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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꽃피는 레미콘 / 황보림


출산이 임박해온 암소가

달동네 무더위 속을 오른다

만삭의 몸으로 보폭을 잃지 않던 엄마처럼

속도를 유지하며 달린다

얼마나 돌도 돌아야 저 언덕까지 피가 돌 수 있을까

늘 한 쪽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너와 나와 그들이 썩이는 내장 속

곧 태어날 심장이 꿈틀거린다

박동 약해질까 봐 몸 닳는 산모

자궁을 수축할 시간도 없이

질척하게 엉긴 살점들을 와르르 쏟아낸다

바닥을 차올라 기둥을 세우먀 제 몸 굳히는

모래 사원이 어느 신전보다 뜨겁다

궁핍한 살림에도 오로지 식솔들 건사하며

나를 딛고 올라서라

지금도 굽은 등을 내미는 팔순의 엄마

엄마의 밑자리처럼

레미콘의 숨결이 굳어진 든든한 기반

비탈길 오르내리는 엔진소리에

검은 잠에 빠져 있던 빈터가

우뚝우뚝 꽃동네를 이룬다






[우수상] 못에 대한 단상 / 정성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쓸 영정 사진을 걸려고

안방 벽에 못을 박았다

못머리를 쳐대자

콘크리트 벽은 

아직은 못을 받아드릴 때가 안 되었다는 듯이

구부러지고 만다

못을 바르게 세워 쳐 댈수록

제 몸의 상처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벽

사정없이 망치질을 해 대자

못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이

날카로운 끝을 생살에 받아들인다

올곧게 서 있는 못에

아버지의 일생을 걸어두자

굽은 못도

바로 세워 주기만 하면

제 할 일 다 할 수 있다고

자존심을 세운다

참 다행이다

작은 못 하나가

방안에서는 영정사진걸이가 되고

부엌에서는 냄비걸이가 되고

뒤안 벽에서는

삽걸이 호미걸이가 되다니

못의 위대한 힘이 꽃으로 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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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못 / 박용운


길에 버려진 못하나

무심코 걷어찬다

발길질에 도르르 굴러가는 못을 보며 문득,

누군가의 무릎을 걷어찬 느낌


어디에서 빠져나와 길에 버려졌을까


찌그러지고 허리마저 굽었다

무언가를 물고 버티었을 시간이 온몸에 흔적으로 남았다


호된 망치에 맞으며

모서리를 잇고 틈을 메웠을 작은 못하나

누군가의 힘찬 못질소리에 아침이 일어서고

세상은 허리를 펴고

언덕은 산이 되고


못이 빠져나간 자리는 얼마나 중심이 기울었을까


이제 알겠다

아궁이 재를 쓸어내고 재 묻은 못을 하나 하나 고르던 아버지

망치로 두드려 펴던 그 못들이

세상의 무게에 휘어진

아버지의 등뼈였음을


한 됫박의 못을 모아

삐걱거리는 대문을 고치고 외양간을 고치고

기울어진 방문을 바로잡던 사랑의 노역勞役

그 못질 소리에 우리의 키가 반듯해졌다


슬그머니 못을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아버지가 늘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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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제비꽃인력소 / 한주영

 

톱밥을 집어 던지는 목장갑에

잠시 온기가 돋았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제비꽃 인력사무소

수많은 이름들 중에 왜 하필 제비꽃일까

물에 잘 섞이지 않는 기한 지난 시멘트 반죽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인부들이 불 앞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김 차장이라 통하는 김이

불쏘시개로 드럼통을 쑤시자

부서진 삭정이들 사이에 박혀 있는 못들이

불을 더 세게 쥐며 휜다

쑤시는 곳이 많아도 파스 한 장으로 봉합된 어깨에

화근거리는 새소리가 조잘조잘 앉았다가 가고

김은 코에 묻은 검댕을 제 검지로 연신 문지르며

인부수첩을 넘긴다

동이 틀 듯 긴장한 가건물 사이의 허공이

쓴 구름에 휩싸여 흐리게 빛을 풀고

때마침 수첩 페이지를 넘기자 바스락거리던 이름들

종이 끝이 나무였을 적을 기억하려

습기를 그러모아 문드러진다

그늘이 깊던 인부들의 낯빞 위로는 새벽달이 먼저 기우는 것

틈이 되는 낮은 곳마다 제 발을 들여놓는 제비꽃이

결국에[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꽃을 틔우는 것처럼

김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머쓱한 얼굴로 수첩 속으로 휘갈겨 쓰인 인부들의 하루는

꾹꾹 눌러 씨앗처럼 눌러 적힌다

그간 이 수첩의 두께가 빌딩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

나눠 피던 담배 연기 속에도

오늘과 같은 여러 날의 새벽과 함께

먹줄을 튕기던 벽이 있어

비를 머금고 있던 구름이 천천히 물러나

곧 동이 튼다

그제야 간판 불을 내려오는 제비꽃 인력사무소

자줏빛 꽃자리가 굽은 등처럼 휘는 모습이

김의 동공 위로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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