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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명지소금 / 김영욱

 

 

명지도를 아십니까

이제는 소금 한 섬 채울 수 없는 섬 아닌 섬

큰 비나 큰 가뭄이나 큰 바람을 미리 알고

슬픈 섬이 되어 울던 낙동강 끄트머리

돛배나 타고서 다다르던 명지 끝물도 어느덧

토박이 가슴팍에 응어리진 오지 중의 오지인 섬, 시퍼런 파밭과 아파트 단지 아래 매몰된

짜디 짠 소금이슬이 가마솥을 들썩이던 명지도가 낳은

한 알 한 알 금쪽같던 조선의 소금을 아십니까

발품팔이 김정호가 화선지 같은 백사장이라고

먹물로 새겨 넣은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펼쳐놓고

명지도를 콕 짚으면 손가락 끝에 착한 소금

하얗게 묻어날 것도 같은 섬에서

하루 종일 백 말의 바닷물을 끓여도 눈썹만 탄 소금쟁이

등골 빠지게 괴롭히던 염전 터는 어디에 묻힌 걸까요

모래톱에 달궈진 모래알은 잘지도 굵지도 않고

강바람과 바닷바람만 뒤숭숭 들쑤시는 갈대밭에선

까맣게 잊힌 망깨소리*도 들려오는 듯

바다를 등짐 지고 오는 파도는 오늘따라

백금 같고 천금 같은 소금을 내 발등에 내뱉건만

소금의 고독을 느끼는 순간 사라지는

소금꽃은 섬의 눈물일까요

짠내 풍기는 물길 거슬러

오가는 철새 따라 소금길이 나던 섬

섯구덩이**마다 바다의 함수를 풀어내던

통째로 가마이던 섬 어디선가

소금 굽는 연기가 저녁놀을 덮은 섬, 명지도를 아십니까

그곳에서 섬이 낳은 최고의 소금 한 섬, 임금님 수랏상까지 올랐다던

명지소금이라고 들어는 보셨습니까

 

* 망깨소리 - 명지 섬에서 소금을 굽던 시절, 염전을 보호하기 위해 둑을 쌓을 때, 소금가마를 설치 할 때 모래땅을 다지면서 부르던 노래

** 섯구덩이 - 전통적인 자염 생산 방식에서, 바닷물을 모으기 위해 갯벌을 파고 나뭇잎과 짚 등으로 여과 장치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

 

 

 

 

[은상] 장보고 / 김두래

- 궁복(弓福)*, 바다를 쏘다

 

서남해안 끝자락

짭짜름한 파도내음 코 끝에 묻힌 섬소년

사람들은 그를 궁복(弓福)이라 불렀다

 

바다를 호령하는 자 천하를 호령하리

갑판에 올라 시위에 포부(抱負)를 걸고 대망(大望)을 향해 겨누는 순간

날이 선 화살촉이 타오르는 태양에

반짝

바다의 눈부심이 이토록 찬란했던가

 

푸른 바다 품어 안던 태양

다시 그 품으로 안기어 들고

한데 모여 타오르던 붉은 점도

옆으로 옆으로 물 먹은 듯 옅어지는 때

거미줄에 걸린 저 석양

저와 내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창해(滄海)의 냉혹함을 속삭이는데

거미줄 따위야 베어내면 그만이다

찰나의 칼 끝에서 자유를 되찾는 석양

 

그런데 그 거미줄

내 마음속에 옮겨왔던가

도무지 이 안에 들어앉은 거미줄은 끊어 낼 재간이 없다

 

태양이 그림자마저 감추고

하늘과 바다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광할한 칠흑의 시간 앞에서

사내는 출렁임에 몸을 내맡긴다

토해낸다

옥죄던 굴레와 사슬을 저 검은 심해에 던져버린다

어제의 의심과 오늘의 두려움과 내일의 폭풍우를 모두 토해내고 고개를 든 순간

칠흑 위에 빛나는 것들이

반짝

바다의 황홀함이 이토록 찬란하다

 

태양 다시 기지개 펴고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새벽을 알리는 때

바다를 호령하는 자 천하를 호령하리

여기 돋아오르는 해가 비추는 곳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나서는 항해자가 있다

 

미지의 세계에 그물을 내던진 도전자가 있다

그와 함께하는 바다가 있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함

 

 

 

 

[동상] 해녀 3대 / 박정애

 

 

1.

