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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의 악어 / 정보영

 

악어는
움직이지 않는다
민물에서 당할 자가 없는
특별한 그곳에만 서식하는
악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유리창 안 차가운 악어의 눈빛
공룡시대 살아난 유일한 파충류
조상은 칠천만 년 전 고대 파충류
어둠이 짙은 빙하기의 변화를 견뎌낸,
악어가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일 강의
물소리를 향해 천천히 헤엄치기 시작한다

 

물 마시는 얼룩말의 목구멍으로 악어의 숨이 타들어간다
목마른 얼룩말 말라가는 물웅덩이 배고픈 악어
숨 숙인 채 얼룩말을 주시하는 악어

 

형광등이 치열하게 악어를 건조하고 있다
조금씩 단단해진 갑각의 손가락마디
넘기는 책장 한 장마다 악어의
내일이 얇게 저며지고 있다
악어
꼬박 사 년 동안의 굶주림 고갤 들면 빛나는 육삼빌딩
자꾸만 무뎌지는 빛의 한계선 안경을 고쳐 쓰는 악어 투명한
순막으로 빛나는 골목을 재조명한다 느릿느릿 꿈꾸던
한 평짜리 햇살 가득 찬 악어의 고시원
흰 벽에 창문을 그려본다 자꾸만 낮아지는 천장
악어는 말없이 늘 납작 엎드려 왔다
곁눈질 않는 시선으로 빤히 바라보며 악어는
다시 깊게 잠수한다 주먹밥을 씹으며 잘근잘근
쪼개지는 시간을 밟아간다 길을 걷는 순간에도
알 같은 책을 놓지 않는 악어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악어 메말라가는 비늘판 악어는 쉽게 눈 감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별빛대신 불 켜진 학원 간판들이
까만 밤을 수놓은 노량진의 밤
질척이는 진흙 나일 강의 물웅덩이
고개 들어 허공을 향해 입 벌린다
당구장도 가고 싶고
자장면도 먹고 싶고
사우나도 가고 싶고
때도 밀고
바나나우유도 먹고 싶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는
저주파의 긴긴 고요
거울에 비친 악어의 충혈 된 두 눈
서로를 거울삼아, 한 뼘씩
갑각의 꼬리를
자르고
있다

 

 
 
<제12회 윤동주 시문학상 심사평>
 

  예심에서 올라 온 16명의 82편의 작품들은 대체로 고른 수준을 보여주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반면, 눈에 불을 켜게 하는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어렵사리 김현재의 「하데스」, 이서령의 「마네킹의 잠은 어둡다」, 이창훈의 「구름의 행려병」, 정보영의 「고시원의 악어」, 정지원의 「소통」(인명 가나다순)이 최종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정지원은 현장을 포착하는 시선이 날카로웠는데, 작위성을 다듬으면 좋겠다. 이창훈은 사물에 대한 사색이 그윽한 데가 있었으나 엷은 감상기가 흠결로 지적되었다. 김현재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로테스크한 재앙적 이미지로 치환하는 솜씨를 보여주었는데, 이 형상의 강렬성에 주목하자는 의견과 최근 유행하는 도식적 구도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아쉬웠다. 가작으로 뽑힌 두 작품 중, 「촛불 하나」는 사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살아있는 정념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고 있다. 「마네킹의 잠은 어둡다」는 현실의 풍경을 따라가는 차분한 눈길 속에 일렁이는 욕망과 제어하려는 의지를 길항시켜 미묘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고시원의 악어」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가난한 자의 심리적 충동을 ‘악어’의 형상으로 치환하는 착상이 독특한 한편, 이미지의 길쭉한 이어짐이 자연스럽고 공감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의견에 무게가 있었다. 똑같은 갈채의 형식으로, 뽑힌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정현종, 홍정선, 정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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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목련 / 홍슬기(숭실대학교 문예창작 1년)

 

너의 저 하얗고 순결한 혓바닥들

나는 너의 혀와 나의 혀를 교체했으면 좋겠어

나는 너의 혀를 달고 바람의 노래를 부르고

너는 나의 혀를 달고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보기도 할 텐데

종종 바람이 불 때마다

내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의 혀에서 갈라져 나온

세상에 존재하는 바람의 방언들이 후드득 쏟아져

두껍고 부드러운 너의 혀를 쓰다듬으며

나는 네가 말을 하지 못했던 때를 생각해

네 내부에 갇힌 수많은 방언들이 시끄럽게 떠들다가

스스로 조용히 썩어버리던 시절

너의 봉오리 속에서 그런 은밀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지

나는 너의 입을 벌려 네 입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네 입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한 너의 혀

아직도 너는 혀에 남아있는 방언의 자음과 모음을 중얼거려

아무렇게나 맞물린 활자들이

네 혀를 타자기처럼 두드리면

너의 혀가 쩍쩍 갈라지지

눈이 오고 따뜻한 어느 나라의 방언으로

나에게 욕설을 내뱉어

그 나라 방언의 기원은 욕설이었을까?

