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

꽃놀이패 / 권수진

.

.

너에게 승부를 거는 동안

늘 우아한 자태를 뽐내려고 노력했지만

당신 앞에 추악한 내 모습을

들킨 적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꽃잎 띄운 술잔을 정중히 건넸으나

당신은 한 번도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낸 적 없었다

.

당신을 만나 당신의 터전 위에 뿌리내리고

집을 짓고 사는 동안

웃는 날보다 싸운 날들이 더 많았다

.

길 위에서 낭창대는 삶을 살았으니

그동안 당신 마음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감히 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긴 세월 돌아보면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으니

더는 사랑이라 부르지도 않겠다

.

고립무원의 꽃 진 자리는 항상 내 몫인지라

간밤에 우수수 떨어진 바둑돌 낭자하고

패를 뒤집듯 밤새도록 이불을 뒤척인다

.

하루를 천년같이 고뇌하며 살았으나

대마가 죽는 건 순간이라고

그때 당신을 꺾지 말아야 했다

좀 더 일찍 시드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함께한 날들을 뒤돌아보면

과연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가 싶다

.

다음 생에 다시 승부를 펼친다면

사활을 걸고 덤벼야 한다는 건 알겠다

 

 

 

728x90

 

 

 

 

 

꽃놀이패 / 권수진(낭송 : 김명숙)

.

.

너에게 승부를 거는 동안

늘 우아한 자태를 뽐내려고 노력했지만

당신 앞에 추악한 내 모습을

들킨 적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꽃잎 띄운 술잔을 정중히 건넸으나

당신은 한 번도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낸 적 없었다

.

당신을 만나 당신의 터전 위에 뿌리내리고

집을 짓고 사는 동안

웃는 날보다 싸운 날들이 더 많았다

.

길 위에서 낭창대는 삶을 살았으니

그동안 당신 마음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감히 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긴 세월 돌아보면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으니

더는 사랑이라 부르지도 않겠다

.

고립무원의 꽃 진 자리는 항상 내 몫인지라

간밤에 우수수 떨어진 바둑돌 낭자하고

패를 뒤집듯 밤새도록 이불을 뒤척인다

.

하루를 천년같이 고뇌하며 살았으나

대마가 죽는 건 순간이라고

그때 당신을 꺾지 말아야 했다

좀 더 일찍 시드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함께한 날들을 뒤돌아보면

과연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가 싶다

.

다음 생에 다시 승부를 펼친다면

사활을 걸고 덤벼야 한다는 건 알겠다

 

 

 

728x90

 

 

[최우수상] 잠녀 / 김희숙

 

 

[우수상] 피랑 / 송용탁

저마다의 바다

 

너무 많은 집들이 바다를 향해 걷고 있었다

 

툴툴 내리막을, 

 

굴러떨어지는 말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 크게 숨을 참고 한숨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살다보면 숨쉴 수 없는 곳에서도 숨쉴 수 있게 된 말들이 있다. 수몰된 자리에서 이토록 따듯한 지붕들을 이해하기 위해 쉬운 감탄사보다 욱신거리는 종아리가 좋았다.

 

타지인을 안내하는

저마다의 골목이 생기고,

 

얼룩진 물안경도 없이 그저 물길따라 걸으면 저 바다도 늦잠을 잔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벽에 부딪쳤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 모두들 벽 속에 숨는다. 푸드득, 

 

계절이 바뀌면 나무도 새도 꽃도 

홑겹의 붓질로 새로 피겠지

 

천사가 버리고 간 젖은 날개를 입기 위해 줄 선 사람들

 

벽에 갇힌 날개는 어디로 날아가고 싶은 걸까. 두 손 가득 시를 쥐고 웃어보면 날개가 자랄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헤엄을 쳤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태우고 물질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파된 사람들

 

달려오는 파도를 보면 

모래사장에 그립다라는 말을 써 볼 

조그만 담력도 사라지게 된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골목을 돌아 자꾸 벽에 부딪친다

 

