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신앙을 주제로 시를 썼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시로 충분히 여과시키지 못한 채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사유를 타자에게 전하려 함은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투고작 중에서 이석례의 '연무산 일출', 주영숙의 '배롱나무', 도복희의 '겨울나무', 김승원의 '송전탑이 있는 풍경'이 돋보였다. '연무산 일출'은 안개 속의 일출에서 얻어내는 상상력이 뛰어났으나 각 연 구성의 작위성과 시어 수련에 부족함을 드러냈고, '배롱나무'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작품으로 응모작 전체가 고른 수준을 나타냈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부족하여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도복희와 김승원의 응모작을 놓고 토론에 들어갔다. 도복희의 <겨울나무>는 시를 쓰는 기교가 수준급에 올라 있었지만 작품에 담고 있는 세계가 소품 수준이었고, 시적 상상력의 결여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김승원의 <송전탑이 있는 풍경>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하여 시를 읽히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또한 상반된 시적 비유를 통해 그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해 가는 품새가 능청스러울 만큼 자유로웠다. '마른 노간주나무에 금종이 뿌린 듯 달이 뜨면/하수구에 통증처럼 달라붙은 흰 밥알들' 같은 절묘한 시적 배치가 신인답지 않게 노련했고,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고르게 안정되어 있어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여러 시적 상황들을 곡예하듯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자칫하면 언어유희에 빠질 수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심사위원 김종철, 신달자 시인

 

728x90

 

 

낯익은 가방 / 김상현


캄보디아 어느 시골길을 김순임의 이름이 써진 책가방이 달리고 있어요.
바나나 파초 잎 사이로 난 붉은 수채화길 위를 싱싱 달리고 있네요.
소녀는 자전거를 탔어요.
 
노오란 색 그 가방, 한국에서 온 거래요.
김순임이라는 어린 아이가 쓰고 물려 준, 아주 멀리까지 던져 준,
노오란 색 그 가방이 연둣빛 완두콩처럼 아직 여물지 않은 캄보디아 소녀의 마른 어깨에서
황홀하게 흔들거려요.
 
유골탑을 지나고 망고나무 아래서 자전거는 멈춰 섰어요. 유골탑에는 마을의사, 학교선생님, 안경을 낀 사람, 펜을 지녔다는 이유로 죽은 유골들이 동공이 사라진 더 큰 눈을 하고 김순임의 이름이 써진 책가방을 바라보네요.
 
지뢰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망고나무 밑에 서 있어요. 아직 소녀는 뒷모습만 보여요. 이국 아이의 이름이 매직으로 커다랗게 쓰인 낡은 가방 속에는 딸아이의 꿈이 가득 담겨져 있다는 것을 목발의 아버지는 알고 있어요.
 
소녀가 지나간 그 길 위로 노란나비 떼들이 날아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맨 노오란 가방에는 은하유치원, 샛별유치원이라는 한글글자가 선명해요. 유치원이 끝났나 봐요.





[당선소감]

악어무리가 새끼 누우 한 마리를 갈기갈기 찢어먹고, 사자가족이 병든 얼룩말의 내장을 나눠 먹는 동물의 왕국, 텔레비전 모니터는 피투성이다. 피를 닦아내고나면 다시 히잡과 차도르가 피에 물들고, 겁에 질린 아이는 다리가 없다. 중동전쟁을 방영하는 텔레비전 화면, 여전히 모니터는 피투성이다.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받은 기쁜 날에 텔레비전 뉴스는 '팔레스타인'의 '가나'라는 마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100구의 어린아이 시신이 발견됨으로써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무려 1300명에 이른다는 비보로 텔레비전 모니터는 피로 흥건히 적셔있다.

내가 여행한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도 전쟁과 학살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적이 있다.

이 생명 파괴의 시대에 '시 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절망감이 들다가도 세상을 향해 내가 날릴 수 있는 화살은 이것밖에 없다는 남루(襤樓)가 다시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신이 허락한 생명의 반환점인 회갑을 넘으면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버리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을 정리한 적이 있다. 결국 '시 쓰기'라는 내 영혼과의 대화 채널만은 끝까지 열어 놓기로 결심을 했다.

당선의 기쁨을 누워계신 93살 어머니께 전해드리고 싶다. 그러면 내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해주실 것이다.