엄마는 칠보청동바다를 물려주었다

평생 파먹고도 남을 화수분 바다 한 채를

한 귀퉁이를 썩둑 잘라주었다

두렁박 떠 있는 곳이면 엄마가 있는 곳

눈 화살을 꽂고 바라보면

바다에서 솟아오른 엄마는

호오잇, 소리 지르곤 본숭만숭 이내 물속에 들던

그 어머니 딸이 자라 해녀가 되었다

일고여덟에 물장구 헤엄치기가

열두 세살에 물려받은 두렁박을 안고

제 몫을 하는 어린해녀가 되었다

아이를 밴 만삭의 몸으로 출산 한 칠 안

삼동 물속을 들었던 어머니도

어머니의 어머니도 해녀였다

 

흰 홑적삼 검정물소중이가 광목(廣木)이라

차디찬 겨울바다에 알몸이나 진배없어

식은 한뎃밥 한 덩이 먹자고 바람의지

바위틈 불턱에 앉으면 장작불 매운 연기에

울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젖어서 언 몸이 오죽이나 추웠으면

언 살이 불에 데어도 몰랐다

 

남편을 잃고 자식 앞세운 울화도 외로움도

곤두물질에 들면 바다가 달래고 씻어주어

물속에선 다 잊어버리고

죽어도 못 살 것 같은 살아도 못살 것 같은

꽉 다문 입심 하나로 살아냈다

 

2.

손목에 감아쥔 빗창이 전복한테 물리거나

돌 틈에 끼면 순식간에 요절하는 생

물질이 없는 날은 밭일을 하고

밤에는 바느질로 자식들 공부시키자면

고랫등 같은 파도가 덮쳐도 무서울 것 없는

염천 땡볕아래 콩밭을 걸타고 앉아

호미질로 지심을 잡고

엄동 눈밭에 얼음을 깨고 빨래하던

조선의 여인이 아니었다면

층층시하 효부효녀 열녀가 아니면 못해낼

거친 물살을 안고 살아낸 해녀인생

육칠십이면 졸업할 걸

팔십 구십이 되어도 놀던 물이라

차마 손 놓지 못한 물질

잔정 많은 바람에 물때까지 좋은 날은

가슴이 설레어 끼니때를 건너도 좋았다

바닷물에 허옇게 불은 얼굴로

갯바람 푸른 물가에 우산하나 펼쳐놓고

옷 갈아입던 그날의 해녀

 

근 한생 물질로 칠 부 능선을 넘어온 지금

포구 어촌계마다 육간대청 부럽지 않은

시설 좋은 해녀집에서

더운 물에 샤워 하고 꽃단장하는데

, 깜짝이야

불쑥 호명되는 핸드폰벨소리

이승저승 모두가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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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아라온호는 내 몸을 가로 지르다 /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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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비늘 / 이서진


햇빛이 가장 깊은 시간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비늘이다

골목 구석에서 웅크린 것들조차 파르르 몸을 떨며 떠오르고

깨진 병조각과 찌그러진 캔, 버려진 채 비린 시간을 견뎌온 것들

출렁이는 각자의 길을 따라 헤엄친다


후포 어시장 한 가운데

비린내 가득한 천막 안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

도마를 내리치는 예리한 칼 위로 비늘이 날아든다

그녀는 온몸에 반짝이는 비늘을 붙이고

얼음 위에 몸을 내민 생선들의 숫자를 센다

고무장갑을 벗은 여자의 손바닥 위

지워진 지문의 흔적을 바라본다

수많은 세월을 흘러온 그녀의 지문은

비늘처럼 떨어져 어느 골목을 헤매고 있을까

햇살이 굴곡 없는 여자의 손끝을 더듬고 있다


오랫동안 수많은 생물을 골라낸 여자의 손끝

어두운 뒤편에 버려진 것들은

문신처럼 박힌 지문을 끌어안고 잠들었을까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벗겨진 손끝을 닦아냈을지

