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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없는 방 / 서명진

 

 

어린 시절 나는 어두운 우리집이 싫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은 항상 어두웠다

 작은 창마저 막혀 있어 한낮에도 햇빛조차 들지 않던 검은 방

그 작고 어두운 방에서 일곱 식구가 오글오글 모여 살았다

 

아버지는 원래 없었다

 

내 나이 열일곱 살에 시작한 첫 직장생활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빵 만들 준비를 하고 공장장인 동네 형이 나오면 같이 만들어서 아침 8시엔  빵을 매장에 진열해야만 했다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후에 빵과 케이크를 만들고 저녁이 되면 내일 만들 빵에 대한 준비를 했다

미리 반죽해서 빨간 통에 담가 놓으면 아침에 숙성이 되어 빵을 만들 수가 있다

그제야 나는 청소하고 쉴 수가 있었다

 

내 잠자리는 제과점 내 전등이 하나뿐인 어두운 방

여기도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자려고 누우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몇 번씩 깨곤 했다

제과점엔 정말 쥐가 많았다

어른 팔뚝만한 쥐도 여러 마리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런 쥐들이 수시로 내 방을 드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불을 켜고 잤다

불을 끄고 자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때야 쥐와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해질 수가 있었다

 

천구백팔십오 년 구의동 독일제과점

 

아버지는 원래 없었다

농사지을 땅 한 평이 없어 엄마는 허드렛일 하러 다니시고 누나와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한 달 일하고 받은 월급 사 만원

은행에서 첫 통장을 만든 후 시장에서 엄마와 동생들의 선물을 샀다

그때만큼은 내가 굉장한 부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빵을 만든다

누이를 닮은 보름달 빵

형을 닮은 곰보 빵

엄마를 닮은 단팥 빵

빨간 반죽 통에서 숙성되는 내 가족의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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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멈춰버린 소리 / 이선정


지하철이 대방역을 지나

울음소리를 삼킨다

내 눈은 소리를 찾는다

3살가량의 가방 멘 남자아이가

무어라 말하며 손을 뻗고 발을 동동,

시간이 지나간다

울지 마, .”아저씨는 말한다

마음은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아이에게 왜 우는지 물어보세요

조용한 전철을 찢는 소리

나는 종로 3가에서 내려 소리와 마주한다


도와주세요, 힘들어요.”

사방이 조용하다

멈춰버린 소리

빨간 스웨터, 초록바둑무늬바지의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모른다

아이가 내가 되어 내가 아이가 되어 운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밤새 운다

“3년 후 계획이 뭐예요?”면접관이 묻는다

사방이 조용하다

나에게서 멈춰버린 소리다

이제 누가 물어본다면 소리 내어 말할 거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재밌어요








[최우수상] 문 없는 방 / 서명진

[우수상] 희망고시원 / 이재원

[우수상] 6번 출구의 기도 / 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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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길 위에서 / 김인수

 

어둠이 사라지고 새벽이 옵니다

새벽이 오면 나는 매일매일

버려진 것들을 주우러 길을 나섭니다

 

새벽의 길 위에서 수레를 끌며 천천히 걸으면

수많은 불빛이 환하게 반기며 밝히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나는 원하는 ‘파지, 철, 알루미늄 깡통’을 길에서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을 되돌아오면서 다시 걸으면

무거워진 수레가 더 고맙고

내일 새벽에도 오늘 새벽처럼 꼭 오늘만 같기를 바라게 됩니다

 

새벽을 흔들어 깨우며 나를 건강하게 움직이게 해주시고

빛, 길, 고물을 선물해주시는 신에게 감사하고

 

고물을 보물처럼 고물도 보물처럼

새벽의 길 위에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이 말을 더 제대로 배웠습니다

십년 뒤에도 그 후에도 이 말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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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 우미정

 

