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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를 품다 / 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쥔 늙은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 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 곳은

돌담 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

 

만만치 않은 세상, 삶이 고달플 때

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

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한 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모습에도

지나온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藥)으로

그 앞에서면 살포시 봄눈 녹듯 치유가 된다

 

고향 정자나무에서 느끼는 바람결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는다

말 없는 살랑거림은 존재 의미를 더 하고

굳건함은 의지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마음을 부추긴다 

 

 

 

[당선소감] 글은 ‘마음의 향기’ 누군가에게 힘 됐으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뜻밖의 당선 소식에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

습작을 하면서 글이란 마음의 향기라는 생각을 자주하면서 글 속에, 한 편의 시가 누군가에게 그 향기가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 있다는 위안으로 시를 쓰려했다. 그래서 지난 시절의 빛바랜 글일지라도 두고 두고 읽혀지고 느껴지는 부초(浮草)의 편린(片鱗) 같은 마음들이 있었으며 살면서 한때 잠시나마 힘든 시간도 있었다. 그저 내 자신에게 하고픈 이야기(詩)가 하나, 둘 모아졌고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책 갈피(葛皮)를 넘기고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더불어 함께하기를.. 그들도 어느 순간에 잠시나마 인생사가 힘들 때 곤고해 질 때 한 줄의 글에서나마 새삼스레 목청을 더 높인 거창한 외침은 아니지만 나지막이 들려줄 이야기로 공감과 소통의 부분으로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었다.

추운 겨울날 몸을 옴츠리고 있다고 겨울이 따뜻해지는 건 아닌 걸로 안다. 견디고 적응해 나가고 그렇게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추위를 이겨내는 것도 이러하듯이 삶의 역경도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라 믿는다. 세상 살아가면서 삶의 상처야 덧나고 아프면서 겪는 게 있다. 처음에는 적당히 아파도 하고 그냥 무작정 외쳐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새살이 돋고 또 잊혀지면서 세월의 나이테가 그려져 나갔다.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도 너무 힘들어하지도 않기를 스스로에게 독려 했다. 또한 성공이란, 작은 의미에는 자신이 무엇이든 시작한 용기가 씨앗이 되어 해 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부터 싹을 틔운다.

아직은 역량과 필력이 많이 부족하여 생각처럼 삶의 향기로 옮겨내지 못한 부족한 글에 조금은 속살처럼 드러나는 부끄러움도 있지만 그래도 이름 석자 앞에 시인이란 명패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명분과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정연덕 시인)과 동양일보 문화기획단 관계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가족인 아내 박지혜, 특히 딸 염은비(창작동화) 작가, 그리고 문학박사 김정수 시인, 염민기 시인, 지인 장택산 이들과 좋은 시간으로 지향점이 같은 모습에 함께 나눈 문학적 교감과 아낌없는 격려에 큰 힘이 되었고,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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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기숨결의 정체성 찾기 능력 돋보여

 

이번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472편)을 읽고 대부분의 시작들이 다양하고 나름대로의 개성과 새롭고 탄탄한 시세계가 엿보이기도 하였으나 아직도 신인문학상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전효정의 ‘골목의 어둠’과,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과,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 그리고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이다.

전효정은‘골목의 어둠’이란 작품에서 밤의 골목은 저만의 어둠과, 낡은 시멘트벽엔 덕지덕지 광고지가 회색빛으로 물든 골목과 화자, 백열등의 불빛과 밤벌레의 유혹, 그 어둠이, 옹크린 골목에 백열등을 통해서 또 다른 희망이란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은 토방 아래 달싹 엎어진 개밥그릇을 백구 한 마리가 반나절 넘게 자기의 밥그릇을 일으켜 세우려고 입으로 물고 제쳐도 뒤집어지지 않는 막사발을 일으켜 보았자 뜨거운 공기만 고봉으로 담겨져 있을 터인데 자기 밥그릇을 위한 발버둥치기행동에서 산 생명의 존재적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이란 작품은 철갑고래와 흰 얼굴들이 등 무늬로 번지는 고향 닮은 바다에 백합조개, 난파선을 들락거리는 해마, 강장동물의 촉수로 그려지는 해협과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을 통해서 저들의 무리와 헤엄치고 싶은 충동을 애증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엿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은 고향 길에 지나는 동구 밖의 정자나무는 마음의 고향으로 믿음의 그늘로 그리움의 터전으로 존재한다. 부모와의 삶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란 걸 일깨우고 그 앞에 서면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으로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다시일어나 시작할 용기와 힘을 주는 존재로 의미가 강한 사유의 깊이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도구적인 목적시나 관념적인 산문시가 난무하는 세태에 자기숨결의 정체성 찾기의 능력이 돋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를 당선작으로 밀며 사물과 사유를 절제된 시로 갈고 닦는 작업에 힘써 건실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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