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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선 / 정유나

 

 

피터 팬에게서 도망친 그림자는 오늘 밤도 우리의 골목에서 숨죽이고

껌뻑거리던 형광등조차 눈을 감아버린 방 안에서 일기를 쓰는 중이야

울고 싶은 일들이 차고 넘쳐서 구석으로 숨겨놓아도 자꾸만 쓰러지는 밤들

악몽을 꾸는 게 싫어서 잡은 속눈썹을 비비며 밤을 참아보려고 했지

이불 위로는 고백하지 못할 거짓말과 징크스들이 흐트러진 채,

심연 속에서 놀란 어깨를 쓰다듬어 주던 엄마의 가는 손가락들

다정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진심 근처를 맴돌다 흩어지던 낱말들

낯선 이름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쓸 때면 손톱 밑에서 자라나던 부끄러움

얼버무리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던 게 서로의 마음에 빗금을 긋는 일이라면

헝클어진 집 안에서 아이처럼 쪼그려 울던 엄마를 기억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수 없어서 뒷걸음질 치던 어린 날의 초상

이상하지, 엄마는 분명 나보다 큰 사람이었는데, 작은 엄마의 그림자를

차곡차곡 접어 서랍 깊숙이 숨겨놓았어, 나는 성장통만 가득한 비대증을 앓던 아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나의 궤도 밖으로 이탈하거나

소중한 것을 담던 거울이 먼지에 쌓여 더 이상 빛나지 않을 때,

엄마의 청춘이 녹아 있는 나의 얽ㄹ 위로 사춘기의 끝자락이 드리웠지

그때서야 난 평생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침대 위로 새겨진 엄마의 외곽과 둥그렇게 떨어지던 옆모습

붉게 변한 콧잔등으로 잠든 엄마의 들을 톡톡 두드리다가

나를 품고 있던 세계가 으스러지는 것을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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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지나가는 것 / 박다은

 

 

흰 양말을 신고

기차에 탄다

 

신발을 벗지 않을 예정이기에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어디에도 꺼내놓지 않을 흰 마음과 흰 계란을 준비하여 의자에 앉는다

 

저 안에 노른자가 있을까

저 마음에도 노란 꽃 한 송이 있을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의자는 달음박질치는 풍경만 바라보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떤 아이가 한쪽 다리를 꼿꼿이 세운 백로들 사이로 달려가고 어떤 언니가 걸어가는 남자들 앞으로 달려가고 어떤 공룡이 가까워지는 소행성을 등지고 달려간다

 

마지막에 우린 어떻게 되지?

 

흰 양말을 벗지 않으면

흰 양말인 채로 죽게 되겠지

 

유리창은 굉음을 지르고 난동을 피우지만 무릎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홀로 살아남은 아이와 언니와 공룡의 결말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기차는 멈추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에 도착한다

 

외투를 벗지 않을 예정이므로

흰 마음을 숨기고

 

지나간다 서로를

 

 

 

 

 

 

 

[우수상] 달리기 / 김현진

 

 

바람이 구멍 난 나뭇잎사귀 곁을 지날 때마다

잎맥을 갉아먹던 애벌레가

나뭇결 같은 갈색 주머니 안에서 흔들리며 꿈을 꾼다.

 

그 곁으로

사소한 발길질에도 구르는 돌멩이처럼

그녀의 구부린 등허리가

꺾어진 그늘을 이루며 언덕을 오르고

숨소리마저 햇살의 거미줄에 사로잡혀 소거되는 오후,

 

길 위를 지나는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의 소리를 등지고

달팽이 같은 그녀가 손수레를 머리에 이고 느린 보폭으로 기어가고

그녀의 그림자가 달팽이 진액처럼 달라붙은 길에는 땅거미가 기어오른다.

 

가스비를 종이박스 무게로 물물교환하는 초인류가

멍이 든 뼈들을 따뜻하게 녹여 줄 하루 동안의 잠을 위하여 사족보행을 감행하는데

그녀의 구공탄 같은 날들이

나무공이 속에서 겨울채비를 시작한 애벌레의 고치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꿈을 꾸었으면,

 

펴지지 않는 생의 분절들을

땔감으로 모으는 굽은 손등 위로

위로처럼 흔들며 지나는 바람을 향하여

 

어깨가 짓무르고 등허리가 내려앉은

그녀가

빈 수레로 돌아가는 하얀 길 위로

허기진 비둘기들이 눈알을 굴리며

그녀의 그림자를 쪼아댄다.