수몰이 끝나면

수많은 골목도 유적이 될거야

그저 섬이 된 지붕뿐의 연속이었다고,

 

저마다의 그리움을 지우기 위해 다시 밀물이다. 하나의 표정만 허락된 석상처럼 우두커니,

 

골목의 연대를 선사했다

 

저 바다가 멈추지 않았다

저마다의 피랑을 안고 돌아가는 붉은 공중이 있었다

 

 

[우수상] 바다의 알고리즘 / 고훈실

바다가 생의 척추가 된 순간부터

저 둥근 해원을 빠져나갈 수 없다

아버지의 파도는 0과 1의 미로

이물에서 고물로 이어지는 포물선이

출항을 허하면 난바다 어디쯤에서

아버지의 투망은 기호열이 복잡했다

물오른 바닷장어 뽈락 쏨펭

한 그물씩 올리면

어긋난 타이밍처럼 빈 햇살만 가득했다

바다는 갈수록 가난해져

열일곱 처음 배에 올랐던 기억과

수심을 읽은 아버지 등마저 홀쭉하다

촘촘한 그물로 아버지를 에워싼

생의 비린내가 무한 생성되고

못 박힌 손바닥에 성근 손금이 남은 건

짠내 나는 명령어가 한 생을 깎았다는 증거

막막하게 펼쳐진 수평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천이고 만이라서

당신이 명명한 바다는 무한 복제된다

과부하로 충혈된 파도

컵라면 뚜껑에 노을이 미끄러지면

흰 포말의 데이터가 바다를 귀납하고

다시 출력하는 저녁이다

어창엔 펄떡이는 몇 마리의 기호들뿐

우주를 향해 팽창하다

섬의 뿌리로 되돌아간

오늘의 허선은 순서도로 풀 수 없다

흉어 메트릭스 몇 토막 잘라 내

알짜 프로그램으로 만선을 꿈꾸는

내일,

출항은 영원히 미지수다

아버지의 해문만이 닫힐 줄 모른다

[우수상] 등대 공작 시간 / 김맹선

제10회 등대문학상 시상식… 안경희 작가 대상

대상 1편·최우수상 3편·우수상 9편 등 총 13편 시상

 

해양수산부가 주최하고 울산지방해양수산청과 울산항만공사,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이 공동주관한 ‘제10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의 시상식이 8일 롯데호텔 울산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 및 가족, 울산해수청장, 울산항만공사 사장, 한국항로표지기술원장, 울산문인협회장 등 약 50명이 참석했다.

 

제10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에는 총 800편의 작품이 접수돼 대상과 함께 최우수상이 각 분야별(소설, 시/시조, 수필)로 1편씩 총 3편, 우수상은 3편씩 총 9편이 선정돼 상장과 함께 총 상금 2천750만원이 수여됐다.

 

‘고래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한 안경희 작가는 시상식에서 “쉽고 다양한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책이 지닌 유용성과 이로움의 가치 추구를 통해 어려운 시대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소설을 쓰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양진문 울산해수청장은 “등대문학상이 바다와 함께 하는 우리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 내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국내 최고의 해양문학상으로 도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728x90

 

 

절망을 견디는 법 / 김명기

 

 

보증 서준 친구가 야반도주를 하고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구경해 본 적도 없는 큰 빚이 너무 억울해 

배를 내밀어 보았지만 보증서에

핏자국처럼 선명한 날인이 말라갈수록 

점점 더 단단하고 큰 빚쟁이가 될 뿐이었다

통장에서 빚이 빠져나가는 날이면 

세상 있는 모든 욕을 끌고 와

저주를 퍼부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한 마음이 짓무르고

삶이 수척해졌지만 신기하게 

빚은 점점 야위어 갔다

몇 해 동안 빚을 다 갚고 나니

그제야 도망간 친구의 안부가 궁금했다 

더 이상 빚이 빠져나가지 않는 통장과

세상 모든 욕과 저주는 할 일을 잃었다 

더는 만날 일 없을 테지만 한동안 나는 

네게 보내는 욕설과 저주의 힘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이제 나는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 같다

어느 순간 우린 둘 다 절망이었을 텐데

너는 그 많은 욕과 저주를 어떻게 견뎠을까

 

 

제22회 고산문학대상에 현대시 부문 김명기 시인, 시조 부문에서 선안영 시인이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품집은 각각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와 ‘저리 어여쁜 아홉 꼬리나 주시지’이며 상금은 각 2000만원.