나는 네 입술을 한 겹씩 헤집으며

가장 오래된 너의 혀가 가진 언어를 배우는 중이야.

 

 

 

* 가작

비단길 / 황의선(명지전문대 문예창작 3년)

 

아무리 씻어도 이름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단어가 의미를 가둔다는 생각이 들 때

언어에서 화장품 냄새가 날 때면

 

난 발걸음을 재촉하여 구부러진 길 위를 걸어간다

이정표를 보지 않고 꽃들에게 길을 물으며

걷는다 촉촉하게 젖은 대숲을 지나

떨리는 강물에 부싯돌 몇 개 던지기도 하며

걷는다 온간 간판과 현수막들이

서로 길을 가리키던 도시에서 벗어나

언젠가 철도나 아스팔트의 잔가지가 닿을 이 길

곳곳에 곱고 보얀 맨살 가득하다

 

달빛이 내려앉은 숲을 지나갈 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손가락을 들어 별자리의 선분을 끊고

이름 모를 들꽃들의 학명을 지워나가다 보면

보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꽃송이 하나

너 이제 빨강에서 해방되었으니

어떤 길도 이름도 색칠한 적 없는

투명한 꽃잎 위로 내리는 달빛 가루 환하다

 

 

 

* 가작

고서(古書) / 이효정(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 4년)

 

나는요 도서관에서 일해요

아침 일찍 나와서 반납통 먼저 확인하죠

글쎄, 어제는 거기 노숙하는 할아버지가

웅크리고 주무시더라고요

뒤주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사도세자에요, 해도 대꾸가 없기에

하는 수 없이 끌차에 실어 책장에 모시고 왔어요

여기 계시면 누군가 대출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담 어느 책장이 좋으려나

할아버지는 여기 말고 살 곳도 없다고

여기 말고 가본 곳도 없다고

자꾸만 우는 소리 하니깐

여행 코너가 맞춤일 것 같아서

나는 그리스 해안에 꽂아드렸어요

물이 좀 차다고 덜덜 떨진 마시고

할아버지 주름만큼 구깃거리는 모래사장을 푹 덮으세요

그리고 여기 하얀 조약돌을 입에 물고 기다리세요

왜 있잖아요

나뭇잎을 띄운 물이 맛 좋은 것처럼

책갈피라도 껴있는 책이 음미하기 좋은 법이거든요

자, 준비되셨지요

이제 그럼 가지런히 앉아서 책장이 넘겨주는 파도소리 좀 들어보세요

파도가 훔쳐오는 저 발자국 소리 좀 들어보세요

발들을 밟고 달아나는 자갈과 무릎을 베고 눕는 모래알.

할아버지는 이제 책장의 섬이거든요

오래된 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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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화석의 시제 / 김성태(성균관대학교 소비자가족학 3년)

 

풍경을 송출한다.

소금기 빠진 화석의 윤곽이다.

 

코끼리 무덤처럼 가스통이 뭉쳐있는 동네. 산

란하지 못한 물고기 정액이 수초를 묶는다.

기와지붕엔 수렵의 흔적이 묻어있다. 순록의

뜯긴 등 같다. 잠자리 한 마리가 햇살을 털고

날아간다. 개들이 목청을 돋궈 짖기 시작한다.

분리수거함에서 해골이 떨어진다. 사과 한 알

이 웃다가 트럭에 밟힌다. 수류탄만한 모과

두 알이 포탄 향을 뿜는다. 철조망의 임파선

을 따라 아찔하게 담쟁이가 매달려있다. 지친

경주마의 그것처럼 서 있는 공장의 굴뚝 위

로, 노동자의 입김이 힘없이 떠오른다. 불임의

구름을 만든다. 교수대처럼 서 있는 나무 끝

에서 까치 한 마리가 솟구친다. 잎맥만 남은

잎사귀가 허공에서 출렁거린다.

 

꽃잎들이 쓰러지고 있다.

골목의 수명을 수첩에 적는다.

