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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가 / 홍재운

 

 

A4 용지는 비누를 모릅니다 빗방울은 음악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렁크는 오늘의 핵심을 모릅니다 핵심은 나를 모릅니다 아파트는 인천공항을 모르고 인천공항은 소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기 날아가는 바닥의 하늘은 푸른 신호등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새가 아닙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소파를 꿈꿀 수 없으며, 암 덩어리들이 교차로일 수 없으며, 그래서 안나푸르나에는 지금도 물고기들이 산으로 흘러갑니다 22번 게이트를 빠져나간 오늘이 흘러갑니다 오늘부터 침대는 침대의 생각을 모릅니다 거울은 새벽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절은 사람의 길을 따라 오지 않습니다 흐르는 음악은 길이 없습니다 어제의 비가 오늘도 내립니다 오늘 내린 어제가 내일도 내립니다 바다 건너 13시간은 입이 아니기에 나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은 바다가 아니기에 구겨진 양말 앞에서 사라진 오늘에 대해,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줄줄 흘러내리는 나를 모릅니다

 

 

 

 

안녕, 푸른 고래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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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와세계 작품상 심사 경위

 

<시와세계작품>은 선과 아방가르드를 통한 현대시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참신하고 미래지향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격려하는 취지에서<시와세계작품상>이 제정되어 올해로 제 5회를 맞는다.

 

수상작품은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하였으며 예심위원은 전년도 수상자이거나 수상 범주에 들지 않는 시인들로 구성하여 51일부터 선발작업에 들어갔다.

 

예심위원은 선발기준에 따라 2000-2010년 사이 등단한 시인으로 2012년 여름호부터 2014년 봄호까지(8) 시와세계에 발표한 시 2편을 중심으로 선발하고 타우수문예지에 실린 3편의 작품을 포함하여 시와세계의 창간목적과 본 상의 설립목적에 맞는 현대시, 아방가르드 시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하는 시인들에게 관심을 두고 선발하였다.

 

1차로 20명의 시인들을 선발하고 다시 편집부에서 7명의 시인을 선발하여 심사 1주일 전에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심사위원들께 송달하였다.

 

본심 심사는 설태수 시인과 이수명 시인 그리고 시와세계주간인 송준영 시인이 심사를 하였다.

 

5시와세계 작품상본심에 오른 후보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강미영 (2005)-<잔치>4

2. 김영찬 (2002)-<삼각형이 생각 할 줄 안다면>4

3. 유형진 (2001)-<허니 밀크 랜드의 녹슨 이마와 축축한 손>3

4. 이제니 (2008)-<작고 검은 상자>4

5. 조민 (2004)- <속수무책>4

6. 최승철 (2002)- <눈 속의 탁상시계1>4

7. 홍재운 (2005)-<오늘 비가>4

 

먼저 송준영 주간이 <시와세계작품상>의 취지와 심사경위, 심사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심사에 들어갔다.

 

심사방법은 3명의 심사위원이 3명의 시인을 추천하고 교집합으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2-3명 시인의 작품을 집중 분석 토론하여 그중 1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검토 분석하면서 현대시의 모호성과 난해함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난해함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본다면 첫째는 독자와의 소통단절 혹은 소통 부재에서 오는 난해함을 들 수 있고 둘째는 작품의 깊이가 너무 심오하여 독자가 소통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 이 두 가지는 결국 통념적인 가족성의 문제 유기성의 문제이며 우리 몸의 피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듯이 동맥경화증적인 시의 문제점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또한 현대시에서의 이질적인 정보와 이미지 병치 기법, 자유연상을 통한 문장 병치기법, 자동기술법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는 현대시의 폭 넓은 표현으로 소통의 음역을 확보할 수 있는 시들에 대한 토론이 중점으로 이루어졌다.

 

심사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3명의 시인을 가려내는 일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이수명 시인이 홍재운, 최승철 시인을 추천했고, 설태수 시인은 홍재운 최승철, 이제니, 김영찬 시인을 추천하였으며 송준영 시인은 강미영, 홍재운, 유형진 시인을 추천하였다.