 

고산문학대상 운영위는 지난 1년 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현대시와 시조 부문에서 각 100여 명의 시인, 평론가들의 추천을 받아 심사에 들어갔다.

 

현대시 심사를 맡은 김명인·이문재 시인, 문혜원 평론가는 “거듭 읽어낼수록 삶의 파장들이 깊은 감동까지 거느리며 가슴속으로 번져나가 그 파문에 흠뻑 젖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으며 “삶의 우여곡절과 신산고초를 통과해온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정성의 언어’로 절묘한 표현이나 세련된 구성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김명기 시인은 경북 울진 출신으로 2005년 시 전문지 ‘시평’ 겨울호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 ‘종점식당’을 펴냈으며 2017년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제2회 작가정신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조 심사는 박기섭·박현덕 시인·황치복 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현실언어를 끊임없이 초월언어로 바꾸어놓고, 적확한 표현으로 말미암은 수사의 적중률이 높은 데다, 그 형식의 운용은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닿아 있다”고 평했다.

 

보성 출신의 선안영 시인은 조선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초록 몽유’, ‘목이 긴 꽃병’ 등이 있으며 중앙일보 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올해의 시조집상 등을 수상했다.

 

아울러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에는 현대시 부문 윤계순 시인의 ‘실비집’이, 시조 부문에는 강영임의 ‘벚꽃, 천라지망’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상금 각 300만원.

 

올해 6회째를 맞은 고산신인문학상은 미등단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다. 올해는 신인상 응모에 시부문 700여 편, 시조 부문 500여 편이 접수됐다.

 

한편 시상식은 제22회 고산문학축전과 함께 오는 10월 14일 고산의 고택이 있는 해남읍 연동리 고산유적지 땅끝순례문학관 문학의 집 ‘백련재’에서 열린다.

 

 

728x90

 

 

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 / 이설야 

 

아이야.

너에게서 새를 꺼내줄게

너의 입에 갇힌 새를 꺼내줄게

 

마카우 앵무새를 기르는 집이었지

조흐라 샤는 가사도우미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지

 

새장 속 값 비싼 네 마리의 앵무새

그중에 한 마리가 날아간 건 실수였지

잠시 새장을 열고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사라진 새

사라진 세계

 

파키스탄 소녀 조흐라 샤는 겨우 여덟 살

조그만 손으로 아기 기저귀를 갈고 마당을 빗질했지

몇 푼짜리 동전으로는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마카우 앵무새를 놓쳤다네

구름처럼 흩어진 새의 발자국

어디로 날아갔을까

 

주인에게 맞다가 뼈가 으깨어졌지

소녀는 새를 삼킨 하늘로 날아갔다네

날개를 펴서 구름다리 위로

커다란 새장 밖으로 날아갔다네

소녀가 살던 작은 마을에는

흰 깃털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었지

 

새는 천사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나

새를 찾아 천국으로 간 아이

 

하지만 천국엔 새가 없지

죽은 새만 있지

신을 찾다가 눈이 먼 죽은 새들

오직 죽어서 가는 새들만 있지

 

아이야.

새에게서 너를 꺼내줄게

새의 입에 갇힌 너를 꺼내줄게

 

 

박영근 시인을 기리는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회장 서홍관)가 제8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자로 이설야 시인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2022년 5월 14일 오후 4시 인천 신트리 공원 박영근시비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영근작품상은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올곧은 정신으로 치열하게 시 작업을 하고 있는 시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작품에게 상을 수여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 원이 수여된다.

