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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 윤연옥

 

 

낡은 일기장에는

작은 파편들이 널려있고

가을이 데려 온 바람

놀다간 자리서 햇볕 냄새가 난다

 

툇마루서 뒹굴던 고슬한 추억

손바닥으로 만지고 쓸어보면

햇살처럼 보드랍고 따뜻해

속절없이 내려놓는 한조각 그리움

 

찬바람 불어 시린 속

일상 허기 달래면

동강 난 필름

마주보고 웃는다

 

장독대 항아리 속 웅크리고 있던 홍시

외할머니 손에서 단내를 풍기고

까치밥 쪼던 까치

한낮 풍경이 되다

 

꼬물대며 하냥 기어가는

사랑의 자취들

우화의 날갯짓 소리에

불빛 찬란하게 몸 바꾼 뜨락

 

가뭇없이 떠나가는

파편 한 조각 집어 들고

무심의 공덕이라

해조음에 하늘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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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정년 퇴임 후 새로운 도전, 큰 상에 감사”

 

내 어렸을 적 외가에서, 이른 봄이면 툇마루에서 햇볕을 안고 뒹굴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홍시 하나를 밥사발에 담고 숟가락을 꼽아 주시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혀끝에 녹는 달콤함은 무어라 말할 수업이 황홀했고, 감나무 꼭대기에서는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까치가 깍깍거리며 쪼아 먹고 있어 숟가락을 흔들며 깔깔대고 웃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곳에는 나비가 우화하듯 크고 멋진 현대식 건물이 버티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동강난 필름처럼 드문드문 어린 날의 추억이 스쳐 지나고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빼앗긴 듯 허전하고 슬프다.

 

아마 지금도 그곳 어디엔가는 할머니 향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 달큰한 냄새가 그립다.

 

전화가 온다. 낮선 번호다.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시가 당선 되었다고...

 

소녀시절엔 누구나처럼 문학소녀였고, 시집을 읽으며 괜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메모지에 글을 낙서처럼 끄적거려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후 내 삶의 궤적에는 열심히 사는 직장인이었을 뿐이었다.

 

정년퇴임 후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자 펜을 잡았다. 아직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상을 준다니 그냥 감사할 뿐이다. 아마도 늦깎이 걸음 뒤처질까봐 주시는 채찍이라 생각한다.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양일보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당선을 함께 기뻐해 줄 모든 분들께 서릿발 속에서도 감도는 훈풍을 모아 보내드립니다.

 

모두가 행복하시길...

 

 

 

[심사평] “근원적 삶의 신실한 성찰력 돋보여”

 

이번 신인문학상 응모작은 전보다 많은 작품(588)으로 늘어났지만 미숙하고 난무한 작품들이 많았다. 숙명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도전의식이 예년보다 떨어지고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길중의 ‘컵라면’에서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노인의 몸매와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리어카가 무거워지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리어카가 가벼워지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짙은 어둠과 컵라면에 물을 붓고. 마지막 국물을 들이켜고 있는 정황을 엿보인다.

 

윤연옥의 ‘외갓집’에서 낡은 일기장에 작은 파편 같은 가을이 데려온 바람, 햇볕 냄새가, 툇마루 뒹굴던 추억이 햇살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그리움으로. 찬바람 속의 허기와 장독대 항아리 홍시, 외할머니 손에서 단내를 풍기고, 까치밥 쪼아 먹던 시절의 외가의 추억들을 일떠세워. 사랑의 자취들을 속에서 읽어낸다.

 

가뭇없이 떠나가는 한 조각 속에서 무심의 공덕이라며, 해조음의 하늘만 본다. 여기서 해조음은 불타의 관음음으로 세월 속에서, 하냥은 함께의 방언으로. 무심의 삶속에 살아나고 있다.

 

윤연옥의 ‘외갓집’에서 근원적 삶의 신실한 성찰력이 돋보인다. 윤연옥의 ‘외갓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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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 윤연옥

 

 

낡은 일기장에는

작은 파편들이 널려있고

가을이 데려 온 바람

놀다간 자리서 햇볕 냄새가 난다

 

툇마루서 뒹굴던 고슬한 추억

손바닥으로 만지고 쓸어보면

햇살처럼 보드랍고 따뜻해

속절없이 내려놓는 한조각 그리움

 

찬바람 불어 시린 속

일상 허기 달래면

동강 난 필름

마주보고 웃는다

 

장독대 항아리 속 웅크리고 있던 홍시

외할머니 손에서 단내를 풍기고

까치밥 쪼던 까치

한낮 풍경이 되다

 

꼬물대며 하냥 기어가는

사랑의 자취들

우화의 날갯짓 소리에

불빛 찬란하게 몸 바꾼 뜨락

 

가뭇없이 떠나가는

파편 한 조각 집어 들고

무심의 공덕이라

해조음에 하늘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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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정년 퇴임 후 새로운 도전, 큰 상에 감사”

 

내 어렸을 적 외가에서, 이른 봄이면 툇마루에서 햇볕을 안고 뒹굴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홍시 하나를 밥사발에 담고 숟가락을 꼽아 주시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혀끝에 녹는 달콤함은 무어라 말할 수업이 황홀했고, 감나무 꼭대기에서는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까치가 깍깍거리며 쪼아 먹고 있어 숟가락을 흔들며 깔깔대고 웃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곳에는 나비가 우화하듯 크고 멋진 현대식 건물이 버티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동강난 필름처럼 드문드문 어린 날의 추억이 스쳐 지나고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빼앗긴 듯 허전하고 슬프다.

 

아마 지금도 그곳 어디엔가는 할머니 향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 달큰한 냄새가 그립다.

 

전화가 온다. 낮선 번호다.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시가 당선 되었다고...

