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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참회의 서 / 강대식

 

계엄군의 군화발은 법이 없었다.

 

제국의 왕들조차 감히 범하지 못한 신성한 불전을

신군부는 자신들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짓밟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종교적 존엄과 명예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고

수행에 정진하던 승려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대공분실에 끌려가 주리가 틀리고,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얼마나 많은 승려들의 고통이 산천에 메아리 쳤던가?

또 얼마나 많은 불자들이 치욕을 맛보아야 했는가?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백주대낮 이 땅을 수호해야할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벌어졌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으고

백만 번 용서와 화해를 독송해 봐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노여움은 자비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고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 대의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부처님 전에 향을 지펴라

그대들 가슴속에 숨어든 죄업을 스스로 털고

머리 숙여 참회하는 글을 올려

부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에 귀의하라.

 





[최우수상] 참된용서 / 구상균

  

부처님 교단 차지하려는 못된 음모

자객을 보내고 바위를 굴리고

포악한 코끼리를 풀었던 데바닷타

법란은 그의 부활에 다름 아니었네

 

하지만 조선 오백년 배불훼석도

정진으로 이겨낸 우리가 아니던가

산채로 나락에 떨어진 데바닷타를

백담청정 도량에서 보듬어 안아주고

무량한 자비심으로 용서까지 하였었네

 

그럼에도 우리 기억할 일 있다네

계 어기고 방일하면 데바닷타 다시올터

온 도량 청정하게 티끌 없애고

탐진치 삼독 한생각에 끊어내리

 

 정진 오직 정진으로 참된 용서 할 일이네


 


[우수상] 혜성대종사* / 방남수

  

새벽녘

내 몸에 뜬 별 하나

 

법난에 맞서다

불의에 맞서다

석불처럼 되어버린 대종사

 

몸은 무너져도

마음은 청솔처럼 꼿꼿했던

직립의 생이시여

 

이제, 내 몸에

영원히 지지 않는 별로 떠

 

내 갈 길

아프게 밝히고 있다.

  

* 청담선사의 상좌로 본명은 이근배, 법명은 혜성, 법호는 진불장이다. 10.27법난의 최대 피해스님중 한분이다



[우수상] 풍경 소리 / 최일걸


 오오

고요한 사찰의 아침을 짓밟은

군홧발 소리를 엿듣고 있었구나

저 풍경 소리는 아직도

그날의 아픔과 치욕을 읊조리고 있구나

총칼 앞에서 유린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오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도달한

메아리처럼 풍경 소리가

우리들의 귓가를 맴도는구나

아아

저기 저만치

그날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구나

아아

승복이 벗겨지고 고문을 당하는구나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출토를 기다리는 고분처럼 먹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고 있었구나

선문답을 하듯이 풍경을 흔드는 저 바람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구나

너와 나의 귀 기울임 속에서 풍경은

뼈에 사무치는 역사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구나


우리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구나




[장려] 법난, 십우도 / 권수진  


속세에서 거머쥔 권력으로

첩첩산중을 헤매는 어리석은 너를 두고

심우(尋牛)라 부르겠다

그대 군홧발에 짓눌린 자취를 남겨

고요한 산사, 법당을 들이닥친 그 길이 견적(見跡)이다

저 달을 가리켰으나 잡을 수 없네

이미 힘으로 제압하는 폭력은 진실을 떠났으니

차라리 내 마음을 다스리리

불안에 집착하던 불법을 내려놓자

염화미소로 화답하는 부처님 얼굴

때로는 상대를 향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더욱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이 경지를 목우(牧牛)라 말하겠다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부는 휘파람 소리 따라

군용트럭에 올라타는 길

마음속 깊은 곳 자비심은 그대로인데

어제는 뜬 눈으로 염불을 외우다가

오늘은 고문으로 지새우는 밤

본래 몸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에도 몸은 없었나니

나를 잊고, 너를 잊은 이 상태를

인우구망(人牛俱忘)이라 말하겠다

한 세상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역사의 굴레 속에 텅 빈 원(圓) 하나

모든 집착이 사라져버린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다음 세상에 그대를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에게