 

박영근 시인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81년 《반시 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노동자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민중가수 안치환 작곡의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제8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작으로는 이설야 시인의 <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가 선정되었다. 본심위원 박일환(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수상작에 대해 “고통스러운 노동의 굴레가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도 작용하고 있는 지구촌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며, “최근의 젊은 시 문법과 현실의식을 고르게 펼쳐 보인 수작”이라며 선정 경위를 밝혔다.

 

이설야 시인은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을 준비하며 일제 식민시기 부평 조병창 등 국내의 노동 이슈에서 세계의 어린이 노동, 난민 문제로 시선이 확장되었다”며, “특히 파키스탄의 8살 소녀 가사도우미 조흐라 샤의 이야기를 접하고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창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 “뜻밖에 상까지 받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조흐라 샤를 비롯하여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년, 소녀들에게 진 시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게 되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본심위원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수상 작품에 대해 “사건의 묘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시적 표현에 있어 문학적 성취가 있었다”고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번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한 이설야 시인은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데뷔했다.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을 썼으며, 제1회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728x90

 

 

 

[대상] 뿔소똥구리 / 박봉철

- 예천곤충연구소에서 

온 천지가 뿔이었다가 똥입니다

앞발을 짚고 뒷발이 땀이 나도록 굴러야

빚어진 경단, 태양의 신 케프리의 화신인가

켜켜이 배설을 모아모아 치켜든 허공

덧대는 기울기마다

쇠뿔처럼 우직하게 밀어가는

경단 같은 멍울이 반질반질해집니다

벼랑을 기울이며 소 비린내를 당기자 낮은 것을 위해 지레 곤두세워 튼실해진 경단, 지레 공중을 흔들거리다 무너진다, 뿔소똥구리는 아무렴 괜찮다는 듯 연거푸 경단에 휘말려 들어가도 똥 한 움큼, 쟁여가듯 순한 출렁임으로 용케도 섞어 달구어지며 되새김질할 즈음

세 배나 되는 몸집

궤적을 내려놓은 자리에

삶이란 굴레처럼

굴리고 굴려야, 바닥을 추스르는 것

긴 장벽을 무너뜨리며

뿔을 내려놓고 그늘의 실타래를 감았을까

이리저리 출렁이는 삽날 사이

무작정 오체투지 하는 자가

사위를 들썩거립니다

태양과 달의 걸음걸이로

멱살의 향방을 가르고

어디쯤 궁굴려야 천 길을 낼 수 있을까,

둘레 두루두루 되감으며 키워가는, 부푸는 공감

지레 앞발을 견주는,

몇 바퀴의 뒷발

저기 먼 산을 굴려 한 클릭, 두 클릭

둘둘 말린 빛을 캐어갑니다

[최우수] 회룡포 명상 / 최동문

 

 

 

 

 

[우수상] 안녕, 러브레터 / 전정화 

 

 

[가작] 광음여전(光陰如箭) / 권수진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과녁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끝이 뾰족하였으므로

무엇이든 뚫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세상의 중심을 향해

표적을 겨냥한 화살촉

천천히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주위를 맴돌았다

우리네 인생은 화살 같아서

아무리 붙잡아도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다만 허공을 나는 화살이

과녁을 관통할 때마다

얼마만의 점수로 평가되고 있었다

때로는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비껴가는

빗나간 화살처럼 자연을 벗 삼아

세상을 등지고 살기도 했다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은 여긴데

정해진 방향은 운명처럼 

저 멀리 동심원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치닫는 세월 앞에서

내 인생은 과연 몇 점인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살아온 날들에 점수를 매기며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가작] 태평추를 먹다 / 허정진 

낯선 먼 길을 걷거나

거친 눈보라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날은

고향이나 집밥 같은 거, 문득 생각나기도 하지

무거운 짐 홀로 짊어진 생이 외롭고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루가 또 힘들기만 해도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고달픈 영혼을 위로받는 날도 있지

날창날창한 메밀묵 한 지름 

돼지고기 한 토막을 묵은지에 올려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뜨거운 국물

설움도 울컥, 성엣장처럼 둥둥 떠내려가고

곁에 내 편이 생긴 것처럼

마음 든든해지는 일이어서

태평하지 못한 시름도 잊어버리곤 했지

칼칼하고 개운한 그 맛이 그리운 날은

가난하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았던 그 시절

어렴풋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누군가의 어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또 한 번쯤 생각하게 되지.