 

소녀시절엔 누구나처럼 문학소녀였고, 시집을 읽으며 괜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메모지에 글을 낙서처럼 끄적거려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후 내 삶의 궤적에는 열심히 사는 직장인이었을 뿐이었다.

 

정년퇴임 후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자 펜을 잡았다. 아직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상을 준다니 그냥 감사할 뿐이다. 아마도 늦깎이 걸음 뒤처질까봐 주시는 채찍이라 생각한다.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양일보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당선을 함께 기뻐해 줄 모든 분들께 서릿발 속에서도 감도는 훈풍을 모아 보내드립니다.

 

모두가 행복하시길...

 

 

 

[심사평] “근원적 삶의 신실한 성찰력 돋보여”

 

이번 신인문학상 응모작은 전보다 많은 작품(588)으로 늘어났지만 미숙하고 난무한 작품들이 많았다. 숙명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도전의식이 예년보다 떨어지고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길중의 ‘컵라면’에서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노인의 몸매와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리어카가 무거워지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리어카가 가벼워지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짙은 어둠과 컵라면에 물을 붓고. 마지막 국물을 들이켜고 있는 정황을 엿보인다.

 

윤연옥의 ‘외갓집’에서 낡은 일기장에 작은 파편 같은 가을이 데려온 바람, 햇볕 냄새가, 툇마루 뒹굴던 추억이 햇살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그리움으로. 찬바람 속의 허기와 장독대 항아리 홍시, 외할머니 손에서 단내를 풍기고, 까치밥 쪼아 먹던 시절의 외가의 추억들을 일떠세워. 사랑의 자취들을 속에서 읽어낸다.

 

가뭇없이 떠나가는 한 조각 속에서 무심의 공덕이라며, 해조음의 하늘만 본다. 여기서 해조음은 불타의 관음음으로 세월 속에서, 하냥은 함께의 방언으로. 무심의 삶속에 살아나고 있다.

 

윤연옥의 ‘외갓집’에서 근원적 삶의 신실한 성찰력이 돋보인다. 윤연옥의 ‘외갓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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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 / 이재곤

 

 

짧아진 가을 해

뉘엿뉘엿 서산에 숨어들고

땅거미 어둠 품으며 내려앉으니

온종일 분주하던 저잣거리는

좌판을 거두고 철시를 서두른다

 

기억자 허리 억지로 반쯤 펴며

통증을 뿜어내는 할머니 신호에

즐비하게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웅크린 채 기다리던 리어카는

지나치며 건네는 뾰족한 시선에 멍들어

싱싱함을 부끄러움과 좌절로 맞바꾼 물건들을 싣는다

 

소박한 방석 하나에

황제의 가마가 부럽지 않은 듯

그제야 두 다리를 펴보면서 안도하는

할머니를 리어카 뒷자리에 태우고

오가는 인파 속에 묻혀가는 할아버지

 

그 뒷모습 따라가는 그림자에

고된 일상 한 줌 고스란히 흘리며

어둠 밀어내는 가로등 아래로

따스함과 쓸쓸함이 숙연히 깃든다

 

 

 

 

 

[당선소감] “진솔함으로 참된 글을 지어가겠습니다

 

! 내게도 이런 행운이 오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가슴 쿵쾅거리며 심박동이 빨라지는 기쁨으로 마치 먼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 은퇴를 하고 이제 그만 좀 쉬어야 한다는 말들이 처음에는 큰 위로로 들렸지만 6개월, 일 년이 지나면서 삶은 메말라지고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는데, 어느 날 문득 취미로 쓴 글이지만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져, 수없는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이번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은 더 겸손함으로 진솔한 글을 짓기 위해 성찰과 정진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앞으로도 독자가 보다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치와 신념으로 창작에 몰입할 생각입니다.

 

행복한 즐거움으로 가슴 벅찬 기쁨과 함께 새로운 무게감을 느끼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 세련되고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평가 잣대를 설정하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겨울추위까지 동반한 채 코로나19 보릿고개를 건너고 있는 분들과 함께, 머지않아 마주할 터널 끝의 봄과 희망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 나이에 신인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그리고 지속적인 문화사업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신 동양일보와 관계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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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실한 설렘과 삶의 성찰 돋보여

 

28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준 작품(387)을 숙독하면서 느낀 점은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그래도 성숙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어서 다행이었다.

 

끝까지 선자의 손에 남아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난수의 봉안담과 최현숙의 바다에 비가 옵니다그리고,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이란 시이다.

 

김난수의 봉안담이라는 시에서 영평사 야외 납골당 황련궁 222이곳은 내가 죽어서 들어갈 나의 봉안담, “내 죽음의 집이다면서 처음 살림집 장만했을 때보다 더 설레어 아무나 붙잡고자랑하고 싶었다면서 납골당을 장만했을 때 새벽 내내 안주가 되었고사람들은 집들이를 서둘러 하라고 난리였다라면서 당장 날 잡자는 말에 있는 돈 없는 돈풀어 술부터 샀다. 황련궁 벤치에 앉아 돌들과 구절초들과 모과나무에게 눈인사를 나눈다며 내가 들어오면 심심치 않게 놀아 달라고 당부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최현숙의 바다에 비가 옵니다란 시에서 바다에 비가 오면 바다가 물배를 채웁나다포구에 줄줄이 매달린 어선들과 갈매기호들을 바라보며 바다가 뻐끔뻐끔 물배를 채웁나다라면서 우리 어머니도 육남매를 낳아 키우느라바다처럼 삶의 허기로 배를 채우셨다며 그뿐만 아니라 십 리쯤 걸어야 하루 다섯 번 오가는 버스길을 이고지고 오르내린 어머니의 길” “코빼기도 뵈지 않는 자식들이 있어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만 속이 말라간다.”며 모정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엿보이고 있다.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이란 시에서 짧아진 가을 해뉘엿뉘엿 서산에 숨어들고 온종일 분주하던 저잣거리는 좌판을 거두고 철시를 서두른다.”기억 자 허리 억지로 반쯤 펴며 통증을 뿜어내는 할머니 신호에 웅크린 채 기다리던 리어카는소박한 방석 하나에 황제의 가마가 부끄럽지 않은 듯두 다리를 펴 보면서 안도하는 할머니를 리어카 뒷자리에 태우고오가는 인파 속에 묻혀가는 할아버지의 그 뒷모습 따라가는 그림자에 고된 일상 한 줌 고스란히 흘리며어둠을 밀어내는 가로등 아래로 따스함과 쓸쓸함이 숙연하게깃든다고 하였다

