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선 / 정유나
피터 팬에게서 도망친 그림자는 오늘 밤도 우리의 골목에서 숨죽이고
껌뻑거리던 형광등조차 눈을 감아버린 방 안에서 일기를 쓰는 중이야
울고 싶은 일들이 차고 넘쳐서 구석으로 숨겨놓아도 자꾸만 쓰러지는 밤들
악몽을 꾸는 게 싫어서 잡은 속눈썹을 비비며 밤을 참아보려고 했지
이불 위로는 고백하지 못할 거짓말과 징크스들이 흐트러진 채,
심연 속에서 놀란 어깨를 쓰다듬어 주던 엄마의 가는 손가락들
다정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진심 근처를 맴돌다 흩어지던 낱말들
낯선 이름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쓸 때면 손톱 밑에서 자라나던 부끄러움
얼버무리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던 게 서로의 마음에 빗금을 긋는 일이라면
헝클어진 집 안에서 아이처럼 쪼그려 울던 엄마를 기억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수 없어서 뒷걸음질 치던 어린 날의 초상
이상하지, 엄마는 분명 나보다 큰 사람이었는데, 작은 엄마의 그림자를
차곡차곡 접어 서랍 깊숙이 숨겨놓았어, 나는 성장통만 가득한 비대증을 앓던 아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나의 궤도 밖으로 이탈하거나
소중한 것을 담던 거울이 먼지에 쌓여 더 이상 빛나지 않을 때,
엄마의 청춘이 녹아 있는 나의 얽ㄹ 위로 사춘기의 끝자락이 드리웠지
그때서야 난 평생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침대 위로 새겨진 엄마의 외곽과 둥그렇게 떨어지던 옆모습
붉게 변한 콧잔등으로 잠든 엄마의 들을 톡톡 두드리다가
나를 품고 있던 세계가 으스러지는 것을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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