[가작] 주모들의 시간, 삼강주막 / 김민지 

[가작] 예천유정 / 권오철

[가작] 둥근마을 / 조영진 

[가작] 삼강주막 / 권오용 

[가작] 눈 내리는 회룡포 / 이용호 

[가작] 금당실 마을을 읽다 / 황영애 

[가작] 내성천을 짚고 일어선 나무 / 오지은 

[가작] 봉덕산 주인 / 안해경 

[가작] 초간정의 다른 시간 / 김은정 

[가작] 내성천 물안개 / 김현 

[가작] 태극나방의 날개에는 윤장대가 있어 / 김영욱 

[가작] 용문사 큰 보살 / 이인숙 

[가작] 삼강주막 / 박진옥 

[가작] 삼강체로 쓴 외상장부 / 홍영수 

[가작] 감천에 미소 날리다 / 강차남 

[가작] 예천아리랑 / 김학중

 

 

728x90

 

 

 

재의 얼굴로 지나가다 외 4편 / 오정국

섣불리 손댈 수 없는 얼굴

이마에 재를 바르고

이마에 재를 바른 손가락을 헤아려 본다

거기에 매달렸던 기도와 눈물을

나는 재의 얼굴로 거리를 지나간다

재의 얼굴은

사막 여행자 같다

양의 귀에 내 죄를 속삭이고

칼자루에 힘을 줬던

벌판, 수천 겹의 밤길을 헤쳐 온

낡고 거친 이마를 씻고 문지르지만

재의 얼굴은 무심하다

재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는다

나는 재의 얼굴로

나를 지나간다

눈구멍을 움막처럼 열어 둔 채

벙거지 하나 걸치고

매일매일 딴 세상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애도하면서

 

 

 

 

영구결번의 밤은 없다 

 

무한에서 무한으로 연결된 밤의 터널

무궁한 밤의 아이로 나는 태어났어요

내가 기억하는 전생은 모두 다섯 개

 

불타는 산막의 거적때기 너머에

백발의 무사가 앉아 있어요

칼날 스친 얼굴에 불빛 어룽지면

나도 모르게 광대뼈를 쓰다듬죠

 

내가 만진 죽음 헤아릴 수 없고

나는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이야기꾼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죽음의 불사신이

저의 괴로움을 나에게 덧씌워

기담과 괴담, 로맨스가 끝이 없네요

 

죽은 자의 말소리와 그림자에 둘러싸여

밤의 피륙을 얽어 짜는데

 

어떤 유령은

요양병원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는 소식

침상의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그 숨을 받아먹고

휠체어를 밀어주며

단팥죽 몇 숟가락 얻어먹는다지요

 

결국 테두리만 남게 되는 이야기지만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수레바퀴가 멈춰지질 않네요

 

 

 

먼눈으로 알아볼 수 없었던 

- 외지(外地)1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

허구와 허구가 뒤섞이고, 스토리와 스토리가 엉키듯

당도한 곳, 이곳이 외지다

 

지금 내 가슴을 열어보면

번갯불의 거울 조각과

뽕나무 등결의 검붉은 나이테,

표지가 뜯겨나간 몇 권의 책이 있다

 

여기서 나는

차갑고 불길한 불꽃의 책*을 읽었다

 

너무 짧거나 긴 생애들

 

가당찮은 우연의 목록을 뒤적여보면

엇갈린 사랑의 기나긴 이별

검은 상처의 블루스*가

질척거리는 길바닥을 떠나지 않는구나

 

먼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던

세월의 철길 아래

회오리치듯 뻗어가는 담장의 꽃들

철 따라 익어가는 붉은 열매들

 

이제 내 가슴을 들여다보면

발을 헛디딘 흙구덩이와

타다 만 숯덩이,

새의 날갯죽지 같은 게 흩어져 있다

 

* 샤를 보들레르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악의 꽃』이라는 책은 차갑고 불길한 아름다움을 입고 있습니다.”라는 편지글.

