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고산문학대상에 현대시 부문 김명기 시인, 시조 부문에서 선안영 시인이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품집은 각각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와 ‘저리 어여쁜 아홉 꼬리나 주시지’이며 상금은 각 2000만원.
고산문학대상 운영위는 지난 1년 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현대시와 시조 부문에서 각 100여 명의 시인, 평론가들의 추천을 받아 심사에 들어갔다.
현대시 심사를 맡은 김명인·이문재 시인, 문혜원 평론가는 “거듭 읽어낼수록 삶의 파장들이 깊은 감동까지 거느리며 가슴속으로 번져나가 그 파문에 흠뻑 젖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으며 “삶의 우여곡절과 신산고초를 통과해온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정성의 언어’로 절묘한 표현이나 세련된 구성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김명기 시인은 경북 울진 출신으로 2005년 시 전문지 ‘시평’ 겨울호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 ‘종점식당’을 펴냈으며 2017년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제2회 작가정신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조 심사는 박기섭·박현덕 시인·황치복 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현실언어를 끊임없이 초월언어로 바꾸어놓고, 적확한 표현으로 말미암은 수사의 적중률이 높은 데다, 그 형식의 운용은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닿아 있다”고 평했다.
보성 출신의 선안영 시인은 조선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초록 몽유’, ‘목이 긴 꽃병’ 등이 있으며 중앙일보 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올해의 시조집상 등을 수상했다.
아울러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에는 현대시 부문 윤계순 시인의 ‘실비집’이, 시조 부문에는 강영임의 ‘벚꽃, 천라지망’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상금 각 300만원.
올해 6회째를 맞은 고산신인문학상은 미등단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다. 올해는 신인상 응모에 시부문 700여 편, 시조 부문 500여 편이 접수됐다.
한편 시상식은 제22회 고산문학축전과 함께 오는 10월 14일 고산의 고택이 있는 해남읍 연동리 고산유적지 땅끝순례문학관 문학의 집 ‘백련재’에서 열린다.
박영근 시인을 기리는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회장 서홍관)가 제8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자로 이설야 시인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2022년 5월 14일 오후 4시 인천 신트리 공원 박영근시비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영근작품상은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올곧은 정신으로 치열하게 시 작업을 하고 있는 시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작품에게 상을 수여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 원이 수여된다.
박영근 시인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81년 《반시 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노동자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민중가수 안치환 작곡의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제8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작으로는 이설야 시인의 <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가 선정되었다. 본심위원 박일환(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수상작에 대해 “고통스러운 노동의 굴레가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도 작용하고 있는 지구촌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며, “최근의 젊은 시 문법과 현실의식을 고르게 펼쳐 보인 수작”이라며 선정 경위를 밝혔다.
이설야 시인은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을 준비하며 일제 식민시기 부평 조병창 등 국내의 노동 이슈에서 세계의 어린이 노동, 난민 문제로 시선이 확장되었다”며, “특히 파키스탄의 8살 소녀 가사도우미 조흐라 샤의 이야기를 접하고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창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 “뜻밖에 상까지 받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조흐라 샤를 비롯하여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년, 소녀들에게 진 시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게 되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본심위원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수상 작품에 대해 “사건의 묘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시적 표현에 있어 문학적 성취가 있었다”고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번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한 이설야 시인은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데뷔했다.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을 썼으며, 제1회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 샤를 보들레르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악의 꽃』이라는 책은 차갑고 불길한 아름다움을 입고 있습니다.”라는 편지글.
** 미국 흑인 영가<Broken Promises>
붉은 사막 로케이션
어디서 시작됐는지 종잡을 수 없다
붉은 사막 로케이션
단어들의 윤곽이 선명하다
평면의 그림에서 입체적 형상이 일어서듯
선인장처럼 타오르는 빛의 하늘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거기서 눈먼 자는 되돌아올 수 없다
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철가면을 흔들며 울부짖는 곳
그 어디쯤 모래무덤에
전생의 발자국을 맡겨둔 것 같다
검은 가죽바지 오토바이가
일몰의 지평선을 넘어가고
밤의 야영지는 끝없다
양고기 굽는 모닥불의 그림자들
빛으로 어둠으로 얼룩진
얼굴들, 구릉 너머 모래밭에 잠겨있는데
발을 들이밀 자리가 없다
텔레비전 화면의 긴급뉴스 자막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이 문장이 거쳐 온 경로를 밝힐 수 없다
얼굴에 분칠하고 고개 드는 꽃들에게
- 외지(外地)2
지나치는 것들마다 실성한 입이었다 미안하다 들꽃들아, 용서해다오 나의 고통이 너희들을 껴안아 눈물 흘리게 하였다 간밤의 비바람을 어찌 견딘 것이냐 백지처럼 말갛게 고개 드는 꽃들아, 둑길도 저렇게 무너지고 말았는데, 얼굴에 분칠하고 하늘대는 꽃들아, 내가 잘못했다 용서치 말아다오 내 얼굴을 뭉개 다오 나의 고통이 너희의 입술을 핥고 깨물고 짓이겨놓았다
시전문지 현대시학은 제7회 '전봉건문학상'에 오정국 시인의 시집 '재의 얼굴을 지나가다'를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전봉건문학상'은 현대시학을 창립한 전봉건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5년 제정한 문학상으로, 한 해 동안 발간된 중견 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수상자인 오정국 시인은 1956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198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멀리서 오는 것들', '파묻힌 얼굴', '눈먼 자의 동쪽' 등의 시집이 있다. 서라벌문학상, 지훈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한서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아울러 올해 현대시학신인상에 유정, 박서영 시인을 당선자로 선정했다.
