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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진실의 꽃 / 이선희

그날
나무잎은 파르르 몸을 떨고
시냇물이 온몸으로 울어예던 날
소란한 벌레들이 숨을 죽이고
다람쥐 눈동자에 공포가 반사되던 날

바람도 구름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속(眞俗)의 길이 다르건만
사바의 파도가 출세간을 넘어드니
적멸도량에 아수라가 춤을 춘다.

파사현정은 허공에 피어난 신기루
악마는 거짓으로 진실을 포장하고
진실은 대공분실에서 멍이 든다.
삼청교육대는 진실의 교육대가 아니다.
태양은 동에서 떠올라 서로 지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우리 모두 진실 앞에 무릎 꿇고
참회의 서를 외쳐야 한다.
가슴에 응어리진 매듭이 풀어질 때까지
그래서 화합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강물이 바다에서 하나 되어 만나듯이
너와 내가 우리 되어
시들지 않는 진실의 꽃을 피워야 한다.

가슴 저미는 반성이 메아리치고
눈물 머금은 용서가 두 팔을 벌릴 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에 새살이 돋고
향기로운 세계일화(世界一花)가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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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그날 연꽃이 보았지 / 이생문

 

동안거 입재 준비에 한창이던 연못에 불던 피바람

고요한 새벽 핏자국 선명한 군홧발소리 들었지

 

바람에 맞서다

마른 잎 비틀리고 꽃대 꺾이며

한 톨 핏기마저 바람에 빼앗기던

소리 없는 울분 연못에 출렁였지

 

숨죽이며 들었지

어쩔 수 없어 몸부림치던 소리 없는 울부짖음

무자비로 짓밟는 서슬 퍼런 군홧발소리

도량을 활보하던 점령군의 불발된 폭죽소리

바람도 봄 오면 따뜻해질 거라고 미소 짓던

마른 꽃의 얼굴

맑은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칠흑 같은 번뇌의 수렁 건너며

큰 가슴으로 거룩한 생명 감싸 안은

핏발 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총칼 보다 단단한 거룩한 씨앗은 기억했지

 

그대 여기 짓밟고 걸어온 길

참회의 길이 되길 간절히 빌며 해마다 꽃 피웠지

그대 끌어안으며 날마다 합장하는

인토忍土에서 보내는 마지막 자비

 

 



[최우수상] 법음(法音)의 꽃 / 유송원

 

신군부 군홧발에 옆구리가 채였을 때 억, 하고 허리가 구부러졌다

초저녁의 어둠이 각혈을 하듯 눈밭에 어혈(瘀血)처럼 나뒹굴었다

권총 손잡이로 뺨을 맞으며 스님은 법당이 아닌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검은 표지의 신문조서로 책상을 두드리며 저들은 거짓을 종용했다

무소유의 무구한 수행자에게 탐욕의 권승(權僧)을 자복하라 윽박질렀다

목에 핏대가 불거진 고문의 목소리가 도사견처럼 수행자를 물어뜯었다

간악한 목소리로 회유하는 그 악마의 음성에서 미소가 번들거렸다

핍박과 어거지와 이간질과 악다구니가 한통속으로 비구(比丘)의 사지에 주리를 틀었다

신음조차 가늘어지는 초주검에 몰아넣으며 허튼소리의 실토를 사주했네

 

세속보다 더 세속의 악행을 활개 치는 그 속에서도

암자 한귀퉁이 연못에는 홍련과 백련이 가혹하게 피고

스님들이 잡혀간 뒤끝의 이상한 적막을 갈음하듯

종무소의 진돗개는 범종각의 당목을 당겨 범종을 대신 쳤다

뱃구레가 빈 목어(木魚) 뱃속에 잘못 든 참새는 우왕좌왕 목어 속을 두드리고

절간 음식께나 도둑질한 족제비는 법고(法鼓)에 몸을 던져 북소리를 얻어낼 때

소나기 천둥이 칠 때 구름무늬 일렁이는 운판(雲版)은 제물에 맑게 울었다

붙잡혀간 스님이면 불심도 붙잡혀간 것이라고

그 시절 스님들의 고심참담을 그 후유증을 심중 심경(心經)에 새기고, 스님들이 돌아오셨다

고문과 치도곤 당한 심신으로 돌아온 스님들 반 부처로 돌아오셨다

 

아픈 몸 처절한 고통의 마음이 곧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 견뎌는 시절,

그리고 절간 연못에서 딴 연잎으로 연밥을 만들어

고문에 쇠약해진 스님의 약밥을 올리면

어눌해진 말보다 먼저 스님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천 근 만 근의 원통하고 비통한 아수라들의 악행 악식을 잠시 물렸다