** 미국 흑인 영가<Broken Promises> 

 

 

붉은 사막 로케이션 

 

어디서 시작됐는지 종잡을 수 없다

붉은 사막 로케이션

단어들의 윤곽이 선명하다

평면의 그림에서 입체적 형상이 일어서듯

선인장처럼 타오르는 빛의 하늘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거기서 눈먼 자는 되돌아올 수 없다

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철가면을 흔들며 울부짖는 곳

그 어디쯤 모래무덤에

전생의 발자국을 맡겨둔 것 같다

 

검은 가죽바지 오토바이가

일몰의 지평선을 넘어가고

밤의 야영지는 끝없다

양고기 굽는 모닥불의 그림자들

빛으로 어둠으로 얼룩진

얼굴들, 구릉 너머 모래밭에 잠겨있는데

발을 들이밀 자리가 없다

텔레비전 화면의 긴급뉴스 자막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이 문장이 거쳐 온 경로를 밝힐 수 없다

 

얼굴에 분칠하고 고개 드는 꽃들에게 

- 외지(外地)2

 

지나치는 것들마다 실성한 입이었다 미안하다 들꽃들아, 용서해다오 나의 고통이 너희들을 껴안아 눈물 흘리게 하였다 간밤의 비바람을 어찌 견딘 것이냐 백지처럼 말갛게 고개 드는 꽃들아, 둑길도 저렇게 무너지고 말았는데, 얼굴에 분칠하고 하늘대는 꽃들아, 내가 잘못했다 용서치 말아다오 내 얼굴을 뭉개 다오 나의 고통이 너희의 입술을 핥고 깨물고 짓이겨놓았다

시전문지 현대시학은 제7회 '전봉건문학상'에 오정국 시인의 시집 '재의 얼굴을 지나가다'를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전봉건문학상'은 현대시학을 창립한 전봉건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5년 제정한 문학상으로, 한 해 동안 발간된 중견 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수상자인 오정국 시인은 1956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198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멀리서 오는 것들', '파묻힌 얼굴', '눈먼 자의 동쪽' 등의 시집이 있다. 서라벌문학상, 지훈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한서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아울러 올해 현대시학신인상에 유정, 박서영 시인을 당선자로 선정했다.

 

서강대 문학을 전공한 유정 시인은 시 '코프만 씨 아아아! 1' 외 4편, 부산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박서영 시인은 시 '우울할 땐 코인빨래방으로 가요' 외 4편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728x90

 

 
 
 
 

책소개

 

묘사시의 계보를 이어가는 이윤학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개정판 출간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묘사시의 계보를 이어온 이윤학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997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아 출간된 초판본에서 74편이던 시를 54편으로 선별해 다듬어 엮은 이번 개정판 시집은 한결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첫 시집 『먼지의 집』부터 열 번째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묘사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그는 일찍이 망원경과 현미경의 장점을 살린 렌즈를 만들어 시적인 순간을 포착해내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그리하여 선명한 화소의 각기 다른 이미지를 배치해 절묘하게 조합해 내는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의 시는 대상과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세밀화해 독자의 선택에 맡기는 보여주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다르게 전달될 수 있고 같은 독자라도 읽을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의 시는 말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많은 말을 숨기고 독자에게 스스로 원하는 말을 찾아 위로를 삼기를 고대하고 있다.

 

 

시인의 말

 

살아가는 일은 바닥이 없는 갈증이다, 그래서

수시로 가까운 우물을 찾게 된다.

그 우물은 일찍이 누군가가

내 몸속에 파놓은 것이다.

어떤 때는 몸 전체가 우물로

변하기도 한다.

내 관심은 여전히 버려지고 잊히는 것에

닿아있다. 나는, 언제나, 그 우물을 바라보고

퍼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 우물을 메우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개정판 시인의 말

 

쌍둥이를 낳아

하나를 남에게 준 부모의 심정이

이러했을 것.

