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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 우미정

 

    집은 아직도 그곳에 있어요
   된바람 일지도 않았는데 창문은 능청스럽게
   파르르 귀 기울이고 모리* 손질하던 아버지,
   좁은 창으로 자꾸만 파도를 낚아 올려요
   다락방 쥐들을 쫓고 기억 밖으로 뛰쳐나온
   생生을 근면 성실하게 꿰매고 있어요
   오래전부터 집은 삐걱거렸어요
   구실도 같이 삐걱거렸어요
   성스러운 초야는 기억에도 없어요
   난로에 온풍기에 보일러에 전기장판에
   불이란 불 부채질해도 골다공증은
   기어이 북풍에 시달렸어요
   대처로 몸 옮겨 다니는 동안
   어느 간이역 추운 뒷골목 귀퉁이로
   집이 옮겨간 줄 알았어요 낚인 파도에 조금씩 뜯겨
   먼 땅으로 건너 간 줄 알았어요
   내가 드나들었던 집은 집이 아니었어요
   집이 아닌 집을 등에 업고 집을 찾아다녔어요
   부풀어 올랐던 거품들 거푸거푸 한숨을 몰아쉬고 있어요
   한 생이 절뚝거리며 거푸집 속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아버지는 여전히 파도를 낚고 있어요
   머지않아 쓰나미가 잡혀 올지도 몰라요
   아버지 숨구멍에 집은 찰싹 달라붙어 있어요
   해소기침에 가랑가랑 흔들리고 있어요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아버지 해묵은 기침 소리,
   토닥토닥 집을 잠재우고 있어요 
 
 * 주낙을 일컫는 뱃사람 말

 

 

 

수상소감

 

  기억 속에서 집은 늘 삐걱거립니다. 어릴 때 나의 버릇 중 하나는 집으로 가다 말고 걸음을 멈춘 채 가만히 집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집의 기분을 살피기라도 하듯이. 언젠가 친구네 다락방에서 바라보던 집은 노을에 물들고 있었습니다. 붉은 집은 따뜻해 보여서 숨죽이고 있던 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릅니다. 일을 보다가도 노을이 지면 나는 왠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바쁩니다.
아버지는 요즘 소일삼아 모리를 손질합니다. 모리를 손질하는 아버지는 근면 성실합니다. 모리를 손질하다 잠시 허리를 펼 때면 마당귀에 딸린 작은 텃밭의 오이에 말을 걸고 상추에 말을 걸고 방울토마토에도 말을 겁니다. 어느 순간에는 대문 밖에서 출렁이는 파도의 기척까지 듣습니다. 말을 걸고 귀를 여는 아버지는 다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 저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습니다. 일상의 데면데면한 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말이었습니다. 집에 대한 나의 기억을 자분자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말이 ‘아버지의 집’입니다. 때때로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은 삐걱거리는 집을 달래는 아버지만의 처방이었는지도 모른다며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버지에게 건네는 말을 따뜻한 눈길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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