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수상자 명단

 

[대상] 엄정현

 

[최우수상] 손명권

 

[우수상] 윤지원

 

 

창간 76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와 ()김유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28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에서 엄정현(춘천·운문), 김미정(경남 김해·산문)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공모 심사위원회는 최근 춘천문인협회 사무실에서 부문별 심사위원회를 열고 문치우(오천고 3), 이현재(용정중 3), 홍석현(남춘천중 2·이상 운문), 정지유(경희고 3·산문) 학생의 작품을 중·고등부 부문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모두 18명의 입상작을 최종 결정했다.

운문 심사위원회는 김유정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연결해 시로 풀어내는 작업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입상작들은 통제된 형식 속에서 시어(詩語)를 풀어내는 실험정신이 눈에 띄었고 간결하게 시상을 풀어내는 잠재력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산문 심사위원회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전개해 가는 필력에 있어 좀 더 정진하면 차세대 작가로서 성장할 것이 기대되고(고등), 반전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상작은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과 전개가 좋았다(대학·일반)”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따로 개최하지 않고 상금과 상장은 입상자에게 개별 전달된다.

 
 
728x90

 

[대상] 생의 반려 / 김명래

 

[최우수상] 동백꽃 / 김효은

 

[우수상] 슬픈 이야기 / 박하성

[우수상] 이런 음악회 / 임아영

 

[우수상] 산골나그네 / 서희정

 

칼날의 등선 타고 올랐던 산골마을

희멀건 여린 숨결 객으로 숨어들어

나날이 설레임 안고 부풀었던 마음결

 

조각난 잿빛 안개 어느 결 돋아나서

허물만 벗어놓고 그리 급히 떠난 걸까

그날밤 따스한 온기 아직 여기 있는데

 

허망함 부여잡고 내달린 산모롱이

정답던 그 목소리 아스라이 멀어지고

뻐꾹새 울음소리만 흥건하게 젖는다.

 

 

심사평

202027회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공모전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한국문단의 큰 희망인 소설가 김유정은 한국문학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김유정을 기리기 위한 이번 문예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은 대부분 다 높은 지식과 문장 표현력에 의해 상당히 냉철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작품으로서의 완성은 오랜 문장 작성상의 수련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많은 작품들은 이 결핍을 보완하는 노력의 뒷받침이 좀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선정된 김명래의 김유정기억하기 작품 생의 반려는 문장면에서의 기본적 완성도와 김유정이 가진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작품의 완성도 양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 차별성에 의해 평가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좋은 글쓰기로 계속 정진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심사위원/ 박민수 · 최계선

 
 
728x90

 

네가 봄이런가 / 이찬영

 

안, 우리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지구에서 제일 따듯한 곳으로 떠나고 싶었어

 

세계지도를 장만했지

지도의 생김새는 각국마다 다르다는 걸 알았다

서로가 가운데 있었으니까

 

우리는 도시 외곽의 허름한 모텔에서 하루를 보낸 적 있다

그날이 이별여행이 될 줄도 모르고

 

안녕

안녕

 

*

 

아침부터 고속버스에 올랐지 각자 예매한 자리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었는데, 바라보면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에는 누가 묻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덤 위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잡초를 핥고 있는 뜨거운 햇살

우리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선 이내 잠에 들었다

 

어떤 꿈을 꿨던 것 같은데

 

*

 

우치동물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펠리컨 앞에 서 있었어 한과 연이는 내 뒤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 너와 펠리컨이 닮았어 누가 우리에 갇혀 있는지 모를 정도야 우리는 한참 웃었다 웃다 보면 노을이 가라앉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울려 퍼지는 새 울음소리

 

펠리컨을 곧잘 따라했지 날개를 일제히 펼치는 자세를 펠리컨의 울음소리를 우리에 갇혀 있는 펠리컨의 모습을

 

폐장할 때까지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

 

그날 밤, 허름한 모텔 방을 잡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부해서 할 말이 없었는데, 창밖으로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 멀찍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우리 유년시절을 이야기하자. 각자 학대를 당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고백했다. 모두 자기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내 아빠는 죽었어. 우리 엄마는 집에서 도망갔어. 정말? 정말 바람피우는 걸 직접 보기도 했어

 

벽지를 뜯었지

뜯을수록 벗겨지는 속마음이 있으니깐

 

우리는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걸까

가정의 가운데에서 멀어져

본 것들은

무덤, 우리에 갇힌 펠리컨, 서로의 얼굴들

 

