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꽃 / 이병일(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꽃물에 젖지 않는 바람의 입김 타고
꽃대 올라온 그 자리에
총총하게 화해지는 진분홍 담배꽃이 눈뜨고 있다
꽃받침이 푸른 그림자를 벗어내기 전에
푸근한 잠에서 하늘 한 폭을 스르르 열어!
찰박거리는 연한 향기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꽃을 피우면
잎에 숨은 초여름이 자라지 않는 것일까
칼날 위를 걷는 햇살이 팽팽한 긴장 속에
툭! 베어지고
그 소리 너머로 남겨진 혼이
담뱃잎에 맑게 솟은 매운 향을 가두고 있다
나는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촉촉하게 휘늘어지는 잎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피워보지도 못한 숨결을 빼앗긴 시간
하얀 뜨물이 환한 상처를 감쌀 때
어둠을 털고 일어난 달빛처럼 굵은 새살이 돋는다
어느 틈엔가, 사람의 눈길을 피해
선연한 분홍빛소리가 수런수런 깨어나 공중으로 올라간다
눈부신 바람, 햇살, 곤충들이 그윽한 입맞춤을 할 때
초가을 밭가에 잠자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담배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 가작
반달곰 / 최우수(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반달아...반달아...
이별이 노란색이라면
사랑하지 않을래요.
구구...구구...
눈물이 하얀색이라면
노래하진 않을래요.
반달곰은 반달곰은...
알고 있어요.
이별도 눈물도 별들도
밤 하늘의 은빛이란걸,
반달고미 반달고미
느낄 수 있어요.
연어는 연어는 가도
향기로운 물결의 감촉을.
* 가작
오래된 저수지 / 송인덕(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늦봄이 은사시나무의 몸을 빌어
하얀 보풀들을 날려대면
나도 무언가 멀리 보내고 싶어
내 안의 바람을 앞세우고 방죽을 걷는다
사나운 바람, 뚝뚝 분질러지던 날
바람이 네 몸 깊은 웅덩이 새기기 전까진
먼지 폴폴 날리는 오솔길
어쩌면 무성한 잡풀들을 거느리고
마른 솔가지들 고요히 낮잠 드는 그늘 밑이었겠지
아버지를 태운 자전거가
비틀거리는 작은 점으로 되살아나면
어린 것은 이내 아른거리는 제 얼굴 버리고
웅웅 번져가는 파문에 가슴 뿌듯한 날
하얀또아리
어머니 멀리 물수제비 치고
내 이름 부르며 뛰어오시는데
늘 들어오던 그 목소리 아니고
듬성듬성 떠가던 구름
산 너머 어디론가 서럽게 무너지던 가락
누구도 오지 않을 긴 둑방을 두르고
나무들이 젖은 머리채 길게 휘날리던 저녁
붉어진 해를 너는 오래도록 우물거리다
후욱 어둠을 내 뱉는다
그 맑은 해, 다 삼키고도 끝내
밝아질 수 없는 너의 전언과
내 오래된 저녁을 부리고 걷노라면
서녘 하늘이 고인 내 눈동자 속
잘자란 메기 몇 마리 무럭무럭 자라나고
또랑또랑 낮은 물소리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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