 

 

 

* 가작

둥근 잔 / 임상훈(우석대학교 문예창작 4년)

 

할머니의 스무 번째 제삿날

손끝으로 둥근 잔의 테두리를 쓰다듬는다

입술로 빚어진 휑한 눈구멍이다.

 

청주가 담긴 사기(砂器)잔을 홀짝 빨다

내 등골이 싸늘해진다

녹차를 곧잘 따라 마시던 잔에서

뒤집힌 봉분이 보인 까닭

씻긴 목기들이 선반에서 마르는 동안

엎어진 목기처럼 내 속으로 어둠이 찾아온다

무덤 속에서 눈알부터 비워버린

할머니는 눈앞이 컴컴해

넘칠 듯 찰방거리는 둥근 잔

 

향 태우는 연기가 소복자락처럼 구겨진다

아버지와 삼촌은 서둘러 잠들지 못하고

어린 사촌들은 제사상 앞에서 소란스럽다

할머니의 대접 같은 젖꽃판에서 비릿한 젖이

암흑이, 줄줄 흘러나오는 시간

 

내 둥근 잔의 텅 빈 눈구멍에서부터

독주가 천천히 차오른다

할머니는 몇 년째 입이 없어 상을 물리는데

찬찬히 제삿밥을 오물거리는 하현달

 

 

 

* 가작

폐점 / 박혜란(경희대학교 국어국문 3년)

 

상점 앞에서 개가 운다.

밤중에 셔터를 내리고 내 뺀 사람은 더 이상 개의 울음이 아니고

옭아맨 쇠줄에 대하여 생각할 여력도 개의 것은 아니라서

털이 삐쭉 세우고 짖다가 말뚝을 핥고 모가지를 길게 뺀다.

손전등을 든 관리는 개의 동공 속에 다녀가는 잔상.

울다가 밥그릇을 엎고 얼마 남지 않는 물이 개의 앞다리를 적시고

두리번거리던 손전등의 빛도 남 일인 양, 길 끝으로 멀어져 갈 때

사나운 시절 흔들던 꼬리에는 단단하게 자물쇠가 걸리고

밤중에 함구한 셔터는 휑한 개의 눈동자만 곱씹는 중이다.

리어카는 새벽을 깨며 개의 울음을 줍고

경계하는 노파의 발걸음에는 잔망스럽게 입을 차는 소리.

아스팔트에 끌려올라오는 진창에 물 고이는 소리.

고름 냄새를 기필코 피우는 저 언청이 울음.

이렇게 우는 개를 보고 있으면

개의 울음은 개주인의 것이라는 생각만 나곤 한다.

상점 앞에서 개가 악을 쓰며 성성하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시는, 10명의 작품들이었다. 비교적 정확하고 안정적인 언어 구사와 시적 감각을 보여준 작품들이 적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어를 다루고 시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일정한 단계에 올라와 있는 작품들이 발견되었지만, 비슷한 소재와 이미지를 구사하는 측면들이 있어 아쉬웠다. 시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와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아직 표현된 적이 없는 미지의 언어와 감각을 발굴하는 작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젊은 문학도들은 자기 언어를 찾아내는 작업에 열정을 집중하기를 바란다.

당선작이 된 「화석의 시제」는 풍경과 이미지를 구축하고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풍경'을 "소금기 빠진 화석의 윤곽"으로 설정하는 발상 자체가 감각적이었고, 그 풍경의 내부를 은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환유적인 방식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언어들이 신선함을 주었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특정한 관념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감을 스스로 가지면서 '화석의 윤곽'과 '골목의 수명'이라는 시간적인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시적 성취로 이어졌다.

가작이 된 「둥근 잔」의 경우는 '둥근 잔'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이미지에 할머니의 제삿날의 느낌을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특히 그 '둥근 잔'으로부터 "뒤집힌 봉분"과 "할머니의 대접 같은 젖꽃판" "내 둥근 잔의 텅 빈 눈구멍"으로 이미지가 전이되면서, '나'의 실존적 깊이가 심화되는 양상이 흥미로웠다.

