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부] 꽃잎미끼 / 임경헌
낚시꾼, 섬진강가에 퍼질러 누워 실지렁이들 상주 노릇을 하고 있네, 물결에 잡아먹혀 꿈틀거리는 살점을 좀 봐, 비린내만 펄떡펄떡 꼬리를 치지, 가끔 붕어가 수면을 뻐끔뻐끔 불어대도 낚이는 건 물결 뿐, 물살의 식욕은 웅덩이로 깊어져가고, 미끼는 어둠으로 스며드네, 허기 진 왜가리, 거꾸로 물살 타는 조팝꽃 한 아름 콕콕 쪼아대는데, 찌는 여전히 심연의 절벽에서 자맥질하고, 떨어져 누운 꽃잎들 저들끼리 지껄여대고
낚싯줄에 물린, 만선의 꿈
한 번 휘둘러 릴을 돌리니
피라미, 수직의 힘에 턱이 꿰이네
강물이 실지렁이만한 물고리 한 마리 게워내고 있어, 낚시꾼 붕어만한 허파를 물굽이에 띄어 보내지, 팔뚝만한 강의 비늘들, 끝내 강의 밑바닥으로 파고 들고, 종일 실지렁이를 수장시켜 얻은 건 저린 다리 뿐인데, 홀로 고수인 사내, 또다시 정적이 입질 중이네, 물비늘도 조팝꽃을 미끼로 걸어 한몫을 다짐하고, 끝내 꽃잎에 낚인 봄, 힘차게 물질 중이야
[고등부] 호두 한 알 / 김경민
두꺼운 벽 너머 봉숭아 꽃망울 터뜨리는 봄빛산부인과
유리문 사이로 울음소리 하나가 터져나온다 순간
한껏 부풀었다 줄어들기 시작한 빈집 하나
호두과자를 굽는 여자는 때마침 달그락, 철판을 뒤집는다
모양틀에 반죽을 불고 앙금을 잘라넣을 때
안쪽부터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아랫배
그녀는 사라진 집의 기억으로 호두의 형상을 빚는다
유리문이 열리고 부푼 배를 안고 나오는 임산부
한 그루의 여자
단단하게 부푼 배에는
여러 갈래 주름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밀가루로 빚은 껍질은 단단하지 못하다
줄어들기 시작한 세계처럼
금방 식어버리는 호두과자
뿌리없이 열리는 그녀의 열매들은
주름을 입고 순식간에 늙어버리고
불을 조절하는 여자의 아랫배는
잠시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텅 빈 호두알
바삭한 첫 울음 터뜨리며 굴러나온다
식은 과자를 담는 종이봉투에서
바스락, 마른 잎 소리가 난다
한그루 호두나무 불판에 데였는지 가지를 쓱쓱 문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