 

심사위원 3명의 추천을 받은 홍재운 시인과 2명의 추천을 받은 최승철 시인을 대상으로 토론을 했다.

 

최승철 시인의 시 눈 속의 탁상시계1」 「눈속의 탁상시계 2두 편은 좋은 작품이며 거대한 역동적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하였고, 그의 리얼리즘적인 시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고 말하였다.

 

심사위원 3명의 추천을 받은 홍재운의 시는 5편이 모두 고르게 우수하며 특히 오늘비가」「역광」 「소설이 오고가 주목을 받았다.

 

오늘 비가는 부재의 현실을 모릅니다로 반복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폭 넓은 문장과 감각을 교차하며 자동기술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심히 떠오르는 대상은 소년이지만 시인은 소년이 아닌 자신의 부재를 노래하고 있는 아파트 안의 자신이다. 주목을 받은역광은 표면이 넓고 힘이 있는 작품으로 독특한 구조와 상호 협동하는 문체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메시지의 통일성과 일관성이 메타적이다. 홍재운 시인의 소설이 오고또한 아름답고 경쾌한 작품이며 홍재운의 시들은 피가 고루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하였다.

 

이와같이 홍재운의 시들은 살아 움직이는 리듬감과 거침없는 진전과 확산, 그리고 언어의 마찰이 넓고 좁은 각도를 지나 객관적인 설득력을 얻기까지 그의 뛰어난 창조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제5시와세계 작품상심사에 수고해주신 예심위원 김미정, 이덕주, 본인을 포함한 최세라 시인과 본심 심사를 맡아준 설태수 시인, 이수명 시인 그리고 본지의 주간 겸 발행인 송준영 시인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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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 / 김현신

 

 

의 웃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천진한 웃음은,

어쩌면 더 진한 신음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기호로 실감한다

 

지하육각형의 방에서 퇴색해가는 구멍은, 눈발 냄새가 난다 무거울 것도 가벼울 것도 없는, 뼈의 감정 같은 우울의 무게가 더해진다 몸을 움츠리는 그림자는, 흐느끼는 눈발은, 어떤 원죄도 속죄도 모르리라, 이 아름다운 외투는 신들이 길을 잃은 자세이다, 제 살을 뜯어먹은 입이다 그건, 꼬리가 잘리고 살갗이 갈라지고 말라터진 파편 위를 지나는 형상이다

 

구불거리는 충동에 시달린다 긴 목에 체인을 감는다

 

납처럼 굳어갈지 모르는, 공포다 구멍을 맴돈다 흉터를 긁으며 오직 구멍을 찾아

충동은 빈곳을 채워간다 누군가,

 

은빛비늘을 만지며 섬듯한 촉감을 빈들에 채울 수 있을 건가, 의 꼬리는 늘 허공이다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허리가 긴 파도다 귓속말을 엿듣는 살갗은, 다시 우울의 무게가 더해진다 폐기되는 죽음은 여전히 비수다 몸은 희고 길지만 음색은 굵고 파편냄새를 풍긴다

 

는 당연히 전달 받은 자의 몫이다

유전자 깊숙이 나를 새겨본다

 

 

 

 

애수역에서 트렁크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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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 낯설지만 아름답다

 

낯선 공간을 맴돌았다 꽃이 피지 않는 봄, 대지는 차가 왔고. 스스로 습지를 찾아가는 열정도 간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타자와의 교감을 성립하려했다. 언어를 사랑 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려고 했다. 도시의 어두운 모퉁이를 맴돌았고, 텅 빈 내면은 그저 흐느끼고 있을 뿐, 뒷모습은 늘 불안했다. 그러면서 시의 세계에 꽃을 피우려 했다.

 

시간을 부정하고 싶었고, 존재의 영원성을, 부재의 아픔을, 시로 전달하고 싶었다. 시공을 넘어서는 언어의 꽃,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교감하려고 했고, 갈증과 우울 불안으로 가득한 이미지를 폭발하기도 했다. 죽음과 소멸로 가득한 시어들이 종일 가슴으로 흐르는 그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푸가의 기법을 쓰기도 했다. 어쩌면 소멸로부터 자유스러워지려는 변신의 욕망이었을 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대책 없는 상실감으로 아팠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옴으로써 아름다운 소멸을 시 속으로 끌어들였다. 불안은 내면의 세계요. 선험적인 감정이다. 거대하고 낭만적인 시인의 모습과는 달리 항상 작고 초라한 쇄락해가는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현실과 초월의 세계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가끔, 부재에서 존재를 발견하곤 했다.

