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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차수현

 

환상적인 날씨입니다 혀 내밀고 내달리기에

나는 줄을 당겨 바람을 가릅니다 간신히 기어 나오는 웃음

 

좋은 날입니다

죽어가는 사람 목줄 채우기에

 

느껴봐 온통 살아 있는 것 투성이야

냄새만 맡아도 꿈틀대는 흙, 돌, 풀, 눈 뜬 벌레, 죽은 자의 혀가 잘린 그림자, 산 사람의 입을 뗀 발자국 그곳에서 영靈을 찾는 발자국 발자국들

 

천사 같은 아이들이 하나둘 따라붙어 나팔을 붑니다

터져버릴 풍선 같은 주인 여잘 놓칠세라 나는 줄을 힘껏 당깁니다

 

봄눈의 생사가 움찔대는 건 입춘이 지나서라지

 

마지막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노파가 말합니다

 

검은 새들이 나란히 나란히 그 중, 유일한 흰 새 한 마리 보입니다

검은 눈들이 나란히 나란히 그 중, 유일한 흰 눈 한 알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한 ㅁ ㅗ ㄱ을 그었거든요

 

달리는 남자 위로, 만보 걷는 여자 위로, 쌩 지나가는 자전거 위로, 갑자기 우산을 펴는 여학생 위로 뚝 뚝

 

서둘러 서둘러야 했어

 

나는 더 이상 당겨지지 않는 바람을 가릅니다

 

그처럼 깨끗하게 죽은 사람 처음 봤다지 어찌나 핥아줬는지 얼굴이 말갛더래 봄꽃 마냥

 

주인 여자와 어깨를 부딪친 노파가 입을 뗍니다

 

자,

당신의 앞발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서둘러 두드리세요 그녀가 사는 옆집 대문을

 

똑 똑 똑 산책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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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를 경쾌하게 표현

 

경제난과 아직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등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비 시인이 창작의 열정을 멈추지 않고 신춘문예에 응모해 왔다. 시를 쓰겠다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의 문화 역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러 시인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시인이 많은 사회는 정치인이나 투기꾼이 많은 사회보다 훨씬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214명의 시인 지망생이 총 1589편의 시를 응모해 왔다. 그중 23명의 시 134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두 명의 심사위원이 오랜 시간 검토하여 이영숙의 ‘태풍주의보’, 서승환의 ‘3D 큐브 레이아웃’, 차수현의 ‘산책’, 홍여니의 ‘그림자 구조대’ 이 4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이영숙의 ‘태풍주의보’는 이미지는 선명하고 표현이 매끄러우나 시적인 시상의 새로움과 시적 표현의 참신성이 부족해서 제외되었다. 홍여니의 ‘그림자 구조대’는 주제 선정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사유의 깊이를 전개해 내지 못해 최종심에 오르지 못했다.

 

서승환의 작품과 차수현의 작품 두 편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오래 고심했다. 두 편 모두 표현의 참신성과 주제의 밀도가 장점이어서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서승환의 ‘3D 큐브 레이아웃’은 어항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의 한 측면을 형상화해내고 있다. 특히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우리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시적 기교를 보여주는 등 오랜 창작의 숙련 기간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진 문장들이 흠이었다.

 

결국,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차수현의 ‘산책’을 선택하는 데 합의했다. 차수현의 작품에서는 뛰어난 언어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산책하는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경쾌한 언어가 반대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말해주고 있는 시적 아이러니가 잘 살아 있어 시의 주제 의식을 강화해 주고 있는 점이 큰 장점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속도감 있는 이미지의 전환이 작품 전체에 리듬감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 운문의 효과를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오랜 수련 과정을 거친 듯한 작품의 완성도와 신인으로서 보여주는 참신한 패기가 모두 함께 느껴지는 작품이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밀도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런 좋은 작품을 이번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어 기쁘고 뿌듯하다. 앞으로의 활동이 크게 기대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한다.

 

- 심사위원 : 황정산 평론가, 신미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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