면목은 없다만,

이제라도 데려와 살붙이고

정붙였음 원이 없겠다 싶었다.

 

 

 

목차

 

시인의 말

개정판 시인의 말

 

 

1부

 

잠긴 방문 11

사다리 12

목이 떨어진 석불들 13

화려한 유적 14

금장 가는 길 15

고목 속의 풍경 16

저녁의 공원 18

오락실 20

수영약국 22

옥상의 의자 24

난로 위의 주전자 26

암흑 속을, 불빛을 깜박거리며 28

진흙탕 속의 말뚝을 위하여 30

버들강아지 가지 하나가 32

유리컵 속으로 가라앉는 양파 34

처절한 연못 36

과수원길 3 38

 

2부

 

집 43

집 없는 길 44

봄밤 46

깊은 곳 48

둥근달 50

거꾸로 도는 환풍기 날개 52

밤나무 53

고사목 54

사진 속에 갇혀있는 연기 55

향연사(香蓮寺) 56

저수지 2 58

버려진 길 60

해청을 지나는 버스 62

한낮의 공원을 위하여 64

기울어진 전봇대 66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68

콘크리트에 찍힌 발자국 69

목련나무 아래 소파 70

금강휴게소 72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74

잠만 자는 방 76

 

3부

 

겨울에 지일에 갔다 1 79

겨울에 지일에 갔다 2 80

겨울에 지일에 갔다 6 82

겨울에 지일에 갔다 7 84

겨울에 지일에 갔다 9 86

겨울에 지일에 갔다 10 88

겨울에 지일에 갔다 8 90

구절리에서 91

벽 속의 관 92

깨어진 화분 94

화살 96

연못에 박힌 전봇대 98

벚꽃나무들의 거리 100

긴 점포의 한낮 102

녹슨 창살 사이로 104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비 106

 

에필로그 | 그곳으로부터 109

 
728x90

 

 

 

 

책소개

『짙은 백야』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윤학 시인의 열 번째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이 [간드레 시] 1번으로 출간되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31년간 뚜렷한 시의 궤적을 새겨온 이윤학의 시력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준다. 10은 전체를 아우르는 완전수이지만 그는 자신의 시 세계에 타협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열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한층 농밀해진 그의 시 세계는 금광의 갱도를 뚫고 금맥을 찾아 전진하는 굴착기와 한 몸이 된 광부처럼 처절하고 필사적이다.

 

 

 

 

목차

 

1부

 

별들의 시간

보풀들

부레옥잠, 꽃피다

도라지꽃밭

저물녘

아궁이

폐등대

수레국화

디스크

저녁뜸

대파 술잔

눈보라

돌 의자

덧니

우리들이 잠든 자크 속 

소파베드와 함께 밤을

파라핀 오일램프

 

 

2부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우리는 봄 상추밭으로 걸었지

옛날 북문시장에 갔다

나리와 백합

때꼴

고야

마사토

층층나무 단풍들다

천변

불광동

진눈깨비

뜬눈으로 나를 기다리는 쪽창에 대하여

억새가 피어

쭈그려 앉은 그림자

쭈그려 앉은 그림자 2

개나리

 

 

3부

 

벼꽃이 피어

율피

소나무재선충(材線蟲) 감염지역

폐사지(廢寺址)

우산이끼

밤의 밀레

백합(百合)과 백합(白蛤)의 해변

영산홍

도전(盜電)

말코지집

캠핑

강변의 별장

힘줄이 드러난 전기장판

맹매기집

흙탕물 웅덩이

노적가리

들국화

 

 

4부

 

꽃샘추위

제라늄

마루기둥

송덕리(松德里)

메꽃들의 낮

첫말 막힘

휘파람

목공방집

첨밀밀(甛蜜蜜)

도꼬마리

가로림만(加露林灣)

안경을 쓰자 세 개로 흩어진

반달이 뭉쳤다

골목 끝 창

시한부

 

 

에필로그┃간드레

 

해설┃오래된 시간 의식과 구원의 언어 _ 홍용희

 