 

, 무언지도 모르면서 를 썼고, 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죽음과 소멸, 사라지는 것들, 어둠으로 가득한 시어를 남발했다. 시는 읽을 때도 어렵고 쓸 때도 어렵다. 이별도, 불안도 그 존재를 가볍게 겉만 핥으며 지나간다. 부족함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시를 썼고, 심한 갈증을 참으면서도 시를 썼다. , 심오하고 아름다운 시적창조는 언어의 위반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 무어냐고 물으면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림자의 말, 언어의 꽃, 생생하게 감지되는 물결이다. 들리지 않는 돌의 말, 자꾸 말을 걸어보고 싶은 동료,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고백 같은 거, 알 수 없는 칼바람의 끝 같은 거, 잿빛 구름 같은 거, 혼자 끓어 넘치는 커피 물 같은 거,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중간인지 모호하지만, 이 순간 나는 <시인>이란 언어에 매력을 느낀다. 이제야, 시의 세계에 첫발을 디뎌보는 느낌이다. 지금도 홀로 시를 쓰고 있는 시를 사랑하는 문우들과 고독을 함께하고 싶다. 앞으로 더 넓어진 시각으로 볼 수 없었던 세계를 깊숙이 바라보는 초월적인 시공을 통하여 언어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시인이 되려고 한다.

 

끝으로 늦은 나이에 시를 향한 열정으로 헤매는 나를 이해하고 용기를 갖도록 도와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 동행하고 있는 문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시 속에서 흐느끼고 있는 가냘픈 나에게 끊임없이 시인의 길로 인도해주신 스승님들, 그 깊은 가르침을 평생 양식으로 간직할 것이며, 이번에 수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시와세계작품상>을 제정해주신 <시와세계> 발행인 겸 주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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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대화 / 김미정

 

 

어항의 입구가 벌어진다

그 넓이만큼 퍼진 귀의 식욕이 수면을 바라본다

물고기가 투명한 소리를 뱉는다 ; 삼킨다

언젠가 말하지 못한 고백처럼

우린 어항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어항이 꿈틀거린다

투명한 울림, 소리의 본적이다

입술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힘껏 던져도 깨지지 않는 혀를

너는 내민다 ; 넣는다

입 모양만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당신의 말들이

쌓이고 쌓여 어항을 채운다

사다리가 늘어나고 큰 자루가 필요하다

소리가 움직인다 아래 ;

잎사귀들이 함께 넘친다

이제 귀는 떠난 소리를 그물로 떠올리고 있다

물고기들이 강을 따라 흘러간다

어항의 침묵이 시끄럽게 들리는 오후

누군가 유리컵을 두드리고

헐거워진 귀가 바닥에 떨어진다

 

 

 

 

물고기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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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별맛도 나지 않는 시간 속으로

 

입 안 가득 고여 오는 오늘의 맛, 또 어제의 맛, 하늘 속에 박혀있는 구름의 맛이 숙성되어가는 시간들이다. 착각과 오해로 뒤엉킨 이름다운 혼동이 사랑이라면 내 시는 사랑의 오독이다. 구름의 낱말들이 얼굴로 쏟아진다. 몸에서 둥글고 단단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실루엣 가득한 창들이 우리를 마주하는 밤, 별맛도 나지 않는 시간이 별처럼 걸려있다. 입 안 가득 고여 오는 그 시간들이 가 되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의 깃발을 보여준다. 나의 손과 발과 혀가 닿고 싶은 곳이며 일상의 표면을 뚫고 불현듯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언어로 꽃피워낸 시편들이 일상 속에서 경계의 능선을 그린다. 세상의 껍질이 조금 열린 듯 빛이 새어 들어온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아니 웅크리고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뭔가를 찾고 있다. 그것이 발밑에 가라앉은 먼지인지, 보도 블록사이 고개 내민 잡풀인지 모른다. 하지만 난 웅크린 자세다. 태초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웅크린 자세로 연약함을 무기로 하여 지금껏 버티어 왔다. 나 자신이 어떤 대상과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내 안에 숨어 있던 내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가까스로 알아차린다. 그 순간, 시가 태어난다. 점점 녹아 사라져가는 풍경이 내 시의 배경이다. 나를 키운 것은 사라져가는 밤바다의 불빛이고, 결핍이며, 고독과의 연대였다. 이제 그 무엇을 위해 미끄러지며 변화할 것이다. ‘그 무엇이 곧 소멸해 버리고 말지라도 존재의 순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별맛도 나지 않는 시간 속으로 치열하게 달려가 조금 더 깊이 손과 발을 넣어 만질 것이다.