 

저잣거리 노부부의 삶 속에서 사랑과 설렘이 번져나고 있다. 늦가을 삶의 구체적 모습 속에서 신실한 설렘과 삶의 성찰이 돋보인다.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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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최미영

 

이슬이 데려온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내일 또 쏟아져 내릴 빛이건만 오늘은 폭설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다

작년까지의 눈가 잔주름은
눈치 없이 양반다리 틀고 앉았고
오늘따라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다
반 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해도
손만 잡고 보냈던 그 날밤 추억으로
양 볼이 자줏빛 국화꽃이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


 

[당선소감] 따뜻한 여운이 남는 시 쓰고 싶다

 

지구 곳곳을 뒤덮은 재앙으로 모두 힘든 올해입니다.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경쾌한 봄비 소리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야했고, 나뭇잎을 흔들던 시원한 여름 바람도 바람이 잠든 후 조용히 혼자 느껴야 했고, 아파트 사이를 가로질러 치솟다가 살포시 하늘 가득 내리는 첫눈도 복면을 쓰고 혼자 감상하는 청승을 떨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존경하는, 좋아하는 시인, 작가님들의 작품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접할 수는 있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큰 재앙으로 우울한 나날에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든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소식은 신의 축복입니다.

 

왜 나만 괴롭고, 왜 나만 힘들고, 왜 나만 아파야하느냐고 삶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일기장이 찢어지도록 힘을 주어 하소연을 했답니다.

 

이제 난 나와 같은 아픔을 겪거나 상처 입은 이들에게 부족하지만 나의 시를 통해 따뜻한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부족함 투성이의 덜 익은 저의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진심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이제부터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임을 가르쳐주시는 사랑의 채찍으로 겸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개를 펼 수 있는 등용문을 마련해 주신 동양일보 회장님과 모든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걸맞는 문인이 되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겠으며, 독자들이 공감하며 따뜻한 여운이 오래 남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가을은 시들고 성난 황소같이 겨울이 왔지만, 다가올 봄이 있기에 또다시 힘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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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절제된 언어로 형상력 신장

 

27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367편)들을 숙독하고 볼 때 해를 더할수록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관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삽한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다.

 

선자의 손에 남아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김태춘의 「빌딩 타는 거미」, 홍영수의 「대흥사 천년 숲길」, 김준태의 「바지랑대」, 최미영의 「첫사랑」이란 작품이다.

 

김태춘은 「빌딩 타는 거미」에서 옥상은 날기 좋은 곳, 죽기 좋은 곳이라 했다. 그만큼 운수와 의지의 삶이다. 바람에 흔들린다. 두드려도 허공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붉은 수건을 매면 전사가 되고 피켓을 들면 애국자가 되고 영웅이 된다며, 절벽은 발이 닿지 않는 남의 나라 죽음과 삶은 한 줄에 꼬여 대롱거린다고 한다.

 

홍영수는 「대흥사 천년 숲길」에서 새벽달은 두륜산 끝에 걸쳐있고 여울목엔 풋잠 깬 새들이 깃들고 길 위엔 동백이 주단을 깔고 절간의 목탁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불경소리는 풍경 끝에 꽃을 피운다고, 초의 선사의 차향 내가 스칠 때 부도 밭 큰스님의 화두가 목덜미에 떨어진다며 침묵의 천년이 다가선다. 보듬어 내는 내 모습이 새롭게 거듭나게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김준태는 「바지랑대」란 작품에 한순간도 무릎을 꺽은 적 없다며 외로이 누군가를 떠받치기 위해 태어나지 않으리라 핏기없는 깡마른 다리로 식솔들의 생을 짊 지고 볕에 내어 말리는 영문 모를 원죄들 씻어 내린다.

 

허공을 관통하는 하얀 외줄을 부여잡고 깡마른 몸에 의지한 숨 가쁜 생을 하늘로 띄워 보내려는 소임, 운명처럼 짊어진 삶을 노래하고 있다. 좀 더 압축과 절제의 수법훈련이 요구된다.