여전히 손을 내밀 것이다



[장려] 염원(念願) / 김윤영

 

아담하고 소박한 연못 하나

여기저기 피어나는 고운 자태의 연꽃들

바람과 햇볕이 살짜기 어루만지고

어여삐 여기는 부드러운 눈길만이 머물던 그곳

 

갑자기 드리운 짙은 먹구름

낯선 발걸음과 거친 손길에

채 피우지 못한 봉오리도

만개(滿開)한 탐스런 연꽃 송이도

포근히 연꽃을 보듬어 안은 초록잎들도

무참히 꺾이고 찢기고

조용히 눈물 흘리며 떠나는 작은 새

 

쓸쓸한 그곳에 남은 건 햇볕과 바람

진흙 속 움츠린 작은 씨앗 하나

 

햇볕은 더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소근거린다

힘을 내라고

이제 다시 피어나라고

그 때가 되었노라고




[장려] 조계사 앞마당 / 노원국  

  

담벼락이 높아

못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대문이 단단해

못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법 높아

발들이지 못하는 것이오

 

부처님 법 따르는 우리 믿음 단단해

문 열지 못했다네

 

모든 중생 불성은 평등하여 여전히

이 앞마당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단 하나, 이 곳 범하지 못할 이

부처님은 알고 계셨네. 




[장려] 심련개화(心蓮開花) / 이인희


새벽은 늘 찰나에 살았다 죽는 촉화(燭火)처럼

밤을 참회(懺悔)하다 아침으로 소생(蘇生)하고

 

그날의 창은 피부를 뚫고 폐부(肺腑)에 닿아

사생(死生)을 포고(怖苦)하여 눈을 멀게 하는 구나

 

두견새는 무슨 인과(引果)로 저리도 구슬피 우는가

월하(越夏)한 지 오래인데 서릿가을에 찾아와 정온(靜穩)을 해하고

설움 끓는 소리에 검독수리 날아와 쪼아대니 성혈(腥血)이 낭자하네

 

추수동장(秋收冬藏)의 도(道)를 거슬러 세월이 흐르니

자광(慈光)이 농운(濃雲)에 가리어 원각(圓覺)으로 가는 길 스산하다

정화(淨化)가 어찌 실정(失政)의 법도(法度)로 이루어지겠는가

그날을 회과(悔過)하여 육도(六度)를 헤아리고 창명(彰明)하기를

 

온 백성의 심연(深淵)에 화불(化佛)이 고요히 안좌(安坐)하여 연꽃을 띄우네 





[심사평]

 

올해 처음 개최한 10·27 법난 문예공모전에 많은 분들이 시 작품들 보내왔습니다. 10·27 법난 문예공모전의 개최는 1980년 10월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불교계 탄압 사건의 아픔을 되새기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며, 우리의 미래 사회에 상생과 평화의 가치가 확산되기를 서원하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문학은 역사적 사건을 형상화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사람들의 가슴과 기억 속에 영구히 기록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시 부문 작품들의 심사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들은 구상균님의 시 ‘참된 용서’와 강대식 님의 시 ‘참회의 서’였습니다. ‘참된 용서’라는 제목의 작품은 부처님께 위해(危害)를 가하려고 한 데바닷타의 행동을 10·27 법난에 빗댄 작품으로 법난을 화해와 용서로 승화시키되 우리의 도량을 청정하게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방일하지 않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입니다. 반면에 ‘참회의 서’라는 제목의 작품은 10·27 법난의 역사적 교훈을 기술하면서 법난을 자행한 권력이 스스로 깊이 참회하라고 촉구합니다. 특히 “참회하는 글을 올려/ 부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에 귀의하라.”라고 써서 법난을 자행한 권력이 잘못을 깊이 뉘우쳐 부처님의 무량한 자비심에 돌아와 의지하라고 말함으로써 부처님께서 이르신 가장 불교적인 혜안과 해법으로 10·27 법난이 극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드러내내고 있습니다.

 

고심 끝에 불교 사상과 가치를 보다 더 시적으로 표현한 강대식 님의 시 ‘참회의 서’를 대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수상자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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