 

728x90

 

 

책을 끓이다 / 장현숙

 

 

책은 책마다 맛이 다르다

 

초록 표지의 책에선 식물의 맛이 나고 지구에 관한 책에선 보글보글 빗방울 소리가 나고 어류에 관한 책에선 몇천 년 이어온 강물 소리가 난다

 

곤충에 관한 책에선 더듬이 맛이 나, 이내 물리지만

 

남쪽 책장은 마치 텃밭 같아서 수시로 펼쳐볼 때마다 넝쿨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책일수록 온갖 눈빛의 물때와 검정이 반들반들 묻어있다 두꺼운 책을 엄지로 훑으면 압력밥솥 추가 팔랑팔랑 돌아간다

 

침실 옆 책꽂이 세 번째 칸에는 읽고 또 읽어도 설레는 연애가 꽂혀 있다 쉼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누군가와 겹쳐진다 그러면 따옴표가 보이는 감정을 챙겨 비스듬히 행간을 열어놓는다

 

새벽까지 읽던 책은 바짝 졸아서 타는 냄새가 났다

 

책 속에 접힌 페이지가 있다는 건 그 자리에서 눈의 불을 켜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일기장이 제일 뜨겁다 그 안에는 태양이 졸아들고 별이 달그락거리면서 끓기 때문이다

 

책을 끓여 식힌 감상을 하룻밤 담가 놓았다가

여운이 우러나면 고운 체로 걸러내야 한다

그 한술 떠 삼키면

마음의 시장기가 사라진다

 

 

 

 

쿠팡

 

deg.kr

- 에드픽 제휴 사이트로 소정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당선 소감] "힘들 때 찾아온 아버지의 선물"

 

치과 진료 중이었습니다. 손에 꼭 쥔 전화기 진동이 울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볼게요 하고 접한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귀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열흘 전 곁을 떠나신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병간호 잘해줘서 고맙다고 등을 토닥여주시며 무슨 일이든 잘 될 거라던 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과 그 흐름은 그 사람의 성격과 같다고 하는데, 나는 종종 한 박자 느리고 생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꼭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책들의 제목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제목들만큼 알맞은 문장이 있을까요. 또 책들은 그 맛이 제각각입니다. 짠맛 신맛은 물론 마음에 꼭 맞는 맛들도 있습니다. 새벽까지 읽던 책이 뜨겁게 졸아서 내 가슴속 지워지지 않는 맛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 김병택, 양영길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문장의 흐름과 이미지를 선연하게 가르쳐주신 윤성택 시인님 감사합니다. 시클, 김산, 이종섶, 이수정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교수님들과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애하는 엄마, 동생 현남, 옥희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 주는 남편 김병기, 민서, 민규, 주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심사평] 현실 속 사물과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총 71편이다. '시적 산문'을 산문시로, '공상'을 '상상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소수의 작품을 빼면,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미리 마련한 심사 기준에 유의하면서 모든 작품을 정독한 뒤, 토론 대상으로 삼을 4편의 작품을 선정했는데, '여름의 부피들', '발자국 상점', '구석구석의 힘', '책을 끓이다' 등이 그 작품들이다.

 

여름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엄마'를 시적 이야기로 다루고 있는 '여름의 부피들'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 널려 있는 상투적 비유가 작품을 진부하고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 지적되었다.

 

상상력은 현실에 토대를 둘 때에만 나름대로의 가치를 발휘한다. '발자국 상점'에서는 여과 장치 없이 생경한 모습으로 드러난 상상력이 독자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상의 전개가 치밀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의 힘'에서의 '구석구석'이라는 핵심어는 추상성에 의존하는 단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책을 끓이다'는 현실 속의 사물인 '책'과 그에 수반하는 작자의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시어 운용의 능숙한 솜씨가 사물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배가하고 있는 점이 크게 돋보였다. 시적 화자의 스탠스가 분명하여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에 합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더 정진하기를 바라고,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 심사위원: 김병택(시인, 문학평론가), 양영길(시인, 문학평론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