가작이 된「폐점」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건조하고 밀도 있게 묘사하는 감각이 인정할 만 했다. 특히 암울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기묘한 소리의 이미지들로 풀어내는 방식이, 그 풍경에 어두운 심도를 부여하고 공간적 감각에 다른 차원을 부여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심사위원 : 정현종, 정과리,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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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없음

 

 

 

* 가작

바다 / 신진용(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늙은 밤의 기침소리에 잠을 깼다

쿵쿵 소리 내며 돌아가는 하늘의 회전축엔

갈라진 목마름이 가득하지만

노래로 가득 찬 어느 부두에선가

낡은 櫓는 이를 갈고

팽팽해진 돛이 빰을 때린다

 

바다 깊이 던져놓은 그물들은 성기지만 단단하다

부리가 긴 새들은 검은 아가리를 헤집어 먹이를 찾고

거품을 비집고 나온 파도는

익사체를 입에 문 채 눈을 껌벅이는데

밀물은 물갈퀴를 좁게 오므리고

재갈 같은 부표를 뒤집어 놓는다

 

어둠이 녹아들 곳은 애주가의 수염뿐이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큼지막한 망태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별 한 마리가

뾰족한 아가미를 퍼덕이며 소금기를 토한다

짜디짠 표백제가 하늘에 흩뿌려지는 순간

만선한 새벽이 부두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데

 

포장마차 주인은 수족관에 납작 엎드린 항구를 잡아

도마 위에 패대기쳐 놓았다

비로소 바다의 능선이 드러나고

침묵한 사원이 활기를 찾을 것이다

 

누구일까? 첫 물길에 발자국을 찍을 이는?

 

 

 

* 가작

어부바 / 오병량(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기력이 다한 태양을 사내들이 털어내며

공사장을 나오고 있었다

연장통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 모인 사람들

야윈 그림자보다 더 누추한

사내 하나가 눈에 닿은 것은

오직 등에 간신히 멘 분홍색 가방 때문이었다

그는 오로지 앞만 보고 있었다

딸애가 보채며 사내의 어깨를 잡는 것 같았고

가슴팍에 닿은 가방 끈 안으로 비벼 넣은 양손이

마치 등에 업힌 딸애의 손목을 간질이는 듯도 했다

힘에 부쳤는지 한두 번 몸을 치켜 올렸다

그때마다 스르르 올라가는 원피스 사이로

소녀의 수줍은 엉덩이가 드러났다

사내의 잔등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몰래 치마를 내려줘야 하나

그들의 그림자가 내 발치에 닿아있어

걸음을 딛기가 민망했다

한 무리의 비둘기가 날아와

입 밖으로 꼬르륵 소리를 낸다

오늘은 무슨 반찬, 딸애가 그리 물으면

사내는 무어라 답할까

혹, 개구리반찬

 

날 수 없는 하늘이 높아

잘린 발을 쪼아대는 비둘기

배가 부르다

눈을 감으면 잠긴 눈꺼풀 사이로

붉게 비치는 소녀의 엉덩이

햇볕이 두 볼의 언저리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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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잘못 누군가에게 들어선 / 이현우(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1학년)

 

훗날 그대의 사내가

잠든 그대의 몸을 끌어안으며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전생으로 잘못 기어드는 중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리 말한 뒤로 그대의 발가락 마디 사이의 수로(水路)를 열어

그대를 밀어 넣기 시작한다면

그저 묵묵히 그 긴 수로(水路)를 따라 걸어 내려가실 수 있겠습니까

이 생을 누군가의 전생인양 접어두고

 

훗날 그대의 여인이

걷는 그대의 손을 놓으며

지금 당신은 이 생으로부터 만삭이 되었어요

라며 그대의 손가락 마디 사이의 화로(火路)를 열어

당장 여기서 나가라 한다면

그대는 유유히 이곳을 빠져나가실 수 있겠습니까

이 생을 누군가의 전생인양 걸어둔 채

 

한 사내와 여인의 전생이 빚어지는 방에서

한 생은 사내로 나머지 한 생은 여인으로 각기 삼십을 살다가

가야할 곳이 후 생이 아니라 이 생이라는 사실을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전생으로부터 잘못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 가작

가시리 / 박성준(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학년)

 

너를 거기에 묻어두고 내가 여기서 희미하게 몸을 연다

 

목련꽃이 가지를 잊는다. 나무와 헤어진 꽃잎은 예민한 바람의 손톱들. 그렇게 가시리 가시리잇고. 후두둑 깍여 나간 너의 호흡이 가만히 허공을 밀면, 나뭇가지마다 하얀 물이 흘러나왔다. 나무가 몸을 열기 시작했다고, 따가워, 따가워! 내가 너의 눈동자를 불 때처럼 가늘게 대지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고. 네 몸 속을 유연하게 떠다니던 풍매화의 홑씨들이 후一 후一 제 살을 뚫고 흘러나온, 잃어버린 문장 하나를 만나면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서서 너를 불렀다. 눈물을 흘린 때마다 내 몸이 열리고 있었다고. 하얀 뼛가루가 부슬거리던 목소리로. 토라지지 못해 붉은 열병만 앓으며 위 증즐가 태평성대