마치 수조 같은 천막아래 갇힌 여자의 눈동자가

투명한 벽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ㅎ공을 헤엄치는 골목의 비늘들은

찬란한 햇빛의 궤적을 따라 거리 사이사이로 쏟아지고

사람의 정수리가 하늘을 향해 반짝이고 있다


손바닥 끝 지문들은 마지막 남은 비늘의 흔적일 것이다

출렁이는 햇살의 벌판을 힘차게 떠돌던

싱싱한 어조이었음을 증명하듯

그녀는 쏟아지는 한낮을 향해 반짝이는 칼날을 들어올린다






[은상] 넙치가 사는 법 / 강태승


바닥에 엎드리면 햇빛에도 들키지 않는다

파도가 뒤집어도 한결같이 부동

코도 베어가는 저 아수라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닥과 일치하는 것

바닥아래 바닥 없고 바닥 위에 바닥 없어

깨질 수도 깰 수도 없는 바닥에 누우면

아래로 휘어지는 것은 붉고 맑아,

차라리 바닥의 재료 되어버린 등짝

저승과 맞닿은 바닥에서 올려보면

해와 달도 평화롭게 시간을 달린다

이 섬 저 섬 사이로 쏘다니는 바람

끝끝내 움직이지 않는 바닥 때문이고

낮과 밤에도 쉬지 않고 정지하고 있어

넙치는 바닥의 무게와 같은 방향이다


소음 돌아가면 달랑 바닥만 남는다

등대가 지키는 외로운 바다를

덜거덕거리는 나룻배가 가끔 깨웠으나

바닥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늘 안전하게 죽어 있어

바닥 난 주제에 바닥에누워도

도망치지 않는 바닥으로 안전한 목숨,

종일 조개 줍던 강씨, 엉덩이 툭툭 털고

인사 없이 가도 나무라지 않는 바다에

눈이 내린다 죽어 내린다 다시 내린다

눈이 어떻게 내리는지 가운데를 받는

외면하지 않고 자리를 나누는 내어주는

깊이가 없으면서 깊고 고요한 바다에서,

넙치는 자신의 바닥을 내재율로 품는다.







[동상] 햇빛 채굴 / 김겨리


염전이 바다를 가둬 놓고 햇빛이 탁란한 알들을 포란하고 있다

수평선이 해풍을 물어다 먹이는 물의 종족,

간만의 차로 태몽을 꾼 뒤라야 옥양목빛 결정체로 부화된다

몽고점이 흰 것은 바다의 후예라는 증표


늙은 염부가 사금에서 간수를 뺀 소금을 캐고 있다

가계를 직조하는 고무래질마다 드러나는 가문의 뼈대

햇빛을 담았다 펴냈다 하는 것은

부력을 증발시켜 바람을 채로 거르는 일,


달빛 처마에 걸린 거미줄이 해풍을 클래식처럼 엮는 밤

혼자 배부른 달의 헛구역질이 심상찮다

어둠은 격자무늬로 뼈가 촘촘해지고

중력을 겉돌며 달이 물질하는 것은 태양이 뜨는 각도를 지켜보는 일


염전이 타들어갈수록 바다의 육질을 더 단단해지고

염부의 마른 입술이 해수면의 필체로 밀물과 썰물의 행간이 될 때

수평선에 묶인 목줄을 풀고 원 없이 컹컹 짖는 바다를 본다


만삭인 염전의 산기로 바다의 포궁이 열릴 즈음

수평선으로 한 올 한 올 엮은 후릿그물을 힘껏 당긴다

퍼덕거리는 하얀 느러미, 묵직한 손맛

쓸어 담은 삼태기에 방류한 갯것의 고딕체가 가득하다


햇빛의 골조로 낚은 천일염이 뻐끔거린다

낡고 오래되어 허물어질 듯 위태로운 소금 창고에

벽돌을 쌓듯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흰 월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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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호미곶은 저물지 않는다 / 김성배