 

최미영은 「첫사랑」이란 작품에서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에 비견시키고 있다. 눈가의 잔주름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라면서도 반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한다 해도, 손잡고 보냈던, 그날의 추억으로 양 볼이 자주빛 국화꽃이다. 서정적 화사花詞로 순결성을 내보인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란 말들은 절제 압축의 미학이다. 사물과 사유를 시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최미영의 「첫사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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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잇돌 / 김정숙

 

가물가물 사라진 방망이 소리

황학동 풍물시장에 나와 앉아

깊이 잠겨있는 유년의 시절을

아프게 들어 올리네

 

햇살 팽팽히 내리쬐는 날이면

이불홋청 양잿물에

묵은 설움 푹푹 삶아내어

춤추는 바지랑대 위에서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

옥양목 빳빳한 기억이

풀먹이던 손 베이고 가네

 

외지에 나가 계셨던 아버지

그곳에 새살림 차리고

한 계절만 집에 들어와

가정을 돌아보고 떠날 때면

배웅 대신 방망이 두드리며

다듬이돌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

눈치 빤히 알고부터

혼자서도 두드려 보던 여린 손이

어머니 마음 바닥에 촘촘히

서려 있는 눈물방울 어루만졌네

 

다듬이 장단 밤늦도록

추임새 흠뻑 매기고 나면

저 혼자 조금씩 아물어 가던 상처

어머니는 없는데 소리만 살아

아직도 생을 다듬질하는 방망이

내 귀를 훑고 가네

 

 

 

 

 

 

 

 

[당선소감] 이마가 하늘에 닿아 바위를 뚫을 때까지 정진할 것

 

연말 모임에서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떠서 망설이다 받았는데 축하드립니다

이제 선생님께 김정숙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아 드리겠습니다 신문사에서 걸려온 전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내게 입은 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전국 백일장과 문학상에서 받은 상은 몇번 받아 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시인이란 이름이

거북하여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정상을 향해 치열하게 가슴앓이하며 설친 고통의 날밤으로 몇 계절을 넘나들다 보니 그만둘 수도 없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신춘문예 문학상은 아무나 가까이

범접할 수 없는 아프고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숨 가쁘게 그 길을 통과하여 걸음마를 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늦은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편견에 손들어주신 동양일보 심사위원님들께 이제 시작이라는 말귀로 알아듣고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오늘 저녁 시간에 벌어졌던 축제의 순간이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이 땅에서의 남아있는 발걸음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마가 하늘에 닿아 바위를 뚫을 때까지 정진하겠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생의 큰 채찍을 들어주신 동양일보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마다않고 워드 작업을 도와주었던 오주영 요한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며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이 영광과 기쁨을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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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유년의 실체에서 삶의 성찰력 돋보여

 

26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579)을 숙독하고 일정 수준작들이란 것과 아직도 응모작에 대한 이해가 미숙한 작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신재근의 모래시계’, 전목의 고양이란 작품과 문영애의 탱자’, 김정숙의 다듬잇돌이란 작품이다.

신재근은 모래시계란 작품으로 텅 빈 가슴 손짓 하나로 모래성을 쌓는다. 줄 것 없는 빈 가슴이 되어야 무언가 받고 나면 줄 수밖에 없는 깨달음의 가슴, 일으킨 굴레에 비어가는 시간 영원의 가슴은 모래성에 묻힌다며 비움과 채움에서 사물의 의미를 찾고 있다.

문영애는 탱자란 작품에서 가시 틈 사이에서, 태양을 꿈꾸고, 가시에도 찔리지 않는 금줄 햇살 당겨, 햇살 씨앗을 품고 있다며, 탱글탱글 영그는 해의 분신이란다. 가시에 찔려도 향으로만 저항하는 여유로운 숙성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전목은 고양이란 작품에서 보드라운 털 속에 발톱을 숨기고, 아무도 관심 없이 지나간 시간을 찾아 촉수를 뻗는다. 기억의 저편에 흐르는 눈동자를 찾아 타클라마칸사막에 발이 빠져도, 고독의 절벽의 맛보고 싶은 야성의 발톱에 번득이며 서늘한 눈동자로 걸어가는 당당함을 진술해보이고 있다.

김정숙은 다듬잇돌이란 작품에서 사라진 방망이 소리를, 유년 시절에서 찾는다. 이불 홑청 양잿물에 묵은 설음 푹푹 삶아, 바지랑대 위에 걸어,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의 삶의 면모를 제시하고, 외지에 나가 새살림 차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회상을 통해 방망이로 옥양목 빨래, 배웅 대신 방망이를 두드리며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를 상기한다.

딸과 어머니의 마음 바닥엔 다듬잇돌과 함께 어머니는 없는데, 아직도 생을 다듬질하던 방망이 소리 내 귀를 흩고 간다고 리얼하게 구체적 사물과 사유를 시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김정숙의 다듬잇돌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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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웃음 / 채선정

 

천년을 건너온 석상石象에는

우주의 웃음 하나 들어 계시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망치와 정으로 새긴 웃음

오방五方의 규칙이 쉬었다가는 웃음엔

밀잠자리도 외발뛰기햇살도

박주가리씨앗의 가잠도 쉬었다 간다.

아랫목 같은, 소리도 없이 호탕함도 없이

빙그레 미소 짓는 웃음은 흔치 않다.

어느 석공이 저 웃음 새기실 때

손끝하나 아프지 않았을 것 같은

웃음에 이끼가 파랗게 돋고

검은 바람의 때가 묻어 있지만

봐라, 잘 생긴 웃음이란

천년을 웃어도 쉽사리 닳지 않는다.

장마철 눅눅한 안색도 반짝

해 뜨게 하시는 웃음.

내 어머니,

어쩌다 맑으신 웃음은 다정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천년의 우울 같은 내 얼굴에

잘 생긴 미소하나 새겨지는데

마음의 꽝꽝 아픈 소리가 난다.

 

 

[당선소감]

 

무심한 잠에 취해 울리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뒤늦게 받은 전화는 꿈결인 듯 들리는 당선통보였다. 춥기만 한 한겨울, 이보다 더 따뜻한 감사가 있을까. 이화선 문화기획 팀장님의 목소리는 봄날 허공을 나는 나비의 날개 짓 같았으니.

 

그 옛날 새벽이면 물동이부터 채우시던 어머니를 닮으려 했다.

 

새벽은 나의 가장 큰 우군(友軍)이었다. 물동이에 물 쏟아 붙던 소리 같은, 그런 청량한 시를 쓰고자 했던 나의 새벽고행이 드디어 결실을 얻은 듯해서 기쁘다.