 

너와 내가 서로의 틈을 껴안고 겹쳐지는 순간 이미 잃어버린 계절, 새들이 버리고 간 둥지는 나무의 심장이었을까. 한 때 풍성한 불빛이 나무의 내부를 휘젖고 뿌리마다 젖물 돋아 옹이딱지들 가려워지고, 축축해지고, 끈적해져도. 그렇게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무는 다시 누군가, 제 몸에 들인다는 것이 두렵다. 헤어지던 그 순간 모습 그대로 목련꽃이 다시는 아니 올까 두려워, 온몸에 단추를 걸어 잠그고 나무껍질을 붙잡아 단단하게 움츠려 봐도 하얀 눈물샘은 아무도 막지 못할 거라고. 목련잎은 떨어지면서 먼 마음을 붙들고 나는 너와 늘 같이했던 자리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어 본다. 위 증즐가 태평성대

 

한 계절, 나무가 속앓이를 멈추면 대지의 심장이 뛰리라.

 

 

 

* 가작

거의 안개 / 윤유나(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고장 난 듯이 붉고 붉은 장미와 함께

나는

 

발뒤꿈치처럼 툭 튀어나온 이 길을 걸을 때면

몸속으로 안개가 꼈다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길 속으로 귀를 넣어 보곤 했지만 피아노를 찾을 수 없었다

우연인 척 우체통을 보며 냉장고를 생각했다

코드를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도블록 보다 커다란 발자국을 그리면서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지 않고서부터 집은 내내 감동적이지만

이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

다만

빈 가방을 버리고 싶다

열쇠는 버리고 싶지 않고

문방구에 가고 싶기도 하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중얼대다가도

미간을 구기며 연기한다

 

안개는, 이건 운명 교향곡이군

사랑은 아니 길은

사람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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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동백꽃치마 / 조윤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빨랫줄에 널린 엄마의 치마를 걷어 와요

방문을 꼭 잠그고 나는 몰래 치마를 입죠

치맛자락에 둥둥 떠다니던 동백꽃이 토독 눈을 떠요

내가 입고 풀썩 앉아 널따란 동그라미 그리면

방바닥에 주름진 푸른 우물이 생겨나죠

 

우물 속에 고개를 숙이고 속눈썹을 담궈요

내 눈동자에 목젖을 감추고 있던 꽃망울이

엄마의 두레박 같은 웃음처럼 풍덩 피어나요

나는 빨간 동백 숲 가운데 천막을 치고 앉아

불그스레한 볼에 머뭇거리는 바람을 맞고요

깊은 우물 밑바닥에 꽁꽁 숨겨져 있던

엄마의 캄캄한 자궁을 상상하며 나는 익어가지요

 

나는 가장 붉은 동백꽃을 우물에 던지고는

시치미 떼며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요

그곳에는 내가 우물 밖으로 태어나지 않을 때

꽃을 던지며 긴 머리칼 날리는 엄마가 있죠

천막을 치고 앉아 젖어가며 나를 기다려요

낮잠을 주무시는 엄마는 이제 이끼가 가득한데요

나는 엄마 모르게 어른이 되지요

 

 

* 가작

망종(芒種) / 이승욱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비가 그치고 마당에 나가 젖은 자전거를 닦는다

근 석 달 만에 비다운 비가 내렸다 걸레로

안장을 닦고 내친김에 살대도 군데군데 닦는다

걸레를 접는데 엷은 녹이 묻어나온다 페달도

거꾸로 돌려서 소리를 들어본다 생각보다

잘 돌아간다 그늘진 마당가엔

흙지렁이 몇 마리 기어나와 꾸불텅거린다

힘을 구부린 곳마다 빛이 반사한다

가뭄이 생길 때부터 오랜 시간을 저렇게

더딘 몸으로 기어왔을 것이다

주름을 잡고 펼치며 온 몸을 밀었을 것이다

제대를 하고 한 여자를 만났다 헤어지고

잘 배우던 간판일을 그만둔 지도 반 년이 지났다

광대뼈처럼 메말라가던 그 반 년이

너무 쉽게

마당을 따라 뒤로 밀려간다 그늘처럼

어찌할 도리 없이 밀려간다

 

 

 

* 가작

초록의 여린 눈이 되어 / 이현정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오랜 시절엔 우리도 아주 조금은