방파제에서 잘 벼려진 손돌바람으로 깊어진

호미곶이 푸른 맨발로 나를 찾아든다

민장대에 입질한 괭이갈매기 울음이 비려질 때

곰삭은 어미의 손은

구멍 난 노을을 깁고 있다

귓불 시린 포구는

파도가 경매하는 꽁치떼 소리로 왁자하고

귀신고래가 물고 온 오호츠크 해는

저문 동백 속에서 밝아왔다

햇귀를 이고 떨어진 애기동백은

제 빛깔 속에서 밀려오는 주름진 뱃길을

마른 젖가슴에 묻는다

녹슨 해도도 없이

출렁이는 뒷산 밀고 앞산 당겨 노 저어가는

굿거리장단 시김새에 수평선을 풀어놓는다

서둘러 떠나야 어서 돌아온다던

물거품 속에 누워있는 아비를

아직도 아랫목 고봉밥으로 뎁히고 있는 어미는

선착장에 나가 불 꺼진 등대의 내장을 손질한다

입술 마른 숲길의 동박새 울음소리가

가파른 어미 등을 넘나들고

뭍으로 내달은 갯바람은

신발 끈을 조이는데

갈라 터진 한 줄기 그물 자국 손등을 벗어나지 못한다

돌아올 줄 아는 습성의

고래의 노래는 끊어지고

늘 내 뒤안에서 익어가는 장은

혼자 숨을 쉰다

어미는 억센 갯바위를 매러 나가 없는데

된장국 끓는 소리만 깊어간다

달빛에 뒤꿈치가 젖은 호미곶은

미세기로 드나드는 파도에게 가야 할 길을 묻는다







[은상흘수선 / 이은정


눈 내리는 포구

자박자박 졸고 있던 목선들이

말뚝에 매어 놓은 소처럼

찰박찰박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흘수선은 악기다

물의 악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너울성 타악기다

소 울음 가득 품은 장구의 북편

소금기에 절은 궁채가 수면의 음표들을 칠 때마다

북과 워낭은 각 색의 화음을 이루며

넘실넘실 소리되새김질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짐승의 목에

악기를 달아 놓는 것을 즐겼다

딸랑딸랑 소의 목에서 울리던 방울과

긴 밧줄에 묶인 배들의 목전에서 들리는

저 한가한 박자엔 눈발 성근 포구의 오후가 있고

파도를 삭히는

뱃사람들의 따뜻한 잠이 들어 있다


풍랑에 겨워 출항을 머뭇거리는 흘수

비스듬히 누운 돌꼇잠을 푸른 물이 뒤척거리면

출렁이는 꿈은 얽어맨 축승縮繩처럼

가닥이 여럿이다

몇 해가 지나도록

소리의 가닥을 잡지 못한 장구재비도 있다

조롱목을 조였다 풀며 해안을 거닐다가

불현듯 모래톱에 걸린 병목의 시간은

정 동쪽 끝으로 침몰해간다


포구에 눈 내리고

물은 무료한 건드림을 쉬지 않지만

밧줄은 현악기의 줄처럼 팽팽해진다

물 밖과 물 안쪽이 만나는 곳

저렇게 폭신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밧줄과 포슬포슬 내리는 눈

먼 바다 조업에서 돌아온

뱃사람들의 나른한 아랫목과

포구로 돌아가는 물살의 문우지정


고요한 듯하지만

목선엔 쉬지 않는 박자가 생물처럼 들어있다

악사의 채 끝을 타는 음표들이 팔딱거린다

삐걱거리는 물 위에서

울렁울렁 떠 있는 수평선이 보인다

 

 






[동상구부러진 곡선들 / 김우진


농협 앞 좌판에서 멸치 한 됫박을 샀다 비릿한 냄새가 옮겨 붙어 구불구

불한 골목을 따라온다 할머니의 등처럼 구부러진 곡선들,


저들에겐 새들의 유전자가 있어 허공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석양을 물고

물 위를 풀쩍 뛰어오르는

직선의 날렵한 몸짓이었다 은비늘 번쩍이며 파도를 물고 흐르던 빠른 속

도였다

포식자보다 더 빨라야 했으므로 속도가 목숨이었다


입속으로 거대한 바다가 드나들고 거센 파도가 스칠 때, 그들은 함께 물결

이 되어 흘렀다

떼를 이루어 거대한 몸짓으로 적과 맞선 그때, 그물은 멸치 떼가 온다고

외쳤다


너른 바다에 지느러미로 쓰고 다닌 흘림체, 생의 푸른 문장을 뱃속에 품고

멸막에서 그들은 모두 휘어졌다


곡선으로 휘어진 지느러미가 바다의 끝을 물고와 도심지에 풀어 놓았다

부력을 잃은 생명들이 좌판대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종로3가에 가면 구부러진 곡선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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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오늘을 경매하다 / 신진련

 