생명 회복, 생명 애정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시를 뽑아주신 평화신문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더욱 더 정진하는 자세로 보답하고자 한다.

 

 

 

 

이마트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박종영의 '구형텔레비전', 이금미의 '거미의 집', 최정아의 '세한 달', 김상현의 '낯익은 가방' 등 네 편이었다.

그 중에서 '구형텔레비전'은 지나치게 산문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미의 집'은 불필요한 사족이 많고 응집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됐다.

따라서 자연히 '세한 달'과 '낯익은 가방' 두 편이 남게 됐다. '세한 달'은 전체적으로 시적 긴장을 팽팽히 유지해 나가는 솜씨가 돋보였다. 적재적소에 언어를 배치할 줄 아는 감각적 능력 또한 돋보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묘사에만 의존해 내용이 부족한 공허한 시가 되고 말았다. 시는 묘사로도 이뤄지지만, 동시에 그 묘사의 대상이 품고 있는 내용으로도 이뤄진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당선작은 '낯익은 가방'으로 결정됐다.

'낯익은 가방'은 감동이 있는 시다. 우리나라 유치원 아이들이 사용하던, '김순임'이라는 한글 이름이 쓰인 가방을 내란으로 피폐한 캄보디아 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풍경을 잔잔하게 서정적으로 다룬 시로, 시를 발견한 눈도 탁월하지만 시적 형성력 또한 억지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다소 평이한 진술적 형식이 단조롭다고 할 수 있으나 그 단조로움이 오히려 큰 호소력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이 시에서 맑고 고요하고 따뜻한 평화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시단을 이끌어갈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김종철, 정호승 시인

 

728x90

 

 

좀들이쌀 / 김남수

이사하면서 지하실 구석진 곳에

슬그머니 놓고 왔다

묶인 짐들이 제자리를 찾는 사나흘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주소 바뀐 집에서

놓고 온 좀들이쌀 항아리를 생각했다

오래된 기억들이 출렁거렸다

뒤주 옆 좀들이쌀 항아리

바닥 긁는 소리 단잠을 깨우는 날이면

만장기도 없는 상여 한 채가 절뚝절뚝

뚝방 길을 밀고 떠나갔다

둘째 언니는 여전히 아침저녁

놋숟가락으로 어른 수만큼 쌀을 덜어냈다

항아리에 조금씩 쌓이는 좀들이쌀

이장집 할머니가 함지박 이고 사립문을 들어서면

반도 못 찬 항아리가 텅 비었다

그런 날이면 상여 한 채가 뚝방 너머로 사라지거나

타지에서 흘러온 영월댁이 몸을 풀었다며

어른들의 근심이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이사한 지 두 주일 지나

손잡이 떨어져 나간 그 항아리를 찾아 나섰다

마음 앞세우고 서둘러 가는 길

예고 없이 비가 내렸다

골목의 수평이 기우뚱 발목을 적셨다

  • 김남수 시집 <둥근 것을 보면 아프다>(상상인 시선 010)

[당선소감]

"에미야 오늘 쉬는 날인데, 방문 콕 닫고 들어가더니 어찌 이제 나오냐? 나는 네가 안 나올 줄 알면서도 옥중 춘향 이도령 기다리듯 했어야."

내 방문 앞까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해거름까지 말벗을 기다리던 당신. 닫힌 방문 앞에서 기다려준 시간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뒤늦게 시를 쓰겠다고 열심을 내는 막내딸을 대견스러워 하면서도, 때로는 투정처럼 외로움을 하소연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시를 접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더 컸습니다.

다시는 써질 것 같지 않던 시(詩), 마음 추스르며 버려둔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오래 시에 주려 있었습니다.

시를 찾아 먼 길을 걸어와 뒤늦게 이제 시를 만납니다.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주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시밭을 깊게 갈아 엎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시의 길로 불러주신 고 임영조 선생님, 걸음마를 떼게 하신 이승훈 한양대 교수님, 이지엽 경기대 교수님, 문효치 선생님, 식어 가는 심지에 불을 지펴주신 마경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곁에서 응원해주던 딸 우리와 시인의 아들이 되고 싶다던 기철이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심사평]

지난해보다 작품 수는 무거웠다. 질도 훨씬 키가 높았다. 평화신문 신춘시의 수준이 여기에 닿았다고 흐뭇해 하며 심사를 했다.