여린 식물의 눈을 하고 허공을 더듬었을지도 모를 일,

우리가 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는 동안

눈은 저절로 감겨 팔 다리는 나른해지고

온 몸 가득 초록이 번져

열에 들뜬 날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모든 그리운 이름을 흙에 부쳐

물길을 더듬으며 꽃대를 키웠던 것 같다

땅이 긴 울음을 울며 밤의 수레바퀴를 굴릴 때에도

결코 잠듦 없이 허공과 공허의 사잇길을 달음질쳐

머나먼 동으로 귀를 열었을 것이다

가끔 내 몸 속이 간질거리고

목이 마르고 볕이 그리워지면은

아주 오래 전 내가 초록이었을 적

이름들이 깨어나는 것 같아

펌프질한 물들이 눈물샘에 말갛게 고여

온 몸의 감각을 흔들 때에도

나는 슬프지 않았나 보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오후,

그 졸음 겨운 시간에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초록의 여린 잎새들이 많아

간질거리는 봄볕을

삭정이 마디마다 있는대로 구겨넣고

맨땅에 등을 대고 가만히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초록이 벙글어지는 온 몸에

봄물이 수포처럼 잡히고

하늘 향해 펼친 열 손가락에

명주바람 앉았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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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이 필 때 / 김윤희(서울예술대 문예창작 2학년)

 

목욕탕 안 노파 둘이

서로의 머리에 염색을 해준다

솔이 닳은 칫솔로 약을 묻힐 때

백발이 윤기로 물들어간다

모락모락 머릿속에서 훈김 오르고

굽은 등허리가 뽀얀 유리알처럼

맺힌 물방울 툭툭 떨군다

허옇게 세어가는 등꽃의

성긴 줄기 끝,

지상의 모든 꽃잎

귀밑머리처럼 붉어진다

염색을 끝내고 졸음에 겨운 노파는

환한 등꽃 내걸고 어디까지 갔을까

헤싱헤싱한 꽃잎 머리올처럼 넘실대면

새물내가 몸에 배어 코끝 아릿한 곳,

어느새 자욱한 생을 건넜던가

아랫도리까지

겯고 내려가는 등걸 밑

등꽃이 후두둑 핀다

 

 

 

* 가작

밤길 / 강미라(명지대 문예창작 4학년)

 

네가 내 젖꼭지를 꾹꾹 눌러주던 밤이 있었다

사과처럼 환해진 수치심이 몸과 몸을 부풀어 오르게 하던

낮에는 가까운 것들도 밤에는 애매해져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 가로등 긋는 빗소리마저 적막하고

이 모든 밤을 견디는 것은 단단한 나무뿐

몇 개 불면을 간격으로 꾹꾹 눌러 걸어야 한다, 나는

이제는 묘연해진 우리 성감대의 행방이여 맘껏 부풀던 우리 언어들이여

널 처음 본 술집 앞에 무릎 세우고 앉아 있기 위해,

사랑이라고 속단하기 위해,

열렬히 구애하지 않기 위해,

찬 술에 머리를 담그고 발을 담가도

매정한 것들은 이래 미련 같은 길을 이루고

 

 

 

* 가작

곰스크로 가는 길을 묻다 / 이주영(중앙대 국어국문 3학년)

 

당신과 나 사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가기 위해

툭! 하고 꽃잎이 지고

헛구역질 같은 나비 떼가 날아오르다

햇빛과 비 쏟아져 내리고

나도 쏟아져 내려

깊숙하게 스며들고 싶어

빛이 번진 나무의 젖꼭지들 부풀어 오르고

나무 곁에서

나도 몇 번이나 다시 피고 지는 동안

열매 안으로 고이는 빛들,

빛의 무게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잔가지마다 번진 빛들을 놓지 않고 움켜지고 있다

 

빛들이 흔들려 물결을 이루고,

당신도 세상에 나와 이 빛들을 좀 봐요

그리고 어서 날 데려가 달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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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꽃 / 이병일(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꽃물에 젖지 않는 바람의 입김 타고

꽃대 올라온 그 자리에

총총하게 화해지는 진분홍 담배꽃이 눈뜨고 있다

꽃받침이 푸른 그림자를 벗어내기 전에

푸근한 잠에서 하늘 한 폭을 스르르 열어!