길은 늘 바닷가에서 끊어지고

달리는 발자국들이 모이는 자갈치

새벽은 푸른 가슴을 열고

뭍에 오른 파도소리를 잠재운다

 

경매사가 종을 올리는 공판장

지친 트롤선이 마악 부려놓은

생선 비린내를 어루만지는 손가락이 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기지개 켜듯 피어나는 꽃잎들

자갈치 꽃이 핀다

손가락이 만든 꽃잎은 바다의 기호

접은 수첩 뒤에서

바다의 주소를 옮겨 적는 동안

뭍에 내린 물 냄새가 옷을 갈아 입는다

가장 짜릿한 향기를 위해

손가락 끝에서 제 몸을 터뜨리는 물꽃들

접었다 폈다 새로운 기호로 태어나는 자갈치

꽃봉오리마다 아침이 만개하고 있다






[동상] 낙원동 골목길에서 동해를 만나다 / 김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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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백파의 항로1 / 배기환

- 출항

 

푸른 적요의 공간 속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귀가 육중한 바다의 이목구비 열면

시베리아 빙산 쓸고 온 된바람 지구를 흔들고

지구는 대양을 흔들며 곤하게 잠든 바다 불러 깨운다.

 

블랙홀처럼 어둠이 저벅거리는 바다를 토벌해야 하는

수부들의 고된 삶이란 어차피 모험이다.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파도와 해일의

난해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해독하며

험난한 바다와 끝까지 승부해야 한다.

 

젊은 날의 충동처럼 격동이 있고, 시련이 있고

짭짤한 삶의 애환들이 살아 숨 쉬는

욕망으로 출렁이는 울창한 바다의 숲 헤치면

싱싱한 물의 아가미가 뿜어내는

무성한 파도와 심해 속의 숱한 언어들이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

 

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난류와 한류

970헥토파스칼의 성난 눈길로 해륙을 물고 뜯는

풍랑의 빗장걸이에 번번이 걸려 넘어지면서도

수부는 기어코 저 바다를 정복해야한다.

험난한 저 백파의 언덕을 뛰어 넘어야한다

잘 발효된 해와, 달과, 별과

잘 숙성된 구름과 안개바다가 가지고 있는

수천수만 종 바다의 소장품들을 하나하나 탐색하며

광활한 초원처럼 펼쳐진 먼 바다로 출항하기 위해

수부는 지금 벅찬 가슴으로 바쁘게 닻을 올린다.





 [장려상] 태평양을 품다 / 서상규

 

솔로몬 군도 외항의 밤하늘에

제비꽃이 꽃보라로 핀 성좌도(星座圖)

브릿지 유리창을 찬란히 비춘다

시속 6노트로 참치 떼를 쫓는

원양어선이 꽃의 군락으로 빛나는 별빛에

매혹되어 한눈을 판다

이내 바른 좌표로 항로를 잡는다

어둠을 헤쳐 나가는 항해에

수평선으로 불끈 솟구친

범고래가 분수공으로 해를 띄운다

 

사방연속무늬로 빛살이 번진 물비늘을

검푸른 등으로 유영하는 참치 떼,

마스트에 새파랗게 열린 눈썰미로

참치의 향방을 우현으로 몬다

순간 투하되는 어망,

경도 위도로 짠 팽창한 그물로

선원들의 힘줄이 팽팽하게 엮인다

생이 정점을 향해 축포를 터트리듯

어망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생명의 절정으로 참치들이 파닥인다

참치 떼가 맞는 기꺼운 희생이

살림의 윤회로 뜨겁게 피돌기를 달궈

선원들 황금빛 근육에서

신생의 기운으로 되살아난다

 

만재수량에 깊어진 흘수선이

물고기 옆줄로 수평선을 당긴다

급랭한 어창을 가득 채운 만선에

가슴 벅찬 비움으로 전재작업*을 한다

태평양을 품은 원양어선이

새맑은 창공에 태극기를 펄럭이며

힘찬 생기로 파랑을 가른다

 

*전재작업: 참치를 운반선에 옮기는 작업







[장려상] 바다, 함수 풀다 / 배문석

 

바다의 족속들은 십의 구골승 무리

하나가 천으로 만으로

종족 불리는 미지의 함수다

물비늘 가르며 외롭게 떠나는

통통배 그 뱃머리에

벌거숭이 바다가 이마를 부빌 때마다

오대양 육대주를 향한

국부를 꿈꾸는 돛을 올린다

 