유년시절을 무슨 자랑처럼 말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서 너는 유년시절을 봄으로 정의하자고 했잖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으면 따듯한 거라고

우리의 유년시절은 너무나 비슷해서 서로가 될 수도 있는데

 

박수쳤어 울고 싶지 않아서 박수만 쳤어

 

내 유년시절을 따듯하다고

말할 수 있구나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안녕

안녕

 

먼지 낀 창가 위로 그믐이 가라앉고 있었다

따듯하게 살자는 말만 하염없이 하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각자의 가정으로 흩어져

다시는 서로를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무덤이 연속적으로 보인다

 

눈 감으면

그날 꿨던 꿈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

 

페인트 통을 엎지르고 부르는 모순적인 봄

 

*

 

갈기갈기 찢은 세계지도가 흩어져 있다

 

방 안으로 반쪽짜리 햇빛이 든다

서늘하게

지구 가운데에 있는 그 5평짜리 허름한 모텔1)

 

우리가 함께 있던 그곳이 봄이런가,

 

 

 

728x90

 

 

봄밤 외 2/ 고순용

 

마당 한가운데 떡시루처럼 앉아 있는 연못

연못은 세상을 읽어내는 거울이다

 

바닥에 쌓인 세월을 딛고 선 무량수 한 그루

봄밤 같은 수면에 생가 지붕이 내려와 기지개를 켜고

처마끝 바람소리 하늘을 날아 오른다

 

마당 뒤편 생강나무가

연못으로 풍덩 - 뛰어 들면

바람이 수면 속 풍경화를 흔들어

별이 빛나는 밤*처럼 추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천년 세월 삼라만상을 해학으로 담아내는 그 익살, 그 천진

 

천심이 피워내는 실레마을 이야기꽃

반야바라밀을 간직한 연못처럼

소리 없이 번지는 바람이 적막을 조율하듯

연못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없는 종소리에

봄밤이 큰 산을 흔들고 있다

 

* 晩年의 고흐가 요양원에서 그린 추상화 대표작

 

 

 

연기에 그을린 얼굴 하나

아궁이 앞에 앉아 거친 숨 몰아 쉰다

 

아궁이 위에서 제 몸 벌겋게 달아오를 때

아버지의 땀방울과 함께 알곡이 익어간다

 

숱한 낮과 밤

들판을 뜨겁게 달구던 햇볕과 비바람,

땅속에서 길어 올린 흙의 기억들,

아버지의 땀과 눈물이

쇠죽 끓이는 솥에서 한데 끓었다

 

솥단지 켜켜이 삭아 내리듯 깊게 패인 아버지의 주름살

골짜기 같은 주름이 지도록 아버지 땀방울 먹고 자란 나는

아직 생각이 어리다

 

지게의 세월에 어깨가 무너져 내리고

새우등으로 굽은 아버지의 등허리

천근 돌덩이가 되어 내 가슴에 박힌다

 

아버지 떠나신 빈 들판

가마솥 같은 얼굴 하나 붉은 노을로 타 오른다

 

 

 

5월의 산골작이

 

금병산 동백꽃잎 울컥 지던 날

뿔 잘린 사슴이 된 나는 긴 목울음 삼킨다

죽어서도 다시 만나는 전생의 그 얼굴

산 그림자로 길게 내려와 나를 반긴다

당신은 어둠의 골짜기마다 큰 별로 떠서

열 길 스무 길 산길은 아득한데

골 깊던 실레마을은 당신 이름으로 환하다

꿈결에서 산길에서 당신 얼굴 만나고 온 날

안개 같은 전설이 생강나무 꽃가지 사이로

내 가슴 알싸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야기마을 실레마을이 당신 이름으로 출렁거리는 5월이면

나는 알싸하게 내가 아프다

 

 

 

[수상소감]

연일 찌는 듯한 폭염과 열대야로 가마솥 같은 여름이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더위였지만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셨던 김유정 소설가의 시련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요. 작품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우리말의 아름다운 표현들은 시작(詩作)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늦게 시작한 시 공부, 금병산 자락에 활짝 핀 동백꽃을 등대 삼아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힘찬 항해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졸시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라는 가르침으로 새기겠습니다. 이영춘 선생님과 한림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심사평]

중등부=전래적인 이미지의 시제(詩題)가 적지 않음에도 그에 맞는 시상을 무리 없게 전개하고 가다듬는 노력들이 엿보인다. 시적 구성의 통일성,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좀 더 세심하게 기울이기 바란다.