 

빈약하게 길어 올린 나의 시는 어머니의 물 항아리처럼 넘실거릴까.

 

긴 곰방대를 입에 무시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온통 마음을 빼앗기던 그때의 그 할머니 구술(口述)처럼 구수한 시 쓸 수 있을까.

 

일찍이 쓰는 일보다 낭송을 먼저 배웠다. 한편을 입안에 넣고 하루 종일 굴리다보면 시는 사탕처럼 다 녹고 그 달달한 감정만 남곤 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여하튼 부끄러운 일로 기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내일처럼 기뻐해 준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나보다 한참 먼저 시인의 길을 걷는 막내 동생. 졸 시를 선정해주신 동양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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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조형물 속에 담긴 이미지와 정체성 찾기

 

제25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791편)들이 예년과 대동소이하다. 작품의 수준으로는 난삽한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는 편이다. 관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끝까지 선자의 손에 남아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태원의 ‘상처를 세우다’와 홍영택의 ‘호미자루’와 장윤덕의 ‘옹기甕器’ 그리고, 채선정의 ‘천년웃음’란 시이다.

 

김태원의 ‘상처를 세우다’는 시에서 “장마가 잠시 머뭇머뭇하는 칠월의 아파트 앞에 방음유리 외벽”을 “가까스로 세워 올린 담쟁이들이 기어오르다 휘청하고, 기어오르다 곤두박질치고” 자신의 상처를 계단처럼 딛고 절망의 벽을 오르고야 마는 “허공에 솟구친 덩굴손 끝이 코브라의 목처럼 줄기차고 팽팽하다”고 했다. 의지와 투지력이 보인다.

 

홍영택의 ‘호미자루’란 시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일깨워낸다. “보리밥 한 술에 소주 한잔을 드시고 호미자루 들고 밭에 나서는” 어머니 모습과 비탈 밭이랑에 얽힌 삶의 애환을 들어내며 “호미자루에 새긴 시詩를 울타리에 걸어놓고” 나면 늦게 뜬 달님, 별님들이 살며시 들어다본다고, “꼬부라진 호미자루를 보면 어머님이 떠오르는 건 내 허리도 구부러진 탓이라고 뇌까린다.

 

장윤덕의 ‘옹기甕器’란 시에서 옹기(甕器)는 약토(藥土)라는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을 칭하는데,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써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뚜껑을 열거나 닫아둔다. 낮에는 햇살이 들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양념을 친다. 숙성된 된장이나 간장의 맛을 느끼고 있다.

 

채선정은 ‘천년웃음’이란 시에서 천년을 건너온 석상石像에서 웃음을 제시하고 있다. 석상은 돌을 깎아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그 종류와 의미가 다양하다. “망치와 정으로 새긴 웃음” “장마철 눅눅한 안색에도 반짝, 해 뜨게 하시는 웃음”을 통하여 웃음의 형상을, “빙그레 미소 짓는 웃음”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세월 속에서 웃음에 이끼가 파랗게 돋고, 바람의 때가 묻어나고 있다. “천년을 웃어도 쉽사리 닿지 않는다”며 어머니의 다정하고 맑은 웃음이 내게 전이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석상이란 조형물 속에 담긴 이미지와 정체성 찾기를 시도한 채선정의 ‘천년웃음’을 당선작으로 민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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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허종윤

 

꿈 하나를 접어야만 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꿈을 꾸어야 한다

볕 좋은 날을 시기하는 소나기처럼

때때로 고난이 다가와 곁에 앉아도

그대 꿈에 이별을 고하지 마라

바람이 날개가 꺾인 채 날아가지 못하는 건

꿈을 잃었기 때문이다

누웠던 풀이

바람의 뒷덜미를 부여잡고 끝내 일어서고

난간 위를 걷던 달팽이가

햇살의 발길질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꿈이다

달동네 빛바랜 전단지에도 여전히 꿈은 살아 있다

도저히 이대로는 눈감을 수 없다는 듯

다 지워져가는 글자를 딛고 서서

그 끈을 놓아버린 누군가를 나무라고 있다

찢긴 날개로도 창공에 소리치는

잠자리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

삶이란 경우의 수가 아니라

반드시 보내야만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것

상처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

내게 온 꿈들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건

온전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다

수많은 꿈을 쩝었더 하더라도

꿈 하나를 더 꾸고 있다면 그게 바로 삶의 이유다

 

 

[당선소감] “별을 향해 일어서는 넝쿨의 몸부림 배울 것”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을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론 그 꿈을 잊기도 하고 때론 이루지 못한 꿈을 밀쳐둔 채 살아왔습니다. 어디를 향하려는 건지도 모를 어두운 터널을 걸으며 현실에 일상을 저당 잡히기 일쑤였습니다.

 

한참 늦은 나이에 시(詩)를 만났습니다. 시와의 첫 대면에서 제게 물어오던 커다란 질문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의 질문은 다양했고 저의 대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앞날의 방향을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는 제가 밀쳐두었던 꿈을 되살려 질책하며 다가왔고 그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이유를 정하지 못한 채 피어있는 꽃이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한참 후에야,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새로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삼켜버린 세월만큼 어느새 후회의 크기도 커져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한걸음 내딛고 싶었습니다.

 

벼랑 위의 바람도 숱한 헛디딤 끝에 그 자리에 올랐으리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풀뿌리를 움켜쥐며 별을 향해 일어서는 야윈 넝쿨의 몸부림을 배우려 합니다. 모든 이들이 꿈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생각하며, 저 역시 그 출발선에 다시 섰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일보사가 제 어깨 위에 얹어준 묵직한 무게감의 기분 좋은 짐을 도닥여 봅니다. 그 짐이 힘겹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믿습니다.

