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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 / 유영찬
어머니가 도토리묵을 쑤고 있다
시뻘건 불씨가 일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탁, 탁, 타다닥
시퍼런 멍이 들도록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제 몸에 맞는 색깔의
열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휘몰이 장단의 가락이 지나는 자리마다
한 웅큼의 소금이 채워졌다
어머니의 불거진 힘줄이
쉼 없이 물레를 돌려
들끓는 울음을 잠재우면
도토리묵이 탱탱하게 익어갔다
간혹 응어리진 불씨로 이마를 짚으며
지난날을 되새김질하고
씹고 또 씹은 것을 입 안 가득 넣어준다
그럴 때마다 기울어진 주춧돌이 제 몸을 세우고
달빛 숨결이 수북하게 집 안으로 내려앉았다
담금질한 몸으로 배어든 곧은 천성이
대청마루에 스며들고
가족의 얼굴에서는 윤이 났다
그 뒤를 따라서 길이 조금씩 트이고 있다
아궁이에는 바람 한 점 없고
솥단지의 붉은 심장이 남아
찰져가는 제 새끼들을 보듬으며
연신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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