    집은 아직도 그곳에 있어요
   된바람 일지도 않았는데 창문은 능청스럽게
   파르르 귀 기울이고 모리* 손질하던 아버지,
   좁은 창으로 자꾸만 파도를 낚아 올려요
   다락방 쥐들을 쫓고 기억 밖으로 뛰쳐나온
   생生을 근면 성실하게 꿰매고 있어요
   오래전부터 집은 삐걱거렸어요
   구실도 같이 삐걱거렸어요
   성스러운 초야는 기억에도 없어요
   난로에 온풍기에 보일러에 전기장판에
   불이란 불 부채질해도 골다공증은
   기어이 북풍에 시달렸어요
   대처로 몸 옮겨 다니는 동안
   어느 간이역 추운 뒷골목 귀퉁이로
   집이 옮겨간 줄 알았어요 낚인 파도에 조금씩 뜯겨
   먼 땅으로 건너 간 줄 알았어요
   내가 드나들었던 집은 집이 아니었어요
   집이 아닌 집을 등에 업고 집을 찾아다녔어요
   부풀어 올랐던 거품들 거푸거푸 한숨을 몰아쉬고 있어요
   한 생이 절뚝거리며 거푸집 속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아버지는 여전히 파도를 낚고 있어요
   머지않아 쓰나미가 잡혀 올지도 몰라요
   아버지 숨구멍에 집은 찰싹 달라붙어 있어요
   해소기침에 가랑가랑 흔들리고 있어요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아버지 해묵은 기침 소리,
   토닥토닥 집을 잠재우고 있어요 
 
 * 주낙을 일컫는 뱃사람 말

 

 

 

수상소감

 

  기억 속에서 집은 늘 삐걱거립니다. 어릴 때 나의 버릇 중 하나는 집으로 가다 말고 걸음을 멈춘 채 가만히 집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집의 기분을 살피기라도 하듯이. 언젠가 친구네 다락방에서 바라보던 집은 노을에 물들고 있었습니다. 붉은 집은 따뜻해 보여서 숨죽이고 있던 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릅니다. 일을 보다가도 노을이 지면 나는 왠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바쁩니다.
아버지는 요즘 소일삼아 모리를 손질합니다. 모리를 손질하는 아버지는 근면 성실합니다. 모리를 손질하다 잠시 허리를 펼 때면 마당귀에 딸린 작은 텃밭의 오이에 말을 걸고 상추에 말을 걸고 방울토마토에도 말을 겁니다. 어느 순간에는 대문 밖에서 출렁이는 파도의 기척까지 듣습니다. 말을 걸고 귀를 여는 아버지는 다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 저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습니다. 일상의 데면데면한 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말이었습니다. 집에 대한 나의 기억을 자분자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말이 ‘아버지의 집’입니다. 때때로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은 삐걱거리는 집을 달래는 아버지만의 처방이었는지도 모른다며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버지에게 건네는 말을 따뜻한 눈길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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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공기에 손수레 끌고 갈 때 / 정영희

 

   골방 한 칸의 부피는
   손수레 몇 대 분량의 폐지더미로 환산될까
   창구가 동전을 쪼아 먹는 시간이면
   은행 앞 푸른 은행나무 아래 손수레 끄는
   노인들이 모여든다
 
   폐지는 뼈를 부러지게 하거나 닳아지게 하여
   설령 며칠 등 굽은 밥 한 공기에 닿지 못한다 해도
   몇 닢 통장에 찍고 나면 가뿐한 집이다
 
   푸른 정장 차림의 은행 앞 은행나무 햇살은
   삐걱대는 어깨를 다독이는 찜질팩이겠지
   동전 몇 푼, 부르튼 낯빛을 빗어 내리는 미소는
   펼칠수록 은행잎이다
 
   밥 반 공기 시래기 국에 말아먹은 손수레가 따뜻하다
   폐지더미는 아랫목을 데우는 장작불이어서
   골방은 제 혼자 달아오를 것이다
 
   돌아온 노인은 컵라면을 후루룩거리겠지
   얼룩 작업복을 행주에 비벼 빠는 사이
   은행 앞 푸른 은행나무는 금세 노랑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밥 반 공기는 고수레라며 손수레에 묻어놓는다
   내일은 폐지더미가 너무 추워 외출이 어렵다는 말에
   노인이 다시 손수레를 끌고 나간다
   넉넉하게 보름달을 밀고 나간다
 
   밥 한 공기 손수레에 꾹꾹 눌러 얼어붙지 않도록
   골방 통장을 다복다복 채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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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비 사만 오천 원 / 박혜란
 