약밥으로 물리쳐질 고통이라면 삼시 세끼 약밥을 올리리라

약밥에 밤 대추 잣 꿀 은행 말고도 더 넣고 싶은 게 있다

부처님 꺼지지 않는 온화한 미소의 법음(法音)이 푹 배인 약밥이면

한귀퉁이만 베어 먹어도 뒤틀리고 남루가 된 영육의 치도곤이 풀리고

시대의 야차(夜叉)들과 정권의 하수인들의 무지몽매를 위해

연꽃처럼 합장하고 그들의 카르마가 반복되지 않게 하소서

여래(如來)의 약밥 한 말씀 드신 스님은 고통을 가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백팔 배 오백 배 천배라도 몸에 혼곤한 땀에 천근처럼 절어도

지옥의 굴레를 짓는 현세의 악업들 모든 고리가 풀려나가라고

보라, 저 오욕의 진흙탕 세월에서 걸어나온 연꽃에서 법음(法音)이 환하게 번진다

 

 

 


 

[우수상] 발자국 자리 / 임재경

 

찢기는 듯한

비명소리가

염불 소리를

가르고 말았다

 

불전의 향불은

사그라들고

희미한 연기만이

제자리에 맴돌았다

 

그날

 

낯선 이들이 남긴

진한 발자국은

낙엽을 치우는 빗질에도

겨우내 내린 눈에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로 남았다

 

긴 겨울이 지나

어느덧 봄의 차례

온 세상이 꽃으로 뒤덮이는데

발자국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돋아날 생각을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저 자리에도

봄날이 올 것이다

와야만 한다

 

사죄의 말은 씨앗이 되고

후회의 눈물은 양분이 되고

부처님의 자비는 햇살이 되어

마침내 아름다운 꽃이 필 날이

올 것이다

와야만 한다

 

 

 


 

[우수상] 법난의 풍경 / 박봉철

 

캄캄한 기운이 해를 가리던 그해

난폭한 군화가 들이닥친 법당,

군홧발소리에 총칼과 더불어 뱀들이 똬리를 틀었다

그해 낮달은 말문을 닫았고 온전히 귀를 감추었다

 

발설되지 못한 소문과 진실은

고문과 왜곡으로 그 뼈와 살이 으스러졌다

그림자가 엎질러진,

그 자리조차 온화한 좌불坐佛

예견되지 않은,

고난에도 둥근 미소를 머금었다

 

시월의 세파는 너무 가혹했기에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지만

가름하게 뜬 눈으로 염불을 지새우는 새벽

 

어느 세상 그리 바뀌어도

언제나 한결 같던 대자대비의 姿態

 

저 무자비한 법난의 가세에도

좌불의 話頭

언제나 길고도 無量하다

 

 

 

 

 

[장려]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 박미선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들이,

예의 없이

일주문에 들어선 그날.

 

조용하고,

청량한 내음을

풍기던 산사가

긴장감에

감돌던 그날.

 

수행자로서,

평온한 일상을

깨트리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군화에 짓밟히고,

 

바람결에 흔들리던

풍경소리가,

군인들의 분주함 속에

묻히던 그날.

 

무슨 연유로

그러한지

묻는 말에

답변을 듣지도 못한 채,

어떠한 저항을 할 틈도 없이

나는 끌려갔습니다.

 

청정하고,

하염없이 맑은 하늘아래,

나는 일주문 밖으로

끌려갔습니다.

 

 

 


 

[장려] 월정사의 연등 / 박하성

 

만월산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신군부가 저지른 10.27 법난

군홧발에 짓밟힌 자국마다

불의에 저항하던 그날의 불심들로

부처의 문양紋樣을 새긴 걸 보면

 

돋을새김체로 핀 은유의 경전

창검 같은 서릿발을 녹여낸 길 따라

조롱조롱 매달려 금강연을 내지른다

연등 앞세우는 길마다

따라오는 범종소리

 

둥그렇게 몸을 만 꽃등의 행렬

불의한 모서리를 깎으리라

겨우내 억눌렸던 땅이

무도한 권력에 휘둘렸던 불도가

신명身命을 다해 일으킨 무혈혁명이다

월정사에 또 봄이 왔다

 

 

 

 


 

[장려] 백련白蓮처럼, 바라무처럼 / 이윤정

 

바라무처럼 피리라

나비무처럼 피리라

 

화들짝 한 번에

다 피지는 않아도

7월부터 8월을 거쳐

한 송이, 또 한 송이

피고, 피고, 또 피고,

 

연꽃의 뿌리처럼

법난을 이겨내고

우리 이 나라의 불교는

깨끗한 백련처럼 또 피어나

낮고도 어두운 곳에서

도도히 솟아올랐으니

끈질김의 기적을 안다

 

불교를 만날 수 있는

이 시대는 축복이어라

천천히 한 잎, 한 잎

꽃받침을 피워 올리고

그 깊고 깊은 마음을

가만가만 읽어야겠다.