심은섭씨의 '내비게이션'은 상상력과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각별하며 신시대 흐름에 따르는 새로움을 차고 들어가는 가동력이 있긴 했지만, 덜 삭은 듯 어색한 표현들이 아쉬웠다.

서옥섭씨의 '류(柳)가 들고 온 네프리솔 250'은 산뜻하고 유쾌한 표현과 이미지가 눈길을 끌었고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신선미가 마음을 끌었는데도, 선뜻 당선작으로 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이 심사위원이 일치하는 의견이었다. "너무 눈부셔 늙어가는 그 여자 바람났네/한 3일 구멍 뚫린 무처럼 바람들었네" 등의 표현은 글솜씨의 진경에 들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구절들이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작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면서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숙고하게 한 것은 강미성씨의 '직소폭포'와 김남수씨의 '좀들이쌀'이었다. '직소폭포'는 세련된 문장과 시를 몰고가는 역동적 힘이 보통 수준을 넘었고, 오랜 연륜을 느끼게하는 그의 시의 근육은 탄탄하기만 했다. 약점이라면 여러 편의 시가 고른 수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지적됐다.

김남순씨의 <좀들이 쌀>도 만만치 않은 연륜과 흘러간 시절의 작은 항아리 하나에 한 시대의 슬픔과 배경을 끌어 모아 잔잔한 감동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하는 내성의 깊이가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다. 더욱 다섯 편의 시가 고른 수작이었고,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될 듯했다. 시의 분위기가 좀 어둡다는 것이 흠이라는 지적은 있었다. 그러나 시의 완성도가 그쯤의 흠을 누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당연 당선작으로 할 만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 생각이었다. 강미성씨는 어디에서든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믿고 아쉬움을 전한다.

- 심사 위원 김종철ㆍ신달자 시인

 

728x90

 

 

해거름엔 포도나무가 되고 싶다 / 조미희

늦은 햇살에 감전된

그 떨림의 시작을 찾아 발 닿은 곳은

한번도 가 닿은 적 없는 빛의 계곡

간간이 어미 품을 파고드는 몸집 가벼운 산짐승

불쑥 나타나 내 눈동자를 밟고 사라진다

날숨 쉬며 기다려왔던 시간만큼

그제야

제 본래의 모습을 벗어버린

향기로 몸을 다듬은 풀꽃처럼 목이 긴 유리잔 속에서

휘청거리며 맴돌다 흘러내린 포도의 눈물은

침묵의 매듭을 푸는 향기가 된다

인도블록으로 가려진 푸석한 도심의 뿌리엔

빗물보다 진한 수혈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말하는 이는 없다

한 모금 머금고

상처 난 뿌리가 또 다른 상처를 천천히 핥아주는 동안

바람은 바람이 되어 소리를 내고

지친 몸을 내맡기는 평화는 길지 않아도 아름답다

어둠의 속살을 벗기는 한 방울의 포도즙은

둥글고 모난 아픔의 자리마다

손끝으로 흐르는 물길을 내고

땅을 들썩이는 뿌리엔 수액이 차올라

다가올 계절은 늘 푸르다

나무는

땅 밑과 땅 위에 몸을 나누고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성자다

지상에 귀를 대고선 나무그림자 사이로

사람들이 남겨놓은 눈웃음이 가로등으로 반짝인다

사랑 한 올 명치 끝에서 풀려나와

골 깊은 가슴과 가슴을 지나

금가고 더께 진 생의 블록을 꿰매고 다듬는 동안

저녁 종소리엔 눈을 감는 하늘

해거름엔 모두

포도나무

그 가지가 되고 싶다

  • 조미희 시집 <체 게바라와 브라우니>(문학수첩)

[당선소감]

아침 해는 언제나 모국의 하늘에서 먼저 뜬다.

단 한 번의 도전이 가지고 온 희소식은 지구의 끝자락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스윗스팟(Sweet Spot)" 바로 그것이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빙산이 갈라지는 쩌렁쩌렁한 울림의 장관을 보는 듯 했다.

서서히 이동하다 마침내 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회기 본능의 웅장함.

시가 내게로 다가올 때도 그러했다. 가장 나다운 자리로 돌아 왔을 때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는 생의 세포분열이었고 스스로를 추스르는 모험이고 도전이고 최고의 성역이 되어 주었다.

