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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이 필 때 / 김윤희(서울예술대 문예창작 2학년)

 

목욕탕 안 노파 둘이

서로의 머리에 염색을 해준다

솔이 닳은 칫솔로 약을 묻힐 때

백발이 윤기로 물들어간다

모락모락 머릿속에서 훈김 오르고

굽은 등허리가 뽀얀 유리알처럼

맺힌 물방울 툭툭 떨군다

허옇게 세어가는 등꽃의

성긴 줄기 끝,

지상의 모든 꽃잎

귀밑머리처럼 붉어진다

염색을 끝내고 졸음에 겨운 노파는

환한 등꽃 내걸고 어디까지 갔을까

헤싱헤싱한 꽃잎 머리올처럼 넘실대면

새물내가 몸에 배어 코끝 아릿한 곳,

어느새 자욱한 생을 건넜던가

아랫도리까지

겯고 내려가는 등걸 밑

등꽃이 후두둑 핀다

 

 

 

* 가작

밤길 / 강미라(명지대 문예창작 4학년)

 

네가 내 젖꼭지를 꾹꾹 눌러주던 밤이 있었다

사과처럼 환해진 수치심이 몸과 몸을 부풀어 오르게 하던

낮에는 가까운 것들도 밤에는 애매해져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 가로등 긋는 빗소리마저 적막하고

이 모든 밤을 견디는 것은 단단한 나무뿐

몇 개 불면을 간격으로 꾹꾹 눌러 걸어야 한다, 나는

이제는 묘연해진 우리 성감대의 행방이여 맘껏 부풀던 우리 언어들이여

널 처음 본 술집 앞에 무릎 세우고 앉아 있기 위해,

사랑이라고 속단하기 위해,

열렬히 구애하지 않기 위해,

찬 술에 머리를 담그고 발을 담가도

매정한 것들은 이래 미련 같은 길을 이루고

 

 

 

* 가작

곰스크로 가는 길을 묻다 / 이주영(중앙대 국어국문 3학년)

 

당신과 나 사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가기 위해

툭! 하고 꽃잎이 지고

헛구역질 같은 나비 떼가 날아오르다

햇빛과 비 쏟아져 내리고

나도 쏟아져 내려

깊숙하게 스며들고 싶어

빛이 번진 나무의 젖꼭지들 부풀어 오르고

나무 곁에서

나도 몇 번이나 다시 피고 지는 동안

열매 안으로 고이는 빛들,

빛의 무게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잔가지마다 번진 빛들을 놓지 않고 움켜지고 있다

 

빛들이 흔들려 물결을 이루고,

당신도 세상에 나와 이 빛들을 좀 봐요

그리고 어서 날 데려가 달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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