 

 

 

 

 

[장려] 법난속의 꿈길 / 이정훈

 

할매 할매 같이가

할매따라 걸어가는 숲길은 꿈길

꿈길을 깨우는 피묻은 군화발

두려움에 눈을 뜨니 비명속의 대공분실

이곳이 사출산(死出山)인가

혼돈속에 육신의 고통이 힘겹게 깨운다

이보시오 보살님의 아들

나는 초라한 불자요

승복을 돌려주오

그대들의 매질도 부처님께 자비를 구할테니

부디 목탁을 돌려주오

내 육신에 가하는 고문보다

그대들이 기도하는 도량에 범하는 무례함이

내 가슴을 찢는구려

입안 가득 맺힌 통한의 울림은

파형없는 붉은피로 쏟아진다

또다시 혼절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한 절망의 고통이여

입적의 눈물이 혼란한 속세를 적신다

할매따라 걸어가던 숲길이 다시 이어진다

할매 할매 같이가

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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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참회의 서 / 강대식

 

계엄군의 군화발은 법이 없었다.

 

제국의 왕들조차 감히 범하지 못한 신성한 불전을

신군부는 자신들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짓밟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종교적 존엄과 명예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고

수행에 정진하던 승려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대공분실에 끌려가 주리가 틀리고,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얼마나 많은 승려들의 고통이 산천에 메아리 쳤던가?

또 얼마나 많은 불자들이 치욕을 맛보아야 했는가?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백주대낮 이 땅을 수호해야할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벌어졌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으고

백만 번 용서와 화해를 독송해 봐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노여움은 자비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고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 대의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부처님 전에 향을 지펴라

그대들 가슴속에 숨어든 죄업을 스스로 털고

머리 숙여 참회하는 글을 올려

부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에 귀의하라.

 





[최우수상] 참된용서 / 구상균

  

부처님 교단 차지하려는 못된 음모

자객을 보내고 바위를 굴리고

포악한 코끼리를 풀었던 데바닷타

법란은 그의 부활에 다름 아니었네

 

하지만 조선 오백년 배불훼석도

정진으로 이겨낸 우리가 아니던가

산채로 나락에 떨어진 데바닷타를

백담청정 도량에서 보듬어 안아주고

무량한 자비심으로 용서까지 하였었네

 

그럼에도 우리 기억할 일 있다네

계 어기고 방일하면 데바닷타 다시올터

온 도량 청정하게 티끌 없애고

탐진치 삼독 한생각에 끊어내리

 

 정진 오직 정진으로 참된 용서 할 일이네


 


[우수상] 혜성대종사* / 방남수

  

새벽녘

내 몸에 뜬 별 하나

 

법난에 맞서다

불의에 맞서다

석불처럼 되어버린 대종사

 

몸은 무너져도

마음은 청솔처럼 꼿꼿했던

직립의 생이시여

 

이제, 내 몸에

영원히 지지 않는 별로 떠

 

내 갈 길

아프게 밝히고 있다.

  

* 청담선사의 상좌로 본명은 이근배, 법명은 혜성, 법호는 진불장이다. 10.27법난의 최대 피해스님중 한분이다



[우수상] 풍경 소리 / 최일걸


 오오

고요한 사찰의 아침을 짓밟은

군홧발 소리를 엿듣고 있었구나

저 풍경 소리는 아직도

그날의 아픔과 치욕을 읊조리고 있구나

총칼 앞에서 유린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오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도달한

메아리처럼 풍경 소리가

우리들의 귓가를 맴도는구나

아아

저기 저만치

그날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구나

아아

승복이 벗겨지고 고문을 당하는구나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출토를 기다리는 고분처럼 먹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고 있었구나

선문답을 하듯이 풍경을 흔드는 저 바람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구나

너와 나의 귀 기울임 속에서 풍경은

뼈에 사무치는 역사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구나


우리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구나




[장려] 법난, 십우도 / 권수진  


속세에서 거머쥔 권력으로

첩첩산중을 헤매는 어리석은 너를 두고

심우(尋牛)라 부르겠다

그대 군홧발에 짓눌린 자취를 남겨

고요한 산사, 법당을 들이닥친 그 길이 견적(見跡)이다

저 달을 가리켰으나 잡을 수 없네

이미 힘으로 제압하는 폭력은 진실을 떠났으니

차라리 내 마음을 다스리리

불안에 집착하던 불법을 내려놓자

염화미소로 화답하는 부처님 얼굴

때로는 상대를 향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더욱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이 경지를 목우(牧牛)라 말하겠다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부는 휘파람 소리 따라

