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문 / 정가일
동굴 속을 가고 있었다
축축한 벽을 더듬으며,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소리의 근원을 쫓아서
허공을 잘박이는 발소리와
나직한 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 노래 기도가 되었다가
울음이 되었다가, 손과 손을 통해서
서로의 상처가 되기도 하였다가, 끝내는
그 상처로 몸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그 때였을까
빛이 다 땅으로 내려오던 때가
저녁이면 바다의 입 속으로 붉디붉은 해가
서둘러 들어가듯이
땅 밑에 허술하게 파놓은 동굴 속으로, 수수수
별빛 같은 눈들이 쏟아진다
어깨 위에 하얀 눈을 맞으면서
청무우 꺼내 오던 아버지처럼
저 앞으로 먼저 간 그리스도
가지런히 우리들 세워 놓고, 쑥쑥
뽑아 올리려고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환하게 하늘문이 열리고 있다
흙으로 만든 둥그런 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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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최종까지 올라온 작품은 서관덕씨의 ‘나는 작은 사람’ 박지현씨의 ‘은총’ 신정민씨의 ‘등대 이발관’ 정가일씨의 ‘하늘문’ 네 편이었다.
‘나는 작은 사람’은 신앙적 고백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가벼워 시의 맛과 기품에 가 닿는 힘이 부족했다. ‘은총’은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어여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으며, 생명의 소리를 듣는 예민한 청각성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차돌처럼 단단한 소망 하나/믿음직한 자식이 잉태되어 나온다’는 구절 등에서는 아직 덜 익은, 구태의연한 모습을 찾을 수 있어 아쉬움이 컸다. ‘등대 이발관’은 발상의 참신함이 우선 돋보였다. ‘어린애의 필체로 씌어진 등대이발관/그 푸른 간판을 보는 순간/평야는 내게 그만 바다가 되어 출렁였다’는 표현 등에서는 시적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모호해지고 말았다. ‘어둠이 밀물처럼 다가와 등대이발관을 삼키고 있었다’는 상황만 제시돼 있어, 그 상황이 우리 삶의 무엇과 은유돼 있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
당선작으로 고른 ‘하늘문’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동굴’로 표현된 삶의 현실과 고통을 극복하고 ‘하늘문’에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긍정적이어서 호감이 갔다. 특히 ‘어깨 위에 하얀 눈을 맞으면서/청무우 꺼내오던 아버지처럼/저 앞으로 먼저 간 그리스도’라는 구절은 이 시인의 개성과 역량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화신문이라고 해서 꼭 신앙적 소재나 주제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시적 완성도가 얼마나 높으냐 하는 데 달려 있을 뿐 어떤 소재와 주제를 선택했느냐에 달려 있지는 않다. 평화신문을 통해서 시를 공부하고 사랑하시는 분들의 분발을 빈다.
- 심사위원 신달자(명지전문대 교수,시인)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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