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부] 대과거 / 전명환
이젠 모서리가 없는 관계를 믿을 수 있다
창틀 너머의 사건들에 관해서는 몰라도
미끄러지는 발자국은 여태 모아두었다
발자국이 쌓여 벽지 위에 계속 자라고 불 꺼진
하루는 병든 생각처럼 씹혀서
바닥도 언젠가 꺼져버릴 거라고 믿고 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과학자의 잠언과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는 당신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을 두드리면 죽은 소리가 난다
두드리고, 두드리다 보면 대답하지 않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배울 수 있다
배울 수 있는 하루는 얼마나 비참한지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있다면
아무 일도 없는 하루의 어제와 또
하루의 어제에 대해 떠올리고 싶다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가 우는 모습과
고양이 사진이 있고 사진이 없는,
지진처럼 지나가는 열차가 떠오르면
사람들 모습 사이 들어 있는 당신과
(당신 옆에서 깜빡이는 그림자)
방 안에서는 항상 가로등이 보이는데
바깥에서 안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나는 닿을 수 없는 時制를 획득한다
무딘 조명 아래 차분하게 쌓이는 시간과
희미해지는 경계 덕분에 정말로
모서리가 없는 관계를 믿게 되었다
[고등부] 몽상 / 황주연
성년의 날 머리맡에 장미가 놓이기 전까지
몽상은 나를 살게 했어
여기는 침대가 아닌 선술집
가죽신발로 발을 구르고 선장과 건배를 하지
돛을 두른 여왕님을 따라 우리는 바다의 기사
용기 한줌으로 황금을 산다네
좋은 술 한통이면 모두와 친구가 되지
여관 주인은 말리지 않고 노래는 빨라지네
눈을 뜨면 보이는 천장과 야광별 스티커
헤진 스티커가 더 이상 발광하지 않을 때
여기는 길거리가 아닌 사막별이야
나는 월세 찾아 방랑하는 음유시인
운하에 들어오는 거대한 유람선은
바쁜 사람들을 싣고 도심으로 흐르네
액정을 보느라 굳은 사람들 얼굴은
밝은 크림색도 있고 구릿빛도 있어
동물원에 도착해서 먹이를 주려 했지
앵무새는 석류 대신 터키석을 물어가네
불씨 남은 담배가 침침하게 빛나는 거리
언제부터였을까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복잡해진 몽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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