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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 이현숙

 

저 꽁꽁 얼은 구들장을 누가 녹일 수 있을까요

 

동백나무엔 성냥들이 봄볕에 달궈지고 있나봐요

 

달의 귀퉁이가 개구리 울음에 깎이는 저녁

북풍을 입에 문 것들은

물이 새는 너와집에서 살 수 없다고 해요

 

까마득한 절벽 밑에서 동박새가 날고 있어요

연신 풀무를 돌리는 건,

동백꽃 피는 소리가 아닌 저 개구리울음이니까요

땅 속에서 봄볕이 훨훨 타 올랐지요

 

발광하는 건 아지랑이예요

그 아지랑이를 좇아 눈을 뜨는 물고기도 있어요

동백꽃 밑의 새벽을 딛고 오는 돌문어도 있어요

 

봄볕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때 붉다 못해 까맣게 타서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낙조도 있어요

 

봄눈 잠깐씩 몰아쳤지만요

챙챙 성냥불 켜는 소리가 동백꽃 속에서 새어나왔어요

목숨 가진 것들 한 무더기가 쏟아지는 저녁이네요

 

 

[심사평] “진솔하게 시를 끌고 가는 솜씨 돋보여

중등부 대상(·) 작품은 할머니의 열 손가락 위에 피는 자식, 손주의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얹혀진 자식이라는 짐을 결코 무겁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승화시킨 손녀딸의 마음씨가 그대로 또 봄이다. 고등부는 김태의의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다. 시를 끌고 가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잔잔하고 진솔된 문체들이 그가 그동안 점해온 습작시간들을 느끼게 해준다.

대학·일반부 대상작 이현숙의 `동백꽃'은 언어의 참신함을 넘어서는 수작이다. “달의 귀퉁이가 개구리 울음에 깍이는 저녁이라거나 그 아지랑이를 좇아 눈을 뜨는 물고기도 있어요라는 표현을 보라. 수일(秀逸·빼어나게 우수하다)하다.

- 심사위원 김금분(중등부) 최계선(고등부) 박용하(대학·일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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