 

세상의 응달에서 힘들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꿈을 나눠주는 그런 시를 위해 부단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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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꿈의 형상화와 성찰 기법 갖춰”

 

이번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934편)은 작년(651편)에 비하여 많았다. 그만큼 응모작이 늘어난 것을 갖고 생각할 때 퍽 다행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작품의 질은 평년작 수준이다. 야심찬 패기와 실험성 있는 작품은 발견하기 힘들었다. 

 

선자의 손에 남아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은 원기자의 ‘폐선廢船’, 강형옥의 ‘끝없는 유랑’, 곽광덕의 ‘고해성사’, 그리고 허윤종의 ‘꿈’이란 작품이다.

 

원기자의 ‘폐선’은 바닷가 갈대숲에 만선의 고기를 놓고, 비릿한 그 냄새가 부끄러워 먼 길을 돌아 집으로 가고, 등대를 버리고 떠난 선주는 소식이 끊기지 오래, 삶이란 그림자도 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너울 같은 거, 생각해보며, 바닷가 당신의 발자국 저문 노을이 쓸려간 삶을 진단하고 상기시킨다.

 

강형옥은 ‘끝없는 유랑’에서 시베리아의 횡단철차가 달리고 달려도 종착지가 보이지 않고 배고픔과 눈보라 아스라한 끝으로 향하고, 고려인 강제이주의 참상을 그리며, 그래도 고향에 숲 이룰 그날을 손꼽으며 꿈꾸던 꿈을, 강제이주80주년에 꿈의 실체를 찾고 있다.

 

곽광덕은 ‘고해성사’에서 송정리역 평화 구두방에 십자가는 없다며, 그간 걸어온 길속에서, 오행의 해독법을 넘었다고 너스레를, 타향살이 끝에 고향 찾은 이야기, 광나게 닦는 것은 흐려진 운명선 같은 것이라고, 별의 묵도소리, 역전에서 무궁화호 숨소리를 오버랩 시켜 증거를 제시한다.

 

허윤종은 ‘꿈’에서 달동네 빛바랜 전단지에도 꿈은 살아있다며, “꿈 하나를 접어야만 할 때 / 또 하나의 꿈을 꾸어야 한다” “난간 위를 걷던 달팽이가 / 햇살의 발길질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꿈이다” “내게 온 꿈들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건 / 온전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다”라 했다, “수많은 꿈을 접었다 하더라도 / 꿈 하나를 더 꾸고 있다면 그게 바로 삶의 이유다”라고 주창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꿈꾸고 그 꿈을 일궈내는 인고의 과정이다.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존의 존재추구를 일깨워내는 능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 이런 판타지를 구축해 내는 그의 시적 묘사와 기법에 박수를 보내며 당선작으로 민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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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나 / 전영아

궤나가 되었으면 한다

호흡이 멈춘 내 몸을 天葬으로 뉘면

살갗은 독수리의 몸을 타고 바람에 흩어지고

오롯이 희디흰 정강이뼈만 남으리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내 정강이뼈를

아프게 품어 줄 사람하나 가졌으면 한다

그가 떨리는 손에 내 정강이뼈를 고쳐 잡고

사막에 남겨진 고적한 발자국

긴 속눈썹을 가진 낙타의 순한 눈빛

초원에 골고루 슬어놓은 어린 나귀의 울음소리

그것들을 궤나에 실어 추억해 주었으면 한다.

아! 나는 미어지는 것들을 어디에다 죄 잃어버리고 왔을까.

바람 불고 구름 흩어질 때

야윈 내 정강이뼈를 훑고 지나가는

저 살빛 낮달도 슬펐으면 한다

어쩌다 한 번 피는 연보라 적란운보다

스텝에만 산다는 바오밥 나무보다

먼 곳에 있지 않은

궤나가 되었으면 한다

 

[당선소감] 아! 저기 한 무더기 꽃

 

햇빛 찬란히 아름다운 날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처 많은 진주조개가 더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를 품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삶은 저만치 혼자서 외롭고 슬픈 꽃이어서 이 오래되고 쓰라린 결핍이 아마도 제게 詩를 쓰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진 詩病이 도처에 흐드러져 나는 때로 그 안에 들어가

 

울고

또 울고

그렇게 오래오래 울고 웁니다.

 

평생을 울어도 여기 이생을 넘어가지 못할 것 같은 슬픔은 가끔 명치끝을 후려치기도 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빚진 인연들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대기만성하리라는 격려를 해주신 스승님과, 함께 어깨를 겯고 이 길을 걷는 시마(詩魔) 동인들과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오스트랄로 피데쿠스로부터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까지 이어진 인류라는 존재의 실존적 고민을 동감하는 시인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마음의 뒷짐에 비린내 나는 생선 한 마리를 숨기고 삽니다.

 

몸에 흐르는 피처럼 떨쳐 낼 수 없는 죄, 혹은 부끄러움, 혹은 치욕의 기표인 이 생선을 기꺼이 짊어지고 갑니다.

 

나의 영혼이 간절히 갈망하는 먼 곳에 있는 한 무더기의 꽃을 향하여 또 한 손을 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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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서사적 숨결·인간적 감각을 정서적으로

 

이번 신인문학상에 응모작품(651편)이 작년(427편)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해를 더 할수록 시가 모호해지고 난해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추상과 관념의 유희에 빠져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 많지 않았다.

 

마지막 까지 선자의 손에 남았던 작품은 허윤종의 ‘산다는 것은’ 과, 강수화의 ‘아버지의 출항’ 그리고, 원기자의 ‘소금꽃’이란 작품과 전영아의 ‘궤나’ 란 작품이다.