고등부=시를 쓰면서 스스로 되돌아볼 점은 지나친 형상화나 상상의 비약을 조심해야 한다. 대상이 갖고 있는 그림자는 시를 쓰는 사람이 빛을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느냐에 달렸다.

대학·일반부=이번에 응모한 시의 대부분은 시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시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근본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들은 시로서의 기본적 요건을 갖추는 데 상당히 접근해 있다는 평을 전할 수 있다.

- 심사위원 최현순(중등부), 최계선(고등부), 박민수(대학·일반부)

 

 

창간 73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와 ()김유정기념사업회(이사장:김금분)가 공동으로 주최한 `25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 공모'에서 고순용(춘천·운문), 김지수(서강대 산문)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공모전 심사위원회는 지난 25일 김유정문학촌 낭만누리에서 열린 부문별 심사위원회를 통해 운문 중·고등부 대상에 권은하(안산 고잔고 3), 임동현(서울 개운중 이상 운문) 학생, 산문 중·고등부 대상에 최진아(유봉여고 3), 방성은(문산중 이상 산문) 학생을 선정하는 등 모두 30명의 입상자를 최종 결정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596명이 996(운문 684·산문 312)의 작품을 응모했다. 한편 시상식은 `2018 김유정문학제' 기간인 1014일 김유정문학촌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728x90

 

오월의 산골짜기 / 이선행


흐르는 계곡물소리에 뒤꿈치가 젖는다

손을 담글까
발을 담글까
물보라가 가슴에 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물에도 손이 있다
돌을 만지는 손, 송사리를 만지는 손
물의 손이 내 손을 잡아준다


청어 가시 같은 물무늬도 한없이 부드럽다
가파른 물살에
모래알의 목소리는 가늘어지고
물살을 떠받치는 돌멩이는 둥글어진다.

저 손이
산골짜기 풀꽃의 맨발을 씻기고
허둥대는 바람의 손목을 잡아준다는 걸
송사리 떼 졸린 눈을 뜨게 하리란 걸

숲은 그늘을 이어 붙이고
물살의 맥박이 빨라진다
계곡물의 속도에
산 그림자도 게으른 몸을 일으킨다

 

 

(사)김유정기념사업회(이사장:전상국)와 강원일보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4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 공모(이하 전국문예작품 공모)'에서 최성진(서울 용산구·산문)씨와 이선행(서울 동작구·운문)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지난 21일 춘천 김유정문학촌 낭만누리에서 부문별 심사회의를 열고 접수된 1,682편(989명 응모)의 작품 중 김서영(서울여중 3·산문), 김태연(경남여고 3·〃), 안준서(향남고 3·운문), 서유진(병점중 2·〃)의 응모작을 중·고등부 부문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모두 30명의 입상자를 최종 결정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19일 `2017 김유정문학제 봄·봄'이 열리는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문학촌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728x90

 

동백꽃 / 이현숙

 

저 꽁꽁 얼은 구들장을 누가 녹일 수 있을까요

 

동백나무엔 성냥들이 봄볕에 달궈지고 있나봐요

 

달의 귀퉁이가 개구리 울음에 깎이는 저녁

북풍을 입에 문 것들은

물이 새는 너와집에서 살 수 없다고 해요

 

까마득한 절벽 밑에서 동박새가 날고 있어요

연신 풀무를 돌리는 건,

동백꽃 피는 소리가 아닌 저 개구리울음이니까요

땅 속에서 봄볕이 훨훨 타 올랐지요

 

발광하는 건 아지랑이예요

그 아지랑이를 좇아 눈을 뜨는 물고기도 있어요

동백꽃 밑의 새벽을 딛고 오는 돌문어도 있어요

 

봄볕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때 붉다 못해 까맣게 타서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낙조도 있어요

 

봄눈 잠깐씩 몰아쳤지만요

챙챙 성냥불 켜는 소리가 동백꽃 속에서 새어나왔어요

목숨 가진 것들 한 무더기가 쏟아지는 저녁이네요

 

 

[심사평] “진솔하게 시를 끌고 가는 솜씨 돋보여

중등부 대상(·) 작품은 할머니의 열 손가락 위에 피는 자식, 손주의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얹혀진 자식이라는 짐을 결코 무겁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승화시킨 손녀딸의 마음씨가 그대로 또 봄이다. 고등부는 김태의의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다. 시를 끌고 가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잔잔하고 진솔된 문체들이 그가 그동안 점해온 습작시간들을 느끼게 해준다.