군용트럭에 올라타는 길

마음속 깊은 곳 자비심은 그대로인데

어제는 뜬 눈으로 염불을 외우다가

오늘은 고문으로 지새우는 밤

본래 몸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에도 몸은 없었나니

나를 잊고, 너를 잊은 이 상태를

인우구망(人牛俱忘)이라 말하겠다

한 세상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역사의 굴레 속에 텅 빈 원(圓) 하나

모든 집착이 사라져버린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다음 세상에 그대를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에게

여전히 손을 내밀 것이다



[장려] 염원(念願) / 김윤영

 

아담하고 소박한 연못 하나

여기저기 피어나는 고운 자태의 연꽃들

바람과 햇볕이 살짜기 어루만지고

어여삐 여기는 부드러운 눈길만이 머물던 그곳

 

갑자기 드리운 짙은 먹구름

낯선 발걸음과 거친 손길에

채 피우지 못한 봉오리도

만개(滿開)한 탐스런 연꽃 송이도

포근히 연꽃을 보듬어 안은 초록잎들도

무참히 꺾이고 찢기고

조용히 눈물 흘리며 떠나는 작은 새

 

쓸쓸한 그곳에 남은 건 햇볕과 바람

진흙 속 움츠린 작은 씨앗 하나

 

햇볕은 더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소근거린다

힘을 내라고

이제 다시 피어나라고

그 때가 되었노라고




[장려] 조계사 앞마당 / 노원국  

  

담벼락이 높아

못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대문이 단단해

못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법 높아

발들이지 못하는 것이오

 

부처님 법 따르는 우리 믿음 단단해

문 열지 못했다네

 

모든 중생 불성은 평등하여 여전히

이 앞마당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단 하나, 이 곳 범하지 못할 이

부처님은 알고 계셨네. 




[장려] 심련개화(心蓮開花) / 이인희


새벽은 늘 찰나에 살았다 죽는 촉화(燭火)처럼

밤을 참회(懺悔)하다 아침으로 소생(蘇生)하고

 

그날의 창은 피부를 뚫고 폐부(肺腑)에 닿아

사생(死生)을 포고(怖苦)하여 눈을 멀게 하는 구나

 

두견새는 무슨 인과(引果)로 저리도 구슬피 우는가

월하(越夏)한 지 오래인데 서릿가을에 찾아와 정온(靜穩)을 해하고

설움 끓는 소리에 검독수리 날아와 쪼아대니 성혈(腥血)이 낭자하네

 

추수동장(秋收冬藏)의 도(道)를 거슬러 세월이 흐르니

자광(慈光)이 농운(濃雲)에 가리어 원각(圓覺)으로 가는 길 스산하다

정화(淨化)가 어찌 실정(失政)의 법도(法度)로 이루어지겠는가

그날을 회과(悔過)하여 육도(六度)를 헤아리고 창명(彰明)하기를

 

온 백성의 심연(深淵)에 화불(化佛)이 고요히 안좌(安坐)하여 연꽃을 띄우네 





[심사평]

 

올해 처음 개최한 10·27 법난 문예공모전에 많은 분들이 시 작품들 보내왔습니다. 10·27 법난 문예공모전의 개최는 1980년 10월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불교계 탄압 사건의 아픔을 되새기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며, 우리의 미래 사회에 상생과 평화의 가치가 확산되기를 서원하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문학은 역사적 사건을 형상화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사람들의 가슴과 기억 속에 영구히 기록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시 부문 작품들의 심사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들은 구상균님의 시 ‘참된 용서’와 강대식 님의 시 ‘참회의 서’였습니다. ‘참된 용서’라는 제목의 작품은 부처님께 위해(危害)를 가하려고 한 데바닷타의 행동을 10·27 법난에 빗댄 작품으로 법난을 화해와 용서로 승화시키되 우리의 도량을 청정하게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방일하지 않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입니다. 반면에 ‘참회의 서’라는 제목의 작품은 10·27 법난의 역사적 교훈을 기술하면서 법난을 자행한 권력이 스스로 깊이 참회하라고 촉구합니다. 특히 “참회하는 글을 올려/ 부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에 귀의하라.”라고 써서 법난을 자행한 권력이 잘못을 깊이 뉘우쳐 부처님의 무량한 자비심에 돌아와 의지하라고 말함으로써 부처님께서 이르신 가장 불교적인 혜안과 해법으로 10·27 법난이 극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드러내내고 있습니다.

 

고심 끝에 불교 사상과 가치를 보다 더 시적으로 표현한 강대식 님의 시 ‘참회의 서’를 대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수상자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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