찰박거리는 연한 향기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꽃을 피우면

잎에 숨은 초여름이 자라지 않는 것일까

칼날 위를 걷는 햇살이 팽팽한 긴장 속에

툭! 베어지고

그 소리 너머로 남겨진 혼이

담뱃잎에 맑게 솟은 매운 향을 가두고 있다

나는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촉촉하게 휘늘어지는 잎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피워보지도 못한 숨결을 빼앗긴 시간

하얀 뜨물이 환한 상처를 감쌀 때

어둠을 털고 일어난 달빛처럼 굵은 새살이 돋는다

 

어느 틈엔가, 사람의 눈길을 피해

선연한 분홍빛소리가 수런수런 깨어나 공중으로 올라간다

눈부신 바람, 햇살, 곤충들이 그윽한 입맞춤을 할 때

초가을 밭가에 잠자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담배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 가작

반달곰 / 최우수(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반달아...반달아...

이별이 노란색이라면

사랑하지 않을래요.

 

구구...구구...

눈물이 하얀색이라면

노래하진 않을래요.

 

반달곰은 반달곰은...

알고 있어요.

이별도 눈물도 별들도

밤 하늘의 은빛이란걸,

반달고미 반달고미

느낄 수 있어요.

 

연어는 연어는 가도

향기로운 물결의 감촉을.

 

 

 

* 가작

오래된 저수지 / 송인덕(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늦봄이 은사시나무의 몸을 빌어

하얀 보풀들을 날려대면

나도 무언가 멀리 보내고 싶어

내 안의 바람을 앞세우고 방죽을 걷는다

사나운 바람, 뚝뚝 분질러지던 날

바람이 네 몸 깊은 웅덩이 새기기 전까진

먼지 폴폴 날리는 오솔길

어쩌면 무성한 잡풀들을 거느리고

마른 솔가지들 고요히 낮잠 드는 그늘 밑이었겠지

아버지를 태운 자전거가

비틀거리는 작은 점으로 되살아나면

어린 것은 이내 아른거리는 제 얼굴 버리고

웅웅 번져가는 파문에 가슴 뿌듯한 날

하얀또아리

어머니 멀리 물수제비 치고

내 이름 부르며 뛰어오시는데

늘 들어오던 그 목소리 아니고

듬성듬성 떠가던 구름

산 너머 어디론가 서럽게 무너지던 가락

누구도 오지 않을 긴 둑방을 두르고

나무들이 젖은 머리채 길게 휘날리던 저녁

붉어진 해를 너는 오래도록 우물거리다

후욱 어둠을 내 뱉는다

그 맑은 해, 다 삼키고도 끝내

밝아질 수 없는 너의 전언과 

내 오래된 저녁을 부리고 걷노라면

서녘 하늘이 고인 내 눈동자 속

잘자란 메기 몇 마리 무럭무럭 자라나고

또랑또랑 낮은 물소리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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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도서관에서 모래佛 만나다 / 윤수미(한국해양대 동아시아과 3년)

 

반쯤 열린 창으로 휙 부는 바람이

<서유기> 점자책 한권

사막처럼 펼쳐놓고 달아난다.

더듬더듬 눈을 감고 만져보는

책 속에 깊이 박힌 점자들

풀 한포기, 바람 한 조각, 새 소리

눈을 감으면서 더욱 느껴지는

까칠까칠하고 딱딱한 소리들이

지문으로 더듬을 때마다

끝없는 사막 같은 내 안에서

어찔어찔 모래 佛 하나 일어선다.

부끄러움으로 눈을 감은 모습이며 색깔이며

잔뜩 등 웅크린 낙타의 울음 들려온다

길고 긴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 발자국 따라서,

소나무 향기 가득한 숲길을 지나

외줄 타듯 막막한 점자책 속을 횡단하는

모래알갱이같은 점자들,

길을 만들고 길을 이끌고 가는

눈 먼 점자 하나

멀고 먼 사막 한권 다 넘긴

점자책 속에서 모래 佛 하나 우뚝 일어섰다

 

 

 

 

*가작

회전목마 / 홍지연(대전대 문예창작과 2년)

 

음악이 흐르고 있어요

음악이 멈추면 말들의 달림도 멈출까요

중심 바깥쪽으로 달리는 말을 타고 싶어요

혹시 멀리 튕겨지는 건 아니겠죠

고삐가 없어도 멈출 수 있나요

이 길은 언젠가 와 봤던 길 같아요

아무리 애써도 앞선 사람과의 간격을 좁힐 수 없네요

남들이 벌써 지난 길을 내가 달려가요

하지만 앞으로 달려도 결국 제자리네요

달린 만큼 뒷걸음질하는 배경들이 추억이 될까요

검은 태양은 소리 없이 지고 말았고요

하늘엔 각기 다른 색의 별이 낮은 촉광으로 떠 있네요

자꾸 흔들거려요

떨어지지 않으려면 꼭 붙들고 있어야 할까봐요

아무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바람은 왜 자꾸 뒷덜미를 낚아채는 거죠

음악 좀 제발 꺼 주세요

늘 같은 음악이라 조금 싫증이 나네요

새파랗게 질린 아이들 비명 지르며 튀어 올라요

한 바퀴 돌 때마다 조금씩 늙어 가는 것 같아요

 

