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과 여인 / 박수화
-강변·박수근에게
그 고요의 누룩빛 물결 속으로
푸르륵 작은 새 한 마리 날려 보낸다
파문을 일으키며 시간의
우듬지에 둥지 하나 틀어올린다
나목 아래 아기를 업은 어머니가
길을 간다 아이 손을 끌어당기며
정수리에 함지박을 이고 가는 여인의
배고픈 강아지가 뒤를 따른다
동구 밖은 분주하다
어디서 돌아오는 사람
또 어디로 돌아가는 여인들의
소리 없는 발자국 소리가
저녁노을로 마을길을 쓸고 있다
- 박수화 시집 <물방울의 여행>(시학시인선 012)
[당선소감]
겨울 동해 밤 바닷가에서 수면 위로 막 떠오르는 조각달을 보았습니다. 텅 빈 성당에 들어섰을 때 등대의 불빛처럼 어둠 속에서 길을 이끌어주는 감실의 불빛….
제 삶에 시는 먼 고향 바닷가 바람둑 길에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나가는 닭개비 초롱꽃 풀꽃들의 친구 반딧불입니다. 20여년 군인(손영찬 베드로, 대령, 1군사령부 근무) 남편을 따라 이 땅 산하를 옮겨다니면서, 향로봉이나 대암산 용늪의 잘 보전된 자연생태계도 보았고 장마 때가 되면 임진강 물 위로 잉어떼가 하얗게 배를 뒤집고 둥둥 죽어 떠내려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생명 사랑 자유의 시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늘 평화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좋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와 시학' 김재홍 교수님과 시학회원들, 양구에서 인제 쌍호공소로 미사를 위해 넘어오시던 군종신부님·주교님·군인가족들과, 작품 '광치령'으로 당선된 육사신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를 강론 중에 낭송해 시심을 일깨워 주시던 비오 신부님, 몇 해 전 전국주부백일장(한국여성문학인회 주최)에서 "여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70%의 잠재력을 개발하라"고 강의하시던 신달자 선생님! 제가 건너야 하는 거센 물살 위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셨기에, 정호승 선생님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부족한 글 뽑아주시고 격려해 주심에도 감사 올립니다.
'좋은 시는 좋은 삶이다'고 하신 김남조 선생님 말씀 가슴 깊이 담고, 망망대해를 나룻배 하나로 항해하더라도 기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끝으로 새 성전 건축의 돛을 올려야 하는 노원성당 안병철 베드로 신부님과 신부님 수녀님, 총 구역반장 교우들과 함께, 12월에 본당을 떠나가신 스테파노 신부님, 두 아들 우람 요한·슬기 하상바오로와 저 세상의 부모님과 오빠·가족 친구 이웃들과 함께, 샘물 같은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 박수화 시집 <체리나무가 있는 풍경>(J.H Classic -012)
[심사평]
무엇보다도 올해는 당선작을 낼 수 있어서 기쁘다. 작년에 비해 투고된 작품 수준이 현저하게 향상되었다고 하겠다. 이는 퍽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듭 하는 말이지만 평화신문에 투고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굳이 종교적인 소재나 주제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이 종교성이 강하든 그렇지 않든 시로서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 높으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들은 박수화의 <나목과 여인>, 이창호의 <바지락, 바지락>, 정지성의 <벽에 못을 박다>, 강원희의 <천도복숭아>, 황병욱의 <이층에서 본 거리> 등 5편이었다. 이중에서 <벽에 못을 박다>는 시의 내용이 빈곤하다는 이유로, <이층에서 본 거리>는 이층에서 본 풍경 묘사가 단순하다는 이유로 먼저 제외되었다. 그리고 <천도복숭아>는 화가 이중섭과 구상 시인과의 우정을 천도복숭아를 통해 사실적으로 그렸으나 감동의 폭이 좁다는 점에서, <바지락, 바지락>은 생활 체험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끌고 나가는 힘은 있으나 지나치게 산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외되어, 결국 <나목과 여인>이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나목과 여인>은 화가 박수근의 그림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림 속의 정지된 풍경과 인물들을 시의 힘을 빌어 동적으로 무리 없이 구현시켰다는 점을 높이 살만했다. 이미지가 분산돼 있지 않고 전달력이 깊어 그림의 언어화에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단아하고, 스스로 안으로 갇혀 있어 신선함과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단점을 보완해서 좋은 시인으로 출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 심사위원 신달자,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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