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이념
1. 우리식 사회주의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이 해체되자 북한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체제유지에 총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정권이 사회주의 몰락의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고, 변화의 물결이 침투하지 않도록 주민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내놓은 두 가지 하위 통치이념은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이다.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 ‘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를 대대적으로 내세우면서 이른바 주체사상에 기초한다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집중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해 “오늘날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한 것은 일시적 현상이며 인류가 사회주의에로 나아가는 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력사의 법칙”이고 사회주의의 일시적 좌절의 이유는 주체사상과 같은 위대한 사상이 없었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동구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경제협력과 원조를 미끼로 침투해 들어온 반동적 책동의 결과”라고 입장을 정리한 다음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화와 정치에서의 다당제를 허용하는 것은 결국 사회주의 사회의 기초를 허물고 인민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반혁명적 책동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대신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는 인민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라고 선전하면서 “수령, 당, 대중이 일심단결하여 사회주의 제도를 튼튼히 고수하고 사회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시켜 나아가기 위해 몸 바쳐 투쟁하자”고 주민들을 학습시켰다. 즉 ‘우리식 사회주의’란 ‘영원불멸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가장 독창적이고 우월한 사회주의, 다시 말해서 인류의 참된 복지생활이 보장되는 이상사회를 구현한 정치제도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민들에게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한 걸음도 물러서거나 주저함이 없이 김정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켜나갈 것을 촉구하였다.
한편 2002년 1월 신년 공동사설에서 “수령이 탁월하고 사상이 위대하며 군대가 위력하고 제도가 우월하기에 우리식 사회주의 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라며 ‘우리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령 ‧ 사상 ‧ 군대 ‧ 제도의 ‘4대 제일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2. 조선민족 제일주의
‘조선민족제일주의’는 1986년 7월 김정일의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의 담화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198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행한 김정일 연설 ‘조선민족 제일주의 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에서 본격 강조되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북한주민들에게 집중적으로 교육되었다.
북한은 조선민족제일주의의 원천이 첫째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지도자, 둘째 주체사상, 셋째 혁명전통, 넷째 ‘우리식 사회주의’, 다섯째 민족의 고유한 역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조선민족제일주의는 민족적 우월성을 내세워 붕괴된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내부적으로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를 막고 체제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제창된 하위 통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남 측면에서는 민족대단결 논리를 뒷받침하여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재와 노력을 들여 1994년 10월 단군릉을 완공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3. 붉은기 사상
북한이 주장하는 ‘붉은기 사상’에서의 붉은기는 1920~30년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시기에 불리어졌다는 적기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항일 빨치산의 투쟁정신’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붉은기 사상이란 항일 투쟁 시기 김일성에게 혁명 동지들이 보여주었던 ‘자력갱생’, ‘간고 분투정신’, ‘수령결사 옹위정신’,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주민들에게 ‘붉은기 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당면한 어려움 상황을 김정일에 대한 충성과 인고의 정신 등으로 무장하여 극복하도록 유도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붉은기 기치(95. 8) → 붉은기 철학(96. 1) → 붉은기 사상(97. 1) 등으로 지속적으로 강도 높게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붉은기 철학’이란 것도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혁명 원리를 밝힌 것”이라고 하여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하위개념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1994. 7), 자연재해 등 체제위기 국면이 전개되던 1995년부터 김정일은 “적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사상이 희어지는 것이나, 우리는 붉다”며 사회주의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를 지키는 보루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면서, 사회주의 순결성, 체제보루를 상징하는 ‘붉은기 사상’을 내놓았다.
‘붉은기 사상’은 1995년 8월 28일자 노동신문에 ‘붉은기를 높이 들고 나가자’라는 논설이 실린 이후부터 북한의 각종 언론보도에 등장하였다. 이어 1996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붉은기를 높이 들고 새해의 진군을 힘차게 다그쳐 나가자’라는 제목을 내세우면서부터 ‘붉은기 사상’의 선전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붉은기 사상’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체제위기를 느낀 북한 지도부가 체제수호의 구호로서 내세운 것으로 그 선전의 강도를 높였을 뿐 주체사상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었다. ‘붉은기 사상’의 기초인 ‘붉은기 철학’이 주체의 혁명철학에 기초해서 일심단결의 혁명철학과 신념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이는 ‘붉은기 사상’이 주체사상에 기초하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나온 체제수호의 논리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붉은기 사상’은 “어떤 배신도 모르며 사소한 사상적 변질도 없는 일심단결의 상징이며 혁명적 지조와 절개로 죽어서도 붉은 기폭에 싸여 영도자의 품속에서 영생하려는 신념의 기치”로 표현된다. 그러나 1997년 10월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취임하고 황장엽 망명
(1997. 2) 등으로 인한 북한사회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면서 ‘붉은기 사상’에 대한 강조도 줄어들었다.
4. 강성대국론
강성대국론은 1998년에 본격 등장한 이념이다. 1998년 2월 김정일의 자강도 현지지도 및 ‘8·15’를 전후하여 ‘강성대국’이라는 용어가 제시되었다. 이어 8월 22일 노동신문 정론‘강성대국’이 발표되고, 같은 해 8월 31일 ‘광명성 1호’를 발사하고서는 이를 강성대국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인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등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건설론은 3가지 측면으로 제시된다. 첫째는 사상·정치의 강국 건설이고, 둘째는 군사의 강국 건설이며, 셋째는 경제의 강국 건설이다.
북한은 사상의 강국이란 “주체사상에 기초한 당과 혁명대오의 공고한 사상의지적 통일단결이 이룩된 나라”를 말하며, 군사의 강국은 “강력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다 갖춘 무적필승의 강군, 전민 무장화, 전국 요새화가 빛나게 실현되여 그 어떤 원쑤도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보루”를 뜻하고, 경제의 강국이란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쳐 경제를 활성화하고 자립경제의 위력을 높이 발양시키면 우리 조국은 모든 면에서 강대한 나라로 빛을 뿌리게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200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신사고’에 기초하여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모든 부문, 모든 분야에 ‘종자론’1)을 관철할 것을 촉구하였다. ‘신사고론’은 강력한 국가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고방식, 투쟁기풍 등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어야한다는 것으로 과거 다른 나라의 낡은 틀과 관례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우리식’대로의 방법론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강성대국론을 내놓은 배경에는 대내적으로 김정일 시대의 출범에 즈음하여 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이념이 필요하고, 대외적으로는 북한정권이 건재함을 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 ‘종자론’은 1973년 4월 김정일의 논문「영화예술론」에서 제시된 이론으로 “사업에서 근본을 이루는 핵을 틀어쥐고 근원적 문제부터 혁명적으로 풀어 사업전반에서 변혁을 이룩해 나간다”는 종자 중시의 논리이다.
출처 : 경남대학교 철학인들의 모임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