대학·일반부 대상작 이현숙의 `동백꽃'은 언어의 참신함을 넘어서는 수작이다. “달의 귀퉁이가 개구리 울음에 깍이는 저녁이라거나 그 아지랑이를 좇아 눈을 뜨는 물고기도 있어요라는 표현을 보라. 수일(秀逸·빼어나게 우수하다)하다.

- 심사위원 김금분(중등부) 최계선(고등부) 박용하(대학·일반부)

 

 

728x90

 

야앵(夜櫻) / 조정완

 

어린 안구에만 상이 맺히는 벌레를 안다

나는 매일 밤마다 벌레를 잡으러 뛰어다녔고

엄마가 알지 못하는 건 모두 병이었다

매일 밤이 눈부시다는 걸 비밀로 했고

점점 방문을 닫아두기 시작했다

틈, 이 싹을 틔웠다

 

초콜릿 통에 넣어둔 알약

밤이면,

오래도록 녹여 먹었다

내 책상은 언제나 빛났고

사방에서 손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

아픈 사람은 쉽게 죽는 거죠,

 

옥상 난간에 내 머리를 올려두고 혼자 제사를 지냈다

발끝을 세우고 팔을 휘저으면

가벼워진다

떨어져 나간 나는 자라고 자라

벌써 나무가 되어버렸다

나를 가둔 단단한 껍질은 누구인가

 

떨어지는 것은 모두 봄

또,

밤이다

 

 

 

728x90

 

슬픈 이야기 / 이승혜



우리는 늘 아득한 행성과 행성으로 만난다
접점 없는 궤도를 따라 어둠을 밟는다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숨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잠갔고
어머니는 내 옷의 단추를 모두 잠가주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아버지들이 고요한 와지를 찾아 헤맬 때에도
어머니들은 밀어가 빼곡한 벽들을 달마다 허물어 내렸다
비밀에 대한 두려움이 비밀을 감춘다
허물지 못한 담장 아래서 왜 우리는 하나같이 악을 쓰며 울었을까

그래서 하루는 잠금쇠와 단추에 대해 물었다
너는 대답을 위해 입술을 누르는 인중을 견뎠다
침묵 사이로 아뜩하게 멀어질 때에야 말없는 속삭임을 들었다

 

우리는 행성과 행성이 만나는 순간을 충돌이라 부른다

728x90

 

솥 / 유영찬

 

어머니가 도토리묵을 쑤고 있다
시뻘건 불씨가 일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탁, 탁, 타다닥
시퍼런 멍이 들도록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제 몸에 맞는 색깔의
열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휘몰이 장단의 가락이 지나는 자리마다
한 웅큼의 소금이 채워졌다
어머니의 불거진 힘줄이
쉼 없이 물레를 돌려
들끓는 울음을 잠재우면
도토리묵이 탱탱하게 익어갔다
간혹 응어리진 불씨로 이마를 짚으며
지난날을 되새김질하고
씹고 또 씹은 것을 입 안 가득 넣어준다
그럴 때마다 기울어진 주춧돌이 제 몸을 세우고
달빛 숨결이 수북하게 집 안으로 내려앉았다
담금질한 몸으로 배어든 곧은 천성이
대청마루에 스며들고
가족의 얼굴에서는 윤이 났다
그 뒤를 따라서 길이 조금씩 트이고 있다
아궁이에는 바람 한 점 없고
솥단지의 붉은 심장이 남아
찰져가는 제 새끼들을 보듬으며
연신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728x90

 

봄밤 / 유은주

벚꽃 흐드러진 자리가 난무한 밥알 같다
잘 차려진 밥상을 뒤엎던
어떤 사내의 패기처럼
바람이 주섬주섬 어질러진 찬들을
갈무리하던 아낙같이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봄은 무엇에 성이 났던 것일까
한껏 잘 차려 향기롭게 뽑아 올리더니
와라락
한 달음에 쓸어 버린다
꽃잎은 대지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계절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그 아낙도 그랬을 것이다
깨진 사기 그릇에 베어나온 꽃잎같은 피가
제 아픔을 다 가져갈 것이라고
눈물을 훔쳐 세월 속에 묻어 두면서
아낙은 또 밥을 지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게로 오려니…
기다림의 밥이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밤을 지새듯
봄밤은 깊어 떨어진 꽃잎자리 내내 뜨겁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