 

허윤종은 ‘산다는 것은’ 세월의 돌무덤을 넘고, 모래사막일망정 주저앉아가는 세월 바라 볼 수 없다며 고난의 땀방울과 고난의 파편을 내뱉는 것, 역류의 운명을 안고 자지러지게 울어보는 것으로 살아 바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란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고 있다.

 

강수화는 ‘아버지의 출항’이란 시에서 어둠이 바다를 삼킬 때, 바다를 떠돌며, 인생의 전부를 어선의 한 귀퉁이에 싣고 휘몰아치는 파도에도 활어처럼 굽어진 등을 펴고, 힘차게 바다 길을 여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찾고 있다.

 

원기자는 ‘소금꽃’에서 어릴 적 무구를 흔들던 할머니, 신당에 오색 천을 두르고 억울한 혼령이 구천을 떠돈다는 당집을 돌던 기억, 밤나무 밑에 소금물을 퍼붓던 어머니가 이제는 신당 아랫목에 자리보전하고 누운, 모습을 보며 마음속의 아린 소금꽃을 확인하고 있다.

 

전영아는 ‘궤나’ 란 시에서 호흡 멈춘 내 몸을 천장天葬으로 뉘면, 살갗은 독수리의 몸을 타고 바람에 흩어지고 정강이뼈만 남고, 정강이뼈로 만든다는 악기 궤나를 꿈꾼다. 초원에서 어린나귀울음소리를 궤나에 담아 추억해주길 바란다.

 

옛 잉카들은 넋을 달래기 위해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궤나를 만들어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궤나를 분다.

 

끝내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까지 울게 한다는 인디오들의 애절한 모습을 일깨우는 인간적인 감각을 정서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전영아의 ‘궤나’를 당선작으로 밀며 관념을 배제한 탈관념의 사물시 쓰기에 정진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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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를 품다 / 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쥔 늙은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 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 곳은

돌담 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

 

만만치 않은 세상, 삶이 고달플 때

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

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한 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모습에도

지나온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藥)으로

그 앞에서면 살포시 봄눈 녹듯 치유가 된다

 

고향 정자나무에서 느끼는 바람결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는다

말 없는 살랑거림은 존재 의미를 더 하고

굳건함은 의지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마음을 부추긴다 

 

 

 

[당선소감] 글은 ‘마음의 향기’ 누군가에게 힘 됐으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뜻밖의 당선 소식에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

습작을 하면서 글이란 마음의 향기라는 생각을 자주하면서 글 속에, 한 편의 시가 누군가에게 그 향기가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 있다는 위안으로 시를 쓰려했다. 그래서 지난 시절의 빛바랜 글일지라도 두고 두고 읽혀지고 느껴지는 부초(浮草)의 편린(片鱗) 같은 마음들이 있었으며 살면서 한때 잠시나마 힘든 시간도 있었다. 그저 내 자신에게 하고픈 이야기(詩)가 하나, 둘 모아졌고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책 갈피(葛皮)를 넘기고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더불어 함께하기를.. 그들도 어느 순간에 잠시나마 인생사가 힘들 때 곤고해 질 때 한 줄의 글에서나마 새삼스레 목청을 더 높인 거창한 외침은 아니지만 나지막이 들려줄 이야기로 공감과 소통의 부분으로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었다.

추운 겨울날 몸을 옴츠리고 있다고 겨울이 따뜻해지는 건 아닌 걸로 안다. 견디고 적응해 나가고 그렇게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추위를 이겨내는 것도 이러하듯이 삶의 역경도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라 믿는다. 세상 살아가면서 삶의 상처야 덧나고 아프면서 겪는 게 있다. 처음에는 적당히 아파도 하고 그냥 무작정 외쳐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새살이 돋고 또 잊혀지면서 세월의 나이테가 그려져 나갔다.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도 너무 힘들어하지도 않기를 스스로에게 독려 했다. 또한 성공이란, 작은 의미에는 자신이 무엇이든 시작한 용기가 씨앗이 되어 해 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부터 싹을 틔운다.

아직은 역량과 필력이 많이 부족하여 생각처럼 삶의 향기로 옮겨내지 못한 부족한 글에 조금은 속살처럼 드러나는 부끄러움도 있지만 그래도 이름 석자 앞에 시인이란 명패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명분과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정연덕 시인)과 동양일보 문화기획단 관계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가족인 아내 박지혜, 특히 딸 염은비(창작동화) 작가, 그리고 문학박사 김정수 시인, 염민기 시인, 지인 장택산 이들과 좋은 시간으로 지향점이 같은 모습에 함께 나눈 문학적 교감과 아낌없는 격려에 큰 힘이 되었고,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떠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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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기숨결의 정체성 찾기 능력 돋보여

 

이번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472편)을 읽고 대부분의 시작들이 다양하고 나름대로의 개성과 새롭고 탄탄한 시세계가 엿보이기도 하였으나 아직도 신인문학상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전효정의 ‘골목의 어둠’과,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과,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 그리고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이다.