 

느리고 지루한 한 생애가

부리에 해체되어

날아오르듯 언덕 위를

바람처럼 달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장려상] 눈사람의 갈리기 / 김윤희

[장려상] 머리카락 / 이미순

[장려상] 머리카락 / 장정순

[입선] 머리카락의 사유 / 김미향

[입선] 달과 별의 이발소 / 김현주

[입선] 구멍 뚫린 자루 / 이성순

[입선] 섬이 두 발로 걸어온다면 물 한 잔 건네겠어요 / 이수연

[입선] 달리기 / 이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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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암묵적 약속 / 유태양

[우수상] 가방 / 김소나

[장려상] 어제 / 박성애

[장려상] 일기장 / 이희진

[장려상] 가방 사는 낙 / 정서윤

[특별상]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원고제출 / 박미나

[입선] 가방 / 권소영

[입선] 어제 / 류정하

[입선] 어제 / 송영숙

[입선] 가방 / 장은미

[입선] 후카 / 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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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먼지 / 허인혜 

 

방문 여는 소리에

자폐적 어둠에 부유하던

시간의 지층이 출렁였다


미처 태어나지 않은 선들을 끌어안은 채

아리아스는 마지막 인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다듬어 놓은 턱 선으로 섬세한 먼지가

탈색된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마의 명암은 수없이 혼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고

눈동자 없는 눈에서 먼지는 유적처럼 쌓여갔다


회반죽처럼 서서히 굳어간 웃음과 눈빛

텅 비어 있어 더 무거워지는 얼굴이 있다


전생을 비춰보던 벽거울 속에서

거미줄로 뒤덮인 석고상 하나를 더 발굴한다


멀리서 겉돌고 있는 혹성

남 같은 내가 궤도를 이탈 중이다


재활용스티커 한 장을

뒤통수에 부쳐야 될지

이마에 부쳐야 할지 망설인다


오래 전 눈빛이 빠져나간 자리

내려 앉은 입장들이

먼 미래를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


 

 

우수상 성지수 먼지의 날들

 

 

 

장려상 권용희 부레라디오

엄인옥 사랑

유은아두통

 

 

 

입선 김인숙라디오

민서현 사랑

박하림 라디오

변아림 두통의 임무

오산하 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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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물고기 / 박희연

 

한 겨울 아스팔트에 말라붙은 물고기를 보았다

삭풍을 견디는 힘은 가시에서 비롯하는 듯

물고기는 스스로 살을 발라버리고

가시를 점점 더 가늘게 벼리고 있었다

 

바람은 종종 눈물을 부른다

울음은 뼈를 드러내는 일

골수까지 얼어붙은 바람이 불어야

더 열심히 울 수 있다고

더 열심히 울어야

악착같이 끌어안을 수 있다고

악착같이 끌어안아야

두 번 다시 너를 보내지 않을 수 있다고

물고기는 마지막 비늘까지 떼어내며

아스팔트 위에 굴신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목이 조여 오는 세상

스스로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는

제 몸을 불사르고 청계천을 달린 아이들의 엄마

진도 바다에 영문도 모르고 수장된 아이의 엄마

아직 엄마 젖 주무르기를 좋아하던 어린 날

전쟁터에 끌려가 갈기갈기 찢긴

이제는 늙어버린 여자 아이

광대뼈가 불거지고 손마디가 굵어지고

거죽 위로 두두룩 뼈마디가 솟아오른

더러는 흙이 된 여자들

 

한겨울 아스팔츠 위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여자들을 보았다

그 버려진 가시 위에 골수처럼 비가 내렸다

 

 

 



우수상 김인숙혼자

 




장려상 김하나 010-거울

변아림 고슴도치

정유리 물고기의 기척

 




입선 김후자 물고기

박화진 아버지에겐 아가미가 있다

서영지 발랄한 물고기자리

성지수 물고기

허수현 고슴도치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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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세탁소 / 이경자

 

그가

힘이 쭉 빠진 채

후줄근하게 들어와 눕는다

 

그는

뜨겁게 울어대는 매미처럼

울고 싶단다

 

그를 위해

헉헉대며

쌘 콧김까지 불며

꼿꼿하게 자존심 세워 주었는데

 

그는

바짝 말라버린 속내를

물 빠진 섬처럼

감추고 있다

 

지친 그의

가랑이를 잡고

허해진 마음을

힘껏 눌러준다

 

여긴 숨고 싶은

작은 기도원

 

 

 


우수상 신소영

 




장려상

김지영

방혜영

조혜영

 



입선

권혁남

김인숙

김태경

유은아

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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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목요일 / 김희정

 