참, 시간 빌릴 돈은 가지고 오셨나요

 

 

 

 

*가작

파리지옥풀 / 송섬별(부산대 불문과 1년)

 

8반 아이들이 사다 놓은 파리지옥풀은

파리만 잡아 잡숫는 것이 아녔다

줄 치고 저만한 파리 잡아먹던 풀색 거미가

천수관음처럼 많은 손발 꿇고 기어들었다

 

죄 많은 제 몸 스스로 공양하려는가

 

오래 잠잠한 그 지옥을 들여다보자니

연꽃처럼 잔뜩 부푼 파리지옥풀 앞에

똑같이 죄진 내 손, 그만 부끄러워

 

그냥 거두고 만다

빈 거미줄에 달라붙은 목숨들도

하나, 하나 방생하려다

거미가 돌아올 이승조차 찢어 없애고 만다

 

거민 극락왕생하려나

살아 남을 죄던 실 풀어

흰 가사 지어 입고 성불하려나

지나간 죄 모두 맑게 씻기어 사해지려나

 

그러다 여름을 보내도록

물 한 모금 보시 못 한 내 죄는 또 어떡하려나

 

잔뜩 말라 바스락 소리가 나는 파리지옥풀은

저 혼자만 지옥인 것이 아녔다

거미가 죽지 않고 살았는지

혹 씻어야 할 죄 아직 많아

이번 생에도 거미로 화했는지

 

저 지옥 문턱에 걸어둔 끈끈한 새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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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기념사업회는 윤동주 시인의 민족사랑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제정한 '제3회 윤동주 시문학상'의 당선자로 윤진우 군(철학 4년)을 선정했다. 당선작은 「없다가 있다 」이다. 윤동주 기념사업회는 공모를 통해 전국 대학 학부생 218명 1,985편의 작품을 받아, 예비심사와 본 심사를 거쳐 당선작과 가작을 선정했다. 가작으로는 최민영 양(원광대 국어교육학 3년)의 「나와 바위와 별 」과 남궁선 양(성신여대 국어국문학 3년)의 「家族史」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을 통해 윤진우 군의 작품을 '문체에 신선함이 있고 이미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내보이면서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며, '사유를 스스로 갈아엎기도 하는 사유, 그 역동적인 사유가 세계와 사물들과 삶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윤동주 기념사업회는 5월 7일 오후 4시 백주년기념관 시청각실에서 '윤동주 시문학상 시상식 및 기념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안우식 명예교수(일본 오비린대학)가 '나의 윤동주 이해 - 떨어진 벼이삭을 줍는다'를 주제로, 권철 교수(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연구소)가 '중국의 조선민족과 시인 윤동주'를 제목으로 강연했다.

 

 

 

없다가 있다 / 윤진우(연세대 철학 4년)

 

먼지가 묻은 거라.

그동안은 있는데 없다고 친거라.

 

결국엔 없다고 하는 거라.

있으니까 그냥 털어 버리려고 한다면

끝내 아쉬움의 여지가 남는 거라.

똥누고 뒤 안딱은 것처럼.

결국엔 허락해야 하는 거라.

저런 식으로밖에 버릴 수 없는 거라.

무식(無識)하게 무모할 정도로.

 

없다는 거는 사실 그런 거라.

버리는 나와 버려진 내가

절묘하게 익숙해지는 거라.

그렇게 착각을 훔치는 거라.

 

실제로는 있었던 거라

먼지는 없다가 있는 거라.

다만 가지만 쳤을 뿐,

더 많은 가지를 깨운 거라.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그냥 자른는 거라.

결국엔 아무것도 없다 하는 거라.

 

근데 없는 것은

없다는 식으로 있는거라.

아까 그런 건 없다는 식으로 있는 거라.

이 땅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것은

이미 이 땅에 없는 거나 마찬가진 거라.

그래서 없다는 것도 있어야 하는 거라.

그렇게 익숙해지자는 거라.

난 있고 넌 없다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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