날 선 분포도의 어망에

씨알 굵은 어족들이 터질 듯 잡혀서 올려지고

구수한 거래를 마친 어판장 항구에는

사람들 입맛이 다시 바다로 향한다

수십만 톤의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

해빙을 깨고 남극에 인도하는 쇄빙선까지

항해는 미지를 푸는 열쇠다

바다가 만든 미지의 생명들이

사람들 주머니에서 혹은 식탁위에서

뱃꾸리를 불려가는 화수분이었다는 것을

메마른 눈으로는 모른다

 

때로는 분노의 물결이 눈을 들고

남획과 오염의 사슬을 끊어내야 하는

태풍의 속앓이를 보일지라도

바다가 감춰 논 수열을 읽어야한다

우린 어둠상자 안에서 보물을 꺼내듯

바다가 주는 행복

바다가 베푸는 함수를 풀어가야 하듯이

풍요를 위한 바다의 변수를 읽어가야 한다.

 

*구골승: 10의 백승을 나타내는 수의 단위.

*국 부: 국가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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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바지락을 캐면서 / 강성백

 

썰물이 빠져나간 천수만 갯벌 밭

농게 가족이 빈 구멍을 찾아 이사를 간다

바다는 하루도 거름 없이 이 길을 열어주었다

눅눅한 펄 밑에서 신음 한 번 내지 않는 조개들이

모래의 무늬를 입는 시간

나는 망망한 갯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바지락을 캔다

무릎을 달래가며 넓고 깊은 갯벌을 엎는

오랜 궁이로 오랜 물음으로 갯벌을 더듬어 습지를

걸어온 맨발들

지난 해 시월 천리 밖 물길에서 데려온 종패들이

혹한을 견뎌내며 동글동글 영글었다

여섯 달이 넘는 동안 거친 파도를 넘었을 것이다

구중의 두께로 고요가 슬는 시각에 달이 바다를 어루만지듯

더러는 혼자서 더러는 쑥대처럼 서로 엉켜 적요를 어루만졌을 것이

수없이 밀려가고 수없이 밀려오는 물결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바지락조개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지 펄 묻은 입들을 연신 달막거린다

조용히, 낮은 생태계의 간절한 몸짓을 본다

저것들이, 하염없이 모래를 삼켜 온 저것들이

쓰라린 손바닥을 달래줄 것이다

닳을 만큼 닳은 호미날을 기억할 것이다

바다는 오늘도 천의 생을 끌어 안고

수유 중이다

 

 

 

 

[장려상] 바다를 지나는 항로 / 안승범

-오징어잡이

 

묵힌 마음과 여우비가 미끌려 떨어진다

불 꺼진 집어등 안에서 밤으로 가는 공기가 잔뜩 웅크린다

나의 오늘로 오지 않은 이름들은 지금 먼 바다에 걸려 있다

묵호항을 떠난 배는 10노트의 속도로 두고 온 생활을 밀어낼 것이다

선미에 부딪쳐 직립으로 고꾸라지는 파도를 등 뒤에 두고

저 먼 풍경 안 정처(定處)에 가 나의 심해를 수소문할 수 있다면

거긴 서로를 지난하게 했던 우리 사생활의 오지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쓸리지 않을 각오가 물풍*을 내린다

잴 수 없는 깊이에서 갈라지는 길들이 읽힌다

쉽게 띄운 부표들이 저들끼리 멀어지는 게 보인다

여덟 갈래 제 길을 더듬다 길어진 두 손을 잡아주기 위해

나는 지금 제 안의 어둠을 쏟을 오징어의 순간을 기다린다

아직 찾지 못한 것은 결국 찾지 못한다는 건 육지의 율법

밤에서 밤을 지나는 이 고통이 사소해지면

거쳐 간 밤까지 거슬러 환해지는 기적이 온다는 믿음

밤과 바다가 서로를 안고 한 구덩이에 엉켜든 때

출어를 포기한 배들이 일찍 접은 환희가 선주를 깨운다

선주가 선원을 깨우고 조상기가 잠든 물레를 깨운다

십초 전에 끊어진 기도가 섬광처럼 길 하나를 다시 가른다

이 순간에 몸을 데우기 위해 빛은 우리를 여기로 모았다

언젠가란 말에 반쯤 단념했던 두근거림이 부른 난장

이 기적을 살려서 포구에 옮기는 것도 숙제일 테지만

낮보다 밝은 이 밤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밤들을 오징어와 수셈한다

잘 가라, 우릴 지치게 했던 불신의 저녁이여

 