 

끝으로 나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가족들과 문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항상 뜨거운 손길로 격려와 용기를 주시고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는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영원한 의 원천이 되어주신 이승훈 교수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심사평] 본질과 현상의 해동점

 

예심은 전년도와 같이 시와세계편집부에서 하였으며 2012426일 목요일 오후 6, 시와세계사무실에서 본심이 이뤄졌다. 본심은 발행인 겸 주간인 송준영 시인과, 김영남 시인, 이재훈 시인이 심사했다. 3<시와세계작품상>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강윤순 발라드3

2. 김미정 투명한 대화3

3. 박장호 허공의 개미집3

4. 서승현 편백나무 숲의 연리지처럼3

5. 심언주 소통의 안과 밖3

6. 유금옥 나무와 나의 공통점3

7. 유현숙 불의 원죄3

8. 최금진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3

9. 한미숙 너의 담배는 어디 갔니?1

10. 홍재운 연금술사의 환상여행3

 

본심은 미리 배부한 작품을 검토하고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송준영 주간은 강윤순, 김미정, 유금옥, 최금진 시인을 김영남 시인은 김미정, 유금옥, 홍재운 시인을 이재훈 시인은 박장호, 김미정, 유금옥, 최금진 시인을 추천하여 결국 수상 후보는 김미정, 유금옥, 최금진 시인으로 좁혀졌다.

 

가장 먼저 논의된 최금진 시인의 경우, 작품이 다소 장황하고 변신에 대한 노력이 아쉬울 뿐 아니라 시와세계가 추구하는 아방가르드와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그간 최금진 시인이 보여준 문명에 대한 자의식, 도시인의 고투 등 본인만의 차별화된 서정을 보여준 점, 지속적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온 점 등은 높이 평가되었다.

 

두 번째로 유금옥 시인의 경우, 밝고 경쾌한 표현과 발상 리듬 등이 장점이나 작품이 다소 평면적이며 깊이가 약하여 당선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없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마지막으로 김미정 시인의 경우, 본질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며 경제적인 언어, 새로운 언어를 추구하는 태도 및 현대시가 나아갈 방향과 관련지어 볼 때도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김미정 시인의 하드와 아이스크림을 제3<시와세계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위원 송준영(시와세계 발행인) 김영남,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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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이외의 것 / 이근화

 

 

삼십 미터 위의 나뭇잎

나뭇잎

기린의 입속 나뭇잎 나뭇잎

나뭇잎도 미치고 말거야

십오 분 동안 나뭇잎

삼일 동안 나뭇잎

그러나 나뭇잎으로 가릴 수 없는 것이 많다

나는 빵 이외의 것은 믿지 않아

빵이 찢어지면서 거짓말이 툭 튀어나올 때

나의 입술은 왜 부풀어 오르는가

 

이토록 부드럽고 달콤하고 백색이어도 좋은가

네 입속 일까지 관여할 수는 없어서

커다란 손에 입 맞추고

나는 바깥이 된다

안녕

안녕

안녕

그 다음은 무엇이 될까

너의 손바닥에 들러붙어도 좋을까

 