전효정은‘골목의 어둠’이란 작품에서 밤의 골목은 저만의 어둠과, 낡은 시멘트벽엔 덕지덕지 광고지가 회색빛으로 물든 골목과 화자, 백열등의 불빛과 밤벌레의 유혹, 그 어둠이, 옹크린 골목에 백열등을 통해서 또 다른 희망이란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은 토방 아래 달싹 엎어진 개밥그릇을 백구 한 마리가 반나절 넘게 자기의 밥그릇을 일으켜 세우려고 입으로 물고 제쳐도 뒤집어지지 않는 막사발을 일으켜 보았자 뜨거운 공기만 고봉으로 담겨져 있을 터인데 자기 밥그릇을 위한 발버둥치기행동에서 산 생명의 존재적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이란 작품은 철갑고래와 흰 얼굴들이 등 무늬로 번지는 고향 닮은 바다에 백합조개, 난파선을 들락거리는 해마, 강장동물의 촉수로 그려지는 해협과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을 통해서 저들의 무리와 헤엄치고 싶은 충동을 애증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엿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은 고향 길에 지나는 동구 밖의 정자나무는 마음의 고향으로 믿음의 그늘로 그리움의 터전으로 존재한다. 부모와의 삶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란 걸 일깨우고 그 앞에 서면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으로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다시일어나 시작할 용기와 힘을 주는 존재로 의미가 강한 사유의 깊이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도구적인 목적시나 관념적인 산문시가 난무하는 세태에 자기숨결의 정체성 찾기의 능력이 돋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를 당선작으로 밀며 사물과 사유를 절제된 시로 갈고 닦는 작업에 힘써 건실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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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잠 / 이현정

 

칸칸의 방에 무릎을 접고 잠 든 하얀 누에고치

오래 전 저 무릎에서는 한철 내내 누에가 자랐다

옆에서 자는 날이면 밤새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방을 바꾸며 마디를 키워가는 누에들

궁금한 것이 많은 어린 것들은 강물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들곤 했다

 

손끝은 하얀 실처럼 길어지는 듯 했지만 점점 닳아갔고

누에를 키우던 손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마디를 지탱하던 관절들이 빠져나가고

접힌 무릎 펴지 못할 때

당신의 수의를 지으신 어머니

수천 겹 흰 올을 안고 오른 섶

잠든 고치에는 이제 무릎이 없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한 생을 헐고 나오는 것이 탈피이고 죽음이라면 죽음을 나온 그 흔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또 다른 탈피이겠지

 

혼자만의 걸음걸이로 가만가만 방을 옮겨가던

하얀 발끝에 붙은 햇살은 다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 보니 슬픔도 예전과 같지 않다

나방이 되어 날아갈 때 모정도 끌고 날아간 것일까

 

깊은 잠에 든 지금

뜨거웠던 한 철에 남은 미온으로

유골함속 무릎은 어쩌면 부화의 계절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선소감]

 

오래 불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호칭들...

이제 그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겠습니다.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름이 있었습니다.

오래 묵은 병이 되어 늘 자리를 맴돌았고

몸속을 파고든 증상은 수 년 동안 괴롭혀 왔습니다.

이름 없는 이름으로 버려져 더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무성한 풀숲에 숨었다 시시때때로 몰려나와

거친 호흡으로 함께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를 기다리며 침묵으로 버텨온 시간이 고맙습니다.

돋아나지 않는 날개를 기다리며 몇 번의 겨울을 보냈는지,

그 절망의 시간을 기다리며 참아준 그들을 꼬옥 안아주렵니다.

겨울 한파의 매서운 바람을 뚫고 날아온 햇살 한 자락에

그간의 증상들이 한 겹씩 벗겨지고 있습니다.

오래 불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호칭들

이제 그 작은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겠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한 발씩 나아갈 수 있게 길 열어주신 동양일보에도 머리 숙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찬란한 봄날의 선배 문우님들, 곁에서 응원해준 가족들에게도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으로 남아 있는 세상의 시인들,

그 이름들도 함께 불러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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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신선한 상상력

 

응모작이 예년 보다 다소 늘어났으나 신인에게서 볼 수 있는 야심찬 패기와 실험성을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윤현숙의 ‘도배하는 여자’, 이중동의 ‘몽유의 골목’, 권용각의 ‘휴지’, 이현정의 ‘누에의 잠’이었다.

윤현숙은 ‘도배하는 여자’에서, 여자는 낡은 꽃무늬에 숨어있던 벽을 불러낸다. 벽은 거친 맨살을 드러낸다. 그리고 퍼런 정맥이 툭 터질 것 같은 손등 관절을 곧 추세울 때마다 벽과 벽 사이 긴장감이 돌던 뻐근한 허리 허공에 젖혀놓은 채 둘둘 말린 하늘을 천장 가득 풀어놓고 있다 사각의 방 투명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눈이 가는 작품이다.

이중동의 ‘몽유의 골목’은 후미진 골목길에 비스듬히 누워 그의 각진 인상을 푸느라 햇살은 부산하고 그는 꿈속의 하늘 길을 달리다 온종일 등을 짓누르던 무계를 내려놓고 빈 몸으로 취한 휴식 달콤했을 것이라며 거친 도로를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다. 삶의 일면이 내비치는 글이다.

권용각의 ‘휴지’란 작품을 보면 휘돌 때마다 조금씩 소진되는 삶(용도)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저마다의 용도와 의미가 있는 것 회전의 끝에 남겨지는 마지막 중심은 무척아름답다고 정직하다고 응원하는 작품으로 우리네 삶이 자세를 암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가작이다.

이현정은 ‘누에의 잠’에서 칸칸의 방에 무릎을 접고 잠이 든 하얀 누에고치를 보고 오래전 어머니 무릎에서는 한철 내내 누에고치 자랐고 뽕잎 갉아먹는 소리 그 속에서 자장가인양 잠들던 어린 시절을 불러낸다.

누에를 키우던 손을 놓고 당신의 수의를 짓던 어머니 수천 겹 흰 올을 안고 오른 섶 무릎이 없는 누에고치(유골함)로 치환, 어머니의 부화(환생)의 꿈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내밀한 자기 문법의 언어로 표출하여 전달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사물을 볼 때 관념의 무게를 줄이는 시작을 통해 더욱 정진 대성하기를 바란다. 이현정의 ‘누에의 잠’을 당선작으로 민다.

 

- 심사위원 : 정연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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