먼저, 이국땅에서 고국으로 날아간 작품을 기꺼이 받아들여주신 평화신문에 감사드린다.

현지 언어와 문화에 동화되기 쉬운 2, 3세들에게 모국어 문학을 꿈꾸는 새로운 방향 제시가 될 것이다. 문학을 통해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가는 '나비효과'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당선의 기쁨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재아 문인 협회 회원들, 함께 글을 나누는 평화문단 동인님들, 엄마 아빠나라의 차세대 작가들이 될 재아 가톨릭 한글학교 우리 개구쟁이들 그리고 이름 불러 감사드리고 싶은 많은 분들 무엇보다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가족, 대모님 대부님, 홀로계신 어머니, 가죽장갑을 마지막 선물로 남기고 가신 아버지께 바친다.

  • 조미희 시집 <상현달에 걸린 메아리>(문학수첩)

[심사평]

마지막까지 논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은 김혜경, 김은, 이문자, 그리고 조미희였다. 먼저 김혜경의 「광개토피씨방」 등의 작품은 생활에서 소재를 길어올리는 섬세한 시각과 상상력이 개성적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적 긴장감과 신인으로서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중론이었다. 다음 김은의 「배꼽참외」는 비록 소품이었으나 표현이 신선하고 명징한 이미지들을 구축하는데 노련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다만 함께 투고한 작품들이 균질하지 못하고 시적 대상을 장악하고 운용하는 부분에 있어 드러난 미숙함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당선을 겨루었던 이문자의 「사막」과 「앉은뱅이꽃」 등은 녹록치 않은 경지의 작품들이었다. 한 편 한 편이 오랜 벼림을 거쳐 공들여 쓰인 노작처럼 보였고, 사물이나 대상의 전형을 포착해내는 능력과 그것들을 단단하게 형상화해내는 능력이 특출했다. 다만 언어를 좀더 절제하고 유형화된 패턴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이들과 마지막까지 숨가쁘게 겨루며 당선의 영예를 안은 조미희의 「해거름엔 포도나무가 되고 싶다」 등 5편은 시인의 상상력과 시적 형상화의 능력에 있어 독창적이었다. 특히 "나무는/땅 밑과 땅 위에 몸을 나누고/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성자다"라는 식의 표현에서 보여주는,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통찰과 개성적 언어미학도 인상적이었다. 자칫 추상과 관념에 빠지기 쉬운 주제를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감수성과 그것들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능숙함이 단연 돋보였다.

다만 앞으로는 언어를 더 절제하여 언어미학의 긴장을 항상 유념하며 대상에 대한 참신한 발견을 통해 기성 시풍에서 벗어난 독창적 세계를 유지해 나가길 바란다. 먼 타국에서 모국어를 잊지 않고 새롭게 시인의 길을 걷게 된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신달자ㆍ김종철 시인

 

728x90

 

 

 

붉은 수수밭 / 연용호

 

 

수수꽃이 파하고 열렸다 최불암같다

붉은 벽돌집 사는 여자 공리여,

붉은 수수꽃 피는 날 만나 그곳에서 사랑을 나눴고

그들은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붉은 수수팥떡하고 그 여자는 잘 어울렸다

파하고 웃으면 붉은 수수 알이 오소소 떨어져

깨가 쏟아지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리고 껍질을 벗겨내면 마침내 하얀 속살을 뽀얗게 드러낸 그것이

서방님하고 달려들 때

파하는 웃음도 오냐 어디 하고 놀라서 함께 날뛰었다

매일 너무도 행복했다

그래서 수수꽃 피는 때만 되면

붉은 벽돌집 그 여자 공리는

그 밭가에 나와 앉아 최불암처럼 파하고

웃어줄 서방님만 기다린다

 

 

[당선소감] 영원히 잃어버릴 뻔한 소중한 꿈 한 조각

오전 일과를 마치고 쉬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느 때와는 달리 왠지 떨리는 기분, 잊고 있었던 어느 회상 한 조각이 날아와 안겨드는 느낌은 침잠하다기보다 푸른 정광(精光)이면서 조화로운 것이었다. 가슴 벅차고 떨린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나, 그러면서도 영원히 잃어버릴 뻔한 소중한 어느 꿈 한 조각을 비로소 찾아온 듯한 그런 안도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문학도들이 안고 있을 열정, 꿈, 그리고 생명보다 더 진실한 법의(法意)와도 같은 그 실심(實心), 종교와도 같이 고양되어진 집념이,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나, 그렇게 아파하고 앓은 흔적이 오늘과 같은 결론을 얻을 만큼 충분히 있었나, 진실로 그래야만했던 것은 아닌가.