   하룻밤 숙박비 사만 오천 원짜리
   전날밤의 뜨거운 정액 내음만 식지 않은 채
   쿰쿰 시큼하게 가득 찬 싸구려 모텔 방에 불이 켜지고,
   양손에는 울엄마 손 잡고 장 보던 날처럼
   한 보따리 가득 무거운 시름만 검게 들려있다
 
   손에 들린 짐을 방 안으로
   지우개 때처럼 흩쳐놓고서
   욕실 등을 예민하게 켜본다
   욕조에 뜨끈한 소주 한 바다 채워놓고
   어느 복숭아의 엉덩이 같은 알몸으로
   욕조 안에 나를 구겨넣는다
 
   삭제 버튼같은 수면제 네 알을 삼키고
   하얀 선으로 내 목을 감아
   영원한 순간과 현재를 방랑하던
   나는 바위 앞에 곧 부서져버릴 파도였다
 
   컹컹대는 개마냥 올가미에서 목을 내리고
   숨을 담담히 몰아쉰다
   그러고는 쓸쓸한 가방에 공허한 마음 한 줌 담는다
 
   덜그럭거리는 가방을 끌고 이 빠진 계단을
   울컥울컥 내려온다
   사랑하는 한 여인의 향수 냄새 가득한
   그 방의 거울에 나는 잠시 구름이겠다
   메모해둔다
 
   그 여인 앉았던 데워진 마음 한 구석이 잘린다
   머물렀던 가슴에 향수만이 눅눅하게
   남아, 눈이 뜨겁다
 
   아직도 네온사인 번뜩이는 그 길을
   녹슨 발로 성큼성큼 헤매다,
   도착한 모텔 앞
 
   사만 오천 원짜리 방 한 칸에 고단한 설움을 꾹꾹 담아
   녹록한 몸을 욕조에 뉘인다
   욕실 안은 담배연기 섞인 뿌연 수증기만 무겁게 맴돌고
 
   잠은 오지 않는다
   컴컴한 그 날 새벽, 나는 나를 잃고
   한 여인을 잃은 녹슨 고철깡통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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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 이종섭
   
   1.
 
   집 없는 달팽이,
   몸집이 크고 길다
   집을 벗어버려
   잡혀가지도 않는다
 
   달팽이가 신기해도
   동그란 집이 없으면 본척만척,
   집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달팽이집이 달팽이였던 것이다
 
   집을 나선 적도 없고
   돌아갈 집도 필요 없는
   달팽이 한 마리,
 
   집이 없어 홀가분한지
   배밀이로 가는 걸음
   바람처럼 가볍다
 

   2.
 
   여든이 넘어서도
   목수로 일하는 아버지
 
   잘 마른 나무 위를
   온몸으로 기어 다니며
   자르고 깎아 만든 목조건물 속,
   한 마리 달팽이가 되어간다
 
   자신의 분비물로 만든 탑을
   들락날락,
   뼈 묻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침마다 이슬 찾아 나선다
 
   마디 하나 없는 몸에
   투명한 집 한 채,
   무척추동물이 평생 걸려 세운
   무덤이다
 
   3.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의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집에 맞춰 살아간다는
   깨달음 하나 배우자마자
   내 눈을 스치고 가는 바람의
   거대한 몸집
 
   보이지 않는 꽁무니를 따라
   땅끝까지 기어가면
   바람의 집은 지구
   지구의 집은 우주
 
   달팽이관 그 속에
   달팽이자리 별들이 살고 있다

 

 

 

 

수상소감 

 
사물이나 인물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재구성한 시가 있다면, 반면에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승화시켜 쓴 시도 있다. ‘민달팽이’가 바로 그러하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정착하고 목수로 일했던 아버지가 나이 들어 고향에서 할 일을 만났다. 그때 아버지를 만나러 고향에 갔을 때, 커다란 민달팽이 여러 마리를 보았다. 무수한 집을 지었으면서도 아흔이 되도록 집 한 칸 없으신 아버지. 집도 없이 맨몸으로 기어가는 민달팽이가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시 ‘민달팽이’를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어릴 적 아버지 옆에서 토막 난 나무들과 연장을 가지고 놀면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내 재주의 바탕이 되어주신 아버지께 이 시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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