네 손바닥으로부터

비 오는 골목길처럼 부드럽게 풀려나온다면

빵 이외의 것에 대한 믿음도 솟아오르겠지만

나는 너무 남아돌아서 문제다

굶주린 사자처럼 나뭇잎을 센다

하나

그 다음은 너무 쉬운 것 같다

 

너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

믿음은 자라고

믿음은 부풀고

믿음은 터진다

동네 빵집을 탐구하듯

오래된 슈크림과 소보로를 무너뜨리듯

너를 무너뜨리고

 

빠른 속도로 나뭇잎 나뭇잎 나뭇잎

서서 자는 기린의 옆에 눕는다

허공이라는 달콤한 이불을 덮는다

영원토록 떨어지는 나뭇잎이 있다면

나뭇잎의 생도 그럴 듯해지겠지

반듯하고 차가운 병원 건물이 식빵 같았고

군침이 돌고 말았다

 

저 많은 병의 이름을 입속에 넣고 굴린다면

나의 얼굴과 너의 표정이 하나가 되는 마술이 펼쳐지겠지

대신에 나는 너를 주머니에 넣고 꾹꾹 눌렀다

꺼내서 조금씩 씹었다

목구멍으로 거짓말이 어렵게 넘어갔다

이제 나뭇잎을 주울 차례

네가 검은 새가 될 때까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끝까지 거울을 본다

긴 손가락으로 빵을 찢는다

 

 

 

 

칸트의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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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딱딱하고 가지런한 이름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면 좋겠다. 날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계절마다 이름을 바꾼다면 이 어수선한 봄날, 내게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이름이 두 글자가 아니라면 또 어떨까. 오늘 나는 고양이 목걸이를 하고 걸어가는 목 쉰 사람’ . 내일은 꿈속의 물컹한 손가락’ . 이름이 없으면 좋을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냥 나를 이라 불러 줬으면 좋을 것 같은 날도 있다. 내가 쓴 작품들을 나의 긴 이름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내가 길어지거나 뚱뚱해지거나 재밌거나 지루하거나. 그런데 오늘도 내 이름은 가지런하고 삐딱하다. 내 앞으로 우편물이 세 개 도착했다. 우리집 꼬마는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다 까까 꼬꼬라 부른다. 밥도 과일도 책도 텔레비전도 까까 꼬꼬가 있으면 좋겠다.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아무나에게 손을 흔들고 무엇에게도 다 인사를 한다. 다 사랑할 수 없어서 나는날마다 다른 이름을 꿈꾸고 헤매고 멈추고 넘어지는 것 같다. 나의 긴 이름을 불러주신 송준영, 이만식, 이수명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좀 더 창조적으로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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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2004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2006),우리들의 진화(2009) 윤동주상 젊은 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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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고 훔치고 / 김이듬

 

 

번개처럼 떨어지는 접시를 받았다

바나나가 있는 접시였다

바나나가 좋아

난 바나나가 좋아

다 주세요

위에 대고 소리 질렀다

 

내일부터 접시 닦기를 할 거예요

내 꿈은 작고 웃기는 거

 

껍질을 벗기면 하얀 과육이 나오고 빨면 즙이 나오는

바나나는 신기해

나는 아껴서 핥아먹었다

눈을 감고

달빛이 펼쳐진 장원에 누워

조금만 부드럽게

 

어서 자둬

내일은 바쁠 거야

 

내 신발에 축축한 발을 담고 있는 너

만나기 전인지 후인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이 마지막으로 널 본 날이었어

우리가 큰돈을 벌 생각은 아니었잖니

 

오늘은 푹 자자 내일부터 바쁠 거야

 

눈을 떠보니 학교였고

새벽 두 시에

난 물을 마시려고 수도 아래 입을 벌리고 있었다

 

 

 

 

명랑하라 팜 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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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1포에지로 등단하여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를 발간했다.

 

1회 시와세계작품상(2010)과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경상대, 경남과학기술대 등에 출강하며 진주KBS라디오 김이듬의 월요시선(月曜詩選)’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선정되어 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 간 생활했고, 2013년 여름부터 석 달간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한국작가로 참가하였다.

 

2020히스테리아(Hysteria)시집으로 미국에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1인 독립 책방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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