이제 막 도착한 무궁화호 열차, 역사 밖에 서서 길들을 바라본다 하는 느낌은 이런 뜻에서의 말인가. 처음 다니러온 고장에 첫발을 내디딜 때 그 기분, 정겁(情劫)처럼 닥쳐오는 생각들을 끌어안고 그저 안쓰러워할 줄밖에 모르는 나에게, 그저 치기와도 같은 그 어설픈 감정의 행렬들이 저 창가에 쏟아져 들어오는 아직도 이른 두꺼운 봄기운처럼 내게 현실로 다가들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직도 시인이 된다는 그 말이 이렇게 어색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혼자서 가꿔오던 꿈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그런 기분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감사할 분들이 너무 많다. 내게 맨 처음 시라는 형식에 대해 인연을 맺게 해 준 문우 설영과 깊은 우정으로 격려를 대신해준 영헌, 남로, 그리고 변함없는 관심과 우려를 함께 보내준 고향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며, 어머니, 당신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픕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내사랑하는 가족 친지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문학이란 천형의 꿈을 안겨주신 심사위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분께서 안겨주신 꿈 소중히 간직하며 열심히 가꿔가겠습니다. 좋은 시를 써서 이 모든 분들께 보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마트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능숙한 시어, 이미지 단련 빼어난 수작

무려 1500여편의 작품이 들어 왔다. 단단하고 시적 긴장감을 주는 작품도 다른 해보다 많았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무게도 그만큼 중량감이 있다는 보증일 것이다.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책임감도 함께 갖는 일이다. 해서 좀더 좋은 시를 고르기 위해 어느 때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예선을 거쳐 마지막 당선 겨루기를 한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이혜순씨의 '그 동네는 지도가 없다'와 박금숙씨의 '씨앗', 김순미씨의 '홍역'과 '여우비 다녀간 뒤' 2편, 연용호씨의 '붉은 수수밭'을 두고 오래 토론이 벌어졌다. 모두 당선작의 역량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동네는 지도가 없다'는 시의 기본 틀을 잡는 데는 무리가 없었으나 이미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씨앗'은 "바람이 가는대로 모래에는 바람의 발자국이 찍혔다"라는 섬세한 표현으로 시를 농밀한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힘은 인정되나 전체적 함축력은 부족했다는 평가였다.

역시 '홍역'과 '여우비 다녀간 뒤'도 끝까지 남아 맞겨루기를 했지만, 총체적 시적 함량으로는 시선을 끄는 작품이었으나 어딘가 미진하다는 결론이었다.

짜임새가 있으면 내용에서 아쉬움이 있고, 시어의 특출한 효과를 누리는 재치가 있으면 전반적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붉은 수수밭'으로 결과가 났다. 시의 분위기가 밝고, 시어를 다루는 법이 능숙하고, 이미지의 단련이 돋보였으며, 매우 개성적이다. 다른 작품들도 가능성이 보이며, 앞으로 시작 생활에 신뢰가 있어 두 심사위원은 마음을 합쳤다.

완전한 모범답안을 원하지는 않았고, 가능성의 믿음을 크게 점수 받은 것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좋은 시인으로 활약해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춘문예의 문을 나간 사람으로 빛을 내기 바란다.

- 심사위원 김종철ㆍ신달자(시인)

 

 

728x90

 

 