서강대 문학을 전공한 유정 시인은 시 '코프만 씨 아아아! 1' 외 4편, 부산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박서영 시인은 시 '우울할 땐 코인빨래방으로 가요' 외 4편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묘사시의 계보를 이어온 이윤학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997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아 출간된 초판본에서 74편이던 시를 54편으로 선별해 다듬어 엮은 이번 개정판 시집은 한결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첫 시집 『먼지의 집』부터 열 번째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묘사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그는 일찍이 망원경과 현미경의 장점을 살린 렌즈를 만들어 시적인 순간을 포착해내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그리하여 선명한 화소의 각기 다른 이미지를 배치해 절묘하게 조합해 내는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의 시는 대상과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세밀화해 독자의 선택에 맡기는 보여주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다르게 전달될 수 있고 같은 독자라도 읽을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의 시는 말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많은 말을 숨기고 독자에게 스스로 원하는 말을 찾아 위로를 삼기를 고대하고 있다.
『짙은 백야』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윤학 시인의 열 번째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이 [간드레 시] 1번으로 출간되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31년간 뚜렷한 시의 궤적을 새겨온 이윤학의 시력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준다. 10은 전체를 아우르는 완전수이지만 그는 자신의 시 세계에 타협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열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한층 농밀해진 그의 시 세계는 금광의 갱도를 뚫고 금맥을 찾아 전진하는 굴착기와 한 몸이 된 광부처럼 처절하고 필사적이다.
초록 표지의 책에선 식물의 맛이 나고 지구에 관한 책에선 보글보글 빗방울 소리가 나고 어류에 관한 책에선 몇천 년 이어온 강물 소리가 난다
곤충에 관한 책에선 더듬이 맛이 나, 이내 물리지만
남쪽 책장은 마치 텃밭 같아서 수시로 펼쳐볼 때마다 넝쿨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책일수록 온갖 눈빛의 물때와 검정이 반들반들 묻어있다 두꺼운 책을 엄지로 훑으면 압력밥솥 추가 팔랑팔랑 돌아간다
침실 옆 책꽂이 세 번째 칸에는 읽고 또 읽어도 설레는 연애가 꽂혀 있다 쉼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누군가와 겹쳐진다 그러면 따옴표가 보이는 감정을 챙겨 비스듬히 행간을 열어놓는다
새벽까지 읽던 책은 바짝 졸아서 타는 냄새가 났다
책 속에 접힌 페이지가 있다는 건 그 자리에서 눈의 불을 켜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일기장이 제일 뜨겁다 그 안에는 태양이 졸아들고 별이 달그락거리면서 끓기 때문이다
책을 끓여 식힌 감상을 하룻밤 담가 놓았다가
여운이 우러나면 고운 체로 걸러내야 한다
그 한술 떠 삼키면
마음의 시장기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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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힘들 때 찾아온 아버지의 선물"
치과 진료 중이었습니다. 손에 꼭 쥔 전화기 진동이 울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볼게요 하고 접한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귀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열흘 전 곁을 떠나신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병간호 잘해줘서 고맙다고 등을 토닥여주시며 무슨 일이든 잘 될 거라던 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과 그 흐름은 그 사람의 성격과 같다고 하는데, 나는 종종 한 박자 느리고 생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꼭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책들의 제목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제목들만큼 알맞은 문장이 있을까요. 또 책들은 그 맛이 제각각입니다. 짠맛 신맛은 물론 마음에 꼭 맞는 맛들도 있습니다. 새벽까지 읽던 책이 뜨겁게 졸아서 내 가슴속 지워지지 않는 맛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 김병택, 양영길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교수님들과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애하는 엄마, 동생 현남, 옥희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 주는 남편 김병기, 민서, 민규, 주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심사평] 현실 속 사물과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총 71편이다. '시적 산문'을 산문시로, '공상'을 '상상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소수의 작품을 빼면,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미리 마련한 심사 기준에 유의하면서 모든 작품을 정독한 뒤, 토론 대상으로 삼을 4편의 작품을 선정했는데, '여름의 부피들', '발자국 상점', '구석구석의 힘', '책을 끓이다' 등이 그 작품들이다.
여름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엄마'를 시적 이야기로 다루고 있는 '여름의 부피들'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 널려 있는 상투적 비유가 작품을 진부하고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 지적되었다.
상상력은 현실에 토대를 둘 때에만 나름대로의 가치를 발휘한다. '발자국 상점'에서는 여과 장치 없이 생경한 모습으로 드러난 상상력이 독자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상의 전개가 치밀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의 힘'에서의 '구석구석'이라는 핵심어는 추상성에 의존하는 단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책을 끓이다'는 현실 속의 사물인 '책'과 그에 수반하는 작자의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시어 운용의 능숙한 솜씨가 사물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배가하고 있는 점이 크게 돋보였다. 시적 화자의 스탠스가 분명하여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에 합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더 정진하기를 바라고,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