* 어선을 오랫동안 고기 떼 위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물속에 내리는 어로 장비 

 

 

 

 

 

 

[장려상] 고래의 푸른 등을 보라 / 김미숙


 

장생포에서 고래바다여행선에 오른다

귀신고래, 참고래. 밍크고래, 쇠고래가 출몰했었다는

바다는 은사시 나뭇잎처럼 반짝거린다

코발트블루 바다와 하늘빛이 한통속이다

 

모두 같은 것을 바라며

서로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람들

마음은 수평선 너머로 달려간다

떠나온 항구는 점점 멀어져가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안타까움과

떠난다는 설렘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고래들도 이랬을까

 

선사시대부터 어미와 아비, 새끼들이 뛰어놀던 바다

고래의 숲에는 고래가 열리고

하늘에서는 고래가 날아다니던 바다

고래의 등에 올라타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누비다

가끔 미래로 수신불능의 그림문자를 송신하고

반구대 암각화로 걸어 들어간 어부들과 아이들

 

제 몸속의 지도를 따라 간 고래

지금 어디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까

가도 가도 만날 수 없는 오아시스처럼

갈증에 목이 마르다

종적이 묘연해진

고래가 지나온 아픈 길을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 한 장을 띄워 보낸다

 

그러다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의 끝

저 멀리 물비늘 반짝이는 거대한 등

45억년동안 우주 속을 유영해온

푸른 고래 한 마리, 지구

우린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 살고 있었음을

돌아오는 길 싱싱한 고래냄새

난 그의 푸른 등을 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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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스물다섯 살의 바다(잉크편지) / 이재성

 

수평선으로 붉은 바람이 붑니다

하늘에 붉은 부리 갈매기가

저녁을 향해 무리지어 날고 있습니다.

귀향명령을 받고 처음으로

당신이 넣어준

금촉 만년필에

여기 북태평양 저녁 바다를 닮은

잉크 가득 채워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고백하자면 여러번 전화를 걸고 싶었습니다.

바다가 고립무원은 아닙니다.

선박용 해상위성전화로 당신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나

그리움이란 바다동물을 상하지 않게 소금에 절여

냉동창고 깊은곳에 넣어 놓았습니다.

잊은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녹이면 싱싱하게

되살아나도록 감춰두었을 뿐입니다.

북양은 거대하고 추운 바다입니다.

봄에서 여름부터 짙은 바다안개에 갇히고

시월부터는 안개가 눈이되어 내렸습니다.

하루종일 지나가는 배 한척 보지못하고 파도만 바라보다 잠드는

날이 많았습니다.

나에게 기다림이란

어창을 가득 채우는 일이어서 어창이 차면

남쪽 바다로 돌아가는길이어서 보급품을 실은 운반선이 찾아왔을때도

몇 자 안부를 담아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 편지는 나와 함께 귀국할 것입니다.

소인대신 하얗게 터진

내 입술을 찍었습니다.

 

 

 

[장려상] 노래하고 춤추며 바다로 나아가자 / 김용수

 

누워 있는 한반도 사람들에게 일어나 바다로 나아오라고

동해 바다는 왼손을 들어 올리고

서해 바다는 오른손을 들어 주니

남해 바다는 허리를 껴안아 일으켜 세워 주고 있다

세계로 나아가라고 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바다

 

더 큰 바다로 나아가라고 오늘도 쉬지 않고

모래톱을 흔들면서 우리를 깨우고 있다

 

우리는 바다가 있기에 배를 만들고

큰 바다를 바라보면서 더 큰 배를 만들어

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넓은 바다는 우리의 길이요 힘과 꿈 희망

작은 바다의 환송을 받으며 큰 배들은

꿈과 희망을 싣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동해 바다는 등대요 서해 바다는 포구라고 할 때

남해 바다는 항구이니

꿈과 희망을 안고 바다로 달려 나아가자

 