곰팡이 / 이병일

가마솥에 콩을 넣고 장작불을 지핀다

익은 콩을 절구통에 찧는다

메주는 서늘한 그늘에서 말린다

1

바람 좋은 날에는 가장자리부터 가벼워진다

미세한 햇살조각이 굴절되어 박혀드는 순간에

창을 열듯이 제 가슴을 활짝 열어 벽이 갈리고 있다

거친 난간 위에 포자들은 습한 계곡의 길을 건너고 있을까

밝음과 어둠 속, 빛을 굽는 보름달 아래

숱하게 구멍들이 뚫렸다

담쟁이 넝쿨처럼 곰팡이가 내 몸을 뒤집어썼다

멈출 수 없는 발,

푸른 숨소리 내는 바람 따라 계곡 사이

곰팡이 벌레가 긴 잠을 자고 있었다

2

햇살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속 뜰 가운데

항아리를 묻는다 첫눈을 맑게 틔운 물에

메주, 참숯, 잣, 대추, 고추를 재운다

그 위에 하얀 천을 금실로 싸매고 뚜껑을 덮는다

밤새 애태우다가 헹궈내며 숙성되기 시작한

구수하게 트여오는 숨소리가 밤하늘로 터져버린다

잠에서 깬 새들이 푸른빛을 물어 나르는 아침,

옹글게 견딘 내 몸은 깊은 바닥으로 흩어지는 것일까

어둠에도 눈이 부시는 간기가 흐른다

바가지 닿는 소리가 날 때,

나는 기나긴 여정 속 밥상에 올라와 앉아있을 것이다

  • 이병일 시집 <나무는 나무를>(시인수첩 시인선 036)

[당선소감]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려고 형이 추천해준 책을 읽고 있었다. 뜻밖의 당선소식을 듣고 나는 부끄러웠다. 이제 시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려고 하는데,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낯설어보이는 하루였다.

군에서 전역한 후, 일정하게 책을 읽고 또 시도 열심히 쓰려고 누구보다 많이 노력한 일년이었다. 이번 계기로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할 것이다. 철없는 막내보다 더 기뻐하신 부모님, 그리고 나의 가족들. 문학을 이야기하며 같이 놀아주던 절정 동기들.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세상의 사물들이 있기에, 오늘도 거리를 걸으며 메모장에 시를 적는다. 나는 아궁이에 윤기 흐르는 시를 지필 것이다. 그리고 살아 꿈틀거리는 시를 쓰기 위해 자연과 연애할 것이다. 자연 속엔 위대한 잠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복학해서 같이 공부한 2반 식구들. 그리고 뒤란 식구들. 매순간 힘이 되어준 지훈형, 성우형에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시 쓰기를 천직으로 여기라는 장석주 교수님, 어머니 같은 따뜻함으로 부족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신달자 교수님, 시의 길에서 새로움을 깨닫게 하고 시를 만들게 도와주신 이경교 교수님, 그리고 명지의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미숙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평화신문사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시인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

  • 이병일 시집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창비시선 399)

[심사평]

심사에 앞서 심사위원들은 나름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것은 좋은 시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좋은 시'라는 단순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정의는 선자(選者)들의 시적 취향과 시적 기준에 의해 약간의 편차를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사물의 마음을 읽어내 줄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의 마음에 깃들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전제한 것이다.

이런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본선에 올라온 시편들을 읽어갔다. 그러면서 늘 들어왔던 이야기를 너무나 익숙한 어법으로 전개한 시편들에게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자신의 견고한 내면세계에 천착한 접근불능의 시편들에는 더 이상의 인내를 발휘할 수 없음에 동의했다.

결선에 올라온 네 사람의 작품들은 이런 측면에서 모두 선자(選者)들의 욕심을 채워주었다. 먼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하였던 하봉채의 「구두코에 걸린 달빛이 흐리다」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신선함과 시편 전반에 자리한 단단한 상징들이 미덕이었다. 그리고 정연희의 「나무들 그 거리가 멀다」는 보편적 삶의 가치를 시적 형상화를 통해 일구어내려는 따뜻한 시심을 보여주었고, 이십여 편에 가까운 시를 투고한 심정미의 「개망초 꽃처럼」은 시의 내적 흐름과 서정적 자아의 호흡이 어긋나지 않는 운율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많은 망설임과 고민 끝에 이병일의 「곰팡이」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견없이 합의했다. 우선 그의 시는 콩이 숙성과정을 통해 메주가 되어 결국 밥상 위에 오르는 모습을 통해 삶의 긍정적 세계를 펼쳐보여 주었으며, 더불어 시의 근원이 삶에 대한 건강한 성찰임도 잊지 않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병일의 시편들이 결선에서 겨룬 다른 시편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은 시행과 시행 사이에서 절묘하게 조절되는 긴장과 시편 전체를 통제하고 구성하는 시인의 세련된 시적 장악력 때문이었다.

- 심사위원 김종철, 신달자 시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