하현달이 목요일에 닻을 내린다

10, 포장마차에서

여자는 철 지난 봄날을 찬물에 말아먹는다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작은 섬 같은

여자의 간판 없는 포장마차

천막에 휘갈긴 이름 몇 개로

여자는 불려진다

손님들은 철새처럼 여독을 풀자마자

취기의 길을 떠나고

여자는 표류하는 제 남편을 찾지 않는다

목요일 청취자 코너에 여러 번 제 사연을 흘려보내지만

일인분에 2천원 어치의 얘깃거리는

누구도 건져 올리지 않아

여자는 제 얘기를 듣고 슬퍼해 본 적이 없다

끼룩, 끼루룩 어린 딸이 웃는다

너도 언젠간 이곳을 떠나겠구나

기름때 묻은 손에선

튀김집게도 잔돈도 인연도 자꾸 미끄러진다

손님들의 웃음소리는 높게 파랑을 치고

여자의 목요일은 홀로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우수 꽃무늬 스카프 (글제: 스카프) 김은미

 




장려

목요일 (글제: 목요일) 이영행

(글제: 열쇠) 박은지

가문의 열쇠 (글제: 열쇠) 이정림

 



입선

주황색 말그림 스카프 (글제: 스카프) 이아진

목요일은 쉽니다 (글제: 목요일) 박선옥

꽃무늬 스카프 (글제: 스카프) 박은영

열쇠 (글제: 열쇠) 안현숙

목요일 (글제: 목요일) 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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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슴베* / 김수화

  

아버지 돌아가신 그 집

가장으로 서 있던 먹감나무 쓰러졌다

한 집안에서 가장이 빠지고 난 뒤부턴

낫자루며 농기구 자루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떫은맛과 단맛을 알게 했던 먹감나무뿌리는

오래 흔들린 듯 갈래가 어지럽다

가지와 뿌리 어느 쪽이 슴베였는지는 모르지만

뾰족한 그 끝을 보면

박힐 때 수월하기 보다는

빠질 때 쉬우라는 말 같다

그렇게 양쪽이 물려있는 동안

손잡이와 날이 함께 커졌다

  

한 쪽이 두절 됐다고 해서 두절이 아닌 것처럼

손잡이와 날은 아버지, 어머니 하는 말 같다

  

빠진 낫자루 안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들어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면

반짝반짝 별들이 지나가고 있다

나무를 잘라 토막은 실어 보내고 잎사귀를 긁어 태운다

젖은 연기가 하늘 자리에 박히고 있었다

뒤쳐진 연기들은 끝이 뾰족해서 눈이 따갑다

  

나무들은 하늘에

슴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울창한 숲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독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다

먹감나무 쓰러질 때 우지끈 하는 소리는

하늘 한 귀퉁이가 쑥 빠지는 소리였다

  

* 칼, 호미, 낫 따위에서,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한 부분

 

 

 

 

[우수] 귀뚜라미 전화(글제 : 고목) 지관순

[장려] 기념일(글제 : 기념일) 김미선

[장려] 노송, 우듬지에서 돋아난 것은(글제 : 고목) 안나라

[장려] 어항(글제 : 유산) 김정순

[입선] 유산(글제 : 유산) 박정옥

[입선] 느림보버스(글제 : 좌석버스) 이숙희

[입선] 아버지의 걸작(글제 : 고목) 송옥선

[입선] 고목(글제 : 고목) 김인숙

[입선] 고목(글제 : 고목) 박은영

 

 

 

 

 [심사평] 

    응모된 작품은 약 516여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백일장의 특성을 감안하여 전체적인 완성도와 함께, 기성의 작품들에 볼 수 있는 조형성을 가졌거나 비슷비슷한 시들보다는 신선한 시들에게 점수를 준다는 심사규준을 정하고 심사에 임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도 불구하고 약 20여 편의 작품들의 경우 그 시적 형상화는 놀라웠다.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돌려보며 의견을 모으고 절충하며 심사를 진행한 결과, 「유산」(박정옥), 「느림보버스」(이숙희), 「아버지의 걸작」(송옥선), 「고목」(김인숙), 「고목」(박은영), 「슴베」(김수화), 「귀뚜라미전화」(지관순), 「기념일」(김미선), 「노송우듬지에서 생긴 일」(안나라), 「어항-유산」(김정순)의 작품이 남았고 그때부터 심사위원들의 숙고가 시작되었다. 「유산」(박정옥), 「느림보버스」(이숙희), 「아버지의 걸작」(송옥선), 「고목」(김인숙), 「고목」(박은영)은 마지막의 시적 갈무리가 아쉬웠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과를 맺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슴베」(김수화), 「귀뚜라미전화」(지관순), 「기념일」(김미선), 「노송우듬지에서 생긴 일」(안나라), 「어항-유산」(김정순) 중 「슴베」로 장원을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어를 고르고 배열하는 솜씨가 적절했고 주제를 관통해내는 시적 역량도 심사위원의 의견을 모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가령 ‘떫은 맛과 단만을 알게 했던 단감나무뿌리는 오래 흔들린 듯 갈래가 어지럽다’ 같은 구절이나 ‘젖은 연기가 슴베처럼 하늘자리에 박히곤 했다’와 같은 구절은 삶에 대한 귀한 통찰을 담고 있어 신뢰감을 주었다. 「귀뚜라미전화」(지관순)는 빼어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시적 구심이 약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념일」(김미선)은 서사가 잘 녹아든 시이지만 시적 분위기가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다. 모두에게 정진과 축하를 건넨다.