바다가 노호하는 날에도 선단은 바위처럼 굳게 섰으니

흔들림이 어디 있으랴 떨림이 어디 있으랴

상인들이 이끄는 만선의 커다란 선단이

바다로 나갈 때는 희망이요

돌아 올 때는 기쁨이니 삶의 보물 창고이다

 

우리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언어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만남을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아니 영원히 노래하고 춤추며 바다로 나아가자 






[장려상] 처녀출항 / 임세한

 

삼각파도가 갑판을 휩쓸고 갑니다

무쇠 용골이 물보라에 뒤덮이고

휘청, 우현과 좌현이 기우뚱거립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어디 있나요

저 해일을 쩡쩡 가를 수 있을까요

벌써 한 달포쯤 달려온 바다는

흔들리는 하늘과 수평선뿐입니다

질긴 어둠과 견딜 수 없는 멀미뿐입니다

아직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545톤 트롤원양어선을 타고

내가 꿈꾸는 어장은 어디 있을까요

나뭇잎같이 흔들리는 나의 항해

나의 출항은 아직 빨강색입니다

수박만한 돌덩이가 머릿속을 굴러다니고

먹고 토하고 다시 먹어야만 하는

오장육부까지 비워내야 하는 나의 멀미

바다 출렁임과 한 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생선비늘 퍼런 갑판에 섭니다

엔진의 가속레버를 더욱 당기며

GPS의 길을 따라 어탐을 켜듭니다

저 고요한 수평선 너머, 밤하늘엔

내가 찾는 별들이

오늘도 물고기 비늘로 반짝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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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낯선자와의 긴 항해2 / 심호섭

 

큰 새가 날아왔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와서는 몇 번 퍼덕이다가

항해실 창가 핸드 레일 위에 앉았다

정오의 햇빛에 새의 흰 몸둥이 눈부시다

새는 고개를 수그리더니 부리로 이리저리 쪼아댄다

자세히 보니 가슴 부위에 피 같은 것이 나 있다

상처를 입었나 보다

새는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에 깃털이 나부끼고 있었다

 

북위 07도, 서경 123도 그리고 수심을 나타내는 숫자와 알파벳 기호들

나는 이런 것들로 채워진 해도 위에

4B연필로 침로선을 긋고 있었다

나는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기록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검은 잉크펜으로 항해일지에

오늘의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항해실 바깥의 큰 새가 궁금해졌다

나는 하는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큰 새에게 가 보았다

새는 잔뜩 웅크린 채 앞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큰 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새는 크게 날개짓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다시 갑판에 내려 앉았다

다시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새가 나를 쳐다본다

새의 얼굴이 사납다. 무섭다

저 새는 이빨이 있을지도 모른다. 손갈퀴도 사나울 것이다

 

그 자가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자는 새에게 손을 내밀었다

새가 그 자에게 손을 주었다

그 자는 호주머니에서 먹이를 한 줌 꺼내어 새에게 주었다

무슨 열매를 열심히 먹는다

새가 힘을 얻었다

새의 가슴 부위 상처가 나아졌다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항해실 위의 하늘을 빙빙 돈다

나는 새와 새를 바라보는 그 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보기 좋았다

 

그러나,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싸우러, 싸우러 가는 거요

싸우다 상처를 입으면 또 이렇게 찾아올 거요

 

갑판으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가 없다

나는 새를 찾기 위하여 배의 가장 높은 곳인

나침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사방으로 멀리, 하늘을 살펴본다

보인다. 새가 보인다

그 큰 새가 날아가고 있다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

 

 

 

 

 


 

[우수상풍경 / 김만수

-밍크고래

 

거꾸로 매달린 채

말이 없다 그는

검시가 끝나자 해체 분할되기 시작했다

꼬르륵 꼬르륵 허파에 찬 물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공기방울이 동쪽으로 몰려가는 소리가 났다

묶인 몸을 따라왔던 갈매기들 하나씩 돌아가고

그도 어둡고 낡은 바다로 빠져나가

그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따스한 젖몸

흩어지는 몸의 부속들 조각들 위로

찢어진 어판장 양철 지붕 사이로

유쾌한 봄볕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바닷가 부족들은 그물을 꿰매며

다시 배를 띄워

곶 근처를 배회할 것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린 새우 떼들이 바람같이 몰려다니는

물목에 엎드려

푸른 바다를 해체하러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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