심사위원 김경미, 김경주, 오태환, 안희연, 이정록,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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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그림자 / 심은정

 

1

아버지와 함께 그림자가 발견되었다

 

2

십 수년 전 하관할 때

껴묻거리로 순장된 그림자가

툭툭,

몸에 묻은 봉토를 털며 일어섰다

 

좀비가 다 된 그가 무서웠지만

삭아 내린 캄캄한 관 속에서

백골이 되도록 아버지를 지켜준 게 고마워

나는 그와 뜨거운 악수를 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어른의 그림자는 밟는 게 아니라며

저만치 떨어져서 따라오게 하셨다

저녁놀이 지평선에 붉은 낙관을 찍을 무렵

장에서 돌아가는 아버지의 그림자는 길어

그만큼 나는 멀어져야 했는데

초록이 동색이듯

땅거미와 그림자가 몸을 섞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는 손을 잡아 주셨다

 

3

오늘 아침엔 경로당으로

저린 다리를 끌고 가는 어머니 발목을

그림자가 잡아당기고 있었어요, 나는

그림자를 불러 세워 조곤조곤 타이르지만

질기디 질긴 그를 어쩌지 못해 돌아섭니다

 

어머니, 미안해요

여태 제 것도 떼내지 못했거든요

 

4

양지 바른 언덕으로 거처를 옮기며

아버지는 그림자를 놓아 주셨고

어머니는 그를 떼내시려고

그늘 우거진 평상에 오르신다

 

 

 

 

 

[우수상] 사육 / 김정순

 

 

[장려상] 자궁에 / 박은영

[장려상] 벌레 / 송옥선

[장려상] 빨강으로 염색해주기 / 조미희

 

 

[입선] 눈동자 / 김미자

[입선] 벌레 / 김재현

[입선] 벌레 / 신미정

[입선] 그림자 / 이영행

[입선] 그림자 / 이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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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오던 날 / 홍희자

 

설핏 낮잠이 들었다 목마름에

깨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염없이 보고 있다

 

당췌....

닫고 말았다

 

텔레비전이 혼자 씨부렁거리는 게

말리는 시누이 같건만

리모콘은 혼자 머리 속을 돌아다닌다

벌레 먹은 나뭇잎사귀 같은 기억

 

버팅기는 발 끌어 올려

전원을 눌러 버렸다

 

 

병원을 가 보아야지

서랍을 열고 양말을 찾아 다시

손이 헤매고 있다

길을 모르는 바람 같은 마음

 

 

젊고 잘 생긴 의사양반의 공허한 소리

  - 기억력 검사 몇 가지 할께요

 

-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입니다

 

태풍이 시작이다.

 

 

 

  

   [심사평]

 

   30주년을 맞이하는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에 응모된 작품들은 한편 한편이 모두 소중하게 다가왔다. 응모된 대부분의 작품들 속에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유들과 모성적인 따뜻함이 들어 있었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시제를 통찰하는 면이 돋보이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

   장원으로 뽑힌 「태풍 오던 날-치매랑 놀기」는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은 자신의 내면 풍경을 태풍이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형상화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우수상으로 뽑힌 「부부살이」는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고양이 자세로’ 나의 나됨만을 강요하지 않고 간격없는 교감을 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장려상을 수상한 「10월을 완성하다」는 가을풍경의 쓸쓸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꿋꿋하게 ‘10월을 완성’하리라는 시적인 전언이 인상적이었다.

   수상의 기쁨을 누린 분들께는 축하의 인사를, 수상하지 못한 참가자들에게는 다음 수상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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